2014년 러시아 초청 투자 포럼에 참석한 멍완저우 CFO ⓒkremlin

정상회담에서의 휴전 합의로 타협점을 찾는 듯했던 미중 무역전쟁이 그날 발표된 중국 최대의 통신기기업체 화웨이의 멍완저우 CFO의 체포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졸지에 전쟁의 미국쪽 ‘인질’신세가 돼버린 멍 CFO의 앞날 만큼이나 감잡기 어려운 미중 무역전쟁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좀 더 긴 안목으로 이를 한 번 짚어보자.<편집자>

21세기의 ‘스푸트니크 충격’

1957년 10월 4일 당시 냉전체제의 한 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조어가 생겨날 만큼 미국이나 서방 세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자국의 절대적 힘(특히 과학기술)의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의 자신감은 크게 흔들렸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 속에 기초교육(수학·과학)과 우주개발 시스템을 새로 짜고 코콤(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 같은 대결 통제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그래서 태어났고 인터넷의 등장도 그때의 충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의 미국 모습이 60년 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의 미국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허둥대며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도 어쩐지 그때와 닮은 것 같다.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21세기의 스푸트니크는 2015년에 중국이 발표한 ‘중국제조(Made In China) 2025’ 쯤 되지 않을까. ‘산업의 쌀’ 또는 정보(데이터)라는 21세기의 새로운 ‘기름(oil)’을 힘으로 바꾸는 새로운 내연기관(엔진)이라는 반도체 마이크로 칩을 비롯한 첨단기술 제품이나 기술 그 자체를 2025년까지 미국 수준까지 따라잡거나 넘어서겠다는 중국제조 2025. 그것이 중국 뜻대로 실현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미국. 용호상박의 이 양자 간의 민낯 충돌이 지금 진행 중인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 제품 수입에 대한 25% 고율관세의 일방적 적용과 중국의 맞대응, 그리고 뜬금없어 보이는 중국 거대 통신기기업체 화웨이(華爲技術)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의 체포를 둘러싼 양자간 공방도 좀 좁혀서 말하면 이 21세기 내연기관인 반도체 칩 지배권을 둘러싼 대결, 더 줄여서 ‘반도체 칩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 간 충돌은 실제로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 사활을 건 전쟁, 그것도 거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칩 전쟁’ 누가 이길까?

전쟁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이 전쟁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스푸트니크 쇼크 또는 스푸트니크 이펙트(effect)는 결국 미국이 먼저 사람을 달에 보냈고, 그 대결체제의 총화라고 할 수 있었던 차가운 전면전(냉전)에서도 소련이 무너졌으니 일단 미국이 최종 승자였다고 할 수 있다. 스푸트니크 쇼크와 중국제조 2025 쇼크를 단순 비교할 순 없겠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끌고 가는 전쟁 방식은 60년 전 냉전시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낡은 ‘구닥다리’ 방식이다. 그래서 굳이 단순비교를 해 보면, 중국제조 2025 쇼크의 승자가 미국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의 싸움방식을 고집하는 한 오히려 미국이 패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는 관측도 많다.

‘칩 전쟁’(Chip wars)이란 제목으로 이 문제를 다룬 잡지 <이코노미스트>(2018년 12월 1~7일)의 시각을 원용해서, 이 전쟁을 지정학적(또는 지경학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끝난 냉전식 결말, 즉 미국의 승리가 그 30년 뒤에 또 찾아오리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반도체 전쟁의 지정학

우선 미국은 군사력을 뺀 총체적인 국력에서 비교 불가능한 최강자였던 60년 전과는 다르다. 여전히 군사력은 압도적이지만 그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 비중에다 상승세였던 당시와 달리 지금 미국의 일극체제는 끝나가고 있고 상승세가 아니라 하향세다. 특히 경제력에서 당시의 라이벌이었던 소련에 비해 지금의 경쟁자 중국이 훨씬 더 강하다. 양적인 면에서 중국경제는 미국을 이미 넘어섰다는 평가도 있다. 게다가 이념적으로 양대 진영 형태로 완전히 분리돼 있던 당시 세계와는 달리 중국은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화(글로벌 체제)의 일원이자 핵심적인 구성요소다.

60년 전에는 이념 대결과 군비 경쟁, 코콤(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 같은 장치로 소련과 사회주의권을 철저히 봉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절대 우위의 지표 쯤으로 여기고 있는 퀄컴 같은 미국 첨단 반도체기업도 판매수익의 3분의 2를 중국에서 얻고 있다. 또 다른 대형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도 수익의 57%를 중국에서 벌고 있다.

멍완저우 화웨이 CFO 체포를 전후해서 미국은 국방권한법을 동원해 화웨이의 완제품, 부품의 정부 조달을 금지시켰고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와 같은 동맹국들을 그 대열에 줄 세우려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진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오스트레일리아가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의 참여를 금지시키겠다는 방침을 정했고, 뉴질랜드도 뒤를 따르고 있다. 영국은 대형 통신업체들이 5G 기간 네트워크에서 화웨이 기기를 배제하겠다고 했고 캐나다도 직접 화웨이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안보상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화웨이를 기피하려 하고 있다. 이들 5개국이 각자의 첩보(정보)기관 정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들인데, 멍완저우의 체포에 바로 이 파이브 아이즈 차원의 첩보와 협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체로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도 화웨이에 대한 대처에서 약간씩의 온도차가 있다.

일본 역시 총리 주관 아래 사이버안전대책추진회의를 열어 “정보통신 기기의 정부 조달 때 사이버 공격 등 안전보장상의 리스크를 저감”시키는 쪽으로 가겠다며 화웨이를 직접 지목하진 않았으나 사실상 배제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과 얼마 전에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며 중국과의 협력 제스처를 취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소프트방크도 그런 정부 방침에 따라 특정사를 지목하진 않았으나 5G 기기 조달에서 화웨이와 종싱통신(中興通訊, ZTE) 등 중국업체들을 배제(지금까지 일부 중국업체 기기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아사히신문> 12월 11일) 일본 정부가 정부 부처와 자위대 등에서 사용하는 통신장비에서 화웨이와 ZTE의 제품을 배제할 수 있도록 내규를 개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동맹국이지만 ‘앵글로 색슨’ 동맹 소속이 아닌 유럽연합(EU) 중심국 독일은 정부 조달에서 화웨에 기기 참여를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길을 택했다. 독일 내무부 대변인은 지난 7일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배제하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안전대책은 통신법으로 정해져 있고, 정부도 검증하고 있다”며 화웨이의 참여를 분명하게 인정했다.

반도체로 중국에게 최대의 무역적자를 안기고 있는 한국(수백억 달러 연간 대중 무역흑자액의 약 40%를 반도체 부문이 차지한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독립지향의 민진당이 참패한 대만 등 미국이 이끄는 반도체 동맹의 핵심 국가(지역)들이 오로지 미국 눈치만 볼 수 있을까. 일본 역시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이미 글로벌화한 지 오래여서, 예컨대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추산으로는 미국 관련업체 하나에 부품 공급처는 1만6000개쯤 되는데 그 중 8500개 이상이 미국 바깥 해외에 있다. 칩의 디자인과 생산, 조립 시스템도 철저히 국제분업화해서 실리콘은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에서 원료를 생산해, 일본에서 실리콘 단괴를 만들고 잘라서, 한국·대만에서 거기에 회로를 심고, 그 심는 장비는 네덜란드에서 만들고, 독일 멕시코에서 부품을 공급하고, 다시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마지막으로 조립 포장하며, 이 모든 공정 디자인을 영국 ARM(최근 일본 소프트방크에 인수)에서 하는 식이다.

중국에 유리한 ‘무어의 법칙’ 붕괴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도 최근의 발전 추세는 중국에게 유리하다.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온 ‘무어의 법칙’(Moor's law)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미세가공 쪽으로 달려 온 반도체 집적회로기판(칩)의 단위면적 당 회로집적도가 대략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은, 바로 그 발전 때문에 넘을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칩은 회로선을 가능한 한 가들게 만들어 집적도를 높여 온 기존 방식으로는 더는 집적도를 높일 수 없는 물리적 한계로, 디자인 자체를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양자 컴퓨터와 같은 전혀 다른 작동기제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에게 유리하다.

중국과 같은 반도체 산업 후발주자가 첨단 고급제품 생산에서 삼성이나 인텔 같은 기존 대형사와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없었던 데에는 이 무어의 법칙 탓이 컸다.

신규 참여자가 약 2년마다 두 배로 뛰는 회로 집적도를 따라잡을 미세가공의 기술적 진보 속도를 따라잡기도 어려웠지만, “칩 제조공장 건설비용은 4년마다 2배로 뛴다”는 이른바 무어의 제2법칙 때문에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돈을, 살아남을 전망조차 불확실한 반도체 칩 공장 건설에 투입하긴 더 어려웠다. <이코노미스트>가 예로 든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건설비가 140억 달러. 4년 뒤를 내다보고 그것을 따라잡겠다거나 능가하겠다고 28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래봤자 삼성은 더 앞으로 가버릴 공산이 크다.

그래서 2001년엔 첨단 칩 생산 거대업체가 29개나 됐으나 지금은 5개사로 줄었다. 경쟁에서 지면 바로 몰락이다.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들이 그래서 몰락했고, 삼성·LG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압도적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택이었다. 중국의 첨단산업 따라잡기 속도를 떨어트려 온 것도 이 무어의 법칙이다.

말하자면, 이 무어의 법칙이 더는 통할 수 없는 기존 칩 디자인의 절대적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중국 같은 후발주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디자인 교체나 전혀 다른 방식을 찾아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잘만 하면 기존 강자들을 따라잡거나 단번에 추월해 버릴 수도 있게 된다. 중국제조 2025는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의 청사진이다.

반도체 산업이 최첨단 산업이긴 하지만 정말 최첨단 기술은 20~25%고 나머지 75~80%는 비첨단 조립, 연결, 포장 기술이 차지한다. 그 비첨단 부분을 거의 절대적 비중으로 장악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이를 토대로 첨단 분야까지 넘보고 있고, 화웨이 산하 하이실리콘은 칩 디자인 분야에서 서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이미 첨단기술도 축적해 왔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기 전해인 2014년에 1500억 달러 투입계획을 밝혔고, 2016년에 650억 달러 수준인 중국 국내 칩 산업 수익을 2030년엔 3050억 달러로 늘리고, 그 제품 조달처도 지금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인 중국업체 비중을 거의 중국업체 위주로 바꿀 작정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양자컴퓨터나 슈퍼컴퓨터 개발, 거기에 필요한 초전도체나 이온 트랩 같은 차원이 다른 기술연구, AI(인공지능) 연계 컴퓨터, 반도체 장비산업 등에서 기존 강자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런 연구를 위해 중국은 100억 달러 규모의 최첨단 실험실을 안후이성 허페이에도 지었다. 원유 수입보다 첨단 반도체 수입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현실도 중국에겐 뼈아프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이 국방체제와 미 군사력에 대단히 중요(critical)”하다는 걸 강조해 왔다.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도 지난해에 미국이 계속 앞서가려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권 이전 버락 오바마 정권 때부터 그랬고 대비책을 강구해 왔다. 이는 바꿔 말하면 중국으로서는 첨단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면 영원히 미국에 종속당한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을 따라오지 못하게 방해하면 할수록 중국은 반드시 따라잡고 넘어서야겠다는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 트럼프의 대중국 행보가 중국의 바로 그런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반도체 열전을 끝내는 법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간 반도체 칩 전쟁에서 공멸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 째,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들과 손잡고 중국의 불공정 관행(기술이전 강요, 지적재산권 절도, 비관세장벽, 사이버 침투 등)을 바로잡기 위한 대응 내지 반격을 가하고, 안보상 필요하면 대중 투자를 금지하는 조치를 강구하되, 이를 세계무역기구 등 기존 체제 내에서 추진한다.

둘 째, 더 많은 자금과 기술 인력을 투입해 미국 자체의 이노베이션을 강화해 기술우위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존의 국제 분업순환체제를 깨고 그것을 미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편하는 것보다 쉽고 더 안전하다.

셋 째, 중국 칩이 더 힘을 갖게 되고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않는다.(아니 막을 수 없다) 대신 기술 절도 등의 불공정 관행을 막기 위한 중국 제품 검사, 데이터 취급 안전기준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한마디로, 억지로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막다가는 막는 쪽이 더 낭패 볼 수 있으니, 고관세 장벽의 일방적 강행 등의 돌출적 행동은 그만두고 중국을 길들이되 기존체제 내에서 하라는 주문이다. 그걸 지금처럼 동맹국까지 적으로 만들 생각 말고 손잡고 뭉쳐서 함께 대응하는 게 유리하다는 손자병법식 상식까지 알려준다. 지정학적으로나 기술적·물리적으로 60년 전 냉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는데, 싸우는 방식이 예전 그대로라면 이기기 어렵다. 중국을 미국이나 서방의 하청기업 정도로 억누르는 것은 이미 더는 불가능하니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쓰라는 얘기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완승은 생각지도 말고 그저 따라오는 속도나 좀 늦춰서 기술 등의 격차에 따른 부등가 교환의 덕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누리는 쪽을 택하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 같기도 하고.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