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행운아였다!’ IT 산업을 20년 넘게 취재해온 도안구 필자는 훗날 2023년이 이렇게 기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IT 역사를 새롭게 쓰는 거대한 사건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거대한 사건은 바로 AI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격전이다.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로 공세에 나선 뒤, 구글은 시장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다. 후발주자에서 선두를 따라잡고 왕국을 건설한 구글의 역사로 보면, 정반대의 처지에 놓인 셈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가진 거대 기업이 더 이상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후발 기업의 기술에 시장 지배력을 잠식당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가 이 싸움에서 과연 나타날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편집자 주]

✔ 챗GPT 출시 이후 벌어진 IT 기업들의 속도전✔ 모든 서비스와 제품에 스며들고 녹아드는 AI✔ 구글, 경쟁사 제치고 1위 올라선 경험 풍부해✔ MS·오픈AI, 구글의 강력한 수익원 정조준해✔ 구글의 위기 극복? IT 역사를 새롭게 쓸 사건

 

사진: 셔터스톡

 

며칠 전 지인을 만났다. 회사원으로 부장인데, 웬일로 한 대학의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디지털 전환이 이슈로 떠올랐던 시절, 정보통신 분야의 변화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조언을 해달라는 그의 부탁이 기억났다. 대화의 화두는 역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열어 젖힌 새로운 AI 물결이었다. 특히 생산성 툴의 변화가 직장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텐슨의 <혁신기업의 딜레마>

지인은 최근 경영대학원 교수님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1997년에 쓴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를 학생들에게 권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을 가진 거대 기업이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후발 기업의 기술에 시장 지배력을 잠식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혁신가의 딜레마 (출처: 연합인포맥스)

옛 책을 다시 권한 이유는 구글 때문이라고 했다. 오픈AI라는 스타트업과 그 회사에 투자를 하고 든든한 뒷배가 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챗GPT’로 인해 인공지능 제왕으로 불리던 구글이 한방 얻어 맞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피렌체의 식탁>에 챗GPT와 관련된 글을 게재한 게 지난 2월 8일이었다. 그때로부터 고작 두 달이 지났지만, 그 사이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속도전’이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회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무기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리고 그 공세에 구글이 휘청이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구글은 검색, 지도, 스마트폰인 ‘픽셀’, 구글 포토, 유튜브, 구글 어시스턴트, 지메일, 광고, 클라우드 등 대표적인 서비스에 AI를 내장해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 강자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다른 회사들이라고 사정이 좋을 리 있을까? 아마존의 ‘알렉사’라는 음성 비서나 애플의 ‘시리’는 어떤가.

‘인공지능의 제왕’ 구글 ‘한방’을 맞다

시장조사기관인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의 추정에 따르면, 2022년 이 시장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는 8150만 명, 애플의 시리는 7760만 명, 아마존의 알렉사는 716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4년에는 8880만 명이 구글 어시스턴트를, 8420만 명이 애플 시리를, 7560만 명이 아마존 알렉사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애플 시리는 2011년 10월 아이폰 4S에 탑재되며 등장했고, 구글도 이에 대응해 구글 어시스턴트를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2017년 갤럭시 S8에 인공지능 가상비서 ‘빅스비’를 선보였다. 구글은 자사가 제공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홈 네트워크 기기, 전용 스피커 등에 이를 연동했다.

 

사진: 구글 블로그 (New features for parents and kids on Google Assistant, https://blog.google/products/assistant/new-features-for-parents-and-kids-on-google-assistant/)

 

마이크로소프트도 ‘코타나’라는 음성 비서를 내세웠지만 참패했다. 애플은 폰과 태블릿, 노트북을, 구글은 인터넷 서비스와 안드로이드를, 아마존은 전자상거래를 통해 B2C 접점을 마련해 놓고 있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운영체제와 오피스 이후 모바일 영역에서 패퇴하면서 자신들이 내세운 서비스를 개인들에게 확산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 협력해 판을 흔들었다. 선발 기업들 모두 일격을 당했다. 오픈AI 직원은 400명이 채 안 된다. 아마존은 경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1만 명이 넘는 인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알렉사 팀도 그 대상에 들어갔다. Amazon 'fully committed' to Alexa despite layoffs, hardware chief says (cnbc.com)

2018년 구글은 처음으로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에 참가했다. 이유는 아마존 알렉사 때문이었다. 아마존 알렉사는 2017년 CES에서 첫 선을 보였다. 구글이 2018년 CES에 참가하면서부터 CES는 두 회사의 음성 혹은 가상 비서를 탑재한 가전과 자동차, 그 외 다양한 기기들의 격전장으로 바뀔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응해 빅스비를 선보였고, LG전자는 독자 가상 비서보다는 고객들이 선택하는 걸 연동해주는 전략을 택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진: 구글 블로그, https://blog.google/authors/sundar-pichai/)

 

필자의 눈에는 이미 2024년의 CES가 눈에 선하다. CES를 떠났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다시 참가를 하고 있다. CES에서는 AI가 모든 서비스와 제품에 스며들고 녹아든 걸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생성형 AI가 어떤 형태로 제품화되고 서비스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구글 CEO “먼저 나온 제품이 최고는 아니다”

그럼 다시 구글로 시선을 집중해보자. 구글도 대응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는 지난 2월 15일 직원들에게 사내 메시지를 보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챗GPT에 대한 대항마 ‘바드(Bard)’를 선보이며 ‘AI 여정의 중요한 다음 단계’라는 메시지를 내놨다가 부정확한 정보 노출로 주가가 10%나 떨어진 이후 나온 메시지였다. 그는 사내 메시지를 통해 “먼저 나온 제품이 최고의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고객의 요구를 빠르게 반영하고 꾸준히 개선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내온 경험이 우리에게 있는 만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제공에 모든 구글러들이 동참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Google CEO: Some of company's top products 'were not first to market' (cnbc.com)

피차이 CEO가 이런 메시지를 전한 이유가 있다. 구글은 태생부터가 후발주자였다. 구글은 1998년 9월에 만들어졌다. 포털을 호령한 야후는 1994년이었다. 야후에 검색엔진을 제공해서 승승장구한 회사는 잉크토미였다. 하지만 구글은 회사 설립 2년도 안 되는 2000년 6월 잉크토미를 제치고 야후 검색 엔진 공급에 성공한다.

야후를 등에 업고 검색 시장 진입에 성공한 후 구글은 온라인 광고 시장에 뛰어든다. 당시 1등은 오버추어였다. 오버추어는 검색어 입찰을 통해 검색 엔진 결과 페이지에서 콘텐츠 제공자의 위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관련 시장을 이끌고 있었다. 구글은 검색 점유율을 기반으로 유사 서비스를 내놨고 궁극적으로 이 시장을 평정한다. 이 문제로 소송이 진행되었지만 막판에 합의했다.

웹메일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핫메일이 1위였다.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1위였다. 애플이 iOS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아이폰을 출시하고 앱스토어로 전 세계 앱 생태계를 구축하자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단말 우군들을 발 빠르게 확보해 뒤늦게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모바일을 내세웠지만 모든 기기 업체들이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뛰어들면서 이 시장에서 완전히 패퇴했다. 지메일, 크롬 브라우저,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쟁쟁한 1위 업체를 물리치고 차지한 성과들이다.

구글이 실패한 서비스도 많이 있지만, 후발주자로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던 기업들과 경쟁해 시장 1위로 올라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메시지로 내부를 결속시키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구글은 AI 앱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손쉽게 AI를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구글 클라우드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오피스에 AI를 적용한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 워크스페이스’에 생성형 AI 기능을 추가한다고 맞불을 놨다. 바드라는 챗GPT 대항 서비스를 미국과 영국에서 내놓고 순차적으로 나라를 확대해가겠다고 밝혔다.

 

JD 작성을 돕는 구글 닥스의 생성형 AI 기능 (사진: Google 한국 블로그, 구글 워크스페이스와 개발자를 위한 차세대 AI를 공개합니다, https://cloud.google.com/blog/ko/products/gcp/technologyaiai-developers-google-cloud-workspace)

 

딥마인드와 구글 브레인, 손을 잡다

구글은 조직 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는 구글이 인수한 회사지만 본거지는 영국이다. 이와 별도로 미국에는 구글 브레인이라는 AI 그룹이 있다. 하나의 회사 안에 선의의 경쟁을 하는 두 조직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두 조직이 힘을 합치고 있다.

IT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프로젝트 ‘제미니(Gemini)’로 알려진 공동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바드를 내놓고 이걸 뛰어넘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 빠르게 만들어 대항하겠다는 전략이다. Alphabet’s Google and DeepMind Pause Grudges, Join Forces to Chase OpenAI — The Information

피차이 CEO는 최근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 출연해 바드의 모델도 더 성능이 좋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밝혔다. Google C.E.O. Sundar Pichai on Bard, A.I. ‘Whiplash’ and Competing With ChatGPT - The New York Times (nytimes.com)

구글이 이처럼 전사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검색서비스 ‘빙(Bing)’과 웹브라우저 엣지에 오픈AI와 협력해 얻은 GPT-4를 적용해 검색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설명한 검색과 채팅의 차이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마이크로소프트 CEO 겸 이사회 의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 시장에서 구글로부터 1%의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면 연간 20억 달러(2조60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검색 점유율은 자연스럽게 온라인 광고 시장으로 이어진다.

구글의 수익 중 검색과 이로 인한 온라인 광고 매출은 전체 매출의 77.6%가량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가 구글의 가장 강력한 수익원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에 구글로서는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오픈AI ‘플러그인 전략’, 얼마나 힘을 쓸까

오픈AI는 최근 플러그인 전략을 발표했다. 실시간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선 12개의 기업들과 협력했다. ChatGPT plugins (openai.com)

여행과 숙박, 렌트 관련 회사, 식료품점과 가격 비교사이트, 법률과 정치, 규제 데이터 실시간 제공 기업, 식당 추천과 예약, 수학 문제 풀이 서비스 제공기업,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비롯한 5000개 이상의 앱과 상호작용하는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다.

해당 분야에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의 정보를 연동해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고 이곳에 앱을 등록하면 전 세계 사용자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다운로드를 한 뒤 사용하면서 우군을 확보해 나갔듯이 AI 영역의 생태계 구축을 ‘플러그인’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진출한 나라들마다 관련 서비스 소개에 여념이 없다. 오픈AI도 거들고 있다. 샘 알트먼 오픈AI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오는 5월과 6월 전 세계 17곳의 도시를 도는 ‘오픈AI 투어 2023’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신청 페이지 OpenAI Tour 2023 https://openai.com/form/openai-tour-2023

알트먼은 세계 최대의 벤처 캐피털 대표를 역임하고 시장을 키운 경험이 있다. 초기에 시장을 어떻게 선점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IT 역사를 새롭게 쓸 경쟁

구글은 오픈AI에도 대응해야 하고, 그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와도 경쟁해야 한다. 이번에는 후발주자로 역전시켰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은 구글이었다. 다양한 서비스에서 1위였다. 하지만 상대는 기존 검색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화형 검색 서비스이기 때문에 기존 검색과 온라인 광고 매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응을 하더라도 현재 매출이 줄면 안 된다.

분명한 건 구글이 ‘혁신기업의 딜레마’ 대표주자로 기록되지 않기 위해 지금 전력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잃을 게 적지만 얻을 건 많은 도전자와, 너무나 잃을 게 많은 방어자의 격돌은 AI를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 영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구글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2023년은 이걸 확인할 수 있는 해이다. IT 역사를 새롭게 쓰는 몇 안 되는 사건 가운데 하나를 마주할 수 있으니 우리는 모두 행운아다.

 


 

글쓴이 도안구는‘유쾌한 기술 이야기’를 모토로 내건 <테크수다>의 대표 겸 편집장이다. 정보통신 분야 전문기자로 24년째 활동 중이다. <정보시대>를 거처 <블로터닷넷> 창간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국내 유일의 소프트웨어 개발 잡지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편집장을 거쳤다. 한국 기자로는 처음으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기능을 활용해 라이브 인터뷰, 현장 중계를 국내외에서 진행해 왔다. eyeball@techsu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