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가 10만 명이 넘을 가능성도 있다.” 튀르키예⸱시리아를 강타한 위력적인 지진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사망자만 1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안타까운 전망마저 나온다. 거대한 비극이다.그렇지만 비극의 한복판에서 감동의 ‘휴먼 드라마’ 또한 쓰여지고 있다. 피해 지역의 구조와 지원을 돕기 위한 지구촌의 손길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로 몰려들고 있다. 중동과 유럽‧아시아 여러 지역을 두루 취재한 채인택 필자는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구호단체의 활동을 소개하며 “이제 시민들이 지원으로 하나가 될 때”라고 호소한다. [편집자 주]

✔ 숨진 딸의 손을 놓지 않은 아버지, 세계를 울려✔ 대선 앞둔 에르도안, 악재를 정치적 홍보에 이용하려 해✔ 지진을 핑계로 반정부 세력을 견제하는 시리아 정부✔ 시리아 민간단체 '하얀 헬멧' 구조 활동 돋보여✔ 국제 사회의 도움과 위로··· 시민들도 행동에 나서야

사진: 셔터스톡

지난 2월 6일 새벽 4시 17분(현지시간), 튀르키예 중남부와 시리아 서북부를 뒤흔든 규모 7.8의 강진은 거대한 비극과 휴먼 드라마를 동시에 쏟아냈다. 인구 210만 명의 튀르키예 중남부 대도시 가지안테프의 동쪽을 진앙으로 78초간 흔들렸던 지진은 그 뒤 7일까지 145회의 여진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비극과 휴먼 드라마

터키 영어 일간지 <데일리 사바>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9일 0시 기준 튀르키예 9050명 사망, 5만2970명 부상에 시리아 3480명 사망, 3750명 부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8일까지 1만2000명의 사망자가 집계됐지만 이 숫자는 9일 낮 1만5000명으로 뛰는 등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가 최대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길 확률이 14%라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숨진 딸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아버지, 태어나는 도중 탯줄도 제대로 끊지 못한 상태에서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엄마를 잃은 갓난아기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비극이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지진은 진앙지의 지명을 따서 카라만마라슈 지진 또는 가지안테프 지진이라고도 하지만, 국제적으론 ‘2023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불리고 있다. 진앙지 주변의 대도시인 가지안테프는 고대 로마 제국부터 비잔틴 제국, 중세의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거치면서 튀르크와 중동을 잇는 교역 중심지로 자리 잡은 곳이다. 남쪽으로 시리아, 동쪽으론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쿠르디스탄이 자리 잡아 다양한 물자와 문화, 인력이 오가는 문명과 경제의 교차로였다. 현재 지도상으로는 튀르키예의 변방이지만 수천 년 동안 중동과 유럽의 가운데에 위치했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있던 시기, 이들에게 동조한 외국인들이 무장대원이 되기 위해 국경을 넘으면서 반드시 거쳤던 곳이 가지안테프였다. 여기에는 한국인 청년 한 명도 포함됐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튀르키예 정부는 구호와 수습에 역부족을 느꼈는지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구조대 파견이 충분하지 못하다거나, 내진 설계가 부족해 상황이 악화됐다는 지적에는 “예방할 수 없었던 재해”라는 논리로 대응 중이다. 튀르키예는 올해 10월에 공화국 창건 100주년, 5월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은 지진이라는 악재를 정치적 생존에 이용하려고 홍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에 깔려 숨진 딸의 손을 잡고 있는 아버지 (사진: 연합뉴스)

지진을 정치적 생존에 이용하려는 에르도안의 안간힘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위터에 직접 “피해 지역에 수색‧구조팀을 파견했다”는 글을 올렸으며, 피해 상황과 구조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피해 지역 주지사 8명과 통화한 상황도 공개했다. 7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하고 지진 피해를 입은 10개 주에 대한 긴급 재해지역 선포도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푸아트 옥타이 부통령은 2800명 규모의 수속‧구조팀을 현장에 파견했으며, 나중에 그 파견 인력이 9000명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튀르키예 현지 매체도 주요 기사로 올렸다. 튀르키예 <안다루 통신>의 웹사이트에선 7일 에르도안이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톱 자리를 차지했다. <데일리 사바> 웹사이트는 8일 ‘에르도안이 모든 구조대원을 지진 현장 구호에 동원하라고 지시했다’는 기사를 가장 크게 올렸다. 이 신문 웹사이트는 재난비상관리청(AFAD)과 튀르키예 적신월사 연락처 등 희생자를 도울 기부 방법을 가장 앞에 안내했다. AFAD가 10만 개의 침상과 30만 장의 모포를 지진 지역에 보냈다는 소식, 튀르키예 축구협회가 희생자 지원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 이스칸데룬 항구의 대형 화재가 불길이 잡혔다는 기사 등이 눈에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망자의 친지를 찾기 위해 얼굴 확인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도 함께 보였다. 유력 영어신문인 <후리예트 데일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정작 현장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전한 것은 외국 언론이었다. 7일 프랑스 리옹에 본부를 둔 유럽의 24시간 영어 뉴스 채널인 <유로뉴스>의 튀르키예인 기자는 피해 지역인 하타이에서 주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다. 대화는 튀르키예어로 진행됐으며, 영어 자막으로 소개됐다.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시민들

화면에는 거리 좌우 양쪽의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시민들은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배경으로 잡혔다. 한 중년여성은 기자에게 “나는 5층에서 간신히 지상으로 내려왔고, 지진 발생 직후부터 갇힌 사람을 구해달라고 구조대를 요청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여성은 “잔해에 갇힌 내 동생을 구하기 위해 불도저를 요청하려고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동생은 피를 흘리다 숨졌다”며 절규했다.

한 중년 남성은 구조활동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제 이 건물에 두 어린이, 저 건물에 한 어린이가 있었는데, 우리가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어제 밤 구호대가 도착했는데 대부분 장비가 없었다”며 부실한 구조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여기 와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다. 여전히 10명이 잔해더미 밑에 갇혀 있고 대부분 아직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두툼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 건물에 갇힌 사람들이 저체온증으로 구조 전에 생명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기자가 만난 또 다른 중년여성은 “(무너진 집 잔해를 살피다) 이걸 봐라. 네브란의 치마다. 아, 내 딸 네브란”이라며 울먹였다. 슬퍼하는 여성 앞에서 기자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시리아 피해 지역, 구조⸱지원⸱수습이 한 치 앞도 못 나가

튀르키예의 비극도 안타깝지만, 시리아 쪽 피해 지역의 사정은 더 참혹하다. 시리아에선 정치‧군사‧인종‧인도주의적으로 복잡한 서북부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해 구조와 지원, 수습이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서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대도시 알레포, 국경에 가까운 아프린과 이드리브, 그 동쪽의 진디레스 등이 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국제정치적‧지역정치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예민한 곳이다. 아프린은 튀르키예군과 반군이 공동 관리 중이며, 이드리브는 친튀르키예 반군,, 알레포는 시리아 정부군, 그리고 진디레스는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시리아 정부군은 아프린과 이드리브를 놓고 튀르키예와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2011년 ‘아랍의 봄’ 때부터 싸워온 반군과는 같은 하늘을 함께 이고 지내지 못할 정도다.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튀르키예가 있으니 내전이 그나마 소강상태일 뿐이다. 자치정부를 구성한 쿠르드족도 다마스쿠스 입장에선 제거나 추방 대상일 뿐 공존할 수 없는 상대다.

시리아 지진 피해 구조 현장(사진: 연합뉴스)

시리아 정부, 적대 지역 견제⸱압박할 궁리만

시리아 정부는 반군‧쿠르드족‧친튀르키에 세력이 장악한 이들 지역에 도움을 줄 생각은커녕 지진을 핑계로 견제할 궁리를 하고 있다. 인도주의 지원을 다마스쿠스에서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 지역을 전술적으로 압박할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지진 지역으로의 인도주의 물자 반입 문제다. 반군 지배지역인 시리아 서북부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국경검문소가 1군데 밖에 없는데 이곳이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물자가 지나기 어렵게 됐다. 시리아 정부는 기존에 정해진 경로 외에 이 지역에 물자가 유입될 추가 통로를 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유엔 주재 시리아 대사는 어떠한 추가 통로도 승인해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유엔은 시리아에 대한 지원을 일시적으로 보류하고 있다.

튀르키예도 자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시리아 지역을 챙길 여력을 찾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친튀르키예 세력이라고 해도 시리아 서북부 주민은 5월 튀르키에 대선에 투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에르도안이 시리아에 인도주의적인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이유다. 가뜩이나 2011년 시작된 장기 내전으로 피폐해진 시리아 서북부 주민들은 이러한 국제‧국내 정치구도에 발목이 잡혀 긴급 구조와 인도주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민간단체 ‘하얀 헬멧’의 활약

이런 상황에서 돋보이는 것은 시리아 민간단체 ‘하얀 헬멧’이 주도하는 구조 활동이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지역인 진디레스에서 갓난 어린이가 구조됐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바로 하얀 헬멧의 활약상이다. 알사드 정권이 주도하는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폭격 등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주민을 구조하는 등 많은 인명을 구조한 단체다.

9일 0시 기준 시리아는 최소 3480명 사망, 3750명 부상으로 집계됐는데, 시리아 인권감시단은 8일에 전날 사망자 3135명을 기준으로 이 가운데 1435명은 정부 지배 지역에서, 나머지 1700여 명은 반군 지배 지역에서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은 시리아 주민에겐 자연재해와 인재를 넘어 정치 재해까지 겹치면서 더욱 가혹한 시련이 되고 있다.

이번 지진은 규모도 컸지만 건물들이 상자 무너지듯이 붕괴되면서 인명 피해가 더욱 컸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진 피해 지역에서 무너진 건물 사진을 바탕으로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콘크리트를 보강하는 철근도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튀르키예는 1999년 1만7000명의 사망자를 낸 이즈미트 대지진을 겪은 지 8년 뒤인 2007년 내진 설계를 의무화했지만 행정력이 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뇌물 등 부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부실한 건축⸱행정 관리와 재정 유혹이 빚어낸 ‘인재’(人災)

<가디언>은 튀르키예가 내진 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건물도 일정 수수료를 내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법이 2018년 시행되면서 정부는 30억 달러를 수수료로 챙기고 1300만 동의 건물 사용을 허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진에서 발생한 막대한 인명 피해는 자연재해를 넘어 부실한 건축과 행정 관리, 그리고 재정 수입에 눈먼 당국이 빚은 인재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비극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열어준 것은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에 국제사회의 구조팀 파견과 물자 및 금전 지원, 그리고 위로가 쏟아졌다는 소식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나라는 범튀르크 민족이 사는 아제르바이잔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구조대원과 구조견을 보내 실종자 수색을 지원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당시 튀르키예에서 확보한 다량의 바이락타르 TB2 드론을 동원해 숙적 아르메니아의 기갑부대를 물리치고 승전했다.

당시 전쟁에서 튀르키에에 유감이 많았던 아르메니아도 7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구조팀과 지원 식량을 보냈다.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댄 불가리아도 지진 발생 당일 곧바로 구조대원을 파견했다. 불가리아엔 튀르키예계 소수민족이 거주한다.

튀르키예와 숙적인 그리스도 지원팀 보내

튀르키예와 숙적인 그리스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7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통화한 뒤 군용 수송기에 구조팀과 수색견, 그리고 의사와 공병대를 즉각 파견했다. 외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은 각각 튀르키예의 카운터파트너와 통화하며 위로를 전했다.

튀르키예계가 1984년 북키프로스로 사실상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튀르키예와 사이가 좋지 않은 키프로스 정부도 즉각 구조팀 파견을 결정했다. 나토 가입 문제를 놓고 튀르키예의 견제를 받고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도 튀르키예 지원에 나섰다.

튀르키예와 수교국인 이스라엘은 430명의 구조팀과 재난 대응팀, 인도적 지원팀을 보냈으며 이스라엘군은 지원을 위해 별도로 150명을 파견했다. 민간단체는 의사와 간호사,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를 지원 물자 및 식수 정화기와 함께 보냈다. 가난한 알바니아와 캄보디아, 내전에 시달리는 리비아, 경제난을 겪는 레바논도 지원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서방국가와 인도, 중국도 상당한 규모의 구조대와 물자를 보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도 대형 수색팀과 의료팀을 파견했다. 한국은 역대 최대 규모인 118명의 구조팀과 500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를 군 수송기에 실어서 현지에 보냈다.

사진: 셔터스톡

시민들이 도움에 적극 나설 때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그나마 휴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건 이러한 국제사회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이었다. 비극 앞에선 적도 동지도 없으며 다만 인간만 있을 뿐이란 사실을 보여줬다. 지원은 국제인도주의 단체나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젠 시민들이 행동에 나설 때다. 자연재해 앞에 도움으로 하나가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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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채인택은

<중앙일보>에서 30여 년 동안 일하며 국제전문기자 겸 국제외교안보 에디터를 지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다. 1999년부터 국제 분야를 다루며 방글라데시와 우간다의 난민촌을 비롯해 옛 유고슬라비아와 쿠바, 중국 신장위구르와 터키‧이집트‧이란‧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지역 등 중동과 유럽‧아시아 여러 지역을 두루 취재했다. 국제 이슈를 역사와 지리, 문화, 특히 교류사와 연결해 쉽게 전하고 싶어한다. tzschae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