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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3.03.31. 00:00

[박현 칼럼] 2023년 한국 전기차, ‘새우등’ 신세 되나

By | 2022년 11월 30일 | 미분류, 산업

2023년 현대자동차의 전기차가 미국에서 얼마나 팔릴까? 자동차업계는 물론이고, 한·미 통상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큰 궁금증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핵심 조항들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우리 전기차의 경쟁력에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기술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를 넘어 전기차·배터리 산업으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고래 싸움’에 한국 관련 산업의 ‘새우등’이 터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의 초강수는 중국이 주도하는 전기차·배터리의 글로벌 생태계에도 변화를 줄 게 분명하다. 이런 지각변동은 한편으로 위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회일 수도 있다. 과연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미-중 경쟁에서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엔 한계가 분명한 이 이슈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편집자 주]

✔ 중국 첨단 산업 견제위해 만들어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 그중 한국의 전기차 수출에 치명적 결과 가져올 13401 조항
✔ 중국 배제하고 미국 위주로 전기차 산업 개편하려는 큰그림
✔ 현실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이자 소비시장
✔ 반도체 제조역량과 배터리 기술 및 제조역량은 대한민국의 큰 자산

사진:셔터스톡

아이오닉5(현대자동차) 4만1450달러, 머스탱 마하E(포드자동차) 4만6895달러.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다투고 있는 두 동급 차종(소형 SUV 전기차)의 2023년형 기본사양 판매가격(미국법인 홈페이지 기준)이다. 아이오닉5가 5445달러 싸다. 아이오닉5는 이런 가격 경쟁력에다 고성능 충전 시스템, 우수한 주행 성능 등을 인정받아 미국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1만1015대가 팔렸다.

하지만 두 자동차의 가격은 한 달 뒤인 2023년 1월부터 역전돼 마하E가 2055달러 싸진다. 마하E가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가격이 3만9395달러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6일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결과다. 현대차로선 뾰족한 대응 수단도 없이 그저 앉아서 타격을 입는 셈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배터리로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인플레 감축법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배터리 산업에서도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배터리의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긴장감이 두드러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개최된 G20과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에게 ‘공급망 안정’을 역설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관련 기업들 역시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편,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전기차·배터리 시장은 커다란 태풍의 입구에 들어섰다.

아이오닉5의 가격 경쟁력을 뒤집은 인플레 감축법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한 뒤 추진한 ‘더 나은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의 수정판이다. 재정 투입 규모가 2조 달러에 이르는 ‘더 나은 재건 법안’이 인플레 유발 논란 속에 의회에서 1년 넘게 계류되자,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와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내세워 법을 재추진했다.

인플레 감축법은 크게 세 가지를 뼈대로 한다. 첫째, 전기차 보조금 확대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3690억 달러를 투자해 탄소배출을 2030년까지 40% 줄인다. 둘째, 제약회사와 협상을 통해 메디케어(정부가 보조하는 노인·장애인 건강보험) 처방약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2880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한다. 셋째, 대기업 법인세 최저세율(15%) 도입, 세금 회피를 하는 부유층·대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징세 강화 등을 통해 약 4510억 달러의 증세를 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규모 투자를 함에도 증세와 예산 절감을 통해 10년간 재정적자를 약 3000억 달러 축소함으로써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향후 10년에 걸쳐 이뤄진다. 미국에선 인플레 감축 효과가 얼마나 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위한 역대 최대 투자라고 자랑하고 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선전한 데도 인플레 감축법은 적지 않은 효과를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셔터스톡

 ‘인플레 감축법’ 13401 조항의 무서움

이런 미국 내 논란과 별개로 이 법은 산업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법 13401 조항(Section 13401)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세금 혜택(세액공제) 적용 조건들을 명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이차전지)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내용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초기 단계에 있다. 현재 세계 전기차 산업 생태계는 중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도 테슬라라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광물이나 탑재되는 부품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도 배터리 제조 강국이지만 원자재는 중국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과 코발트, 천연 흑연의 중국산 수입 비중은 모두 80%가 넘는다.

이 조항은 세계 전기차 시장 판도를 중국에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가 반도체 같은 민군 겸용의 전략 기술·산업에서 안보와 별 관련이 없는 주력 산업으로까지 확대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 자동차는 부품산업과 고용·금융 등 전후방 연관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어서, 미국으로서도 결코 중국에 최강자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1월 “중국의 배터리 원자재 지배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내연기관차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고, 앞으로 중국이 20세기 중동 산유국들이 했던 방식으로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지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고 탄식한 바 있다. 미국의 자동차 소비자들이 20세기에 중동의 석유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중국산 배터리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이런 미국 내 여론도 바이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3401 조항의 핵심은 전기차 세액공제(1대당 최대 7500달러)를 적용받기 위해선 ①최종 조립 조건 ②배터리 핵심 광물 조건 ③배터리 부품 조건 등 크게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건은 북미, 즉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항목은 바이든의 서명 즉시 발효됐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조립해 수출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는 8월 16일부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두 번째 조건은 배터리에 사용된 광물이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경우 375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본다. 광물 비율은 2023년 40%를 시작으로 매년 증가해 2027년 이후부터는 80%를 넘어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배터리 부품 중 일정 비율 이상이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된 경우 375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본다. 이 부품 비율은 2023년 50%에서 매년 증가해 2029년 이후부터는 100%가 돼야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조건은 2023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①번은 공통 조건이며, ②번과 ③번은 충족 여부에 따라 3750달러씩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즉, ①②③을 모두 충족하면 75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미국, 국내 판매 전기차에서 중국 연결고리를 끊는다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부가조항이 있는데 하나는 ‘해외 우려 집단’이 관련되면 세금 혜택에서 완전 배제한다는 내용이다. 해외 우려 집단이란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 소유·통제하는 집단을 뜻한다. 적용 시점은 부품 조건은 2024년 1월부터, 핵심 광물 조건은 2025년 1월부터다. 예컨대, 배터리에 사용된 핵심 광물이 중국에서 채굴 또는 가공된 경우라면 2024년 말까지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받을 수 없다. 핵심 광물의 대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다는 점을 고려해 약 2년을 유예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른 하나는 지금은 업체당 20만 대까지만 세금 혜택을 받게 돼 있는데, 내년부터 대수 제한이 없어진다. 현재 이 제한을 받고 있는 테슬라도 수혜를 보게 된다. 미국 전기차 업체를 우대하겠다는 얘기다. 요컨대, 13401 조항이 의도하는 바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에 관한 한 세계 전기차 산업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북미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전기차 생산·판매에서 미국을 훨씬 앞지른 중국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자 판매시장이다. 세계 전기차 판매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하나금융투자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중국의 전기차 판매 대수는 387만 대로 미국(69만6000대)보다 5.6배나 많다. 같은 기간 전체 신차 판매 중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침투율)은 미국이 6.9%인 반면에 중국은 26.7%나 된다. 한국의 경우, 전기차 판매 대수는 같은 기간 10만281대이며, 침투율은 8.0%다. 여기서 전기차는 순수전기차(BEV)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를 합한 것으로, 하이브리드차(HEV)는 제외한 것이다.

순수전기차는 배터리와 전기모터만으로 구동하는 차를 말하는데 중국이 주력으로 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과 엔진출력을 보조하는 모터를 함께 적용한 차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외부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모터를 주 동력원으로 하고 배터리 방전 때 일반 하이브리드차처럼 운행하는 차를 말한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반면 미국의 대응은 상당히 뒤처져 있다. 전기차 충전기는 올해 초 기준으로 중국이 약 260만 개인 데 비해 미국은 약 13만 개에 불과하다.

중국, 배터리 ‘4대 소재’의 세계 시장 점유율 50% 넘어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이 엔진 성능에 달려 있다면 전기차에서는 배터리가 핵심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원가의 40%나 차지하고, 주행거리까지 좌우한다.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의 4대 소재로 구성되며, 이 소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원자재가 니켈·망간·코발트·철·흑연 등이다.

배터리 공급망은 크게 원자재의 채굴·가공, 소재 제조, 셀·모듈·팩 제조 등 3단계로 나뉜다. 중국은 이 공급망 가치사슬의 각 단계를 모두 보유한 유일한 나라다. 중국의 4대 소재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는다. 중국도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으나 이를 가공하는 설비는 압도적이다. 코발트의 경우 콩고에서 수입해 가공하는데, 가공 점유율이 65%에 이른다. 리튬도 원광의 39%는 오스트레일리아, 26%는 칠레에서 채굴되지만 가공은 중국이 세계의 58%를 차지한다. 반면에 미국은 양극재 생산 점유율이 1%에 그치는 등 4대 소재의 생산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결국 미국은 배터리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담당 부처에 실태를 파악해 보고하도록 한 4대 전략 산업의 ‘공급망 검토 보고서’에 배터리가 들어간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한·중·일 각축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현재 ‘한·중·일 삼국지’다. 시장조사업체 에스엔이(SNE)리서치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기준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시에이티엘(CATL·중국명 닝더스다이)이 35.1%로 1위이며, 이어 엘지에너지솔루션 14.1%, 중국 비야디 12.8%, 일본 파나소닉 8.1%, 에스케이온 6.2%, 삼성에스디아이 4.9% 순이다. 상위 10위 업체 중 중국 업체가 6곳이나 된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로 보면, 엘지에너지솔루션이 30.1%로 1위이며, 시에이티엘과 파나소닉이 각각 18.9%로 공동 2위다. 주목되는 것은 시에이티엘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2020년 5위였다가 지난해 3위, 올해는 2위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시에이티엘이 납품하는 테슬라 모델3과 벤츠·BMW 등의 전기차 판매량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고 SNE리서치는 분석했다. 반면에 미국 배터리 업체들은 10위권에 단 한 곳도 끼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바이든이 인플레 감축법을 통해 전기차 산업 생태계를 바꾸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함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유럽·일본 등 자동차와 배터리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편으론 미국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법 조항을 느슨하게 하려는 로비를 펼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탈환하면 관련 조항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으나, 민주당이 선전함에 따라 사실상 법 개정은 물 건너 갔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동상이몽’?

대통령실은 11월 1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설명하는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하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인플레 감축법의 이행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악관은 보도자료에서 이런 언급은 하지 않은 채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 감축법상 역사적 투자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미국의 야심찬 어젠다를 설명했으며, 두 정상은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공동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할 중요한 역할을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플레 감축법 개정이 아니라 이 법의 이행방안을 논의한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는 올해 12월 말까지 세부 규정을 만들 예정인데, 한국 정부와 현대기아차는 관련 조항을 3년간 유예하도록 하는 방안를 제안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조지아 전기차 공장이 2025년부터 양산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제안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 공장 건설에 분주한 한국 기업들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은 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 공장을 짓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세계 주요 첨단산업 업체들이 위험 회피 차원에서 중국+1, 또는 중국+2 정책을 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이 정책은 중국의 공급망이 차단될 경우에 대비해 중국 이외 지역 한 두 곳에 비슷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전략을 말한다.

엘지화학은 11월 22일 미국 테네시주에 30억 달러(약 4조 원)를 투자해 양극재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2027년 완공되면 연산 12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미국 최대의 양극재 공장이다. 이는 현재 엘지화학의 한국과 중국 공장 양극재 생산량(합계 연 9만 톤)을 뛰어넘는 규모다. 앞서, 엘지에너지솔루션·삼성에스디아이·에스케이온 등 배터리 3사도 각각 수조 원씩 투자해 미국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GM·스텔란티스·혼다와 각각 합작해 공장을 건설하고 있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삼성에스디아이는 스텔란티스, 에스케이온은 포드와 각각 손을 잡았다. 대기업들이 이렇게 미국에 공장을 짓게 되면 연관된 협력업체들도 함께 움직이게 돼 국내의 첨단산업 생태계는 약화될 수 있다. 이는 바이든의 배터리 공급망 재편 전략이 일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들이 받는 영향은 분야별로 달리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는 단기적으로 피해가 불가피하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북미 공장의 일부 라인을 전기차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생산량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25년 조지아 전기차 전용 공장(연산 30만 대)이 완공돼야 ‘북미 최종 조립’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앞으로 2~3년간 GM과 포드 등 경쟁업체에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 앞서 현대차 아이오닉5와 포드차 머스탱 마하E에서 살펴보았듯이 전기차 보조금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이미 두 회사의 가격 책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드는 2023년형 마하E의 가격(최저사양 기준)을 2022년형에 견줘 3000달러 인상한 반면, 현대차는 아이오닉5 가격을 1500달러만 인상했다. 가격 격차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물론 변수는 있다. 인플레 감축법에 따라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지만, 포드도 단기적으로는 핵심 광물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세액공제를 3750달러만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 현대기아차는 킹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에 따라 당분간 원화가 약세를 보일 것이므로 환율 효과를 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세액공제 3750달러(약 500만 원)를 손해보는 걸 환율 효과로 상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셈법은 원화 약세가 계속된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하다.

반면에,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 내수시장을 넘어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시점에 미국의 제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단기간에 핵심 광물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은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은 10년 이상 공급망 재편 전략을 밀어붙일 수 있나

바이든의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재편 전략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꾀하려는 바이든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의 공급망 재편 전략은 단기간 내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에 공장 하나를 짓더라도 계획에서부터 준공까지 최소 4~5년은 걸린다. 또한 중국에 있는 미국의 첨단 공장들이 인도나 베트남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패권국 미국이라 하더라도 10년 이상 장기간 일관되게 추진해야 성공을 자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크게 세 가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미국의 정치 지형이다. 워싱턴은 11월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2024년 차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됐다. 워싱턴 정가 지도자들은 이제 2024년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벌써 공화당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출사표를 던졌다. 트럼프가 만약 경선에서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이기고 대선까지 거머쥔다면 바이든 프로젝트도 수정될 수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공들여 만들어놨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 바 있다. 괴짜 정치인 트럼프는 아마도 ‘바보 바이든의 정책은 모두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할 것이다. 물론 공화당의 다른 후보나 민주당 후보가 대선 승리를 한다면 바이든 프로젝트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두 번째는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핵심 광물의 조달 문제다. 주요 업체들은 인도네시아·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칠레 등의 광물 자원 확보전에 나섰다. 현재 미국의 자원 업계에서도 단시일 내에 인플레 감축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이들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 만큼 시행 시기 등에서 조건이 일부 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규정대로 시행한다면 아마도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가격이 급등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동차 업계에선 올 들어 니켈·코발트·망간을 원료로 쓰는 삼원계(NCM) 배터리보다 철과 인산으로 구성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채용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비용이 30%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주로 중국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삼원계에 주력해왔다. 예컨대, 포드 자동차의 경우 지난 8월에 중국 시에이티엘의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인플레 감축법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이 계획은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짐 팔리(Jim Farley) 포드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투자설명회에서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북미에서 생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세계 3대 전기차 시장 중 한 곳인 유럽 변수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과 탄탄한 공급망을 무기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는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서 ET7을 판매하고 있다. 비야디는 지난달 파리 모터쇼에서 3개 모델을 발표하며 유럽 진출에 나섰다. 중국만 유럽에 진출하는 게 아니다. 독일은 이미 중국 고급차 시장의 강자인데, 중국의 전기차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BMW는 올해 6월 중국 선양시에 22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11월에는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해 14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 회사는 올해 10월 소형 SUV 전기차 모델인 미니(Mini) 생산 공장을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전할 계획을 밝혀 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중국이 소재-배터리-전기차라는 전기차 생태계를 갖춘데다 생산비용도 훨씬 싸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과 제3세계에서 활로를 찾게 되면 미국의 견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이 불러온 보호무역주의 

인플레 감축법 시행은 현재 국제 경제 질서가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대국간 패권 경쟁으로 거대 경제권이 보호무역주의 기류에 빨려들어 가는 형국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효율성 위주에서 회복력과 안보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1990년대 초반 이후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값싼 부품을 동아시아에서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구축해왔다. 그 결과 동아시아, 특히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다. 탈산업화한 미국은 제조 중심지가 ‘러스트 벨트’로 쇠락했고,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불만을 달래느라 기존의 미국-동아시아 분업 모델을 폐기 처분하려 하고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생산까지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인근 수출 선적장에 수출차량이 수출선에 오르기 전 대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특히 큰 고통 

이런 새로운 모델의 성공 여부는 여전히 의문시되지만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분간 이런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중국 때리기는 선거 때만 되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플레 감축법이 국가간 차별 대우 금지를 요체로 하는 국제 통상규범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음에도 민주당이 중간선거 직전에 전격적으로 시행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이런 국제 경제 질서에서는 중간에 끼어있는 국가들이 입는 피해가 훨씬 크다. 특히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 같은 나라들이 더 큰 고통을 받게 돼 있다.

지금의 공급망 혼란은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국+1, 중국+2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귀착될 것이다.

정부의 능동적인 ‘실리 외교’가 절실하다

지금은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무엇보다도, 실리 외교를 능동적으로 펼쳐야 한다. 사안별로 다른 국가들 및 미국 내 동조 세력과 공조를 해 미-중의 과도한 패권 경쟁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플레 감축법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연합과 일본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중국 사업을 하는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첨단산업에서 상당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미국은 우리의 반도체 제조역량과 배터리 기술 및 제조역량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레버리지를 활용해 우리의 국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수십 년간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글로벌 공급망의 대전환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다시 설계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기존의 미국-동아시아간 분업 모델이 재편되고, 중국의 기술력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혁신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데 국가 차원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첨단산업 분야의 연구개발과 고급인력 육성을 지원하고, 핵심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보조금 지급 확대도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은 현재 주요 첨단산업 부활을 위해 일본·한국·중국이 차례대로 취해온 국가 주도 산업정책 모델을 흉내내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등 분야에서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대표적이다. 미·중과 직접 경쟁은 어렵겠지만 이들의 보조금 지급 동향을 살펴가며 규모를 책정해야 할 것이다. 산업계 일각에선 벌써 국내 산업의 공동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기우가 아닐 수 있다.

지금 국제 경제 질서의 새로운 판짜기가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5~10년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여야의 극한 대결로 ‘정치’가 사실상 작동을 멈췄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결정지을 세계 경제전쟁에 관한 한 초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때다.


글쓴이 박현은
두 군데 신문사에서 서른 해 남짓 일간지 기자로 살아왔다. 《한겨레》 국제부장·경제부장·부국장을 지냈다. 현재는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며 경제와 국제 문제를 다룬 사설과 칼럼을 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인 2013년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을 취재하며 미·중 관계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두 지도자의 만남에서 비롯된 관심은 알리바바·화웨이 등 중국 첨단 기업들의 발전상을 취재하며 양국의 빅테크 경쟁, 나아가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첨단기술 경쟁 전반으로 가지를 뻗었다. 저서로 <기술의 충돌(서해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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