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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칼럼] 검찰이 주권 위에 군림하는 나라

By | 2022년 7월 13일 | 미분류, 정책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제헌절을 맞아 새삼 생각해보았다. 김진한 필자는 검찰권력, 정치권력을 공히 ‘문제적 집단’으로 지목한다. ‘특정 엘리트 권력자들이 폐쇄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병리현상’이다. 검찰 주변의 접대문화로부터 시작해 ‘억지 처벌(수사와 기소)보다 나쁜 것은 조용히 봐주기’라는 판단까지 그의 지적은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다만 해법에서 ‘검찰개혁에 앞서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부분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반론이 있다면 환영한다. 김진한 필자는 헌재 연구관, 로스쿨 교수 등을 스스로 마다하고 6년전 독일에 건너가 헌법 연구에 천착하던 중 지난달 귀국했다. [편집자 주]

주권자의 심부름꾼이 권력의 주인 행세를 하는 관성이 만연한 대한민국
소수 엘리트 층의 권력독점을 허용하는 법과 제도는 망하는 국가의 기본 공식

발전한 나라 역시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하는 순간 몰락의 시작
누군가를 손보는 놀라운 처벌 능력보다 무서운 것은 ‘그들 만의 서로 봐주기’
폐쇄적인 권력제도는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병리현상

검찰개혁이란 목표는 정치개혁없이 달성될 수 없다는 점 잊지 말아야

사진:셔터스톡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식사 계산법

엘리트는 권력의 주인인가, 주권자의 심부름꾼인가   

2019년 3개월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그들의 법과 실무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인 법은 판사, 검사 연구관들의 식사 계산법이었다(독일 헌법재판소에는 두 개의 재판부가 있으며, 각 여덟 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16인의 헌법재판관들은 자신에게 소속된 세 명의 연구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연구관들은 젊은 판사, 검사, 공무원 또는 학자들로서 대략 2년의 임기로 헌법재판소에 근무한다). 여러 연구관들이 외국 법조계에서 온 내게 호기심을 갖고 찾아와서 함께 점심식사 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연구관들은 단 한 번도 내게 밥을 사지 않았다. 사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것이 모두 내 쪽이므로 밥을 산다면 내 편에서 사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밥을 사겠다는 나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식사 후 각자 계산을 하는 것은 모든 연구관 동료들끼리, 외부에서 온 손님들까지 포함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적용하는 원칙이었다. 이것이 정말 일상생활에도 항상 적용되는 원칙인지 질문하자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는 변호사뿐 아니라 같은 기관의 동료, 전혀 다른 분야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하고 삼갑니다. 혹시 식사나 차를 마시게 되는 경우에는 항상 자기 것을 스스로 계산합니다.”간단한 식사 대접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은 공무에 대한 자부심,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한 주권자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대한민국의 법조사회에는 주권자의 심부름꾼들이 권력의 주인 행세를 하는 관성이 만연해 있다. 사법연수원 동기, 대학 선후배 변호사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 법관의 사건을 수임하고, 얼마 전까지 판사이고 검사이었던 전관의 변호사들은 가장 가까웠던 동료의 사건을 수임한다. 변호사들은 판사와 검사 친구들에게 비싼 고기를 사고, 회를 사고, 술을 사고, 골프 비용을 대고, 선물을 준다. 거액의 비용이 드는 호화 룸살롱에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도 거리낌이 없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대접하는 이런 행위는 우정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들의 직위를 팔고, 권력을 파는 행위이다. 우리 법조인들은 자신들의 접대법과 계산법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에 대한 존중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권력은 개방되어 있고 일반 시민에게 접근가능해야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라가 있다. 어느 나라는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삶의 질도 높다.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곤할 뿐 아니라 삶의 질, 사회적 신뢰도 형편없는 나라도 있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경제학자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정치학자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자신들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이 문제의 뿌리를 탐구하였다.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소수 엘리트 층의 권력독점을 허용하는 법과 제도를 허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저자들은 묻는다. 누군가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가? 만일 한 국가가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 국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일 권력에 이르는 길이 개방되어 있고, 일반 시민들에게 접근 가능한 대상이라고 한다면 이 국가의 전망은 밝다. 주의할 것은 한 시대의 상황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엘리트들의 권력 독점욕은 그들의 탁월한 능력만큼이나 독보적이다. 커다란 발전을 이룬 후 추락하는 나라들의 몰락은 그 사회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는 순간 시작된다.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의 경우를 보자. 과거 봉건군주와 제국주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지배 엘리트들은 호의호식한다. 비록 과거와 다른 인물들, 때로는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는 여전히 독재적이며, 사회와 문화는 식민지 시절 못지 않게 폭력적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정치적인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지배구조란 엘리트가 정치권력을 독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치제도와 법을 말한다. 혁명과 해방이라는 것들은 지배자를 바꾸었을 뿐 지배의 성격 자체는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혁명인가, 개혁인가, 해방인가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기존의 엘리트 독점 제도로부터 다수의 국민이 균등하게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성공하는 나라, 실패하는 나라는 무엇이 다른가 

유럽과 북미의 국가들이 경제적 번영과 함께 균형잡힌 사회와 삶의 질을 이룬 것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로부터 물자와 사람들을 착취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대답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해석일지 모른다. 다른 나라를 착취하였던 많은 나라들 중에도 결국 몇몇 엘리트들만 극한적인 부를 누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에 고통받았던 나라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불균형적인 성장조차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유럽과 북미 국가의 성공은 어느 한 시기 결정적인 권력의 전환점을 만들어내었다는 데에 있다. 그 전환이란 권력을 쥔 엘리트층을 무너뜨려 정치권력을 고르게 분배하는 제도를 만들어냈고, 권력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는 정치제도를 만들어내었던 것을 말한다. 가령 영국의 1688년의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계기가 그와 같은 변화된 제도의 출발점이었다. 일반 시민이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갖는 제도를 만들어내게 되면 엘리트들이 사회의 이익을 독점할 수는 없게 되며,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경제적인 성취동기를 갖게 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한국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특히 북한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같은 문화와 지리적 배경을 갖고 있으면서 법과 제도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소개한다. 북한의 제도와 비교하여 우리의 제도가 개방적이며, 그것을 통하여 더 풍요롭고, 삶의 질이 좋은 사회를 이룩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제도를 갖고 있다고 하여 안주할 수는 없다. 우리의 권력제도가 아직도 개방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같이 열린 권력 제도를 갖고 있었다가 엘리트 독점의 제도로 변화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던 나라, 그로 인하여 결국 실패한 국가가 되었던 사례를 상기한다면 과연 누구와 비교하고, 어느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 것인지 자명하다. 현재, 이곳에 만족하는 것은 곧 들이닥칠 추락을 예약하는 것에 다름 없다.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은 열린 권력 제도를 갖고 있었지만,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는 제도로 변화하는 것을 막지 못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진:셔터스톡)

검사들은 민주공화국의 위에 있나, 옆에 있나, 아래에 있나   

대한민국은 우리 헌법 제1조에서 정한 바와 같이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란 나라의 권력이 군주나 특권계층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민들의 나라를 말한다. 

민주주의 체제에도 권력자 집단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 권력자들이 그 힘의 정당성을 어디로부터 끌어오는가이다. 많은 실패한 국가에서는 권력을 갖고 있는 엘리트들이 능력, 혈통, 인맥, 지력으로부터 자신들 권력의 정당성을 끌어낸다. 권력자들의 이러한 정당성은 자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세력들의 진입도, 권력의 제한도, 권력에 대한 심판도 회피하는 독점적인 권력제도를 만들어낸다. 

특정 엘리트 권력자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폐쇄적인 권력제도는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병리현상이다. 헌법상 민주공화국이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는 허망한 선거제도만 남겨 놓은 단순히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고 자조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민들이 과연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갖게 된 실망일 수 있다. 민주공화국이란 엘리트들로 하여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 권력이 다양한 계층과 신진 세력들에게 열려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갖고 있는 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권력현상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이 검찰의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는 기소한다. 검사가 담당하는 직무는 범죄사실에 적용할 법, 반드시 갖추어야 할 증거들에 대한 판단 등 경찰의 범죄수사를 보완하고 통제하는 역할이다. 힘과 열정, 감각에 기초하는 것이 경찰의 기능이라면 검찰은 이성과 논리, 설득력에 기초하는 기능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검찰은 두 가지 기능과 권력을 모두 초월적으로 아우르는, 그리하여 정치권력에까지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엘리트 권력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검사 내지 검찰총장인 인물이 대통령이 되자 중요 권력기관의 중요 직책은 모두 전직 검사들이 차지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의 검찰은 누가보아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권력집단이다. 

여러 차례 검찰개혁의 논의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이 숱한 갈등만 불러 일으켰다. 개혁의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던 것은 상당수 국민들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되고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정치문제에 중립적이지 않고 수시로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권력을 존치시켜야 한다고 믿는 여론은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사진:셔터스톡

놀라운 처벌 능력보다 놀라운 건 ‘조용한 봐주기’  

우리나라에는 각종의 비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특히 권력층과 경제적인 강자들의 범죄와 비리는 일상적이라고 할만큼 그 정도가 심하다. 국민들의 환호 속에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검사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거쳐온 최고의 교육과정, 시험합격은 적어도 ‘양아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들에게 부여하는 정당성이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의 전통이건, 사간원과 사헌부의 청백리 이미지이건 적어도 정치권력자들의 부패와 몰염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상당수의 국민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검사들이 처벌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비리의 전부일까? 혹시 조사받고 처벌되는 것은 검사들에게 잘못보인 이들일 뿐이며, 검사들이 자신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수많은 이들은 조용히 봐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 조직 검찰은 수뇌부가 누군가를 처벌하기로 결심한 순간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처벌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검찰의 권력이 우리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들이 누군가를 억지로 처벌하는 것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용히 봐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공직자들, 권력형 언론들, 대형 로펌들이 결합하여 권력연합체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검찰이 갖고 있는 이 능력 때문이다. 선진국의 검찰도 적어도 법적으로는 동일한 위험성을 갖고 있다. 부패를 방지할 최종적인 책임을 갖고 있던 검찰,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이 묵인한다면 다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엘리트들이 서로 보호해주는 끈끈한 식사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 공동체의 중심에 있다. 부패를 방지해야 할 검찰권력은 엘리트들의 치부를 가려주고 보호하는 특별한 권력장치로 변신하였고, 성공 엘리트들의 ‘서로 돕는’ 특권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심점이 되기에 이르렀다. 

어떤 개혁을 할 것인가? 누구를 개혁할 것인가?  

검찰의 개혁은 중요하다. 하지만 검찰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이 개혁의 목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개혁의 목표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권력남용에 대한 최선의 처방은 항상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도입이다.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다른 기관에 부여한다면, 그래서 그 권력에 대한 경쟁과 감시가 작동하게 된다면 검찰의 기능이 정상화될 수 있다. 그 존재만으로 선한 권력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 자체로 악한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검찰의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권력의 독점을 차단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독점을 강화시키는 길이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의 기치아래 일방적으로 검찰개혁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문제의 핵심은 검찰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검찰권력을 매개로 하여 이뤄지고 있는 엘리트 권력독점이라는 점이다. 물론 검찰의 개혁은 필요하며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이란 목표는 정치개혁없이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사와 형사기소 권력과 법무부의 정책권력이 검찰에 독점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권력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어 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당제도와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권력이 독점으로부터 해방될 것이지만 이를 개혁하지 못하고 다른 당을 탓한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 어느 쪽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들은 동업자이다. 기성 정당들은 새로운 신인들에게 권력의 기회를 봉쇄하는 권력독점의 제도에서 정확하게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정당에 가입하지만, 대개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선거운동원들이다. 정당원은 제대로 된 발언권도 없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신진세력도 갖지 못한 채 단지 엘리트 정치인들의 선동과 동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쯤 되면 정치권력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하고 제도를 개선하지 않은 채 검찰의 권력만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협잡에 불과하다고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사안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정치개혁 없는 검찰개혁이란 단지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투쟁일 뿐이다. 국민들은 검찰이 문제 조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국민들의 과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가 검찰을 이용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한 검찰개혁은 불가능  

국민들로부터 호응받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한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호응이 없다면 그 이유를 국민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달성하는 이상 검찰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정치인들이 스스로의 개혁을 하지 않은 채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없다. 정치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 민주공화국의 권력제도를 보다 더 광범위한 계층과 새로운 세대, 다양한 신흥세력들에게 개방적인 제도로 전환시키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 우리 정치권력이 사이비 민주권력이 아니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권력으로 변화하는 순간, 비로소 정치검찰도 민주공화국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김진한은
1968년생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해 1997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곧바로 헌법재판소에서 12년간 헌법연구관으로 재직했다. 미국 노틀담대학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 석사과정(LL.M)을 졸업했으며, UC 버클리대학, 미국연방사법센터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2014년 고려대학교에서 헌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헌법과 헌법재판 실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헌법재판소 재직 시절 국회 날치기 표결 사건, 학교 주변 영화관 금지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사건 등에서 위헌 판단의 새로운 시각과 해결을 제시하였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막연한 헌법을 생동감 넘치게 전달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헌법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는 그에게 헌법 연구는 천직이다. 2016년 봄부터 독일 에를랑겐의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면서 독일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관찰하고 있다. <헌법을 쓰는 시간>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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