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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편집 2022. 09.23. 00:00

[홍석경 칼럼] 아시아 대표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한류가 지속되려면?

By | 2022년 2월 16일 | 국제, 문화, 미분류

일본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의 촬영지 남이섬으로 성지순례를 오던 시절만 해도 곧 잠잠해질 계절풍일 줄 알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의 완성도는 높아지고 팬덤은 넓어져만 갔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깐느부터 골든 글로브에 이어 오스카까지 받을 즈음에야 국민들도 이 바람에 토네이도 급임을 깨달았다.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을 가르치다 최근에는 프랑스 대학에서 가르치며 유럽을 휩쓰는 한류 현상을 목도한 홍석경 교수는 ‘대중 문화는 이미 선진국을 넘어 섰는데, 국민 정서는 아직 개발 도상국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를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한다. 설마하는 사이 거부할 수 없는 대조류가 되어버린 한류. 홍석경 교수는 이번 칼럼을 통해 이미 가능한 번영은 다 누린 듯한 한류가 왜 여전히 지속가능한지, 그리고 더욱 굳건히 지속하려면 어떤 과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편집자 주]

✔ 더 이상은 거부할 수 없는 대조류가 되어 버린 K culture

✔ 개도국 출신 선진국 한국에 거는 세계의 기대

✔ 한국 문화에 대한 서구 엘리트의 시선을 바꾸어 놓은 계기,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 지속적인 한류 발전을 위한 과제, 산업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문화를 보아야

<기생충>으로 깐느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 송강호. (사진:셔터스톡)

한국의 대중문화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을 일컫는 한류. 이 말이 처음 사용되었던 1990년대 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류는 해외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소식이었고, 매번 압축 성장의 피로에 젖은 한국민의 자아를 기쁘게 해주었다. 식민경험과 전쟁,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부모 세대의 쟁투, 그리고 IMF 이후 이어졌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 속에서 한국인은 늘 정신없이 부지런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늘 피곤했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된 대중문화는 지나친 멜로 드라마와 과잉 로맨스로 현실감 없으나 노력없이 소화할 수 있는 달콤한 퇴행을 제공했다.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그와 함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충만한 한국인들은 우리의 대중문화를 은근히 서구와 일본의 문화물에 비교하며, 내가 즐길 수 있을지언정 남에게 자랑한다거나 남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사뭇 자조적인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한류,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실재하는 장르

그래서 2000년대 초반 한국 드라마의 과도한 중국 내 인기를 위협으로 느낀 중국 미디어가 “한류”란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자, 그때부터 우리는 지속적으로 물어왔다. 왜 외국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좋아할까? <겨울연가>에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BTS를 거쳐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 속 한국 대중문화의 대대적인 성공 앞에 우리는 항상 이해할 수 없어서 그 이유를 물어왔다. 우리가 홍콩의 액션물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소비하고, 왕가위의 영화에 충격을 받으며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춤추고 퀸과 엑스재팬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따라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외국인들이 <별에서 온 그대>나 <오징어게임>을 정주행하고 BTS의 한국어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것은 일반인과 엘리트 모두 같은 상황이고, 한류 현장을 연구하는 필자 또한 열렬한 성공의 소식을 전할 때마다 과장한 바는 없는지, 이어서 “국뽕”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스스로를 검열하는 판국에 이르렀다. 혹자는 부분적 관찰과 개별적 경험에 의지해서 한류현상을 일종의 과잉평가로보고 “국뽕”으로 치부하면서 자신의 균형감각을 과시하기도 한다. 근거 부족한 자축이 우스운 것만큼이나, 명백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자조 또한 자격지심의 결과 아닌가. 한국의 객관적 위치는 개발도상국을 벗어났지만, 한국인의 집단적 마인드는 아직 개발도상국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한국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이 대중적 또는 예술적 성공을 거두고 종종 기록적 판매를 달성하는 것이 일회적이고 개별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의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고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즉 개별적 성공마다 바로 시장효과를 계산하고 자축해야하는 예외적 호재로 대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산업이 향후 꾸준히 일정한 성공이 보장된 생산을 이어나가리라는 전망 아래 세계와 관계를 맺어가야 하고, 이를 동반하는 문화정책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조직적인 전파 아닌 자발적 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한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현실정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한류는 기획된 전파 현상(Propagation)이 아니고 자발적인 수용현상(Reception)이라는 사실이다. 한류현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IMF로 위축된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프로그램이 아닌 한국 프로그램이 가성비 좋고 저항을 자극하지 않는 좋은 대체재가 될 만큼 90년대 말 한국의 문화산업이 충분히 발전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국 문화산업의 발전은 절대적으로 80년대 민주화와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6-70년대를 거쳐 빠른 경제성장으로 극빈 상태에서 벗어났으나 정치적으로 지체한 한국 사회는 민주화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80년대를 보냈다. 이 기간에 한국인의 문화적인 욕구는 유보되고 억압되었다. 9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힙합, 보이그룹, EDM, 댄스음악이라는 케이팝의 원형을 장착한 아티스트가 등장했고,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90년대 중반에, 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이끈 지상파 3개 방송국의 경쟁상황 또한 SBS의 개국으로 90년대 중반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90년대를 걸쳐 문민정부 아래 이루어진 여러 문화적 제한의 철폐가 문화발전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한류가 처음 가시화된 동아시아에서조차 한류가 기획된 문화 전파 현상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없다. 국가별로 인기가 있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도 달랐고, 좋아하는 이유도 달랐다. 차이를 걷어내고 수용자 연구를 가로질러서 한국드라마가 도시 중산층의 소비 욕구와 동아시아의 문화 정체성 메커니즘을 자극한다는 공통된 구조적 조건들이 도출되었으나, 이것은 결국 수용의 공통된 맥락이 가져온 것이지 기획된 전파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가 한국인에게는 매우 당연하지만, 한국 거주 외교관과 외국인, 외국의 기자, 평론가, 지식인, 공무원 등 문화중재자(Intermediaries)의 절대다수는 그 반대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수출경제 기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발전한 한국경제처럼, 한류는 한국 정부가 90년대 말에 시행한 문화산업진흥책의 결과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형성된 이유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대중문화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는 이유로 또는 효과적 외교를 위해 대중문화를 지나치게 동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구가 지닌 식민주의적 사고의 발로이기도 하다. 한국이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쟁과 가난, 개도국형 독재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 못한 이 개발도상국 출신 신흥 강국이 문화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와 전략의 효과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이다. 이 점에서 한류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의 식민주체, 다른 국민의 착취로 원초적 부를 축적하지 않은 나라도 문화적 역량을 지닐 수 있고, 자력으로 쟁취한 민주화를 통해 개화한 문화적 내용으로 다른 나라를 매혹할 수 있는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류가 전파가 아닌 수용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류 지속이 산업 정책으로 충분하지 않고, 한국의 콘텐츠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한국 사회 내적 요인과 관련된 것임을 알려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대세 한류의 발판이 되어 준 아시아의 발전과 아시아인의 성공

둘째, 한류의 세계 속 성공은 아시아라는 맥락과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있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뼈져리게 확인했듯, 동아시아 3개 국민들은 이 지역을 벗어나면 국적을 가릴새 없이 우선적으로 동아시아인으로서 통한다. 긴 역사 속에서 서로 밀접하게 얽힌 한·중·일 관계는 한류의 미래에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시진핑 정부의 국가 주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문화정책은 중국의 창의력에 큰 족쇄를 걸었다. 무거운 제작비를 투자해서 제작하는 화려한 스펙터클의 중국 영화들은 거대한 내수 시장만을 겨냥하더라도 충분히 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이러한 안락은 중국 콘텐츠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일본은 할리우드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유일하게 글로벌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수출하는 나라지만, 일본의 드라마와 영화의 활력은 오랜 보수 정권 아래 퇴색해왔다. 자국에서조차 망가와 애니메이션, 게임이 인기이고 대중음악을 포함한 실사 콘텐츠가 취약하다. 작년 말 <지옥>이 넷플릭스에서 1위를 하고 아직 <오징어게임>이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던 시기에 개봉된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재난 드라마 <일본 침몰>이 일본 내에서조차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사례가 이러한 일본의 제작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 내 한류열풍을 재점화한 이후 진행한 필자의 연구에서도, 이제 일본 시청자뿐 아니라 미디어 종사자들까지도 한국의 제작능력을 일본이 경쟁할 수 없는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겨울연가>가 대변하는 여성 시청자 위주의 초기 한류 현상을 비하하던 일본남성 엘리트들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의 강력한 이웃 중국과 일본이 창조적 문화산업을 위한 에너지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에게는 기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중문화 형성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이 가장 가시적이지만 한중일의 대중문화는 긴 시간을 통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특히 한류를 구성하는 한국드라마와 케이팝의 형성에 일본의 영향이 컸다. 세계 속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 루트를 살펴보더라도 일본이 망가와 애니메이션으로 깔아놓은 동서 간 문화 고속도로 위를 웰 메이드 한국 콘텐츠를 실은 차들이 대대적이고 빠르게 질주하는 형국이다. 패권 국가가 된 중국과 아시아의 유일한 제1세계 국가 일본, 그리고 개도국 출신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구성하는 동아시아 3개국이라는 단위는 경제적, 인구학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세계 속에서 매우 중요하다. 내셔널리즘에 경도된 한·중·일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문화산업과 수용의 이슈를 국가 간 긴장과 갈등으로 만드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서로의 중요성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는데, 2016년 사드로 인해 중국 시장이 막히기 전 중국은 한국 문화산업의 제1시장이었다. 사드 위기로 잃은 중국 시장 만회를 위한 노력이 오늘의 동남아시아와 미국으로의 활발한 진출의 동인이 되었으니, 어쨌든 중국은 현재 한국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극복의 대상을 꾸준히 제공하는 이웃이다. 

일본의 경우, 한류 이전부터 한국 가수들이 진출해 있었고 2000년대 이후 끊임없이 한국문화산업의 핵심적인 시장이 되어왔다. 혐한 운동의 세기와 양국 간 정치 이슈에 따라 긴장이 오가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게, 한국은 일본에게 공적으로는 멀고 사적으로는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결국 멀고도 가까운 세 나라가 동아시아 내에서는 갈등과 긴장의 거미줄 속에 엉겨있지만 동아시아 외부에서는 구분되기 어려운 하나의 마스크를 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서로 다른 국기를 등에 붙이고 등장하여 나란히 포디엄을 채우는 동아시아인들의 존재감은 이러한 세계 속 인종 정치의 일부로서 동아시아의 굴기를 응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 케이팝, 스타들의 얼굴을 매개로 하는 뷰티 산업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공간 내에서 한국 대중문화는 세계 속 동아시아인의 얼굴과 몸의 구체성을 담보한다. 전 세계 청년들이 케이팝 댄스 플래쉬몹을 하면서 따라 하는 것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구성하는 한국의 청년들이고, 홍대와 서울은 세계 청년들이 가장 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BTS와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프로그램의 성공은 빠르게 한국대중문화를 글로벌 대중문화 속으로 진입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한류와 아시아의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대중문화 속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아시아 남성성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은 미국 내 한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계 청년들에게 힘을 돋아주고 있다. 작년에 독일의 한 디제이가 BTS가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부른 것이 못마땅해서 BTS를 바이러스에 비유하면서 북한으로 보내버리라는 비하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BTS 팬들 뿐 아니라 아시아인 커뮤니티 전체에 큰 반감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프로그램 성공도 넷플릭스가 한국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전략적인 집중투자를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런 전략적 선택의 이유는 아시아 시장이다. 북미와 유럽 시장이 거의 소진되었고 후발주자 글로벌 서비스 업자들과 경쟁을 통해 향후 이 지역에서 가입자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에, 점증하는 중산층과 젊은 인구가 밀집해있는 아시아 시장은 넷플릭스에게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이 시장의 절대 강자인 한국과의 협업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 제작 투자해서 만들어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날은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에게 소구할 수 있어야하므로 한국적 내용을 담지만 세계화된 장르의 문법으로 해독가능성을 높였다. 20년 이상 한류를 사랑해온 아시아 시장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서, 한국산 넷플릭스 오리지널 장르 드라마 뿐 아니라 한국제작 넷플릭스 방송 드라마들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세계 속 한류드라마 고공행진의 진정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오징어 게임>이 시청량에서 비교 불가 1위를 점유하고 있을 때, 다른 한류드라마로 가장 빨리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시아 국가들이다. 이와 같은 아시아시장의 중요성은 구조적인 것이기에 넷플릭스 뿐 아니라 모든 후발 글로벌 OTT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즉 가입자형 글로벌 콘텐츠 서비스업의 전쟁터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도 아시아이고, 한국은 이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핵심적 파트너이다. 이것은 한국 문화산업에 전례없는 상황이고, 이것이 기회일지 한국 문화산업의 해외자본 종속을 가져올 아름다운 독이 될지를 가늠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는 사드 전후로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겐 위험인 동시에 기회로 보인다.

사진: 셔터스톡

한류 2.0의 주체, 선진국에서 태어난 디지털 세대의 청년

셋째, 세계적 수용 현상인 한류의 주체는 디지털 문화 속에서 태어난 청년들이다. 너무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정언은 맥락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2000년대 초 아시아의 한류 현상은 지상파를 통해 전국적 방송을 통해 매개된 것이기 때문에, 트랜디한 소비에 민감한 청년들의 한류 소비 행위가 가시적이긴 했어도 딱히 청년 문화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겨울연가>,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가 핵심적인 한류의 에너지였던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서 자발적인 팬덤 문화의 현상을 통해 매개 집단 없이 퍼져나간, 커뮤니티 협업을 가능케 하는 웹 문화를 적극 활용하기에 학자들이 한류 2.0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수용의 물결은  드라마에 케이팝이 더해져서 명백하게 청년문화적인 특성을 띤다.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을 남도 봤으면 좋겠기에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드라마와 케이팝 관련 뮤직비디오와 동영상에 자막을 달아서 교환하는 커뮤니티들, 유통하는 내용이 지배적 대중문화가 전혀 제공하지 않는 소수언어로 극동의 일상과 현실을 전하는 한국의 대중문화일 때, 그 선택 자체가 의문을 제기한다. 언어와 문화 장벽을 뛰어넘는 집단적인 문화해석과 수용 공동체로서의 팬덤, 이들은 단지 콘텐츠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에서 발전한 케이팝 팬덤 문화의 열렬한 집단행동문화 또한 수용했고, 이것은 디지 털문화 세대가 세계화 시대에 경험하는 전례 없는 세계시민주의적 상황을 만들어냈다. BTS의 거대한 팬덤 아미의 활동이 제스쳐가 크기 때문에 더 눈에 띌 뿐, 세계적 팬덤을 지닌 수많은 케이팝 그룹의 팬 커뮤니티가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유럽의 청년들이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원폭 장면이 들어 있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 공방을 지켜보거나 댓글공방에 “참전”하면서 양국의 역사를 배우고 국제관계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또한 인종 문제를 경험하기 힘든 입시교육 속 한국 청소년이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벌어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을 지원하는 성금을 내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갈수록 역사교육이 가벼워지는 신자유주의 교육체계 속 세계 청소년들에게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 문화, 지리, 국제정치에 대한 감각을 실전으로 학습하고, 무엇보다 행동하고 실천할 기회를 제공한다. 4년이나 5년을 기다려 한번 투표하는 현행 인류의 민주주의 경험을, 이 청년들은 지지하는 그룹의 앨범이 나올 때마다, 트위터 트랜드를 만들 필요가 있을 때마다 경험하고, 크고 작은 목표를 위해 모금하고 이벤트를 만들 때마다 실천한다. 

2018년 BTS 월드 투어 당시 포토월에 선 암스테르담의 BTS 팬들. (사진:셔터스톡)

게다가 이러한 경험 모두가 자발적 동의와 열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케이팝 문화는 음악과 춤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할 뿐 아니라 소속감과 위안, 소비, 경쟁, 자기표현,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집단 정체성을 추구하는 청(소)년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계급과 계층 간 격차와 불공정 문제, 이것이 투영된 계층하락의 불안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집단이다. 또한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과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공유하고 세계화의 경험 속에서 인종적 젠더적으로 보다 포용적인 태도가 실천이 힘들지언정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학습한 세대이다. BTS의 팬덤 아미는 이러한 이 시대 청년들이 공유하는 불안의 연대와 운동성이 이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지닌 대중문화 스타를 만나서 형성된 힘이다. 아미와 케이팝 팬덤이 보여준 팬데믹 기간에 아시아인에 가해지는 혐오와 싸우거나 연대하는 운동성이 이러한 해석을 지지해준다. 

이러한 케이팝 팬덤은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 어느 곳에서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엘리트 집단에게 이해하기 힘든 블랙박스 같은 것이다. 엘리트들은 여전히 인쇄매체에 더 익숙하고 문화를 탑다운으로 이해하는 경향이며, 스스로는 인정하기 힘들지만 인종주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다. 세계적인 대중문화형식으로 발현한 청년문화에 대한 인식은 아마도 자신들이 경험했던 록, 펑크, 히피에 머물러 있고, 모두가 백인 남성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청년들을 지지하는 다수가 여성인 청년문화의 등장이라니, 게다가 이들이 디지털 문화를 적극 활용해서 정서적으로 연결된 국경 없는 집단을 형성해서 미국 시장에서 BTS의 성공이 보여준 것과 같이 대중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필요한 경우 트럼프 정치미팅을 망칠 정도로 정치적 행위도 조직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청년문화 패러다임을 모두 벗어나는 사례이다. 

BTS의 세계적 성공은 케이팝 수용의 연령 한계를 무너뜨렸고, 노회한 엘리트집단도 드디어 아미와 케이팝 팬덤의 정치적 가능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2월 9일 가디언지에 실린 “케이팝 보이밴드 BTS가 세계를 구할까?”라는 제목을 단 미국의 영문과 교수 바유미의 글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다. 팬데믹 기간에 고립된 개인들이 빠지기 쉬운 음모주의와 유사종교적 신념들, 그것을 동원하는 극우 정치 세력에 어떻게 BTS와 케이팝이 효과적으로 싸워왔는지를 강조하면서, 케이팝은 한없이 키치적이고 신자유주의적 소비를 종용하지만 컴퓨터 스크린 앞에서 자판으로 싸우는 이들이 동물 가죽을 둘러쓰고 음모론에 빠져 의사당을 점거하는 미국의 극우세력과 싸워서 매번 이기고 있다고 썼다. 아도르노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BTS 멤버 중 제이홉을 가장 사랑했을 것이라고, 케이팝이 지닌 밝은 운동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유미 교수가 쓴 것과 같은 상황이 맥락이 바뀐 다른 지역, 국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같은 심각한 현장도 있고 한국 대선정국 속 해프닝도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의 텃세에 대해 한국 선수를 지지한 BTS의 리더 RM의 트윗을 공격한 중국의 혐오 댓글을 팬들이 아미를 상징하는 보라색 하트로 뒤덮은 작은 헤프닝이 있었는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보라 하트를 날리는 SNS로 숟가락을 얹으려다가 아미들의 비판으로 급히 포스트를 삭제한 바 있다. 정치인들이여, 케이팝 팬덤의 힘에 다가가다가 델 수 있으니 조심할지어다. 

 ‘어쩌다 선진국’ 한국에 대한 다른 나라의 기대

 위와 같은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한국 대중문화, 그동안 확산과 팽창을 거듭했고 드디어  서구의 일정한 인정을 받게 된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이 경제 강국으로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지금,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기대는 두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에게 개발도상국 출신 한국은 감정이입이 가능한 대상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겉으로는 반짝거리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전쟁과 가난, 배고픔, 하위주체로서 고난의 흔적, 전통의 흔적이 가득하다. 현재 개발도상국 국민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동시에 뒤따를 수 있는 모델로 보인다. 특히 문화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과거에 자국의 문화가 찬란했던 터어키나 이란과 같은 국가, 최근엔 인도에서 한국은 매력적이고 가능한, 또는 욕망해 볼 수 있는 근거리 미래이다. 이 나라의 한류 팬들은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에 담긴 긍정적 가치들에 민감하다. <이태원 클래스>에서 볼 수 있는 인권과 다문화감수성, 성공을 위한 청년들의 분투, 복수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예의가 존중되는 사회, 그리고 팬데믹을 최소의 희생으로 극복하는데 성공한 시민성의 국가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힘든 여러 차례의 개도국 예선전을 치르고 선진국들이 경쟁하는 100미터 결승선에 나란히 진입한 선수인 한국에게 박수를 보내며, 한국이 걸은 궤적이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류가 오래된 동남아시아에서는 이제 한국과의 일방적인 관계와 존재감이 이제 위협으로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에 상호적 관계성립과 문화협력, 교류가 절실하고 시급한 상황이다. 이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시장으로만 대하는 일방적 관계는 이 지역에서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필자는 서구 엘리트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신중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기생충>과 <오징의 게임>의 성공부터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세계가 찬사를 보낸 한국 영화와 감독들이 있었지만, 대개 천재적 개인들의 예외적인 성공이었다. 반면 두 작품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에 대한 독하고 예리한 분석은 한국 사회가 높은 단계의 표현과 비판의 자유를 누리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특히 계급사회의 현재를 이처럼 선혈이 낭자하게 해부해 보여주는 능력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보장이라는 반창고를 붙이고 고통에 무뎌진 서구 선진사회가 어느 정도 잊었던 감각을 되살린 듯 보인다. 그동안 서구의 엘리트들은 케이팝과 BTS의 성공을 청년문화의 새로운 트랜드 정도로, 모든 유행이 그렇듯 지나가리라고 생각해왔고, 노동윤리와 인권이 취약한 지나치게 달달해 보이는 이 산업을 가짜 또는 정부가 지도하고 투자한 수출용 상품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이러한 자기비판 능력을 장착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서 생산해내는 문화물이 지닌 자기비판 능력을 보며 아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케이팝 팬덤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향성을 가진 거대한 연대와 운동능력을 보여줬으니, 이 두가지를 제공하는 한국은 이제 미래의 해법을 찾는 길의 동료가 된 느낌일 것이다. 세계가 한국을 초청해 마이크를 쥐여주고 제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먼저다! 인종주의 인권 문제 극복과 인간성 회복이 우선 과제

그래서 지금이 한류의 지속을 위해 한류를 산업과 경제 영역이 아닌 문화로 이해하고 제대로 고민하며 정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한류를 한국의 엘리트들조차 새로 창출하고 확장한 해외시장 정도로 여겨왔음을 자백하자. 적어도 미디어의 반응은 한류 콘텐츠가 성공할 때마다 조 단위의 수익 창출이라고 설명하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경제가 최우선인 개도국 압축성장의 잔재라면 이제 이것을 의도적으로 멀리할 시점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우리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분배이며, 성장이 아니라 건강이다. 필자가 2013년 한국으로 대학을 옮긴 이후 수년간, 그러니까 2010년 중반 정도까지 한류가 얼마나 지속할 것인지를 묻는 전문가 조사가 있었다. 3년, 5년, 10년? 이 조사의 주체가 어느 기관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이 조사 자체가 한류를 산업과 유행으로 대하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세계 속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드높은 이제는 한류의 지속을 위해 고민할 때이다. 한류는 경제가 아닌 문화 현상이고, 문화란는 고유의 가치나 매력을 상실하면 굳이 누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산업 속에서도 사람과 가치를 먼저 생각할 때다. 문화산업 속에 재능있는 청년들이 계속 유입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창의 산업노동자들에게 4대 보험과 실업수당을 주는 정책이 시작되었으나 행정편의주의와 결과주의를 넘어 제대로 안전장치로 기능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잘하는 사람을 더 밀어주기라는 엘리트 스포츠정책의 원칙을 문화에 적용해서 메달이 따지는 것이 아니다. 메달을 따는 것이 더 이상 목표도 아니고. 

한류에 날개를 달아 줄 데이터 시스템의 개방

디지털 문화를 장착한 청년 세대의 운동성과 만나 세계 속으로 나아간 한류의 매체환경과 팬들의 창의성을 고려할 때, 한류의 지속을 위해 이러한 팬덤의 자발성과 창의력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튜브와 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한류 팬덤 속에서 청년 세대 크리에이터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서, 이들은 대중문화 콘텐츠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해설하고 이해의 맥락인 한국사회의 여러 모습을 콘텐츠화해서 전 세계에 알린다. 바야흐로 SNS 인플루언서의 역할이 공식적인 정부 홍보 활동보다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는 시대이다. 이들에게 저작권 위반 없이 영상을 생산할 수 있도록 양질의 영상자료 소스를 제공하고,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통해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 한국의 방송사와 제작사들도 90년대 이후 쌓아온 검증된 한국의 훌륭한 대중문화물들을 일차 자료로 활용해 이차 창작을 하고 부차적 저작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한국 대중문화물들의 데이터베이스와 공공 영상 아카이브가 한류 지속을 위한 기반구축의 핵심과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넘어서, 개도국이어서 스스로 눈 감았고 한류 팬들도 어느 정도 용인했던 여러 권리와 책임의 문제들이 더는 용인되지 않고 문제시되는 시점이 왔다. 최근에 있었던 KBS 사극 촬영 중 과도하게 위험한 낙마 장면에 동원되었던 말이 죽은 사건이 국민청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분노를 샀다. 제작진들은 그동안도 이렇게 문제없이 촬영해왔으니 이번에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문화산업 현장에서 이와 같은 무책임은 국내외 시청자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 제작이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든 과도한 열정 노동의 착취와 스트레스, 어린이 노동, 연습생의 인권 등, 명백한 인권침해 증거가 제시될 경우 심각한 비판이 따를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국내외 수용자 모두의 시선이 변했다는 것을 한류 산업 종사자들은 깊게 깨닫고 시스템을 정비할 시점이다. 공격적으로 플랫폼 사업을 펼치고 있는 케이팝, 웹툰, 게임 산업 또한 그동안 한류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훼손하는 확장이고 시스템은 아닌지를 항상 살필 필요가 있다.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팬덤 커뮤니티를 플랫폼 안으로 묶는 것은 산업적으로 이득이지만 더 중요한 활력과 자발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개인의 창의성은 제대로 보상되고 있는지 등 고려해야 할 가치와 권리의 리스트는 갈수록 길어진다. 선한 영향력의 힘으로 발전해 온 문화가 선함을 잃는 순간 그 에너지도 소실될 것이다.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미션은 아마도 우리 안에 있는 인종주의와 싸우는 일일 것이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여러 문화적 충돌과 인종차별적인 표현들이 한류를 사랑하는 세계 속 다양한 정체성의 팬들을 상처입히고 등 돌리게 할 수 있는 위험들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이라는 마이너스 인구증가의 국가가 미래를 위해 선택권 없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다. 


글쓴이 홍석경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나와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송위원회 선임연구원, 보르도 3대학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를 지낸 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미디어 정경의 변화와 세계 속 한류 소통의 구조를 아이돌, 젠더 등 다양한 키워드로 풀어낸다. 대표 저서로는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 시대의 한류: 풀하우스, 강남스타일, 그리고 그 이후』, 『드라마의 모든 것』 『BTS 길 위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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