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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 2022 요약] 돈을 섬기는 사회, 퓨 리서치가 드러낸 코로나 이후의 한국

By | 2021년 11월 22일 | 미분류, 사람

지난 주말 SNS에서는 포털 뉴스를 두고 뜨거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화제가 된 뉴스는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가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삶에서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통계 자료. 14개 국가에서 가족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는데, 의외로 한국은 이 항목에서 밑에서 2위. ‘물질적 풍요로움’을 1위로 꼽았다는 이야기다. SNS 상에서는 ‘우리는 여전히 물질의 노예인가?’라는 탄식이 이어졌고, 전문가들이 통계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 보며 ‘행복한 삶을 위한 물질적 토대’를 ‘돈’으로 해석하며 빚어진 미묘한 오해가 있었다는 점과 다른 나라는 대부분 복수 응답을 했는데 한국은 62% 응답자가 오직 하나만 답했다는 설명이 곁들여지며 그리 큰 의미를 둘 자료가 아니라는 방향으로 급한 불은 꺼졌다. 

‘한국인은 물질의 노예’라는 오명은 벗었으나,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어느 정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실일 듯하다. 전후의 절대적인 빈곤과 보릿고개를 벗어난 지 오래지만, 가난과 배고픔의 트라우마는 우리 DNA 안에 각인되어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되는 것일까. 아니면 돈이란 항상 중요한 문제였는데, 유난히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메디치미디어가 격년으로 발행하는 전망서 〈촉 2022-2023〉 중 정신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집필한 첫 번째 챕터(150매) 중 이와 상통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편집자주]

코로나19 3년차, 한국인의 속마음은 안녕한가?

#퓨 리서치 통계 자료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다시 돌아보는 한국인과 돈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위한 물질적 토대
#팽팽한 시대적 불안이 돈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여

한국인은 정말로 돈을 숭상하는가? 퓨 리서치의 통계 자료를 계기로 한국인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하지현 교수의 글과 함께 돌아 본다. (사진제공=셔터스톡)

일상부터 사회 전반을 흔들어 놓은 코로나 19

코로나19는 자잘한 일상에서 시작하여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하루 하루를 보내며 답답한 기분과 더불어 상대방의 얼굴의 반만 보며 대화를 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흔들리며 불안과 경계의 수위가 높아졌다. 안전을 위한 생존 본능과 소중한 프라이버시를 맞바꾸었고, 여기서 더 나가 집단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언제고 침범당할 지 모른다는 가정까지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은 점점 적어지고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졌다. 당연히 불확실성과 편차가 증가하고, 패자부활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사회의 분위기가 열려 있고 팽창하고 있으면 새로운 것에 관대해지고 당연히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쉽게 친해질 수 있고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하지만 감염병과 같은 위험한 상황이 지속하면 ‘모르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21세기에 공동체마다 성벽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이다. 낯선 타인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내 집단과 타 집단 사이의 거리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다. 부족주의적 심리가 강화된다. 내 편이라고 여기는 집단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여기는 상황에 이른다.

관대함은 점점 귀해지는 한 편,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내 관점에서 느끼는 공감마저도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공감은 타고난 본성의 하나지만, 본성의 작동은 선택적이다. 내가 몰리거나 힘들면 덜 작동하고, 내 편이라 여기는 대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대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작동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차단하기도 한다. 공감은 나와 함께 지내는 이들의 고통을 내 것인 양 느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발달한 능력이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시기라면 타인의 아픔까지 내가 느끼는 것은 사치에 해당된다. 가족과 내 편부터 지키는 게 우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길어지면서 사회가 각박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혼돈은 불안을 증폭시키고
불안은 집단에 대한 의존을 키운다

소통이 어려워지고 신뢰가 흔들리며 기회가 줄어들고 불확실성이 지배하게 되면 당연히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증가한다. 불안과 예민이 증가하면 개인은 그 수위를 낮추기 위해 두 방향을 선택한다. 하나는 큰 집단에 소속되어 안전한 기분을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더 개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불안 지수가 높아지면서 집단에 속하려는 한국인의 심리는 한층 강해졌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집단의 행동을 따르는게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동네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지하철역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상황이 낯설거나 불안해지거나 불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고 그걸 따라하는게 안전하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이다. 개인은 약하지만 집단 안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껴지면 그 집단의 크기가 큰 만큼 나의 자아도 그만큼 커진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은 위험으로 가득한 이 시기에 개인의 선택은 소속된 집단으로의 회귀일 수 밖에 없다. 배는 폭풍이 몰아치면 항구로 귀항하게 마련이다.

집단 안에서 찾는 답안:
나는 누구이고, 내 위치는 어디인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은 최고의 형벌이었다. 특히 집단의 균질성이 강한 단군의 자손이라 믿는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은 유난하다. 그리고 집단 안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쯤 되는지 궁금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성향을 가식 없이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카페이다. “30대 중반, 아이 둘에 맞벌이로 세후 1억원을 법니다. 빚 얼마에 서울 어디에 시세 몇 억짜리 아파트 한 채와 상가에서 월세가 들어옵니다. 이 정도면 어떤가요? 평가 부탁합니다.” 이미 충분히 잘 지내는게 분명한 이들이 여전히 평가를 원한다. 집단 안에서 내가 어느 수준인지를 전문가가 아닌 대중으로부터 직관적 평가를 받기 원하는 것이다. 그게 제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의 시작은 내가 안전한 상태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기준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안전에 대한 확인에 칭찬 받고 싶다는 욕구가 얹어진다. 게다가 집단 안에서 나를 바라보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공정함에 대해 예민해지고 불평등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집단 안에서 나의 위치에 대한 확인 욕구가 강해지고, 이와 동시에 비교가 일상화되고 줄을 세우는 것이 선명해질수록 역으로 불안은 강화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이다. 불안의 쳇바퀴를 도는 와중에 우리는 기를 쓰고 집단 안에서 더 위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집단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할 것인가.

이어지는 개인의 선택:
돈을 향한 갈망과 학벌 쟁취를 위한 노력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을 강하게 실감한다. 페스트와 같은 역병, 십자군 전쟁이나 세계대전과 같은 오래 지속하는 전쟁을 겪다 보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종교에 의지하거나 강력한 지도자를 원한다.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우리에겐 현재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보면 강력한 리더십을 무기로 인기를 얻는 후보들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 비록 합리적이지 않고 다소 비민주적일 수 있으며, 집단의 힘으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더라도 대중은 강한 리더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지만, 종교에 대한 기대는 훨씬 적어졌다. 종교에 대한 기대는 훨씬 줄어들고 그 자리에 돈을 향한 탐구가 자리잡았다. 돈에 대한 욕망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있어 왔지만,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팬데믹을 겪으며, 여태까지는 어느 정도 금기의 영역이던 ‘돈에 대한 논의’가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봐야하겠다.

돈에 대한 담론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것은 일부 커뮤니티만의 현상은 아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를 보아도 그렇고,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도 동학개미가 주식시장을 받쳐 낸 현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지표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또한 돈과 함께 개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사회적 지위이다. 이는 당연히 학력을 향한 강한 열망을 동반한다. 사회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면 일단 나라도 능력만 된다면 사다리의 윗자리로 올라가 있는게 안전한 선택이다. 그래서 지방대 학생들은 서울 소재 학교로 옮기고, 서울 소재 대학생들은 SKY 졸업장을 받기 위해 반수, 삼수를 하고, 공대생은 의대로, 지방 의대생은 서울 소재 의대로 기를 쓰고 옮기는 현상이 생긴다.

노력한 만큼 우리의 불안은 나아졌을까?

이렇게 기를 쓰고 노력했는데 과연 불안은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은 듯 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0년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우리 정서상 가까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전년대비 17.6%가 증가했다. 너무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찾는 이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아마 바다 표면에 노출된 빙산의 꼭지점 정도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불안의 기본수위는 꽤 올라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불안이 지속될 수록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마음의 에너지 소비는 늘어난다.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겠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에너지가 모두 바닥이 나버리는 사람은 증가할 것이다. 쉬어도 회복이 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게 버거워지기 시작하고 무기력이 개인을 잠식하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우울의 늪에 들어가는 사람도 하나 둘씩 주변에서 관찰되기 시작할 거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불안의 시대, 목적지보다는 다음 발걸음에 집중하자

2020년에 시작한 코로나 상황은 2021년이 끝나가는 지금도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2021년 초의 낙관적인 집단 면역의 희망 역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올해가 지나면 끝난다는 맹목적 희망과 강제적 낙관주의는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매번 희망을 품었다가 낙담하기를 반복하는 일은 위험하다. 어느 순간 큰 실망을 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고 미래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재 실정이다. 이럴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먼 미래가 아닌 오늘과 내일이란 현재를 중심으로 발 앞을 잘 보고 넘어지지 않게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다짐이다. 오늘에 집중하며 미래를 예측해서 완벽하게 통제하기보다 일어나는 일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현실적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갈수록 수위가 올라가는 오늘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낮출 방법이라 믿는다.
[요약 정리=허원]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 교수 (사진제공=메디치미디어)

〈촉 2022-2023〉중 첫 번째 장을 집필한 하지현 필자는 책을 많이 읽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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