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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칼럼] 세계는 왜 K를 두려워하는가?

By | 2021년 10월 21일 | 국제, 미분류, 정치

한국 대중 문화의 글로벌 쓰나미, 즉 한류가 세계를 흔들고 있다. 일견 재미있는 오락물로만 보이는 대중문화의 저류에는 고도의 정치성이 스며들어 있다. BTS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함께 UN에서 연설을 하고, 지구 반대편의 정치 시위 현장을 한국의 대중 음악이 이끄는 시대이다. 국제 사회가 한국의 대중 문화 확산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K 컬쳐의 확산은 비단 자국의 컨텐츠 산업과 시장을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의 근간을 흔들 지경이다. BTS 팬클럽인 아미는 말그대로 막강한 군대가 되어 버렸다. 한류가 일상화 된 ‘글로벌 K’의 세계에 어떤 환호와 어떤 저항이 있는지 임명묵 필자가 구석구석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국의 대중문화 감탄과 숭배를 넘어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다
#칠레,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까지
소환되는 케이팝
#역동적인 팬덤이 쌓여
혁명적인 에너지로 전환될 가능성도
#이제는 우리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K

2019년 12월 27일 칠레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모습. 한류는 이제 지구 반대편의 정치 현장에까지 등장한다. (사진=셔터스톡)

 

中보고서 “한류, 각국 정치적 혼돈 부추긴다” 경고

중국 공산당의 관료들과 터키와 이란의 보수적 무슬림, 거기에 미얀마의 군부와 벨기에의 학교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이는 어쩌면 마르크스가 유럽의 모든 권력자들이 두려워했다던 ‘하나의 유령’인 공산주의보다 위험하고 강력할 지 모른다. 바로 ‘한류’, 혹은 ‘K’라고 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지구적인 확산이다. 과거에는 이런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지만, 나오더라도 민족주의적 수사, 소위 ‘국뽕’ 취급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류에 대한 세계인의 경계를 농담, 혹은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전면적 규제는 이미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중국 당국의 한국 대중문화 규제인 ‘한한령’을 둘러싸고, 자국 콘텐츠 시장 육성을 위한 보호 장벽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한국 대중문화가 위험한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수입을 막은 것이었다. 각종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금지되었고, 아이돌에 대한 외모 기준을 재검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슬람 세계도 마찬가지다. 터키에서는 중국의 예시를 들며 한류를 규제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열렬한 한류팬 여학생 셋이 한국에 가겠다고 가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케이팝 규제를 둘러싸고 터키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터키보다 엄격하게 문화를 통제하는 이란에서도, 혹은 덜 통제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케이팝을 둘러싼 전투는 계속된다.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나 K는 전통과 도덕을 위협하는 독극물로 간주된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는 정치적 불안정성의 상징으로 통한다. 중국에서는 한류가 정치적 혼돈을 부추긴다며 각국은 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칠레 정부는 2019년에 격렬하게 타오른 시위의 주요 참가자로 케이팝 팬들을 지목했다. 태국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은 즉석으로 케이팝 음악에 따라 춤을 췄다. 미얀마에서는 블랙핑크 로제의 솔로곡 발매 하루 전 총탄에 산화한 블랙핑크 팬을 추모하고자 로제의 솔로 “On the Ground”를 계속해서 재생했다.

대체 케이팝, 한류는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기존의 권위를 떨게 만드는가? 한국 대중문화의 어떤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하는가?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당, 조국, 신앙, 젠더를 뒤흔드는 케이팝의 ‘정체성 정치’

첫째, 한국 대중문화, 특히 케이팝은 소위 말하는 ‘문화적 정상성’을 전면으로 뒤흔든다. 이점은 주로 중국과 이슬람 세계에서 케이팝이 경계의 대상이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일단,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한 케이팝의 팬덤 형성, 조직, 동원 방법론 때문에, 일단 ‘맛’을 들이면 자신의 중요 정체성을 특정 그룹의 팬으로 삼게 된다는 것이 주된 문제다. 중국은 당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이슬람 세계에서는 독실한 신앙심을 국민의 핵심적인 정체성으로 삼으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초국적인 케이팝 팬덤의 특성상, 국가와 기성 사회가 주문하는 핵심 정체성은 케이팝 팬덤에게는 아예 버려지지는 않더라도 ‘핵심’의 자리를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한류 자체가 기본적으로 외국 문화인 데다가, 그것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지구적 규모의 팬덤과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이팝은 강한 소속감의 원천인 ‘투쟁심’을 심어준다. 케이팝이 단순히 특정 가수의 노래와 춤 만을 즐기는 것이었다면 상황은 결코 이렇게까지 흘러가지는 않았다. 주로 음원 차트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팬클럽 단체 간의 투쟁, 내부 지위를 두고 벌어지는 같은 팬덤 내부의 투쟁 등 케이팝을 소비한다는 행위는 줄곧 무언가와 싸우는 일과 관련이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케이팝 소비자는 춤과 노래를 즐기다가 어느새 자신이 ‘팬질’하는 그룹을 위해 싸우는 군대의 전사, 팬덤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과 권위는 예상도 못 한 강력한 경쟁자를 마주하게 된다.

 

BTS 지난 9월 UN 총회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여 연설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발생한 권위의 공백을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이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각국의 기성세대가 케이팝을 그토록 경계하는 것이다.

케이팝은 ‘성적 정상성’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이는 대략 2015년 이후 등장한 ‘3세대 걸그룹’부터 본격적으로 두드러진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의 남자 아이돌들은 지나치게 ‘여성스럽게’ 꾸미고, 한국의 여자 아이돌들은 ‘여성성’에 도전하는 퍼포먼스를 종종 보여 준다. 같은 이유로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의 청소년들이 케이팝에 더욱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멤버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케이팝 소비의 특성 때문에, 케이팝 팬덤의 소비 문화는 동성애 문화를 제법 너그럽게 포용한다. 기획사가 어느 정도 의도하였든, 아니면 팬들이 자체적으로 그리 받아 들이든, 사실이 그렇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LOONA)>의 경우, 북미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상징과도 비슷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지의 보수적인 기성세대는 케이팝이 무성(無性) 문화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격렬하게 비난한다.

케이팝 팬덤의 집단운동 조직력

둘째, 케이팝 팬이라는 강력한 정체성과, 그에 기반한 조직적 투쟁의 경험은 케이팝 팬덤을 급속도로 ‘혁명화’시켰다. 케이팝 팬덤이 대중문화와 정치를 분리해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어떤 행동을 할 때 “이것은 케이팝 소비 활동이고 이것은 공적인 정치적 의사표출”이라고 구분하지 않는다. 케이팝과 정치는 조직화된 집단행동과 투쟁이라는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활동이다. 케이팝이 주축이 된 수많은 정치적 운동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런 인식이 타당하다 보여진다.

케이팝은 어떤 정치적 훈련을 제공하기에 이런 혁명화가 가능할까? 우선 케이팝 팬덤 활동은 강력한 목적의식을 심어준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은 ‘잘 나가야’ 한다. 이 목표와 상충되는 모든 것들은 이제 적대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그룹’ 단위로 사고하지 않고 그룹 안의 특정 멤버만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행위는 ‘악성개인팬’이라는 이름의 ‘악개’로 단죄되고, 다른 그룹도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팬은 ‘잡덕’이라고 비판받는다. 이를 통해 내부의 기강을 단속한다. 그다음 이런 목적의식을 바탕으로 외부를 향한 집단적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한다. 신곡이 발매되면 팬덤이 집단적으로 계속해서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재생해서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게 만드는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공격)’, 앨범 초동 판매량이라는 인기의 지표를 계속해서 유지시키기 위한 앨범의 대량 구매, 전철 역 등 공공장소에 게재하는 응원 광고, 새로운 팬덤을 유입시키기 위한 미끼 콘텐츠의 자발적 제작 등은 그나마 발전적인 방향이다. 파괴적인 면도 만만치 않다. 경쟁 그룹에 대한 비방, ‘동맹’ 그룹에 대한 지원, 그를 위한 각종 여론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케이팝 팬덤이 팽창하고, 발전하는 가운데 대중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발생하였고, 어느 순간 당연한 ‘대중음악’ 소비 문법이 되었다. 따라서 케이팝은 이제 조직화된 집단 행동을 향한 몰입을 파는 산업이다.

케이팝 팬덤은 정치적 훈련을 철저히 받은 상태에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전장에 뛰어들었다. 케이팝 팬덤의 정치적 투쟁을 설명할 때 ‘온라인’이라는 공간 역시 중요하다. 온라인이 정치, 여론, 사회 인식의 중심에 떠오른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 공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충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이팝 팬덤은 다르다. 국가를 초월하는 케이팝의 성격상,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답게 팬덤의 전장은 주로 온라인이다. 상시 고밀도의 ‘전투’가 벌어지는 케이팝 생태계의 특성상 팬은 지속적으로 온라인 집단행동을 실험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 노출되었다. 고밀도로 전개된 팬덤 투쟁을 겪으며 그들은 효율적이고 강력한 대중 동원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온라인 집단행동에 대한 높은 이해는 온라인 공간을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치 않았던 다른 세력에게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불평등 문제 제기하는 한류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최근의 경향인데, 한류는 점점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되었다. 한국은 그전부터 이같은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한국 드라마는 계급 차이에 따른 갈등을 계속해서 노출해 왔다. 웹툰과 웹소설은 아예 계급과 ‘갑질’, 수직적 위계의 역전이라는 테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대대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 ‘갑질’이 중요한 테마인 사회에서, 한국인들은 문화적으로 이런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데 능숙하고, 소비 시장도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편이다. 그리고 세계화로 인해 불평등이 대대적으로 확산되어가는 와중에, 한국의 불평등 소재 이야기들은 높은 완성도와 맞물려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강한 신좌파 흐름으로 정체성 문제가 강조되기 시작한 미국 대중문화의 흐름과는 대조되는, 한국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이런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연이은 성공으로 우리는 한국 대중 문화가 즐겨 다루는 계층 문제와 불평등 테마는 대단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두 작품이 해외의 소비자들로부터 “한국의 이야기지만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는 반응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한국은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를 관찰만하고 끝내지 않는다. 어떤 창작물에서건, 한국에서 계급이 테마로 나올 경우 강력한 전복의 메시지, 분노의 감정 등을 타오르게 하는 연출이 사용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불평등을 다룬 한국의 콘텐츠는 세계인들의 ‘마음 속 혁명’에 불을 지피는 도구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얻으며 이와 함께 극중에 등장한 추억의 설탕 과자 ‘뽑기(달고나)’역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사진=셔터스톡)

 

한류에 반대하는 ‘신성동맹’ 출현에 대비해야

한국이 세계 시장에 문화 콘텐츠를 수출하기 시작할 때, 아무도 이러한 파급효과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세계 시장에서 한국 문화가 이 정도로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도 많이 없었고, 한류 회의론은 심심하면 다시 나와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한류의 지구적 확산은 현실이며, 한류가 세계 각지의 사회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화학 작용은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가장 역동적이고 급격한 변화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한국의 콘텐츠는 전 세계의 소비자들로 하여금 전통의 권위를 버리게 만들고, 집단적 투쟁에 나서게 만들며, 자국 사회의 불평등을 향해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이런 요소들이 조합되어 ‘K’는 혁명의 언어가 되어 세계를 떠도는 하나의 유령이 되었다. K의 영향력에 맞서는 ‘신성 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한국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정하기 위해서라도 한류에 대한 새로운 분석들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K의 역사가 한국 대중문화 확산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앞으로는 한류를 수용한 세계인의 ‘글로벌 K’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임명묵은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서아시아 및 중동 지역을 전공하고 있다. 문명과 역사, 사회와 국제정세, 대중문화와 과학기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과 <K를 생각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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