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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디지털세 도입, 한국에 불리한 또 하나의 ‘국제기준’ 되나?

by | 2021년 7월 11일 | 정책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회의장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 참석해 제3세션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에서 발언하는 모습이 모니터로 중계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가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각국에 대한 디지털세 배분 비율을 “(가장 낮은 수준인) 20%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쟁점은 디지털세 합의안이었는데 한국 입장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때문에 배분 비율이 낮은 게 유리하다고 홍 부총리는 설명했다. 합의안은 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원), 이익률 10% 이상 기준을 충족하는 글로벌 기업이 ‘매출을 올린 나라’에도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전 세계에서 대략 100개 기업에 대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차현진 필자는 좀 더 냉정하게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세는 원래 유럽 쪽에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것이었다. 필자는 ‘국제 공조’라는 대의명분에 밀려 선진국의 제안을 수용하는데 급급하다 보면, 우리에게 불리한 원칙이 새로운 국제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G20 회의, 세금 관련 합의 이뤄
  디지털세 도입, 최저 법인세율 설정
#국제조세체계 원칙 새로 정립
  금융업, 채굴업 적용은 배제하고
  삼성 등 제조업 적용은 선진국 논리
#미국 법인세율 인하 움직임 주목
  한국, 법인세 세율·의존도 낮춰야

어느 나라나 조세정책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국제 협정 가운데 관세(GATT)나 무역(WTO)에 관한 것은 있지만, 내국세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별도 협정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내국세에 관해서는 국제적 합의를 기대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이번에도 G7의 합의 내용에 따라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 (IF, Inclusive Framework)에 참가하는 139개 국 가운데 아일랜드·헝가리 등 9개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각국 의회에서 이런 내용의 세법을 순순히 통과시켜 줄 지도 불확실하다.

디지털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업보

미국이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디지털세와 글로벌 법인세율 최저한도(15%) 도입을 묶어 급하게 추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는, 경제적·정치적·외교적 책략이다.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유럽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품고 프랑스 중심으로 반미(反美) 전선을 구축해왔다. 그때 ‘BEPS’ (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즉 ‘다국적 기업의 세원 잠식을 통한 조세회피’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디지털 경제라는 뉴노멀 환경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현지에서 과세할 수 있다는 이론적 토대를 만든 것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주된 타깃이었다.

2018년 EU 경제재정위원회(ECOFIN)는 BEPS 개념을 바탕으로 디지털세(직접세)를 부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을 의식한 몇몇 국가의 반대로 도입이 유보되었다. 그러자 프랑스가 이듬해 독자적으로 연 3%의 ‘디지털서비스세’(간접세, 일명 구글세)를 도입했다. 올해 초에는 영국,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터키 등 6개국이 비슷한 명목의 세금을 도입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신종 세금은 금년부터 부과될 예정이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시 이를 유예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법인세 이슈, 바이든의 이중 포석

바이든 대통령은 디지털서비스세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 디지털세 도입을 수용하되 이를 글로벌 법인세율 최저한도 도입과 연계시켰다. 그것이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결과인데, 가히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할 만하다. 글로벌 법인세율 최저한도 설정이 늦어질수록 코앞에 닥친 디지털서비스세 부과도 늦어지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포석은 국내 정치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타결되었던 국가채무한도 유예기간이 7월 말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급격히 불어난 국가부채 및 재정적자의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미 의회와의 예산안 갈등으로 연방정부 폐쇄사태(shutdown)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로선 이럴 때 조세피난처로 떠난 미국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노력을 보여주는 게 국가채무한도 증액 협상을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디지털세 때문에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거나 일부 국가의 반대로 시기가 늦어지는 것쯤은 중요하지 않다.

세금 이슈는 외교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중국과 여러 분야에서 충돌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주요 동맹국들과 결속력을 확인하고 그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어서다. “유럽의 동맹국들이 아일랜드나 헝가리 등 일부 반대 국가들을 설득해서 글로벌 법인세 최저한도를 설정하기만 하면, 미국도 유럽이 제안한 디지털세를 수용할 수 있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인 이유다. 하지만 9~10일 이탈리아에서 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기 전에 재닛 옐렌 미 재무장관은 유럽을 향해 ‘구글세’ 철폐를 압박했다. 일종의 강온 작전으로 풀이된다.

삼성·SK 포함 땐 한국 제조업에 타격

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기 직전 기획재정부는 최근의 디지털세, 법인세 관련 이슈에 대해 “국제조세체계의 원칙을 새로 정립하는 역사적인 성과”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했던 디지털세 적용대상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업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제조업체다. 각국에 세운 현지법인을 통해 이미 충분한 법인세를 냈던 만큼 앞에서 말한 BEPS 개념과는 별 상관이 없다. ‘디지털’이라는 이름을 붙여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해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술집이 탈세한다고 술병을 만드는 사람에게 과세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우리 정부가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디지털세의 충격과 부작용도 잘 따져봐야 한다.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운영하는 플랫폼은 고객 충성도(customer loyalty)가 강해 디지털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시켜도 수요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시장에선 거래업체에 고객 충성도를 기대할 수 없다. 보통 반도체 납품은 장기계약으로 이뤄져 탄력적인 가격조정도 어렵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디지털세 부담을 거래업체나 소비자들에게 전가하지 못한 채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속으로 곯게 된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빅테크들, 문어발식 영업확장 가능성

디지털세는 다른 부작용도 있다. 글로벌 매출 규모(200억 유로 이상)가 크고 영업이익률(10% 이상)이 높은 기업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박리다매  형식으로 매출을 올리거나 문어발식 영업확장을 통해 사업규모를 불리면, 영업이익률이 낮아져서 디지털세 부담을 회피할 수 있다.

가뜩이나 시장지배력이 큰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더 확대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구글, 유튜브가 티셔츠를 덤핑 판매해 한국 의류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디지털세는 원래 의도와 달리 ‘제조업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세의 목적은 빅테크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려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그 목적은 BEPS를 해소하는 데 있으므로 해당 기업의 세금 부담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즉 빅테크 기업들이 해외에서 디지털세를 내는 만큼, 이중과세 방지 원칙에 따라 자국 내 법인세 부담은 줄어든다. 따라서 디지털세는 각국 정부 간에 ‘법인세 갈라먹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은 디지털세를 도입하면서도 자국 기업이 포함될 가능성은 최대한 낮추려고 노력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금융업(유럽 기업), 천연자원 채굴업(미국 기업)은 디지털세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금융업과 채굴업이야말로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엄청나게 많고 글로벌 차원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비즈니스다. 그런 업종들을 제치고 반도체 제조업이 포함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 삼성과 SK는 미국 현지 공장까지 짓고 신규고용을 창출하지 않는가.

한국, 법인세율과 법인세의존도 낮춰야

글로벌 법인세율 최저한도(15%) 설정과 별도로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적으로 법인세율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6조 1000억 달러 규모의 슈퍼 예산안을 의회에 보내면서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럴 경우 미국 법인세는 우리나라(현재 25%)보다 3% 포인트 더 높아진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한 부자증세 계획도 밝혔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계속 내려 왔던 선진국들의 법인세율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부자감세를 통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움직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현재 법인세율이 OECD 회원국(38개 국) 중 9위인 데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증세 논쟁’이 격화될 수 있다. 만일 법인세율 인상안이 거론되기 시작되면, 여야가 정쟁을 벌이기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굳이 한쪽을 고른다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OECD 국가들의 법인세율(자료=OECD Tax database 2020)

법인세, 중산층 稅부담 늘리는 간접세

영국의 덜로우(Edward Thurlow) 대법관이 밝힌 것처럼 사람과 달리 법인은 처벌할 육체도, 비난할 영혼도 없다. 투표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거둘 때는 법인의 ‘인격’을 인정한다. 그 덕에 유권자에 대한 직접 과세가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법인세는 세수 확대를 위한 행정편의적 장치요, 직접세를 가장한 간접세가 아닐 수 없다.

18세기 후반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킬 때 “대표 없는 과세 없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법인이 딱 그렇다. 법인에겐 투표권이 없지만, 세금은 낸다. 그로 인한 부담(손해)은 주주에게 돌아간다. 법인세를 낸 뒤 남은 이익을 배당하면, 배당소득에 대해 주주가 다시 소득세를 내기 때문이다. 엄연한 이중과세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소득세를 낼 때 배당소득을 일부 공제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이중과세를 방지하려면 법인세를 폐지해야 한다.

주식시장 활황 덕에 요즘 우리나라에선 개미투자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법인세에서 발생하는 이중과세의 부담은 주로 중산층 주주에게 집중된다.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누진과세(부자 과세)를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법인세로 인해 중산층의 세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법인세 의존도를 낮추는 용기와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발로 뛰고, 국회는 용기를 내야

박근혜 정부 때 우리는 사드 배치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너무 컸다. 지금 디지털세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이 간담상조(肝膽相照) 식으로 디지털세의 적용대상에 자국 기업은 빼고 한국 제조업체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국제공조를 다그친다. (이쯤 되면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국으로 부른 이유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런 꿍꿍이에 말려들어 엉뚱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지난 9일 베니스에서 옐런 미 재무장관을 만난 이유일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앞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이러하다. 일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외에서 디지털세를 내는 만큼 국내 법인세를 깎아줘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서는 금융업과 채굴업이 빠지는데 제조업이 포함되는 이유를 강력하게 따져야 한다. 아울러 과세의 문턱이 되는 통상 이익률(현재 10%)이 충분히 높아지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그것에 실패하면, 현 정부의 큰 실수로 남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음을 상기하라.

여야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사항도 있다. 우리나라의 명목GDP 대비 법인세 세수 비중은 미국의 약 3배에 이른다. OECD의 38개 회원국 중에서 법인세 의존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뉴질랜드, 칠레, 벨기에, 캐나다, 일본 등 8개국에 불과하다. (2017년 OECD 통계)

(출처=미 재무부, 기획재정부)

노무현 정부 때 법인소득세 세수가 개인소득세를 추월한 이후 법인세 의존 비중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영세 자영업자(개인소득세 납부자) 비중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소득 수준에 따른 누진과세를 통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여야를 떠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부자 과세는 조세저항이 크고, 정치적 쟁점으로 번지기 쉬운 문제다. 하지만, 법인세를 통한 행정편의적 세수 확보는 소득불평등 해소 차원에서 해법이 될 수 없다. 공정과 평등이 시대정신이 된 오늘날, 여야 정치인에겐 현실 직시와 용기가 필요하다.


차현진 필자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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