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의원, 장관, 국무총리 지낸 최초의 집권 여당 대표

야당도, 보수언론도, 당내도 큰 형님복귀 마땅찮은 기류

당 대표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배려와 권한이양 긴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부동산 정책의 급소를 찌르고 나왔다. 그는 8월30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3주택 이상이거나 초고가 주택 등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장관이나 청와대 정책실장도 ‘표가 무서워서’ 못하는 얘기다. “역시 해찬들”이라는 감탄과 우려의 2중주가 흘러나온다. 정치권 취재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성한용은 이해찬 대표의 이런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현안을 잘 알고, ‘겁’이 없으며, 당대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맥을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이해찬호는 그러면 잘 굴러갈까?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결정할 것이라는 게 성한용의 진단이다. ‘책임총리’에 이어 ‘책임 당대표’ 실험에 나선 이해찬을 분석한다. <편집자 주>

 

 

출마선언 하는 순간 당락은 결정됐다

더불어민주당 전국 대의원 대회는 8월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정치부 기자인 저는 어느 정당이든 전당대회가 열리면 가급적 현장에 가서 취재합니다. 전당대회장에는 정치 일선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활기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입니다. 제가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하고 나서 다시 정치부 기자를 하는 이유도 바로 현장의 이런 활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7선 국회의원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당선되리라는 것은 그가 출마 선언을 하는 순간 결정됐다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대표 경선 판세는 ‘1강 2중’으로 출발했고 중간에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전당대회 이틀 전 송영길, 김진표, 이해찬 후보 캠프와 주변 사람들에게 판세를 물었습니다.

“뒤집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송영길)

“현장에서 결판이 날 것입니다. 대의원 1000명~1500명 정도가 부동표입니다.”(김진표)

“40% 초반 득표율로 이길 것 같습니다. 후보는 수락 연설문을 쓰고 있습니다.”(이해찬)

누가 당선될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전당대회장에서는 세 후보의 연설 대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영상이 상영됐습니다.
“우리 당은 하나가 될 때 승리하고 분열할 때 패배했습니다. 우리 당과 문재인 정부는 공동운명체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곧 민주당 정부입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더불어 잘사는 경제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선출될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됩시다. 함께 전진합시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함께 갑시다.”
‘하나가 될 때 승리하고 분열할 때 패배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전당대회 기간 내내 합동연설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했던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해찬 후보를 도와주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른바 ‘문심’이 어느 후보에게 있는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 후보는 연설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당 지도부 선거는 당일 현장에서 하는 대의원 투표 45%, 20일~22일 권리당원 에이아르에스 투표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10%, 일반 당원 여론조사 5%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전당대회 당일 전국에서 모여든 대의원들의 뜻에 따라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는 방식입니다.

송영길 후보의 연설은 뭔가 좀 아쉬웠습니다. 김진표 후보의 연설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이해찬 후보는 그저 그렇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현장 기자들의 의견은 연설로 판세가 뒤집히지는 않겠다는 쪽으로 모였습니다.

1만 명이 넘는 선거인단의 투표와 개표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선자 발표 예정 시각을 한 시간 정도 앞둔 오후 6시께 이해찬 후보의 당대표 수락 연설문이 기자들에게 미리 전달됐습니다. 기자 중에는 “혹시 떨어지면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이러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해찬 대표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당 대표로서 이런 걸 하겠다는 예고편을 보자면

이틀 전부터 미리 쓴 수락 연설문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명확했습니다. 정치적 수사와 목표를 걷어내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만 간추리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민생 안정에 집중하겠습니다. 민생경제연석회의부터 가동하겠습니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이 되겠습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 정부,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겠습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기 위해 당·정·청 협의를 더 긴밀하게 추진하겠습니다.”

“야당과도 진솔한 자세로 꾸준하게 대화하겠습니다. 국민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추진하겠습니다. 5당 대표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면 좋겠습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정책 역량을 높이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전국에 뿌리내리도록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민주정부 20년 연속 집권을 위한 당 현대화 작업도 시작하겠습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상향식 공천, 예측 가능한 시스템 공천을 하겠습니다.”

개표 결과 발표는 예정보다 훨씬 늦은 저녁 7시 40분께 이뤄졌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미리 배포한 수락 연설문을 거의 그대로 읽었습니다. 전당대회장에서 곧바로 이어진 기자회견 내용도 수락 연설문과 비슷했습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이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약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8월 27일 국립묘지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야당 대표와 원내대표들을 방문해 낮은 자세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8월 29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혁신성장 현장인 구미 금오테크노밸리를 방문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분단 70년을 청산하고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자는 의미도 있고, 이제 우리 당이 전국적 국민 정당으로 대구·경북을 책임져야 한다는 지역 요구에도 부응하려고 첫 번째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보수야당과 보수 언론은 이런 이해찬이 편치 않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에 대한 야당의 시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 대변인은 이해찬 대표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수구세력이 경제위기론 편다’, ‘최근 악화된 고용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이라고 하는 등 보수를 향한 날 선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른바 보수 성향 언론의 시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8월 25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신문은 일요일에 발행하지 않습니다. 27일 월요일 치 신문에 이해찬 대표 당선 기사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강한 여당 내걸고 당권 쥔 친노좌장’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최고 수준 협치하겠다”는 이 대표 다짐, 진짜 속내여야’였습니다.

“이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과 총리를 지내면서 거친 언행으로 야당과 갈등을 빚곤 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으로 불러 국회를 보름 가까이 파행시킨 일도 있다. 그래서 이 대표의 협치 다짐에도 앞으로의 여야 관계가 순탄할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의 행태로 미루어 지금 하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와 구미 방문을 일부 신문은 “TK 파고들기 전략”이라거나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해석했습니다. 진정성 없는 정치적 술수라는 평가입니다. 그럴까요?

이해찬 대표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 이른바 보수 정당과 이른바 보수 신문의 평가는 좀 깎아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젊은 시절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와 정권을 잡았고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권력을 빼앗겼던 보수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도저히 좋게 평가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정치란 게, 그런 건가? 마뜩잖은 큰형님의 복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이해찬 대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친노 그룹 좌장으로 대국민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부담을 준다는 것입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해찬 대표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의 민주·진보 세력에 대한 거부감을 정치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타당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군부의 반감을 이유로 ‘김대중 불가론’을 펴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해찬 대표를 좋아한다는 흔적도 없지만 싫어한다는 흔적도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통령 부담설’은 오히려 친노-친문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노영민 전해철 등 친노-친문 소장파 일부는 김진표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경제 대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이유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일이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에서 벌어졌습니다. ‘친박 좌장’ 서청원 후보와 ‘비박’ 김무성 후보가 당대표 자리를 놓고 격돌한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 소장파 의원들은 서청원 후보가 아니라 김무성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조폭에 빗대면 ‘큰 형님’의 복귀를 ‘소두목’들이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 “악수하고 밥 먹는 게 소통은 아니다

어쨌든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과 당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적격자입니다.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해찬 대표는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그는 7선 국회의원입니다. 정책위의장을 여러 차례 지낸 야당의 정책통이었습니다.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 후보의 기획본부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1급 참모였습니다. 국무총리와 교육부 장관으로 행정부 경험을 쌓은 사람입니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이런 정도 ‘스펙’을 가진 사람을 도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둘째, 이해찬 대표는 정확한 정치인입니다.

이해찬 대표의 성품이 까칠한 것은 사실입니다. 초재선 국회의원 시절 정치 선배들은 그에게 ‘교동’(교만한 아이)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해찬 대표가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잦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까칠함과 분노는 청렴결백함(廉潔性)과 정의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정치인 이해찬’을 지켜본 기자로서 내린 저의 결론입니다.

이해찬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언론사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겨레 텔레비전’에 송영길 김진표 후보를 각각 초청해서 인터뷰했지만 이해찬 대표는 인터뷰하지 못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그 대신 기자 간담회를 자주 했습니다.

전당대회 출마 선언 직후 첫 번째 기자 간담회가 7월 29일 열렸습니다. 기자가 “소통을 강조했는데 ‘버럭 총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언론과의 접촉도 그동안 없었다. 소통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국무총리 할 때 하루에 회의를 네 건 했다. 오전 오후 각 두 건씩이었다. 1년에 1천 건을 했다. 충분한 토론을 하는 것이 소통이지, 악수하고 밥 먹으러 다니고 하는 게 소통은 아니다.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 기자들과 요즘 안 만난 것은 특별히 언론에 할 말이 없었고 언론과 만나야 하는 역할도 맡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대표가 되면 언론과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정례적으로 대화도 하고 간담회를 할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해찬 대표의 말이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당대회 기간에 자주 했던 기자 간담회, 그리고 대표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성실하고 자세하게 답변을 했습니다. 일부 못된 정치인처럼 질문의 본질을 슬쩍 피하거나 질문한 기자를 타박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자들에게 그는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취재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공정하고 정확한 취재원인 것도 사실입니다.

 

 

10년 전에 이미 성숙했던 정치인, 지금은?

셋째, 이해찬 대표는 성숙한 정치인입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이해찬 대표는 정치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싱크탱크’로 재단법인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시민 정치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시민주권’을 결성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수많은 강연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 정치인이 본업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이 속했던 집단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소중한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아주 인상적인 글이 하나 있습니다. 2011년 ‘광장에서 길을 묻다 : 이해찬과 진보 지성 23인의 대화’라는 책의 서문입니다. 좀 길지만, 워낙 내용이 좋아서 앞부분을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나랏일을 책임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국민에게 칭찬받고 국제사회와 역사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잘하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입니다. 높은 이상과 고매한 가치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고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민주적 정당성으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정치 9단이라 불릴 정도로 정치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지식이 뛰어나거나 정책을 아주 잘 만든다고 해서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덕(Virtu)과 기술(Arte)뿐만 아니라 행운(Fortuna)까지 따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나랏일을 아주 잘하기 위해서는 정치인 개인과 정당의 품성,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시대의 요청과 흐름에도 맞고 운도 좋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집권을 한 대통령과 정당은 더욱 그렇습니다.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왕이란 시골 마을의 촌로 집 닭 한 마리가 병으로 죽은 것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그만큼 책임이 크고 깊다는 말 정도로 지나쳤는데, 장관과 국무총리로 일하고 보니 그 말이 얼마나 무섭고 가슴에 담아두어야 하는 말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조 시대 군주도 그러할진대,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통령과 집권당은 항상 더욱 노력하고 삼가고 겸손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어떻습니까? ‘교만’이나 ‘버럭’의 흔적은 사라지고 ‘책임’과 ‘겸손’만이 넘쳐납니다. 저는 이 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큰 정치인의 품격을 느꼈습니다. 7년 만에 집권여당을 이끌게 된 이해찬 대표가 지금 다시 읽어봐도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당대표는 대통령이 만든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해찬 대표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성공시키는 일만 남은 것일까요? 이해찬 대표가 세운 2020년 총선 압승과 ‘20년 집권’의 목표는 현실로 이뤄지는 것일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6·13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저치 기록을 매주 경신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은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습니다. “가장 약해 보이는 딱 한 놈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패라”는 ‘싸움의 기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 지지도 역시 30%대로 뚝 떨어져 있습니다. 천하의 이해찬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해찬 대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해답은 과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해찬 대표는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책임 총리’였습니다. 남들은 ‘실세 총리’라고 불렀지만 ‘책임 총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책임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요?

“둘이 호흡을 맞춰가면서 엄청나게 열심히 했어요. 매일 통화도 하고,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만나고, 그러니까 자꾸 나한테 일을 넘겨주시는 거예요. 인사권까지 다 넘어왔어요. 잘했죠.”(문제는 리더다, 메디치 펴냄, 2010)

“저보다 여섯 살 많으신데, 저와는 거의 친구처럼 동지처럼 일해 왔어요. 총리 시절에는 완전한 책임총리제를 시행해서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총리와 분담해서 국정 과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나머지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총리가 맡는 성공적 사례를 남기려 했습니다.(···) 실제로 일주일에 두 번을 뵈었죠. 월요일에 오찬을 함께 하고 금요일쯤 관저로 가서 뵙는데 그 두 번의 대화를 통해 대통령의 의도나 철학을 듣고 정책에 반영해서 풀어가죠. 제가 바라는 정책에 한 번도 제동을 거신 적이 없었어요. 당신은 의견만 내실 뿐 안 된다고 한 적은 없었어요.”(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펴냄, 2011)

그렇습니다. 책임 총리는 국무총리가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총리제의 성공 뒤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배려와 권한 이양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해찬 대표가 이제 ‘실세 대표’나 ‘책임 대표’로 성공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의 배려와 권한 이양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자신이 집권하면 ‘민주당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추미애 대표 시절의 문재인 정부를 민주당 정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대선 직후 추미애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당의 인사 추천권을 요구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외면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을 배려한 것은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을 장관과 청와대 참모, 공기업체 기관장 등에 대거 기용한 것,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민주당 의견을 경청하도록 지시한 것 정도입니다.

 

 

문재인 정부민주당 정부로 진화할 기회

이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미애에서 이해찬으로 바뀌었으니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을 말 그대로 ‘국정의 중심’에 끌어들이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도 이해찬 대표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이해찬 대표와는 두 번에 걸쳐 단둘이 만나 사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상의했습니다. 이 대표는, 사퇴 요구가 아무리 부당한 것이어도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 사퇴 주장이 너무 거세고 흐름이 도도해 결국 사퇴를 수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로 인해 대선을 당 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치르게 됐습니다. 압박과 요구가 너무 강해서, 저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당 지도부 부재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선거를 치르는 데 가장 컸던 어려움 중 하나가 당 지도부의 부재였습니다. 지난 대선의 전략-전술에서 가장 큰 오류였다고 봅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펴냄, 2013)
이해찬 대표는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행정부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당 정부’로 한 단계 진화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요? 움켜쥘수록 작아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역설적인 권력의 속성입니다.

이해찬 대표에게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도권과 인사 추천권을 주면 된다고 봅니다. 다 준다고요? 다 주는 것 같아도 권력은 여전히 대통령과 청와대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최종 정책 결정 권한과 정치적 책임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이해찬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