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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하나님은 실수를 하지 않으셨다” 美 울린 55세 트랜스젠더

By | 2021년 4월 18일 | 기획 · 연재,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55세에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미국의 저스틴 살로씨가 트랜스젠더는 신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지난 3월 군대서 성전환을 했던 변희수 하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한국사회가 더 이상 트랜스젠더의 인권문제를 미룰 수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자신이 가진 전통적인 젠더 관념, 혹은 종교적인 믿음이 엄연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인권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지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정치인들이 그들의 목소리에 신경 쓸 만큼 세력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올 해에만 28개 주에서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위협하는 법안이 표결에 붙여지고 있다.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해부학적 젠더와 다른 성의 운동팀에서 뛰는 것을 금하는 법안(미시시피주)부터 의사가 트랜스젠더 아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앨라배마주)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인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이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공격에 인권단체와 트랜스젠더들,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선 가족과 친구들이 나서서 각 주의 의회와 유권자들에게 법안의 통과를 막아달라는 호소가 이어진다. 특히 이들의 증언은 단순히 법적인 논리를 넘어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 큰 호소력을 갖고 널리 퍼지는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 두 개의 증언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해보려 한다.

트랜스 남성, 55세에 진정한 자신을 찾다

미국 남부에 속하는 아칸소에서는 18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호르몬 요법 등의 성 확정 치료(gender-affirming care)를 금지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성전환(sex change)이라는 말 대신 성확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젠더와는 다른 몸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젠더를 찾는, 확인하는 것이지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위 영상 속 남성은 55세의 나이에 비로소 자신의 젠더를 찾은 사람이다. 1950년대에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이미 여덟 살 때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어 표기상 영어로 ‘God’은 하느님이 맞는 표기이나 국내 개신교에서 통상적으로 ‘God’을 하나님으로 표기해서 이를 따랐다.

저는 1955년, 성 빈센트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샌디 K. 살로였고, 성별은 여성이었습니다. 상원의원님, 저는 여덟 살 때 제 부모님께 “하나님이 큰 실수를 하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1963년이었으니 (부모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저를 발레 수업에 보내고, 드레스를 더 많이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닌 사람이 되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I was born in St. Vincent’s in 1955 under the name Sandy K. Sarlo and the gender female. When I was eight years old, Senator, I told my parents that God had made a big mistake. To be fair to my parents the year was 1963. Their reaction was to send me to ballet lessons and put me in more dresses. I tried very hard to conform to who I wasn’t.

하지만 22세가 되자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다른 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스물 두 살에 저는 달려오는 덤프트럭 앞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제발 끝내주시길 바라면서요. 다행히 하나님은 그렇게 못하셨어요. 결국 저는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But by the age of 22 I couldn’t take it anymore. I can’t describe to you the pain a transgender person goes through having to live in the wrong body. At 22 I stepped in front of a dump truck just hoping to God it would end at all. Luckily he failed. I eventually got married had two children.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어느 날 제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얘기를 그 이후로 아직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제게 “엄마, 성전환(transition)을 원하면 저희는 엄마의 결정을 지지해요.” 그래서 55세의 나이에 제가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When they were grown they came to me one day and said–and I had never said anything to anyone else since then–they said “Mom, if you want to transition, we fully support you.” So at the age of 55, I came out.

그리고 저는 하나님이 실수를 하지 않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만드신 이유는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돕고, 멘토가 되어주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박수) 저는 이 아이들 중 누구도, 누구도 제가 겪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합니다.
And I discovered that God didn’t make a mistake. God made me the way I am so that I can understand and help and mentor these kids (applause) because I don’t want any of them to ever ever go through what I did.

딸아이를 위한 아버지의 고백과 호소 

위의 증언을 읽으면 유난히 신(God)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에 등장하는 한 아버지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주에 살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신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동일한 증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이 두 사람이 모두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증언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역시 중요하다. 이들 법안들은 대개 보수적인 주들에서 개신교 교회와 개신교 유권자들, 그리고 그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주도로 발의된 것이다. 게다가 주의 주민 중에 개신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들과 싸우기보다 그들의 (종교적) 믿음에 호소하는 편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주목해서 볼 것은 위 영상 속 아버지가 “내 딸아이(my daughter)”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물론 해부학적으로 남자아이로 태어났고, 그래서 남아라고 생각하면 길렀겠지만 증언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결정적인 계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아이가 딸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아버지가 사는 미주리주에서도 트랜스젠더 아이들이 자신의 젠더에 속한 팀에서 뛰는 것을 금지하고 청소년에게 성확정 치료를 하는 것을 금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딸아이가 과거에 얼마나 불행했고,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 아이가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도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의원들과 똑같이 이해를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간절하게 호소한다.

제 딸아이는 여자아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태어난 날부터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고, 제가 믿는 하나님은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My daughter did not choose to be a girl. She’s been a girl from day one. God made her that way and the God I believe in does not make mistakes.

제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 딸아이나, 세상에 있는 제 딸아이와 같은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그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갖게 해 주십시오. 그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I ask you please don’t take that away from my daughter or the countless others like her who are out there. Let them have their childhoods. Let them be who they are.

트랜스젠더의 문제를 논의할 때 제가 자주 듣는 얘기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는 도무지 모르겠어” “나는 이해가 안 돼”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그런 말을 하셨거나 그렇게 느끼신 분이 계실 것으로 압니다. 저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몇 년 동안 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제 딸아이가 여자아이의 옷을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자아이들의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강제로 남자아이들의 옷을 입혔고, 머리를 짧게 자르게 했고, 남자아이들 팀에서 뛰게 했습니다.
One thing I often hear when transgender issues are discussed is “I don’t get it,” “I don’t understand.” And I would expect some of you to have said that and feel the same way. I didn’t get it either. For years I didn’t get it. For years I would not let my daughter wear girl clothes; I did not let her play with girl toys. I forced my daughter to wear boy clothes and get short haircuts, play on boys’ sports teams.

제가 왜 그랬냐고요? 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저는 제 딸아이를 비롯해 저희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왜 내 아이가 남자아이처럼 하고 보이지 않고, 왜 남자아이처럼 행동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Why did i do this? To protect my child. I did not want my daughter or her siblings to get teased. And truth be told, I did it to protect myself as well I wanted to avoid those inevitable questions as to why my child did not look and act like a boy.

제 아이는 비참했습니다. 제가 아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특히 학교에서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신감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웃지도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웃지 않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랬습니다. 저희는 교사와 상담치료사,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My child was miserable. I cannot overstate that she was absolutely miserable, especially at school. No confidence, no friends, no laughter. I honestly say this: I had a child who did not smile. We did that for years. We did that against the advice of teachers, therapists and other experts.

저는 그 모든 게 바뀐 날을 기억합니다. 그 날 제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제 딸아이와 남동생이 집 앞 뜰에서 놀고 있었고, 딸아이는 큰 언니의 놀이 옷을 몰래 입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길을 건너 앞 집 아이들과 놀고 싶다고 했습니다.
I remember the day everything changed for me. I’d gotten home from work and my daughter and her brother were in the front lawn and she had, my daughter had, sneaked on one of her older sisters play dresses and they wanted to go across the street and play with the neighbor’s kids.

하지만 이미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저는 아이들에게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딸아이는 길을 건너가서 놀아도 되냐고 물었고, 저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만약에 자기가 집에 들어가서 남자아이 옷으로 갈아입으면 길을 건너가서 앞집 아이들과 놀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딸아이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착한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스스로를 부정하라고 가르치고 있었던 겁니다.
It was time for dinner I said come in. She asked can she go across the street I said no. She, she asked me if she, if she went inside and put on boy clothes, could she then go across the street and play? And it it’s then that it hit me that my daughter was equating being good with being someone else. I was teaching her to deny who she is.

부모로서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아이의 기(spirit, 영혼)를 꺾는 겁니다. 그래서 그날 아내와 저는 우리 아이의 영혼을 침묵시키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저희가 딸아이에게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허락하고,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게 하자 그 아이는 완전히 딴 아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아이가 즉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완전한 변신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신감 넘치고, 웃고, 행복한 딸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여학생 배구팀에서 뛰고,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As a parent the one thing we cannot do, the one thing, is silence our child’s spirit. And so on that day my wife and I stopped silencing our child’s spirit. The moment we allowed my daughter to be who she is, to grow her hair, to wear the clothes she wanted to wear, she was a different child. And I mean it was immediate. It was a total transformation. I now have a confident, a smiling, a happy daughter. She plays on a girls volleyball team. She has friendships. She’s a kid.

저는 오늘 부모로서 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이 언어가 법이 된다면 살아 숨 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을 꼭 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I came here today as a parent to share my story. I need you to understand that this language, if it becomes law, will have real effects on real people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여러 언론사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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