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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칼럼] 차기 대선 D-1년, 완전히 다른 선거가 온다

By | 2021년 3월 8일 | 선거의 시간, 정치

20대 대통령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대통령 중심제를 근간으로 하는 만큼 차기 대통령 당선까지 대선은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여론의 추이는 다분히 진영과 지역 등 선거공학적인 구도를 중심에 놓고 대선을 ‘인기투표’ 형태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뽑는 선거이기 앞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놓고 유권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토론하는 민주정치 과정이어야 한다. 후보와 정당 역시 진일보한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책을 준비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피렌체의 식탁>은 한국의 방향을 가를 2022년 대통령 선거 1년을 앞두고 정경민 필자의 글을 게재한다. 정치권 내 정책 전문가로 활동했던 정 필자는 내년 대선의 의미를 총괄하는 관점에서 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기존 대선과 완전히 다를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을 하자’를 탈피해 추월의 시대를 맞이한 21세기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묻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후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 그리고 대통령 선거까지 앞으로 이어질 ‘선거의 시간’ 동안 심도 깊고 다양한 관점의 선거 및 정치 칼럼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갈등과 분열을 양산하는 선거담론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시야를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한다. 정 필자의 칼럼은 그 시작이다. [편집자]

#대선 후보 평가기준 ‘정의’와 ‘유능’
  文 정부 이후 ‘공정성’ 화두 떠올라
#경제 이중구조, 산업 진입장벽 심화
  성 밖에 내몰린 다수 외면 말아야
#’유연성’ 확보하면서도 ‘안정성’ 필요
  관료주의 버리고 ‘파괴적 혁신’ 절실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정부구조
  화학적 변신 꾀하는 청사진 그려라

앞으로 1년 뒤 2022년 3월 9일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이후의 모든 대선과는 다른 선거가 될 것이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책임질 사람과 집단을 뽑는다. 국민들은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질문 두 가지를 후보들에게 던진다.
당신은 정의(正義)로운가? 당신은 유능(有能)한가?
물론 어느 선거에서나 이 두 가지 질문이 가장 중요했고 언론들은 특히 누가 더 유능한가 여부를 따져 묻기를 원했지만, 굴곡진 현대사를 가진 한국에서 유권자들은 지금까지의 대선에서 대체로 누가 더 유능한가 보다는 누가 더 정의로운가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의와 유능. 선거 나선 후보에게 던지는 두 가지 질문

다만 5.16 쿠데타라는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선거 과정에서 누가 더 정의로운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던 탓에 ‘정의냐 유능이냐’ 라는 대립 구도를 만들고 경제발전을 원하는 민심에 편승해 세 차례(5~7대 대통령)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러한 프레임이 더 이상 잘 먹히지 않게 되자 결국 1972년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는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면서부터 모든 대통령 선거는 기본적으로 ‘누가 더 정의로운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의로움의 기원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낸 한국전쟁이었고, 친미반공이라는 박정희 노선에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는 세력은 국가를 위협하는 부(不)정의한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김대중은 ‘빨갱이’의 화신이었고 노무현은 ‘빨갱이의 사위’였고 문재인은 ‘종북주사파의 대부’였다.

진보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의로움의 기원은 5.18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이었다. 군사쿠데타의 주역들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정의롭지 않은 세력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이 보기에 노태우는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었고 김영삼은 ‘군사쿠데타와 야합한 변절자’였고 박근혜는 ‘군사쿠데타 원조의 딸’이었다. 이명박은 아마도 유일하게 ‘정의 대 유능’의 프레임 속에서 선거를 치러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사실상 양쪽이 주장하는 ‘정의’의 개념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역사’와 ‘이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옳고 그름’이라는 양자택일적 가치관의 문제이지 누가 ‘좀 더’ 정의로운 것에 가까운가를 척도로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대통령 (및 후보자)에 대해서 적용하는 이러한 ‘정의’의 개념이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과 박근혜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 분노했을까? 정의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공식적인 직함을 가진 공무원도 아니요 대중적인 선택을 받은 정치인도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직무 중 상당 부분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로 여겨졌다.

‘정의’는 이 지점에서 ‘역사와 이념’, ‘옳고 그름’이라는 기존의 절대적 평가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공정함’, ‘타당함’이라는, 상황논리에 근거한 상대적 평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1987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역대 대통령(사진=청와대)

1987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역대 대통령(사진=청와대)

20세기적 정치 과제 지난 대선으로 완결

2017년 대선이 끝나면서 공산주의도 아니고 군사독재도 아닌,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자 하는 20세기적 정치 과제는 비록 21세기에 들어서도 17년이나 지체되었지만 결국 지난 대선을 마지막으로 이제 완결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는 ‘공정성’ 이슈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공정성에 기반한 정의로움은 ‘상대 평가’라는 점이다. 또한 절차적 공정성이 정의로움의 잣대가 될 수도 있고 출발과 결과의 형평성이 정의로움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러한 정의로움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내년 대선에서 보수 유권자든 진보 유권자든 모두 후보자들에게 ‘역사와 이념’에 기반한 정의로움을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과 비교하여 살아오는 과정에서 ‘공정성’에 어긋나는 일을 하였는지를 묻겠지만, 이 부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더 이상 이와 관련해서는 선거 이슈가 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

2022년 대선은 후보들이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양측 모두 ‘정의로운가’ 대신에 ‘유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기서 ‘유능’은 단지 정부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급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유능함’은 정부를 잘 운영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이 아니라 정부 내의 관료주의를 혁파하고 사회적 과제를 돌파해낼 수 있는 ‘개혁 능력’이다.

무엇보다 어떻게에 방점 찍힌 첫 대선

내년 대선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결정하는 선거가 되었다.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what’의 주제들은 많은 식자들이 지적했고 대부분 합의하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what)은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 대외적 안보, 경제 성장, 사회 복지라는 세 가지 큰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문제는 ‘how-to’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에 대한 규정(why so)이다. 시대에 대한 규정을 제대로 해야 안보 문제도, 성장 문제도, 복지 문제도 옳은 방식(how)을 선택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시대에 대한 규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필자가 관찰한 시대의 규정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disruptive’란 단순히 특정 대상을 파괴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 판을 뒤흔든다는 의미이기에 ‘전복적’(顚覆的)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즉 기존 질서의 해체와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다. 그 근저에는 기술의 변화가 깔려 있다.

기존의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한 사회 체제를 허무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변화는 안보, 성장, 복지 세 방면에서 모두 현재 시스템이 이룩한 균형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기본 전략은 기존 체계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경직된 기존 체계를 허물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연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2016년 12월 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채 촛불을 들고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술 변화로 미중 양극체제 고착 유연안정성확보가 관건

20세기를 규정지었던 안보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주체들 간의 원활한 정보교환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결합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전은 폐쇄적인 상명하복식 명령에 의해 운영되던 공산주의 생산양식이 와해되도록 만들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가능케 해서 중국의 경제가 세계 경제와의 연결 속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시한 지 불과 40년 만에 국가경제의 규모가 구매력지수 기준으로 2014년에 미국을 넘어섰으며 2028년까지는 명목지수 기준으로도 미국의 경제규모를 넘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물론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보다 현저히 낮은 상태이겠지만 국가의 파워는 경제 규모로 표현된다.

이제 21세기 국제체제를 규정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이 넘버원을 다투는 양극 체제이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을 자신의 글로벌 전략의 초점으로 설정했다. 남북대결 구조와 한미동맹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었던 20세기적 국제환경은 지난 10년 사이에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한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나라가 본격적인 경쟁관계에 돌입함으로써 우리에게는 한편으로는 ‘유연성’을 발휘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매우 험난한 앞길이 놓여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인 적대와 증오도, 일방적인 지원도 모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한편으로는 기존의 관성적 구도를 흔들어 북미 관계의 개선을 통해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적 대안이겠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내려질 경우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된 대안이 없다면 순진하고 낭만주의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수명 다한 기존 생산체제, 사회적 이중구조의 심화

우리는 20세기 후반기에 정책금융을 지원받는 ‘재벌기업+중소협력업체’ 중심의 선단형 수출 제조업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두었다. 재벌기업은 R&D와 해외시장 개척으로 앞장서고 중소협력업체는 이들이 원하는 부품을 생산하여 간접적으로 수출에 참여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1997년은 기존 보수 정권이 패배한 해이기도 하지만 기존 생산체제가 수명이 다했음을 보여준 해이기도 하다.

그 후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글로벌 가치사슬은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더 이상 국내 협력업체의 납품을 통한 국내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유연성’을 발휘하여 해외 협력업체의 납품과 해외 현지 생산을 병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단형 수출 체제하에서 자체적인 R&D 역량과 해외시장 개척 역량을 축적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독자생존이 쉽지 않아 낮은 단가와 임금을 감수하면서 재벌기업 하청업체로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 주체는 소수의 중심부 고수익 대기업/고임금 노동자와 다수의 주변부 저수익 중소기업/저임금 노동자로 “이중구조화”되었고 이는 수출 호황에도 불구하고 내수 경기의 악화, 소상공인의 몰락(세대적으로는 노인빈곤층과 청년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기존의 업계 정의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성장하려는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업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경직된 제도적 진입장벽에 의해서 번번이 좌절당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 분야에서 특히 심각하다. 이러한 경제의 이중구조와 산업 간 진입장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활력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직종 간에도 적용이 된다. 우리 사회에는 일부 영역에서 기존 제도에 이해관계가 걸린 집단들이 저항하면서 ‘유연성’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과 함께 또 다른 영역에서는 유연성은 이루어졌지만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서 불안한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정년이 될 때까지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안정성’을 확보하는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수시로 생계의 위기를 겪게 되는 극도의 ‘유연성’만을 갖게 된다. 현재의 제도는 그러한 영역들 사이에 칸막이를 쳐서 차별을 구조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칸막이를 통과하는 절차를 극도로 까다롭게 만든 후 그것을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찬 성() 밖의 다수 외면 말아야

그러나 위험과 보상 간의 형평성이 이루어져야 사회는 정의로울 수 있다. 한편에서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low-risk high-return)이, 또 한편에서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risk low-return)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공평성’의 확보는 요원해진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실제 직무 역량과는 거리가 있는 객관식 시험이라는) 소위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높은 진입장벽 속의 안락한 성(城) 안에 들어간 소수는 만족하겠지만 성 밖의 다수는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은 대부분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개인들의 노력이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다. 심화되는 사회적 이중구조에서 좁은 성안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개인들 간의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회적, 개인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고 사회적 통합성을 해치고 있다.

중등교육은 물론 고등교육 기관까지 입시와 취업 교육에 몰입하게 되고, 20대 남성들의 여성 혐오와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채용 및 처우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특히 저소득층 청년들의) 만혼-비혼과 저출생률도 결국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중구조는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에도 적용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의 좋은 일자리가 몰려있는 서울에 가야 기회가 있기 때문에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앙등하는 반면에 지방은 아무리 좋은 주거환경을 갖추어도 쇠락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도농분리적 광역행정구역이라는 틀의 개편은 물론 광역행정구역의 벽 자체를 허무는 통폐합이 필요해 보인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심야·새벽 배송 담당하던 이모 씨 사망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차기 정부의 과제는 우선, 새로운 글로벌 양극 체제에서 우리 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와 사회 각 분야에서 보호받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분야 간의 높고 두꺼운 벽을 허물어서 차별을 없애고 자유롭게 넘나들어 새로운 융합을 창조해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바뀐 시스템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대한민국은 새로운 활력을 되찾으면서 함께 미래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정부 구조, 혁신에 대한 청사진부터 그리자

차기 정부가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나가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사회 각 부문이 혁신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정부가 먼저 혁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공기업을 포함하는 공공부문의 혁신이야말로 다른 모든 분야별 혁신을 이루기 위한 선결 과제이다. 민간 부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파괴적 혁신을 통해서 발전해왔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는 구태의연한 20세기적 형식과 내용을 가진 공공부문에 의해서 질곡을 받으면서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모두 이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고 때로는 분노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종사자는 눈을 감고 있다. 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공공부문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각 영역의 민간부문이 다시 비약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신자유주의적인 작은 정부를 지향하라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걸맞은 형식과 내용으로 정부가 변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핵과 함께 찾아온 갑작스러운 대선 레이스로 인해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에서 유일하게 정부조직 개편을 준비하지 못하고 출범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대선에서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드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부처들을 이름을 바꾸고 여기서 떼어내어 저기에 붙이는 식의 조합적 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시대적 과제들은 복합적 성격을 가지는 반면에 현재의 부처별 수직계열화 조직형태는 부처 간의 벽을 두텁게 만들어 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필요하면 정부조직 개편의 유연성을 행정부가 발휘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줘야 하며 더 나아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사실상 변하지 않은 기존 부처 형식의 조직 구조가 21세기에 적절한지, 물리적 재편(reorganization)이 아닌 화학적 변신(transformation)에 대해서 심도 깊은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은 정부 운영의 최고책임자이다. 차기 정부를 운영하고자 대선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은 자신이 운영할 정부의 형태와 내용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해서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들의 판단을 물어야 한다. 2022년 대선을 계기로 한 21세기 한국 사회의 재도약과 선진국의 추월은 먼저 공공부문이 제대로 혁신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정경민 필자

상장기업 및 공공영역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정책 및 선거 관련 전문가로 활동했다. 사회혁신과 한반도의 평화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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