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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칼럼] 고소득 가능하다고? ‘플랫폼 노동’ 200일, 무엇이 남았나

by | 2020년 11월 27일 | 정책

언론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김하영 필자는 올해 초 자판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두고 배달과 물류센터, 대리운전 등 이른바 ‘플랫폼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필자는 200여 일에 걸쳐 여러 가지 플랫폼 노동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생활 속의 일부가 된 택배와 배달, 대리기사의 세계를 몸으로 경험하며 겉에서 보이지 않았던 플랫폼 노동의 명암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로 살았던 200여 일을 되돌아보며 플랫폼 노동자들이 어떻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는지 짚어본다. 자유롭고 고소득을 보장한다고 유혹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편집자] 

#몸으로 뛴 플랫폼 노동
  ‘쿠팡 물류센터’ 규모에 압도
#만만히 봤던 ‘배민 커넥트’
  기대만큼 주문 많지 않아
#계절변화 무관 ‘카카오 대리’
  코로나19로 무너진 대리업계
#각기 다른 전문성 필요해
  플랫폼 노동의 그림자 봐야

유년시절, 한 학년에 두 학급 있는 작은 초등학교가 제일 큰 건물인 시골에 살던 내게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설렘의 공간이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 건물 자체의 위압감이 대단한 데다 쉴 새 없이 버스들을 삼키고 내뱉는 풍경이 경이로웠다. 30년이 흘러 대도시에 살게 된 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다시 그와 비슷한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을 맞이하게 됐다. 25톤 화물트럭과 1톤 탑차, 노동자들을 태운 셔틀버스가 끊임없이 드나드는 그곳은 쿠팡 풀필먼트서비스 물류센터였다.

어느 날 한 동네에 사는 친한 형이 “쿠팡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주말에만 일해도 1주일 16시간 일하면 주휴수당이 나오고, 주말 이틀씩 한 달을 일하면 주 60시간을 넘겨 4대 보험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부업 정도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바로 일용직 지원을 했다.

고래 뱃속 같은 쿠팡 물류센터

출근 첫날, 셔틀버스를 타고 거대한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건물 한 층은 아파트 세 층 높이였고, 축구장만 한 공간에 종이 박스들이 카트와 지게차 다닐 통로 정도만 남겨두고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내가 맡은 ‘출고’ 업무는 PDA에 표시되는 상품들을 집어 포장대에 넘기는 일이었다. 일은 단순했다. PDA에 주문받은 상품의 위치가 뜨면 가서 PDA에 부착된 스캐너로 바코드를 스캔한 뒤 물건을 집어 카트에 담은 뒤 포장대에 갖다 주면 된다.

처음에는 재밌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런 걸 사는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루는 무알콜 맥주 주문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술 꽤나 좋아하는 입장에서 무알콜 맥주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노래방 같은 데서 주문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임신이나 수유 중인 엄마들이 주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저귀나 물티슈 등등 육아용품이 많이 나가는 편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생필품을 총알 배송하는 쿠팡은 집을 비우기 힘든 ‘육아맘’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쿠팡 입문 통로가 임신”이라는 말도 있다.

일은 단순 반복 업무에 가깝지만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하루 종일 무거운 물건들과 씨름을 하다 보면 겨울에도 속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다. 관리자들의 간섭은 거의 없었다. 그 광활한 상품의 숲에서 몇 명의 관리자가 쫓아다니며 감시와 지시를 하기도 불가능하다. 대신 나를 채근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인공지능’이었다. 일을 하는데 필수적인 도구가 PDA인데, PDA에는 UPH(Unit per hour)라는 수치가 표시된다. 한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상품을 집품했는지 숫자로 알려주는 것이다. 첫날, 직무교육을 하는 관리자가 “최소 90은 넘어야 다음 채용 때 불이익이 없을 거예요”라고 귀띔해줬다. 그 말이 족쇄가 돼 나는 ‘90’에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카트를 끌었다.

초반 며칠은 집에 돌아와 바로 곯아떨어져 자는 동안 낑낑 댈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일이 차츰 익숙해졌고 몸도 적응이 됐다. 마음만 비우면 쿠팡은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 같았다. 비록 최저임금이지만 임금을 제 때 통장에 꽂아 주고 주휴수당도 칼 같이 계산해서 지급하고 일용직일지라도 꼬박꼬박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셔틀버스도 태워주고 식사도 제공하며 휴게실에 있는 자판기는 모든 음료가 무려 300원(!)이다.

물류센터의 층별로 어떤 상품들이 분류돼 있는지, 카트의 종류별로 조작법이 어떻게 다른지, 카트에 물건을 쌓을 때 어떤 식으로 쌓을지 등등 별 거 아니지만 ‘숙련’이라는 게 쌓여갈 무렵 대구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언론에서는 ‘쿠팡 주문량이 얼마가 늘었네’ 등등의 뉴스가 쏟아졌다. 실제로 쿠팡 물류센터는 비워둔 공간까지 상품들이 적재되기 시작했고, 일하는 사람들도 얼핏 봐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 무렵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다음과 같은 광고에 혹 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단련된 몸 ‘배민 커넥트’에 솔깃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배달 알바 배민 커넥트.”

배민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평균 시간 당 수입이 1만 5000원이라고 했다. 쿠팡에서 시급 8590원을 받았으니 거의 갑절이다. ‘내가 원할 때 하고 싶은 만큼만 자유롭게 일하면서 수입은 2배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배민 커넥터 신청을 하고 배달 가방을 사서 배달에 나섰다. 평소에 자전거를 많이 탔기 때문에 뭐 힘들겠냐고 생각했지만, 마실 다니던 것과 음식을 배달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20분 내에 배달을 완료하려면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아야 했다. 우리 동네에 언덕길이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몸이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건, 생각보다 주문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배달음식 주문이 폭증해서 라이더 구하기 어렵다는데, 그건 그저 강남 이야기인 것 같았다. 한창 많이 할 때는 저녁 피크 시간에 4시간, 15건 배달을 하고 인센티브까지 더해 7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에는 하루 8시간을 해도 10건 채우기 힘든 날이 많았다. 시간당 1만 5000원? 건당 추가 요금을 지급하는 프로모션이 없고는 불가능한 금액이다.

음식 배달 일을 하다 보니 배달대행을 하는 오토바이 라이더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위험한 질주.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오토바이들은 차 사이를 비집고 정지선 앞 쪽으로 간다(차간주행). 맨 앞에 서 있다가 잠깐의 틈이 생기면 신호 무시하고 튀어 나간다(신호위반). 왕복 2차로에서는 중앙선을 넘어 추월(중앙선 침범)하기도 하고, 급할 때는 인도로 타고(인도 주행) 가기도 한다. 사고도 많이 난다. 일반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오토바이 사고는 반대로 매년 늘고 있다.

보통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배달료 3000원에 목숨 걸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배달 라이더들이 스피드광이어서가 아니다. 하루에 최소 50건은 배달을 해야 먹고살 수 있어서다. 배달료 3000원에 하루 50건이면 15만 원이다. 여기서 오토바이 리스료, 수리비, 기름값, 배달 대행사 수수료 등 이것저것 떼야 한다. 특히 보험료가 어마어마하다. 나이에 따라 다른데, 20대는 연 1000만 원이 넘기도 하고, 가장 ‘안전하게 탄다’는 40대도 보험료가 200만 원이 넘는다. 그러니 하루 50건 배달을 해도 손에 쥐는 건 10만 원도 안 된다.

그렇다고 50건 배달하기는 쉬운가? 음식 배달은 피크타임이 있어서 몰리는 시간에 최대한 ‘빼줘야’ 한다. 그러니 한 번에 5~6개씩 넣고 달려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음식점 5~6곳을 돌아 음식을 수거한 뒤 5~6곳의 집을 배달 다닌다. 그래서 오래 걸린다. 이 점을 파고들어 쿠팡 이츠가 ‘한 집 배달’이라는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배달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쿠팡이 부담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배달 일 자체는 재미있었다. 보람도 있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동네 음식점 주인들, 맛있는 음식을 기다리는 소비자들. 이들 사이를 잇는 일이 배달이다. 그런데 벌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평균 임금으로 따져 보면 시간당 5000원을 넘기기 힘든 때가 많았다. ‘다시 쿠팡으로 돌아갈까’ 고민할 무렵 새로 시작한 일이 ‘대리운전’이다. 한 라이더가 추천해줬다. “비 올 때 비 안 맞아도 되고 눈 올 때 눈 안 맞아도 되고, 무엇보다 네 발 달려 안전하다”는 이유로.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카카오 대리운전’

대리운전 시작은 은행 비대면 계좌를 트는 것만큼 쉽다.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운전면허증과 프로필 사진을 찍어 보내면 끝이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어두워진 밤거리에 나섰다. 사실 대리도 ‘배달’이다. 차와 사람을 배달하는 것. 요즘은 중고차 거래가 늘면서 ‘탁송’이라는 차만 배달하는 업종도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운 좋게도 나가자마자 첫 콜을 잡았다. 20분 정도 운전을 하고 1만 2000원을 받았다. 카카오에 내는 수수료 20%를 떼면 내 수입은 9600원. 이어 또 다른 콜을 잡았다. 이번에는 30분 정도 운전하고 1만 5000원. 역시 20% 떼고 수입은 1만 2000원. 그다음에도 30분 정도 운전하고 1만 5000원을 받았다. 집을 나서 2시간 동안 수수료 떼고 3만 3600원을 벌었다.

밤 10시가 지나자 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의정부, 남양주, 여주 같은 장거리 콜이 오래 떠 있었다. 금액도 4만~5만 원으로 높았다. 하지만 고양시에 사는 내가 그 시간에 의정부나 남양주, 여주를 가면 내일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머뭇거렸다.

그렇게 밤 12시까지 콜 하나 잡지 못 하고 배회했다. 고양시 가는 콜이 많을까 싶어 홍대와 신촌에 가서 대기해보기도 했지만, 애플리케이션 화면에는 주변에 대기 중인 대리기사들만 잔뜩 떠 있을 뿐 콜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평균 수입은 하락하고 있었다. 밤 12시, ‘최저임금’의 마지노선(사실 대리운전이 ‘야간노동’ 임을 감안하면 시간당 1만 2900원 벌어야 한다)이 무너졌을 무렵.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음식 배달이나 온라인 쇼핑, 택배가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확산의 수혜를 받은 업종이라면, 대리운전은 반대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다. 24일부터 수도권 코로나 방역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됐다. 유흥주점의 영업이 중지되고 음식점은 밤 9시까지만 매장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밤 9시 이후에는 포장·배달만 가능하고, 카페는 종일 포장·배달만 된다. 대리기사들은 3~5월 보릿고개를 넘어 7~8월 시장이 살아나나 싶었는데, 이번 2단계 조치로 다시 한숨을 쉬고 있다.

‘배달 시장’이 플랫폼 노동에서 중요한 이유는?

플랫폼 노동, 그중에서도 ‘배달 시장’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다가올 미래 중 가장 큰 충격은 ‘자율주행’에서 비롯될 것이다. 택배 기사, 음식 배달 라이더, 대리기사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에 의해 생겨났지만,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가장 먼저 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 사는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제도는 언제나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다가 만다.

최근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노동을 하던 근로자가 숨졌다. 야간 노동은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이 논란이 됐는데, 산재보험에 가입된 대리기사는 16만 명 기사 중 수십 명이 채 안 된다. 대리기사 업계에서는 적어도 매년 10명 이상이 야간 노동에 의한 과로사로 숨지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나마 택배기사들의 처우는 나아지고 있지만 대리기사 업계의 열악한 상황은 아예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대량 실직·파산으로 인해 대리기사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운전면허증 하나 내면 다음날 자정부터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대리운전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됐어도 밤사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운전하면 그 날 일용할 양식을 구할 현금을 벌 수 있는 일이 대리운전이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아무런 대접도 못 받고 있다. 대리운전 관련 법령이 전혀 없다. 국회에서 발의-폐기 루프만 무한 반복 중이다. 법령이 없으니 국가적인 조사를 벌일 근거도 자료도 거의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신가. 플랫폼 노동을 보면 된다.


김하영 필자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프레시안에서 13년간 기자로 일하다 “21세기 ‘열하일기’를 쓰겠다”며 1년 2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했다.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2020년부터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어 노동시장의 사각지대에서 생생한 삶의 현장을 기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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