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일인 친구 K를 우리 집에 초대해 만났다. 어린아이 둘의 엄마인 K는 거침없이 솔직한 성격이라 그와의 대화는 늘 흥미진진하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최근 유럽의 코로나19 상황으로 향했다. K는 크리스마스를 늘 독일 본에 있는 친정에서 보냈는데 올해는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했다. 그리고 왜 아직도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어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지 K와 함께 한참 얘기를 나누다, 스위스의 정통파(orthodox)...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스위스 국민투표, 시민사회의 ‘공포’를 비추다
스위스는 지구상에서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하는 나라로 손꼽힌다. 인구 850만의 강소국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풍광이나 경제력보다 ‘국민투표’라는 독특한 정치시스템을 자랑할 정도다. 스위스는 4개의 공용 언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로망슈어)에다 26개 칸톤(州)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다. 그러다 보니 국가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자투표는 비용이나 시간에서 그리 어려운 방식이 아니다. 한국도 장차 헌법 개정 등을 통해 폭넓게...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코로나19와 反지성주의, 유럽 일부 리더·종교인도 다르지 않다
#장면 1 1990년대 초, ‘에이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작은 단체가 있었다. 이들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에이즈(AIDS, 후천적 면역결핍증후군)의 원인이라는 걸 정면으로 부정했다. 에이즈가 HIV 바이러스가 아닌 영양실조 같은 다른 이유로 걸리는 병이라고 주장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음모론자들로 구성된 단체가 아니었다. 이들 중엔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도 포함돼 있었다. 주장은 주장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타보 음베키는 이들에게 적극...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유럽 교육, 한국의 롤모델 아니다…환상 앞서 실상부터 알아야
한국에서 ‘교육개혁’은 모든 국가적 이슈의 시작과 끝이라 일컬을 만하다. 예컨대 최근 불거진 수도권 과밀화, 부동산값 폭등, 지방 균형발전 같은 난제를 놓고도 “결국 교육이 문제야!”라는 식으로 대화가 흐른다. <피렌체의 식탁>은 스위스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김진경 필자의 글을 싣는다. 30대 후반인 필자는 최근 한국에서 전개된 독일(유럽) 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보고, 에세이 형식으로 칼럼을 써 보냈다. 필자는 “유럽식 교육과 관련한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경험담...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좋았던 옛날이여! (Die gute alte Zeit!)”…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
“좋았던 옛날이여! (Die gute alte Zeit!)”나의 독일어 선생인 스위스인 G가 말했다. 둘이서 스위스의 인종차별에 대해 독일어로 얘기하던 도중이었다. “내가 어릴 땐 인종차별이란 말 자체가 없었어요. 그때 스위스엔 스위스 사람만 살았거든요. 요샌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간 정치적 올바름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하죠.” G는 예순다섯 살이다. 그가 말하는 어릴 때란 50여 년 전이다. 나는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다.“그럼 지금은 어때요, 스위스에 인종차별이...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코로나19 중반의 유럽 풍경…정치 위기로 움푹 패인 ‘역사의 상처’
유럽에선 최근 소셜미디어를 달군 그림이 하나 있다. 5월 28일 공개된 네덜란드 시사 주간지 EW의 표지다. 위아래 절반으로 나뉜 이 그림의 위쪽에선 금발 머리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남성이 톱니바퀴 나사를 돌리고,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여성은 바삐 걸어가며 업무 통화를 한다. 노트북 앞에 앉아 일을 하는 중년 남성의 뒤 배경은 회색 빌딩숲이다. 그런데 그림의 아래쪽은 딴판이다. 붉은 셔츠에 검은 머리,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남성이 와인을 마시며...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좋은 유럽인은 죽었다”…한국은 변방 아닌 ‘제1세계’?
코로나19 위기는 반년도 안 돼 지구촌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고 있다. 경제성장 위주의 가치관과 신자유주의 질서가 후퇴하고 가족, 공동체, 국가의 역할이 다시 부각된다. 코로나19는 한 국가, 한 지역의 시스템과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코로나19로 인해 동서양 시각 차이는 오랫동안 얼어있던 빙하의 바닥이 드러난 것처럼 곳곳에서 확인된다. <피렌체의 식탁>은 스위스에서 9년째 살고 있는 김진경 필자의 글을 싣는다. 필자는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