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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영의 ‘책과 시절’] 코로나19 시대, 독자는 ‘방향’ 대신 ‘속도’를 택했다

by | 2020년 9월 12일 | 위크엔드 컬처

<피렌체의 식탁>은 창간 2주년을 계기로 주말판 ‘위크엔드 컬처’를 선보인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주의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인문학과 지식, 문화의 시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토요일 아침에 찾아가는 주말판은 기존 매체와 다른 맛과 멋을 드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위크엔드 컬처’의 첫 번째 필자는 청림출판에서 인문교양 브랜드 ‘추수밭’을 맡고 있는 허태영 팀장이다. 허 필자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출판 트렌드를 짚어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책과 사람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서점가의 과거, 미래를 넘나드는 것 같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책’이란 미디어가 나아갈 길을 고민해본다.
[편집자]

“이 모든 오늘날의 풍경은 코로나19라는 상황과 상관없이 이전부터 전망되어왔고 또 준비해온 바다. 이러한 지점에서 볼 때 코로나19라는 사건은 경로를 바꾸기 위한 깜빡이가 아니라 등을 떠밀어주는 액셀에 가까웠다. 적어도 2020년 상반기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살펴보면 그렇다.”

1994년 10월 21일 이후 우리는 재난전문가처럼 참사의 인과에 대해 한 마디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전날인 1994년 10월 20일만 해도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재난에 대비하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누구나 재난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음에도 우리는 2003년 2월 18일, 2014년 4월 16일에도 비슷한 사건을 거듭 겪었다.

‘미래는 과거의 미래’라는 크라카우어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사건을 맞고 난 다음에야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전망은 아무리 정교한 근거를 제시하더라도 과학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막연한 미래가 확실한 현재로 다가온 다음에야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결말을 기준으로 놓은 서사, ‘소설’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지금 포스트 코로나를 놓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흘려 넘겼던 어떤 지점이 코로나19로 인한 변곡점이었음을 늦게 깨달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두 개의 사건 사이에 원인과 결과라는 연결선을 그어가며 앞날을 가늠하는 까닭은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무엇인가라도 읽으며 당장의 불안을 달래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독서처럼 말이다.



#자기계발, 교육, 유튜브, 경제경영
  감성 에세이·고전 자기계발서 주춤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가늠하기 위해 종종 광화문에 서서 베스트셀러들과 신간 코너를 둘러본다. 굳이 한 권의 책으로 정제된 텍스트를 집은 독자들의 선택을 통해 시절의 지향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수 년 전 출판기획자들이 준비했던 욕망과 오늘에 이르러 형성된 실제 흐름을 나란히 세워두고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서 서점을 서성이며 2020년 상반기 베스트셀러들의 동향을 정리한 다음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2020년 상반기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요약하자면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해빙》과 같은 자기구원적 자기계발, 둘째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와 같은 공부법에 대한 공부법, 셋째 《흔한 남매》와 같은 유튜브셀러, 넷째 《디레버리징》과 같은 실용적 경제경영서, 다섯째 《하루 3줄 초등 글쓰기의 기적》과 같은 자녀교육/청소년 분야 도서다.
여기에 조금 더 활발해진 리커버(스테디셀러의 꼴을 새롭게 다듬어 제한된 수량으로 내놓는 변주) 시도도 올해 상반기 출판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추가할 만하다.

한편 몇 년 새 연초부터 봄 사이 큰 인기를 끌었던 감성 에세이 분야는 조금 주춤했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강세를 보였던 고전 자기계발 분야는 크게 위축되었으며, 도서 관련 교양방송들이 검증된 구간을 소개하는 데 치중하면서 몇몇 유튜브 채널들이 신간을 소개해주는 역할을 대신했다. 출판사들 또한 새로운 도전 대신 출간 일정을 보다 보수적인 방향으로 수정해나갔다.

#코로나19 출판 트렌드, 큰 변화 없어
  주목할 점은 자기구원 서사의 등장

올해 상반기 ‘성적표’를 확인한 다음 당황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첫째, 코로나19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 독자들의 선택에서는 큰 변화를 찾을 수 없었으며, 출판사들의 행보 또한 보다 방어적인 방향으로 수정된 것 외에는 작년 말에 준비했던 올해 전망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불안을 달래기 위해 구체적인 결과를 손에 쥐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철학에서도 무기가 될 만한 실용과 효율을 찾는’ 노력으로 드러났으며, 나아가 ‘인문실용’ 분야가 탄생한 200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유튜브셀러나 공부법 및 독서법의 인기 또한 올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는 새삼스러운 현상이다. 앞서 꼽은 2020년 상반기 베스트셀러들의 특징들은 ‘코로나 19’라는 변수를 걷어내도 설명하는 데 그다지 무리가 없다.

보다 구체적인 예로 사회 경제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경영 분야의 시기별 베스트셀러들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먼저 올해 7월 경제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0’의 면면을 살펴보면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돈의 속성》, 《이제부터 오를 곳만 오른다》, 《엄마 주식 사주세요》 등 재테크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도서들로 쏠려 있다.
이러한 경향은 코로나 19가 유행하기 이전인 2019년 10월 경제경영 분야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렌드 코리아 2020》와 같이 연말 시장을 겨냥한 미래전망 도서들이 조금 더 늘어난 것과 재테크 수단이 주식투자에서 부동산으로 바뀌었을 뿐 순위권에 재테크 관련 도서들이 상당수 들어선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땅따먹기》, 《나의 첫 금리 공부》, 《돈의 감각》 등이 이에 해당하는 당시 분야 베스트셀러들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5년 전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2014년 같은 달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10’의 구성을 살펴보면 《김우중과의 대화》,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한국 자본주의: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저는 부동산경매가 처음인데요!》 등 경영자 스토리부터 재테크 분야까지 지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이 고르게 포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반영된 올해 출판시장의 특징을 꼽을 수는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실용 중심으로 독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단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유행을 기점으로 이러한 흐름 자체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 속도가 훨씬 가빠졌다.
예컨대 2020년 상반기 출판 시장에서 유일한 ‘현상’이라고 꼽을 만한 자기구원적 메시지를 담은 도서들의 흥행은 출판기획자들의 예측대로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뒤에 나타나야 한다. 2020년 상반기 출판 시장의 베스트셀러 동향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응당 있어야 할 변화가 없는 대신 간격이 굉장히 밭아졌다는 점에서 낯익었고 동시에 낯설었다.

#60년대생, 실천하는 자기계발 강조
  30년간 자기구원적 메시지로 변화

그렇다면 왜 출판기획자들은 자기구원적 메시지가 2020년 여름보다 뒤에 나오리라고 예상했을까? 낯선 듯 익숙한 풍경과 맞닥뜨리면 혹시 한 바퀴를 맴돈 것은 아닌지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 많은 출판기획자들 또한 근래 독자들의 욕망에서 기시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과거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독서 인구의 증감 추이는 한국 인구 구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960년대생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등장한 이후 은퇴를 바라보기까지의 시간적 흐름과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이들이 한국 출판시장에서 드러낸 지향은 재미있게도 존재와 인식에서 출발해 논리와 미학을 거쳐 윤리로 나아가는 철학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한국 문학은 1980년 5월에서 시작해 1987년의 성취와 좌절을 경험한 과거를 정리하며 이른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후일담이 아닌 것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1990년대 한국 문학은 당시 주 독자층들이 사회의 허리층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새긴 기념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들 새로운 독자층이 자기 서사를 완성한 다음 밟아간 단계는 자기 혁신과 그것을 통해 갈무리한 스스로를 외부로 발산하는 팽창이었다. 그 즈음 출판 시장에서는 자기계발 분야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는 각자도생과 혁신이라는 자기계발적 구호에 속도를 더했다. 그 정점은 1998년 나온 《익숙한 것과의 결별》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자기경영’이라는 구호와 그 실천 방법은 이후 한국식 자기계발서들의 원형이 되었다. 조금씩 변주되었을지언정 지금까지 한국에서 쓰인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들은 ‘폭발하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결단’이나 ‘새벽에 깨어나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고독한 수련’이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혁신과 팽창 이후 당시 한국의 주 독자층은 실천에 대한 강박을 빠르게 거치며 종교적 영역으로 나아갔다. 그 하나는 ‘비우고 청소한 다음 스스로와 화해하라’고 권하는 선방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심리학 또는 자기계발 분야 도서들의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자기구원적 자기계발서들의 등장이다.

이처럼 일종의 영적인 영역으로 나아간 독서 경향은 혁신과 실천의 이정표로 의지해왔던 멘토들의 통찰이 이제 낡아졌었음을 깨달은 냉소와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좋은 것을 넘어 위대함을 추구했던 경영학 구루들의 가르침은 강력한 회의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렇게 권위를 의심받기 시작한 스승의 가르침을 대신한 것은 무속인들의 주문이었다. ‘누구나 레벨업’이라는 낭만적인 신화가 무너진 다음 남은 선택지는 낙오된 처지에서 다음을 기약하는 ‘혼자만의 환생’밖에 없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 출판시장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자기 서사에서 시작해 자기구원으로 끝나는 하나의 사이클을 형성했다. 나이테처럼 순서별로 차곡차곡 축적되어갔다기보다는 퇴적층처럼 때로는 동시적으로 진행되며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미싱링크처럼 끊기기도 했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이와 같았다.

#새로운 독자층은 자조 대신 ‘자존’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해답 모색

물론 그 다음 단계에 대한 예상도 존재했다. 이를테면 폐허 속에서 자기 서사를 구축한 다음 외부로 힘을 발산하다가 한계에 봉착하자 종교적 열락에 도취된 사례를 가까운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대전 이후 제국의 후예인 유럽의 지식인들은 재건 과정에서 스스로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성찰과 반성으로 나아갔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더 시크릿’ 식의 유행과 함께 그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다만 의미 있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채 ‘88만 원 세대’와 같은 이름을 부르는 수준에서 그쳤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의 유행은 퍽 반가운 현상이다. 분석의 대상이자 일방적으로 이름 붙여지고 불렸던 이들이 ‘응답하라’와 같은 회상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기 서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시절을 주도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처지에서 가해와 피해를 경계 짓는 정도로 자기 정체성을 정리하는 데 그쳤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당시 출판기획자들은 1960년대 태어난 ‘살아남은 자들’에서 1980년대 태어난 ‘김지영’들로 독자층이 교체되는 흐름을 목도하며, 앞서 마무리된 한 사이클이 그러했듯 자연스럽게 자기 서사를 갖춘 새로운 독자층이 밟아갈 다음 스텝은 자기 혁신을 시도하며 사회의 허리를 빠르게 잠식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새로운 독자층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실패해서인지 실제로 자기 반추 이후 베스트셀러 매대를 장악한 흐름은 새로운 자조가 아니라 ‘무리해도 변하는 것은 없으니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자족과 ‘지금 이대로의 나를 긍정한다’는 자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위로조차 유행이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전에 코로나19를 맞으며 바로 자기구원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 듯하다.

물론 ‘시크릿’의 재림으로 정리할 수 있는 2020년 상반기 서점가의 특징이 2008년 때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10여 년 전 금융위기 이후 독자들은 내동댕이쳐진 바닥에서 우주만이 귀기울여주는 간절한 기도에 빠졌지만, 어차피 더 떨어질 바닥이 없다는 절망 아래에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미한 낙관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기구원적 도서들은 실용의 극단을 내달리며 즉각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부를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그 실행 방식을 간절함과 같은 비실용적인 영역에서 찾고 있다. 이때 이들 도서들이 기도를 권유하며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동원한 인문이라는 구호는 독자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도장한 보호색에 가깝다.
재미있게도 오늘날 ‘인문학’을 내세운 베스트셀러들 가운데 상당수에는 정작 ‘인문’이 없다. 생존이 당위가 된 시대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다루는 소재가 무엇이든 ‘왜’가 아닌 ‘어떻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베스트셀러 매대를 서성이는 독자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기도와 같은 방백에서 찾고 있다.

#팬데믹, 다가올 미래 앞당긴 ‘액셀’
  늦으면 안 된다는 공포심을 자극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언젠가 바뀌리라 각오한 것들이 조금 더 일찍 도래한 것일 뿐이다.
소상공업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지만 시스템을 갖춘 대규모 유통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맞았다. 인공지능이 보편화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노동환경의 흐름 또한 제로아워를 넘어 플랫폼 노동으로 넘어가고 있고, 이러한 비대면 소비에 대한 반동으로 느슨한 연대에 대한 욕구도 상승하고 있다.
연이은 자연재해와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들은 사회안전망에 대한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유행어 속에서 먹방과 같은 간접 체험 콘텐츠들이 더욱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열거한 모든 풍경은 코로나19라는 상황과 상관없이 이전부터 전망되어왔고 또 준비해온 바다. 이러한 지점에서 볼 때 코로나19라는 사건은 경로를 바꾸기 위한 깜빡이가 아니라 등을 떠밀어주는 액셀에 가까웠다. 적어도 2020년 상반기 한국 독자들의 선택을 살펴보면 그렇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 독자들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표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변화의 전조가 아니라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앞당기게 한 계기다. 마찬가지로 올해 상반기 출판시장에서 대세를 이룬 신간들의 표지에 두른 띠지 속 홍보 문구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도착지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자극하는 재촉이었고, 그에 호응한 독자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 또한 미증유가 닥치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예정된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가까웠다.
한국의 독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일상에서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란 옛것이 죽었지만,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책은 더 이상 시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관에 빠지지 않는다면, 오늘날 변화 없이 다만 속도가 빨라진 출판시장의 흐름을 어떤 전조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허태영 편집장

서울출판예비학교 3기를 수료하면서 출판계에 들어왔다. 2013년부터 청림출판의 인문교양 브랜드인 ‘추수밭’에서 책을 선택하고, 가공하고, 홍보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이 도달했다는 ‘stet’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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