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최근편집 2020. 09-18.13:18

[전영수 강연] ‘인구가족부’ 만들어 거버넌스의 새 판을 깔자

by | 2020년 9월 4일 | 정책


<피렌체의 식탁>은 창간 2주년을 맞아 최근 ‘가족의 재구성 2040’을 주제로 온라인 방식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앞으로 20년 후 가족·가정의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지, 우리 사회가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짚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 행사에선 모두 6명의 연사가 발표했다.

<피렌체의 식탁>은 네 번째로 전영수 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의 강연을 지상 중계한다. 지금까지 장혜영 정의당 의원,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양동수 더함 대표의 강연 내용을 실었다. <관련 링크는 칼럼 하단 참조>
전 교수의 이날 강연 주제는 ‘가족 제도를 둘러싼 거버넌스의 변화’였다. 그는 강연을 통해 부총리 급이 맡는 인구가족부(가칭) 설치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가족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출생, 고용부터 노후 복지까지의 거버넌스를 재정비할 총체적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한국의 가족·인구 문제를 탐구해 오면서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 <각자도생 사회>를 출간했다. [편집자]

#가족 거버넌스는 사회 조직의 기반
  고용 제도, 가족 모델 토대로 구축
#미래소득 확신 못하는 저성장 시대
  후속세대에 가족 구성은 하이리스크
#19세기 모델, 20세기 법률·제도가
  21세기의 다양한 가족 구성을 속박 
#결혼 제도는 ‘국가 독점’ 방식

  민영화로 가족 구성의 허들 낮춰야
#인구·가족문제 컨트롤 타워 설치해
  세제-복지-고용 총체적 관리 필요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가족’과 ‘거버넌스’라는 키워드로 압축됩니다. 거버넌스는 조금 낯설고 어려운 단어인데요. 가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반이자 중심이자 핵심 조직이죠. 거버넌스는 각종 사회 조직들의 작동 논리와 지향점을 유도, 관리, 통제하는 사회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족 관련 패러다임은 법률적, 제도적으로 가족을 규정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기제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각종 제도나 법률로써 사회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가족 내부의 작동 논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인 게 고용 관련 제도와 관련돼 있죠. 근로기준법이나 노동 관련 법률 같은 것들도 사실은 기존의 가족 제도를 토대로 규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상위 개념이 민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죠. 가족 관련 제도들은 가족 내부의 개별적 역할도 규정하게 됩니다.

만약 그 가족이 사회 운영에 바람직한 형태로 구성된다면 법률적으로, 제도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혜택을 받게 되죠. 지금 있는 모든 법률, 제도가 사실 4인 가족을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4인 가족이 아닐 때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공감하듯 독신세(獨身稅)처럼 역차별의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그 다음에 가장(家長) 중심의 가족 내적인 거버넌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남성 중심적이면서, 장자 또는 적자 우선의 가족 모델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자리잡아왔습니다. 그 안에서 가족 멤버들은 자기 역할을 교육받거나 강요당하는 방식으로서 ~다움, 예컨대 장남다움, 가장다움, 엄마다움, 딸다움 이런 식으로 각자 역할을 떠맡게 됐고요. 이럴 경우 우리는 전통 가족, 표준 가족,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를 써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전통적이고 위계적·통제적인 구조가 현대사회에서는 그 설명력과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구성은 점점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느껴지게 됩니다. 사회 전체로는 불균형을 낳게 되고요. 이런 요인들이 갈수록 가족 구성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장기 저성장’이 가족의 2차 분화 막아

그렇다면 왜 거버넌스가 흔들리는지 봐야 될 텐데요. 우선 매크로 변화, 시대 흐름의 변화입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장기 저성장’이 고착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외벌이만으로는 전통적인 가구, 가정, 가족을 구성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즉 1차 가족에서 2차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분화돼야 되는데 최근 10년 새 2차 가족으로의 분화를 거부 또는 연기하는 사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죠. 후속 세대들의 다양해진 인생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의 내적인 변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80년대부터 확대된 신자유주의 사고체계 때문에 가족 멤버들이 맞벌이 같은 전원 참가형의 경제구조로 바뀌어 왔습니다. 이것이 4인 가족, 정상 가족, 표준 가족이라고 불리는 가구 구성원들의 역할에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안팎으로 많은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게 워크&라이프 밸런스라고 표현되는, 일과 삶의 양립 조화입니다. 가족 내적인 변화, 가족 모델의 다양화가 일과 삶의 양립이란 쟁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19세기에 공고하게 만들어진 모델을 20세기의 법률·제도가 21세기의 가족에게 요구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것은 또 대한민국의 가족 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정상 가족이라고 불리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지금 어떻게 변형의 압박을 받고 있는지를 제도-현실의 괴리 현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두 개의 그림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가족 구성의 표준적인 방식입니다. 중간에 제가 패러다임의 급변 요구라는 실선을 그었습니다만 그 왼쪽 편에 있는 것들이 가족 구성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과거 미혼 청춘들이 가족을 구성하면서 생애 전체에 걸쳐 이 모델들을 따르도록 교육을 받고 사회 질서에 흡수돼왔죠.

그런데 20~30대에 한정된 자원을 가진 후속 세대가, 가족 구성이라는 하이리스크(high-risk), 하이리턴(high-return)의 선택을 과거에는 별 부담 없이 했다는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가족을 새로 구성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위험-고수익의 선택입니다.

생활급에 바탕한 생애복지체제 붕괴

기성세대들은 젊을 적에 비록 가난하고 어려웠을지 몰라도 생애 전체에 걸친 미래소득의 증가분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그래프가 바로 생활급 체제라는 겁니다. 우리가 임금 체계를 얘기할 때 연공급, 성과급 같은 다양한 제도를 얘기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적어도 신자유주의 체제가 발현됐던 2000년대 초까지 이른바 생활급 체계가 실현됐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누군가 한 직장에 들어가서 퇴직 때까지 장기 고용을 전제로 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특정 연령대에 결혼을 하게 되면 주거와 관련해 목돈이 들게 되죠. 이후에 자녀를 낳아 기르다 보면 양육·교육 비용 압박이 커집니다. 그 다음에는 몸이 좀 아프겠죠. 의료 관련 비용도 발생하고, 퇴직 이후에는 노후자금이 필요합니다. 생활급이란 이렇게 평생에 걸쳐서 작동하는 임금 체계입니다.

주거, 교육, 의료, 노후 같은 단어의 뒷부분에 복지라는 단어를 붙이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게 제도 변화를 요구하는 키워드가 될 겁니다. 문제는 생활급 체제가 40대 중반 까지는 본인이 일한데 비해 받아가는 임금이 훨씬 더 적다는 것이죠. 즉 마이너스 분이 발생합니다. 거꾸로 40대 중반부터 퇴직 시기까지는 성과 대비 임금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플러스가 나옵니다. 즉 A 시기, B 시기의 이런 차이가 생애 전체를 통틀어 제로(0)가 됩니다. 그래서 연공급이든 성과급이든 다른 임금체계와 비교할 경우 생활급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임금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어떻습니까? ‘장기 저성장’ 시대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데, 장차 늘어날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소득을 담보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다는 고위험 선택을 하기가 힘들어지게 된 것이죠. 따라서 결혼이든 연애든 가족 구성을 전제로 한 인간적 본능들이 빠른 속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정상 가족들이 누군가 다른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겁니다. 그게 아까 생활급 체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복지 수요의 최종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가족 안에서 발생한 불행의 원인은 가족의 책임이고 따라서 가족 안에서 처리해야 된다는 식으로 사회적 압박을 받았던 것이죠.
그래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이런 거버넌스 방식에 대한 불복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혼 가정에서도 굳이 정상 가족의 형태를 고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50~60대 부부들의 졸혼(卒婚)이 그런 사례일 겁니다. 아까 정의당 장혜영 의원님이 “1인 가구가 전라남도에 가장 많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은 홀로 된 고령 여성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기성세대에서도 가족의 재구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혼 남녀들은 당연히 결혼의 연기, 포기라는 방식으로 가족 구성을 거부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건강가정기본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구분에서는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건데요. 법 조항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모두가 결혼, 출산의 중요성을 알자.’ 이 자체가 젊은 친구들에게는 폭력적, 폭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있는데요. ‘가족 구성원은 가족 해체를 예방하고자 노력하라.’ 그러면 1인 가구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가요?

이제는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춰 법률과 제도를 재정비하는 게 필요합니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패러다임들을 바꿔야 합니다. 가족 구성과 관련된 거버넌스의 재편이 이뤄지면 어떤 기대효과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족 유형을 인정한다면 인구 문제, 가족 문제와 관련된 많은 난제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4인 표준 가족이 사실상 유일한 행복 모델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후속 세대들이 체감으로, 경험으로, 학습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인구정책이 먹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돈의 문제를 넘어서서 문화 트렌드로 정착되는 상황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후속 세대가 표준 가족 모델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그냥 되바라진 사람 몇몇의 시도나 실험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향후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확장 가능성을 갖춘, 어쩌면 몸부림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가족의 효용과 개인의 가치 간에 충돌하는 부분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요즘 가족의 재구성과 관련된 변화들이 많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성별, 연령별로 인식의 변화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자율성과 평등성을 강조하는 가치관이 어쩌면 적자생존과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불행의 연쇄 고리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 과거 혈연 공동체에 의한 가족 모델이 아니라 생계 차원의 거주 공동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시도 역시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의 팍스(PACS, 시민연대계약)입니다. 이것은 결혼과 동거의 중간쯤 되는 제도입니다.


위 그래프를 보시면 법률혼의 혼외자-혼내자 차이를 볼 수 있는데요. 한국에선 결혼이라는 제도만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죠. 따라서 법률혼이 아니면 자녀 출산이라는 게 억제됩니다. 하지만 그래프를 보시면 유럽 각국에선 사실혼이 훨씬 더 강력한 형태로 자리 잡았고 이것을 최초로 제도화한 게 팍스 제도입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가족의 범주 안에 넣고 있습니다.

공동체 위주 고비용 결혼제도 바꿔야

그럼, 우리 사회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조정해 나가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예만 들어 보죠. 우리에겐 가족과 관련된 거버넌스가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세, 복지, 고용, 국방까지도 사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그 중에서 결혼이라는 기존 제도는 ‘국가 독점’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이것을 민영화하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젊은 친구들에게 가족 구성의 다양성을 넓혀주고 결혼의 허들(huddle)을 제거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족과 결혼 제도라는 게 가변적이고 영구적이지 않다는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이와 관련해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라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가 얘기한 건데요. 결혼에 관해 국가 공인(公認) 독점을 막는 민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한국에선 지금도 유교적 가치관이 강해서 결혼이라고 하면 무조건 행정기관에 혼인 사실을 등록해야 되고, 결혼식 이벤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로부터 법적으로 규정된 세제라든가, 복지라든가 국방이라든가 여러 분야의 수혜를 받게 되죠. 한 마디로 결혼이란 터널, 허들을 통과해야 정상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국가가 독점하지 말고 민영화하자는 겁니다. 자기들이 원하면 누구에게나 결혼이라 인정받고 그에 따른 권리와 책임도 평등하게 제공해주자는 것이죠. 그럴 경우 젊은 세대의 가족 구성 선택지를 넓혀줄 거 같습니다. 고비용, 공동체 개입의 결혼 제도가 저비용, 자율성 위주로 바뀌어야 각자 선택에 따라 취업-결혼-출산-양육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용 제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족 거버넌스가 흔들리는 중요한 포인트가 워크&라이프 밸런스의 문제인데요. 이른바 고용 형태의 변화들이 가족 제도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즉 취업과 인사, 사내 교육, 임금 체계 전체에 걸친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용 모델과 임금 모델은 가족 모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에 있습니다.


고용-임금-가족 모델이 서로 충돌

그런데 고용 모델-임금 모델이 과거 그대로인데 가족 모델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3개 모델이 서로 연결돼 계속 작동하기가 어렵게 되죠. 즉 종신 고용 같은 고성장 시대의 작동 논리도 그렇고, 임금 체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기업에는 생활급이 아직 남아있습니다만 요새는 퍼포먼스(performance, 성과) 베이스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친구들도 많아졌고요. 한국 기업의 독특한 복지 구조는 이제 설명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맞벌이 부부는 늘어났고, 일과 삶의 양립을 둘러싼 갈등은 격화되고 있죠.

다른 나라에선 근로 형태의 다양화가 이미 확산돼 왔습니다. 일본의 경우 2017년 공식 백서에서 ‘일하는 방식의 개혁에 따른 새로운 성장’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선정했습니다. 인구 정책의 방향도 한국처럼 출산 장려가 아니라 인재 혁명, 생산성 혁명을 포함한 ‘소사이어티 5.0’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엔 가족 모델을 바꿔보자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부분은 한국에서느 일과 삶 밸런스를 얘기하면 자녀 양육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일본처럼 이른바 초(超)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국가에서는 부모 봉양을 떠올립니다. 일과 삶 밸런스와 관련해선 구체적으로 잔업 금지, 정규직화 확대와 함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들을 강조해 가족 거버넌스의 변형을 적극 수용하고 있습니다.

가족 중심 복지체제를 이제 바꿀 때

제가 앞으로 가족 정책의 거버넌스를 재구축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당장 시급한 게 복지 개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가족을 복지 수급의 최소 단위로 봅니다. 따라서 자녀 양육이나 부모 봉양의 가족 책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가족, 4인 가족, 표준 가족일수록 제도적으로 받는 수혜들이 커지고 있죠.
앞으로는 달라져야 합니다. 정부 복지의 시장 위탁형, 이게 기업 복지의 출발인데요. 사실은 정부가 복지를 제공해야 되지만 그걸 다 할 수 없어서 일정 부분 시장에 위탁해 기업 복지, 작업장 복지라는 한국식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기업 복지도 이젠 설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활적이고 자발적인 소셜 이코노미 방식으로 복지 제도를 개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복지에서 혼합 복지로 가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본 것처럼 정부 복지의 가능성과 영역들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속가능성은 의심해야겠죠. 따라서 복지의 제공자를 다양하게 혼합하는 모델을 고려해보자, 즉 사회적 투자 방식을 통해 새로운 모델들을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인구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저출산 대책에 함몰될 게 아니라 포괄적인 가족 정책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형 가족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에는 행정개혁의 불가피성을 거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료이기주의 같은 악습을 폐기해야 되죠. 부처 개혁 이상의 체제 개혁이 가족의 재구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5가지 제안 

저는 새로운 가족 거버넌스를 위해 거시적 차원에서 5가지의 뉴노멀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컨트롤 타워로서 인구가족부(가칭)를 설치하자는 겁니다. 가족 관련 정책과 관련해선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중앙부처들이 다양한 아이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발적이고 파편적이어서 유기적인 효과를 못 내고 있습니다. 예산을 많이 쓰고 있지만 중복·누락 부분이 많아 저효율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바꿔야 합니다. 인구가족부를 설치해 고용부터 노후 복지까지 생애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적 컨트롤 타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총리급이 지휘하는 총괄 부처로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다.

둘째는 세제-복지-고용의 일괄 개혁입니다. 지금까지 개혁은 중앙부처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나의 이슈, 하나의 부처 안에서 단편적인 작업들이 추진돼왔죠. 그러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고비용-저효율 현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가족제도 개혁은 세제-복지-고용까지도 같이 아우르는 방식으로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1인 가족이 빠르게 늘고, 가족 유형도 굉장히 다양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족들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통합은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넷째는 수출-내수의 뉴(new) 포트폴리오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고용 구조에 직결되는 부분인데, 한국에서 대부분 월급쟁이들은 직간접으로 수출에 얽매이고 있죠. 한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나 됩니다. 중장기적으로 내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일자리를 많이 공급해야 일과 삶의 양립 조화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인적 투자 자체는 소비가 아닙니다. 개인, 지역, 자활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가족-인구 정책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후속 세대 중에서 잠재력이 큰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찾아내면 새로운 시장, 새로운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Q&A

#질문1
건강가족기본법을 사례로 말씀하셨는데 ‘가족은 결혼, 출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부분이 좀 웃긴다고 생각됩니다. 인구가족부 설치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제가 건강가족기본법을 일례로 들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거버넌스 논리를 설명했을 뿐입니다. 어느 통계를 보면 우리 정부가 지난 10년간 저출산 극복 예산으로 지난 10년간 209조원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시대 변화에 맞게 가족 구성 패러다임을 수시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번거롭고 힘든 일입니다. 공공 분야에서는 자꾸 개혁의 시기를 미루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개혁을 등한시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옛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조직법상 17개 중앙부처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들 부처는 제각기 가족의 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정책과 예산을 갖고 있죠. 이들 부처는 여전히 과거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후속 세대에게 뭔가 강력한 시그널을 줘야 합니다. 제가 인구가족부라고 말했지만 다른 명칭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지금처럼 파편적인 인구 정책이 아니라 포괄적인 가족 정책이 필요합니다.

#질문2
그렇다면 현행의 법체계나 거버넌스 측면에서 가족 구조의 변화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뭘까요?

가장 중요한 게 결혼을 하거나 가족을 구성했을 때, 이른바 2차 가족으로 분화가 됐을 때 그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겁니다. 특히 고용 분야가 중요합니다. 출산-인구-가족 문제의 핵심은 사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결국 먹고 사는 문제에요. 이것을 규정하고 있는 상위의 거버넌스 체계, 즉 민법, 근로기준법, 고용 관련 제도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죠. 이것들은 대부분 과거의 4인 가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각종 법률과 제도는 20~30년 전에 만들어진 거버넌스 체계란 말이에요. 젊은 친구들에게 옛날 잣대를 적용하려다 보니 엇박자가 나고 불협화음이 나는 겁니다. 이젠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 되는데, 그 핵심은 일과 삶의 양립 조화라고 할 수 있겠죠. 기업들도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해 친화적인 자세와 근무방식을 채택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정리=한은지 기자


[장혜영 강연] ‘1인 가구’가 대세인 한국 사회, 가족 구성권은 왜 불평등한가?
[야콥 할그렌 강연] “어떤 가족도 OK” 스웨덴, 가족 구성의 다양성은 다른 평등을 견인
[양동수 강연] “아파트 공동체라면, 애 이름 불러줄 사람이 10명 넘어야 되겠죠”


전영수 교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전문위원, 기획재정부 협동조합 정책심의위 심의위원 등을 맡아 정책 연구에 힘썼다. 주요 관심사는 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복지 환경의 변화 및 대응 체계 마련으로, 한국 사회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행복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저서로는 <각자도생 사회>,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 <한국이 소멸한다> 등이 있다. 

최신기사 링크

[임성원의 ‘마음 공부’] 감정은 힘이 세다…제3자 시각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대화하라

<피렌체의 식탁>은 창간 2주년을 계기로 주말판 ‘위크엔드 컬처’를 선보인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주의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인문학과 지식, 문화, 성찰의 시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토요일 아침에 찾아가는 주말판은 기존 매체와 다른 맛과 멋을 드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위크엔드 컬처’의 두 번째 필자는 오랫동안 ‘마음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임성원 현덕경영연구소장이다. 임 원장은 20년 이상 상담과 교육, 컨설팅을 하면서 심리학, 뇌과학,...

[유정훈 칼럼] 밥 우드워드 <격노(Rage)>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는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미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사임까지 불러온 인물이다. 우드워드는 사건이 일어난 1972년부터 탄핵 위기에 몰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1974년까지 동료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쳤다. 워터게이트 탐사보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도”라는 찬사를 받았고(뉴욕타임스 편집장을 지낸 Gene Roberts), 신참 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권석준의 ‘반도체 전쟁’①] 중국이 20년 가꿔 온 꿈, 10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

미국이 지난 15일부터 중국의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華爲)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를 강행했다.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한 제품을 미국 상무부의 사전 허가 없이 화웨이에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연히 해당된다. 국내의 관련 업체들 역시 직간접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은 반도체 패권전쟁의 공세를 늦추지 않을 기세다. 최근에는 미국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인수토록 했다. 반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