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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칼럼] 바이든의 ‘승부수’ 카멀라 해리스…그가 상징하는 미국의 ‘possibilities’

by | 2020년 8월 21일 | 국제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너무 많은 분노와 너무 많은 두려움, 너무 많은 분열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 대선후보)를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바이든은 미국이 당면한 네 가지 위기를 전염병 대유행, 경제, 인종적 불평등, 기후변화로 손꼽은 뒤 “어둠의 시절을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바이든 후보는 지난 10일 카멀라 해리스 연방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바이든이 러닝 메이트 선정 작업에 돌입한 후 해리스는 늘 1순위로 거론되어 왔다. 오랜 기다림과 여러 추측, 몇 차례의 일정 연기가 있었지만 결국 예상했던 대로 일이 이루어진 셈이다.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둘 모두 ‘가능성’이라는 단어로 미국을 정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해리스는 어떤 사람이기에 바이든이 ‘가능성’(possibilities)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7세 때 부모 이혼, 인도계 모친이 양육
흑인 학교·교회·거주지로 정체성 유지

카멀라 해리스는 1964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UC 버클리 캠퍼스 커플인 샤말라 고팔란(Shyamala Gopalan)과 도널드 해리스(Donald J. Harris)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인도 출신으로 1960년 미국으로 이민해 유방암 관련 연구를 했다. 자메이카 출신의 부친은 1963년 미국으로 건너와 경제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다.

카멀라가 7세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모친은 카멀라와 여동생 마야를 양육하게 된다. 12세 때 모친의 직장을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해리스는 워싱턴D.C. 소재 하워드대학(Howard University)에 진학한다. 여기는 대표적인 ‘HBCU’(Historically Black College and University), 즉 전통적으로 흑인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고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철폐된 후에도 그 정체성이 유지되어 온 대학이다.

국외자인 한국인 입장에서 해리스의 가정사를 보면 그가 왜 ‘흑인 후보’로 인식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보통 생각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라 자메이카 이민 2세이고, 부모가 이혼한 후 줄곧 인도계 모친이 양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스 본인 그리고 흑인사회 입장에서 그의 흑인 정체성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린 시절에 해리스는 흑인 거주지역에 살며 흑인 교회에 다녔다. 민권운동 이후 흑백학교 통합이 이루어졌는데, 통상적으로 인종별로 거주지역이 분리되어 있어 흑백통합 버스 통학이 불가피하고 해리스도 버스 통학 경험을 한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 민주당 경선 후보 토론에서 바이든과 맞붙은 얘기에서 다시 다루겠다)

해리스는 어린 시절에는 흑백이 통합된 백인학교, 캐나다에서도 백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흑인학교에 다니기 위해 하워드에 입학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워싱턴포스트 8월 12일자 보도>
해리스는 학부 시절 유서 깊은 흑인 여학생 클럽인 알파 카파 알파(Alpha Kappa Alpha Sorority)에서 활동했고, 로스쿨을 다닐 때는 흑인 로스쿨 학생연합(Black Law Students Association) UC 헤이스팅스 지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2019년 7월 1일자 보도> 

※하워드 재학 시절에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시위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市검사장, 州법무장관, 연방 상원의원
‘여성 최초, 흑인 최초’의 연속 행진

정치학 및 경제학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한 해리스는 자신의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UC 헤이스팅스 로스쿨(University of California Hasting School of the Law)을 졸업하고 1990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경력을 시작한 해리스는 알라메다 카운티 검찰청, 샌프란시스코 검찰청, 샌프란시스코 시청 등에서 근무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해리스의 선출직 경력은 2003년부터 시작된다. 그 해에 해리스는 샌프란시스코 검사장(San Francisco District Attorney)에 출마하여 현직 검사장 테렌스 할리난(Terrence Hallinan)을 꺾고 당선된다.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검사장이다.

검사장 경력을 바탕으로 해리스는 2010년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Attorney General) 선거에 출마한다. ‘Attorney General’은 흔히 ‘검찰총장’으로 번역되지만 ‘법무장관’이 더 정확하다. 주 법무장관은 검찰권 뿐만 아니라 민권법, 환경규제, 선거, 공정거래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주 전체의 법 집행을 총괄하는 자리다. 특히 연방정부와의 법적 관계에서 주(州)를 대표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막강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법에 대해 공화당 소속 법무장관이 있는 주에서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거꾸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내면 민주당 소속 법무장관이 있는 주에서 효력정지소송을 제기하는 식이다. 주지사 및 부지사 외에 법무장관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주가 43개에 이르기 때문에 주지사와 법무장관의 소속 정당이 다른 경우도 발생한다.

캘리포니아는 인구 및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주이고 실리콘 밸리를 관할하기 때문에 주 법무장관의 영향력도 크고 선거전도 주목을 받는다. 해리스는 치열한 당내 경선을 거쳐 민주당 후보로 지명됐고,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로스앤젤레스 검사장 로버트 쿨리(Robert Cooley)와 접전 끝에 득표율 0.77%포인트 차이로 승리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첫 번째 여성, 첫 번째 흑인 법무장관의 탄생이었다. 2014년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15%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여유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2016년, 캘리포니아 주의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1993년부터 지켜온 4선(選)의 바바라 복서(Barbara Boxer)가 은퇴를 선언한다. 가장 먼저 출마의사를 밝힌 해리스는 선거전 내내 선두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주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이른바 ‘정글 프라이머리’(jungle primary)를 채택하고 있다. 프라이머리에서 소속 정당과 관계 없이 유권자들이 모든 후보자를 대상으로 투표해 상위 득표자 2명이 본선에 진출하는 선거제도다, ‘정글’이라는 말 그대로 소속 정당의 통제가 아니라 후보자 개인의 무한경쟁이 게임의 규칙이다.

그 해 프라이머리에서 민주당 소속 해리스와 오렌지 카운티를 지역구로 둔 연방 하원의원 로레타 산체스(Loretta Sanchez)가 1, 2위로 본선에 진출한다.
반면 공화당은 캘리포니아가 주로 승격되어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치른 이래 처음으로 본선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본선에서 해리스는 산체스에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승리하며 연방 상원에 입성한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흑인여성 연방 상원의원이자, 미국 전체를 통틀어 두 번째 흑인여성 연방 상원의원이 된 것이다.

상원의원 해리스의 빛나는 순간들
‘백인남성’ 대법관, 법무장관에 송곳 추궁 

초선 상원의원 해리스는 인상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 오랜 기간 검사로 활동한 경력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청문회 증인을 상대로 일문일답을 하며 궁지에 몰아넣고 명확한 답변을 끌어내지 못한 경우에도 최소한 상대방이 뭔가 숨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능했다.
2018년 9월 6일 브렛 캐버너 연방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한 장면이다. 이는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트레버 노아의 ‘데일리 쇼’에서 해리스가 캐버너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잘 요약했다. <데일리 쇼 영상>

해리스: 남성의 몸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도록 정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캐버너 후보자: (잠시 눈을 굴리다가)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해리스: 남성의 몸 vs. 여성의 몸. 이 얘기입니다.
▲캐버너: 그게, 저, 예를 들면, 의료절차, 뭐 이런 거…?
▲해리스: 반복하겠습니다. 남성의 몸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도록 정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캐버너: (체념한 듯) 지금 당장 생각나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며 로우 대 웨이드 사건(Roe vs. Wade) 판례를 뒤집으려는 보수 대법관 후보자에게 이보다 강력한 공격은 없을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 1973년 내린 임신 중절에 관한 조건부 합헌 판결, 여성의 임신 중절권 보장의 근거가 되고 있음)
같은 영상에서 캐버너가 ‘특검 수사 부당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해리스가 이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장면도 볼 만하다. 트럼프도 해리스의 부통령 후보 지명 소식을 듣고 “해리스는 캐버너 청문회 때 끔찍할 정도로 악랄했다. 내가 아직도 못 잊는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Axios 8월 11일자 보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로버트 멀러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와 관련하여 2019년 5월 1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청문회에 나왔을 때도 해리스의 활약은 뛰어났다. 위증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답변을 회피하는 법무장관을 앞에 놓고 해리스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져 트럼프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고 부당한 개입을 용인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청문회 영상>

해리스의 질문 공세 앞에서 연방 법무장관, 연방 대법관이라는 최고 직위에 오른 백인남성 법률가들은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한 채, 본인들의 치부를 감추고 법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감싸기에 급급했다. 해리스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고 초선 상원의원임에도 대선주자 급으로 올라서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해리스의 대선 경선 출마와 좌절
‘출세 발판’인 법조 경력이 발목 잡아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에서 패배한 후 해리스는 유력 대선주자로 줄곧 거론되었고 본인도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공직 경력과 이를 통해 보여준 성과 측면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은 충분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는 별개로 흑인여성 후보가 트럼프를 꺾을 수 있냐는 의문은 있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흑인 표심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2019년 1월 21일 해리스는 오클랜드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출마 선언 영상>

2019년 6월 27일 민주당 경선 첫 번째 토론회에서 해리스는 바이든이 과거 인종차별적인 공화당 상원의원에게 동조하고 흑백학교 통합에 따른 버스 통학에 반대했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에서 흑백통합 학교에 매일 버스로 통학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라고 받아친 부분은 해리스의 짧았던 캠페인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토론회 영상> 반면 오바마의 부통령이라는 이점을 가지고도 좀처럼 앞서 나가지 못하던 바이든은 후보로서의 경쟁력마저 의심받는 순간이었다. 토론회 후 24시간 안에 온라인에서 선거기부금 200만 달러가 해리스 캠프에 쏟아졌고 지지율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간다.

그러나 다음 토론회부터 해리스는 다른 후보들의 집중견제를 받는다. 출세의 발판이 된 법조 경력이 이번에는 발목을 잡게 된다. 검사장이나 주 법무장관은 직책상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데, 미국 사회에서 엄정한 법 집행은 의도하든 혹은 의도하지 않든 소수인종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해리스가 검사장 또는 주 법무장관을 지낸 기간이 10년을 넘기에 본인의 지휘로 기소한 사건 중 논란이 될 사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2019년 7월 31일자 보도>

결정적으로 민주당의 흑인 유권자들은, 오랜 세월 민주당에서 정치를 했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오바마)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당선 가능성을 고려한 흑인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해리스는 지지율 하락세를 되돌리지 못했고 캠페인 내부 문제까지 겹쳐 선거자금이 바닥나는 바람에, 첫 경선을 치르기도 전인 2019년 12월 3일 경선 후보를 사퇴한다. <CNBC 2019년 12월 3일자 보도>

해리스가 상징하는 경쟁력!
미국의 영혼은 바로 ‘possibilities’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잠재력을 온전히 펼치지 못했지만, 해리스의 부통령 후보 지명은 예상대로 혹은 순리대로 이루어진 최적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바이든은 경선 승리 확정 직후 부통령 후보로 여성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CNN 3월 16일자 보도>
백인 경관의 강압 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 뒤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다시 불붙으며 유색인종/여성/세대교체 이미지를 가진 부통령 후보 지명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후보가 해리스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Susan Rice), 미시건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Gretchen Whitmer), 하원의원 캐런 배스(Karen Bass), 상원의원 태미 더크워스(Tammy Duckworth) 등의 많은 후보군이 거론되었지만, 해리스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인물은 없었다.
상원의원이자 대선후보 경선까지 출마했던 해리스의 인지도에 근접하는 사람도 없었고, 사실상 이 사람이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후보였다. 흑인이자 아시아계, 선출직 경력,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능력, 만약의 경우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 역량, 부통령이 될 경우 현재 갖고 있는 선출직의 후임을 민주당이 지킬 수 있는지 여부 등 모든 면에서 다른 후보를 압도한다.
70대 백인남성 바이든과 대조되는 스펙을 가지고 있고, 대중연설이나 토론 능력이 뛰어나 ‘무난하지만 무매력’인 바이든의 대선 캠페인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 된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넘어, 해리스가 걸어온 길 그리고 부통령 후보 지명과 당선 이후 걸어갈 길은 미국이 꿈 꾸는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바이든은 이번 선거를 ‘이 나라의 영혼을 건 싸움’(battle for the soul of the nation)이라고 규정했는데<영상>, 그 핵심에는 카멀라 해리스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가능성’(possibilities)이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엘리트를 끌어 모아 자국의 인재로 흡수하고 지도층으로 발탁해왔다. 저개발 국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온 해리스의 부모는 이미 자국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부친 도널드는 미국 서부의 최고 명문대학 중 하나인 스탠퍼드에서 명예교수까지 이르렀고, 모친은 유방암 전문 연구자였다. 1960년대 초반 미국에 온 이민자 캠퍼스 커플이 1964년에 딸을 낳았고, 그 딸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지금은 부통령직에 근접해 있다.

민주당이 자랑하는 오바마의 부친도 케냐 출신 이민자였다. 제도적, 조직적 인종차별이 남아 있지만 미국은 어쨌든 이민 2세가 대통령 혹은 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사회이다. 물론 이는 미국이 가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위상, 수많은 인재가 미국 시민권을 선망하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기회를 찾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나라들이 모두 이런 가능성을 열어 두었던 것은 아니다.

해리스는 검사장, 주 법무장관, 연방 상원의원을 거치면서 계속 ‘여성 최초’, ‘흑인 최초’라는 역사를 열어왔다. 해리스가 걸어온 길은 미국 사회가 이민가정, 소수인종에게 열어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 자체였다. 그리고 해리스처럼 누군가 최초로 그런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면 뒤에 따라오는 인재들의 기회는 더 넓어지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해리스의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 후임으로는 최초로 라티노(latino) 출신이 선출되었다. 훗날 해리스가 부통령으로 도전을 마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리스가 2024년 또는 2028년에 나설 그 도전 또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이런 면에서 바이든이 해리스를 선택한 명분으로 ‘가능성'(possibilities)을 언급한 것은 적절하고 정확하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내세우며 그런 가능성을 닫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기에, 상대 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효과도 분명하다.

※바이든의 2020년 대선 공식 웹사이트 https://joebiden.com 첫 화면. 왼쪽 상단에 “BATTLE for the SOUL of the NATION“이라는 슬로건이 보인다.

‘최초 흑인, 최초 여성’ 부통령을 향해
백인여성 후보가 두 차례 좌절 경험
 
여성이 민주·공화 양당의 부통령 후보로 여성이 지명된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하지만 해리스의 당선 가능성은 과거의 두 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우선 선거구도 자체가 유리하다. 1984년 민주당 후보였던 월터 먼데일, 제랄딘 페라로(Geraldine Ferraro)는 참패했다. 당시 레이건은 의회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도 대통령선거에선 레이건을 찍는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s)을 양산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먼데일의 출신 주인 미네소타 및 흑인 인구가 압도적인 DC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승리하며 선거인단 확보에서 525대13의 압승을 거두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은 세라 페일린(Sarah Palin)을 깜짝 발탁했지만, 조지 W. 부시의 실정, 금융 위기,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열기로 기울어진 판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바이든-해리스는 일반투표(popular vote)에서 트럼프-펜스를 이길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접전 주(swing state) 6~7개가 결정할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승부에서도 지금 추세로는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여성 부통령 후보는 안타깝게도 전국 정치 무대의 검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페라로는 재산 및 세금신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문제를 키웠다. 페일린은 알래스카 주지사로서는 어땠는지 몰라도 전국 무대에 올라서자 심각한 무능력이 금세 드러났다. 해리스의 경력은 이들보다 탁월하고 대선후보 경선까지 치렀기 때문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개인 이슈가 나올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나 해리스의 부통령 후보 지명 과정에선 여성혐오 현상도 드러났다. 바이든에 대한 충성심보다 자신의 차기 대선 행보를 우선할 것이라는 ‘야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남성 부통령 후보에게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 적은 없다.
레이건이 경쟁자였던 조지 H.W. 부시를 러닝 메이트로 지명했을 때도, 역대 최고의 실세 부통령 딕 체니를 지명했을 때도 이런 지적은 제기되지 않았다. 부통령이 대통령 출마를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실제로 역대 부통령 48명 중 14명은 훗날 대통령이 됐다. 해리스의 ‘야심’을 문제삼는 것은 명백하게 여성에 대한 이중기준이다.

또한 트럼프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선거전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트럼프는 해리스에 대해 제기된 출마자격 이슈에 관해 “내 생각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제기한 의혹”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도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ABC News 8월 15일자 보도>
미국의 다른 공직들은 이민자 출신에게 열려 있지만 대통령 및 부통령은 생래적 시민권자(a natural born Citizen)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버락 오바마는 소위 ‘birther’ 문제, 즉 ‘하와이 주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것이라 대통령 출마자격이 없다’는 가짜 뉴스에 시달렸다. 이번에도 이민가정 출신 해리스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시작된 셈이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는 믿을 수 없다, 무슬림 아니냐?”라고 질문하는 유권자에게 “오바마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슈에 관해 나와 생각이 다를 뿐인 동료 시민이자 좋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트럼프와 공화당에 그런 품격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으로 남은 선거전은 치열하고 잔인하겠지만, 카멀라 해리스는 여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여성과 흑인에게 부당하게 따라 다니는 편견과 불이익에 도전할 것이다. 그 동안 숱한 유리천장을 깼던 것처럼, 해리스가 11월 선거에서 승리해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라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제 73일 남았다.


유정훈 필자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미국 연수 당시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어서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공저했다. 서울신문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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