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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한국의 인종차별…존 루이스 “우리는 인내를 거부한다”

by | 2020년 8월 18일 | 국제, 기획 · 연재,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얼마 전 가나 출신의 연예인 샘 오취리가 화제에 올랐다. 오취리는 ‘블랙페이스(blackface)’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유명한 장례식 댄스를 흉내 낸 고교생들에게, ‘이제 이런 일이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 뒤 거꾸로 SNS상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오취리가 “건방지게” “주제에 넘는 소리”를 한다며,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사회가 인종문제에 관한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영어학원들이 흑인 교사를 회피한다는 건 이미 외국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국가는 OECD 안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아직 다인종사회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핑계로 통용되고 있는 지경이다.

#오취리 ‘블랙페이스’ 비판 계기로
 한국 인종차별인식 후진성 드러내
#‘눈 찢기’ 멕시코인에게 사과 받고도
 영어학원에선 흑인 교사 기피 여전
#故 루이스 의원, 23세 때 연설에서
 “멈출 수도 참을 수도 없다” 주장
#“조금 더 기다리면 차별 사라진다”
 그 말 자체가 평등 못 주겠다는 뜻

사건의 발단이 된 고교생들의 행동이 “아직 몰라서” 그랬을 뿐인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블랙페이스 문제’가 제기된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충분한 교육과 홍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특히 2018년 당시 “인종차별적인 행동인 줄 몰라서” 눈 찢기를 했던 멕시코인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나라에서 여전히 블랙페이스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모순을 떠나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번에 오취리의 지적을 비난한 의견 중에 꽤 자주 눈에 띄던 주장이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법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블랙페이스를 하지 말자는 의견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도 아닌데 한국인들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지적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주장은 틀린 주장일 뿐 아니라, 인종차별과 관련해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주장이다.

이는 지난 달 17일에 세상을 떠난 미국 하원의원 존 루이스(John Lewis, 1940~2020년)와 20세기 중반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작가인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 언급해서 잘 알려진, 전 세계에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익히 들어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존 루이스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인권운동을 했던 세대 중에서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한다. 1940년에 태어난 루이스는 20대에 킹 목사와 함께 각종 인권시위 현장을 누볐다. 우리에게는 영화 ‘셀마(Selma)’로 잘 알려진 1965년 앨라배마 주에서 있었던 인권행진 때 킹 목사와 함께 평화시위를 하다가 백인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었던 인물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사진 가운데가 킹 목사, 맨 오른 쪽이 존 루이스>

킹 목사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그를 보좌하던 루이스가 인권운동가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1963년 워싱턴 D.C.에서 그가 행한 연설이다. 킹 목사의 유명한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이 있었던 바로 그 행사에서 킹 목사와 함께 연단에 올랐던 사람들 중 가장 젊은, 23세의 연사였다. (이 행사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도 등장한다)

그의 연설장면과 그 때를 회고하는 모습은 이곳에서 볼 수 있고, 그의 연설 전문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의 연설 일부를 소개해보려 한다.

우리에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인내할 수 없다고 오래도록 이야기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점진적으로 얻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해방되고 싶습니다!
To those who have said, “Be patient and wait,” we have long said that we cannot be patient. We do not want our freedom gradually, but we want to be free now!

우리는 지쳤습니다. 우리는 경찰들에게 맞는데 지쳤고, 우리 흑인들이 계속해서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는 데 지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내심을 가지라”고 소리 지릅니다. 얼마나 더 인내심을 가지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지금 당장 원합니다. 우리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형제애와 진정한 평화를 얻는 대가가 감옥에 가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We are tired. We are tired of being beaten by policemen. We are tired of seeing our people locked up in jail over and over again. And then you holler, “Be patient.” How long can we be patient? We want our freedom and we want it now. We do not want to go to jail. But we will go to jail if this is the price we must pay for love, brotherhood, and true peace.

흑인들이 경찰들에게 맞고, 감옥에 가는 이야기는 1963년이나 2020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미국 사회의 오늘날 비극이다.

저는 여러분께 지금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위대한 혁명에 동참하라고 호소합니다. 진정한 자유가 올 때까지, 1776년(에 시작한 미국)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미국의 각 도시와 마을, 고장에서 참여하여 길거리로 나서십시오. 우리는 이 혁명에 참여하고 이 혁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미시시피의 삼각주에서, 남서부 조지아에서, 앨라배마 주 흑인거주지에서, (뉴욕의) 할렘과 시카고,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흑인들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해 행진에 나섭니다.
I appeal to all of you to get into this great revolution that is sweeping this nation. Get in and stay in the streets of every city, every village and hamlet of this nation until true freedom comes, until the revolution of 1776 is complete. We must get in this revolution and complete the revolution. For in the Delta in Mississippi, in southwest Georgia, in the Black Belt of Alabama, in Harlem, in Chicago, Detroit, Philadelphia, and all over this nation, the black masses are on the march for jobs and freedom.

사람들은 속도를 늦추고, 멈추라고 합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겠습니다. 이스트랜드와 바넷, 월레스, 서몬드 같은 정치인들이 보낸 병력도 이 혁명을 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의회에서 의미 있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때는 행진을 워싱턴에서만 하지 않고 남부로 행진해 갈 것입니다. 잭슨의 거리에서, 댄빌의 거리에서, 캠브리지와 버밍햄의 길거리에서 행진할 것입니다.
They’re talking about slow down and stop. We will not stop. All of the forces of Eastland, Barnett, Wallace, and Thurmond will not stop this revolution. If we do not get meaningful legislation out of this Congress, the time will come when we will not confine our marching to Washington. We will march through the South; through the streets of Jackson, through the streets of Danville, through the streets of Cambridge, through the streets of Birmingham.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보여준 사랑의 정신으로, 존엄성의 정신으로 행진할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 우리의 의지, 우리의 숫자가 가진 힘으로 (흑백이) 분리된 남부를 천개의 조각으로 쪼개어 하나님과 민주주의의 모습으로 다시 재조립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우리는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내할 수도 없고, 인내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But we will march with the spirit of love and with the spirit of dignity that we have shown here today. By the force of our demands, our determination, and our numbers, we shall splinter the segregated South into a thousand pieces and put them together in the image of God and democracy. We must say: “Wake up America! Wake up!” For we cannot stop, and we will not and cannot be patient.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제임스 볼드윈(1924~1987년)은 1900년대 중반 미국의 인권운동을 대표한 인물인 마틴 루터 킹(1929~1968년), 말콤 X(1925~1965년)과 동시대 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과는 많이 구별되는 사람이다.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거리에서 앞장서고 조직을 이끌었던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글과 토론, 대담을 통해 흑인들의 입장을 통렬하게 전달한 저자라는 점에서 그렇고, 특히 당시 보기 드물게 ‘게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글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양아버지가 엄격한 기독교 목사였던 볼드윈은 뉴욕의 할렘에서 자라면서 14세 때부터 교회에서 설교를 했지만, 17세에 종교를 버리고 교회와 아버지 밑을 떠났다. 24세가 되던 1948년에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철저하게 차별적인 미국과 달리, 다른 문화권에서 흑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목격한다.

유럽에 머물면서 저술활동을 하던 제임스 볼드윈은 미국에서 흑인인권운동이 본격화된 1960년대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저술활동과 대담, 토론 등으로 미국의 지식인 사회에 흑인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보수 논평가 윌리엄 F. 버클리와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했던 토론은 가히 전설적이다. (이 대결에서 볼드윈은 흑인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을 펼친 버클리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아래는 볼드윈이 말년에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미국 PBS가 그의 사후에 방송했던 내용의 일부다. 짧은 길이지만 흑인들의 주장에 주류 백인사회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거나 “사회는 그렇게 빨리 바뀌지 못한다”는 대응을 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다.

제가 잠자코 뭘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저는 60여 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앞으로 60년을 더 살지는 못합니다. 당신들은 제게 항상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말하죠.
What is it that you wanted me to reconcile myself to? I was born here more than 60 years ago. I’m not going to live another 60 years. You always told me that it’s going to take time.

제 아버지의 시간을 가져갔고, 제 어머니의 시간을 가져갔습니다. 제 삼촌의 시간, 형과 동생의 시간, 제 조카들의 시간도 가져갔습니다. 진보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까?
It’s taken my father’s time, my mother’s time, my uncle’s time, my brothers’ and my sisters’ time, my nieces and my nephew’s time. How much time do you want for your progress?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진보를 기다렸고, 그래도 얻지 못했는데, 그리고 자신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냐는 볼드윈의 말은 가슴절절하다. 조금 더 기다리면 앞으로 차별이 사라진다는 말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평등을 주지 않겠다는 말이고, 그래서 그 자체로 차별적인 말이다.
볼드윈이 이 말을 한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변함없는 상황은, 볼드윈이 왜 기다리기를 거부하고 인내를 거부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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