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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정 칼럼] 아동학대가 갈라놓은 두 운명…테러리스트냐 총리냐

by | 2020년 8월 7일 | 국제, 정책


정부가 최근 아동학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은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 42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대부분 부모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였다.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사회관계 부처가 발표한 대책 중에는 ▲민법 제915조에 명시된 ‘자녀 징계권’ 삭제 ▲학대 전담 공무원에 의해 피해 아동-부모를 격리하는 ‘즉각 분리제도’ 도입 ▲아동보호 관련기관들의 ‘위기 아동 정보’ 공유 등이 포함됐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 징계권, 즉 자녀 체벌은 오랫동안 치외법권 지대였다. 훈육,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때리는 걸 당연시했다. 50대 이상 세대 가운데 매 맞고 자란 사람은 무척 많다. “예쁜 자식에겐 매 석 대, 미운 자식에겐 떡 세 개”라는 가당치 않은 말과 함께 체벌을 받아야 했다. 가정 폭력은 학교, 군대, 직장에까지 이어지곤 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는 독버섯처럼 번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꽃으로라도 때리지 마라”는 시대다. ‘사랑의 매’라며 체벌권을 휘두르다 신고를 당한 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중 상당수가 가장 미워하는 대상으로 “매를 때리는 부모”를 꼽을 정도다. 가정폭력, 아동학대는 청소년들의 가출, 학업중단, 비행(非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정부가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62년 만에 삭제하기로 한 이유다.
<피렌체의 식탁>은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의 글을 싣는다. 하수정 필자는 북유럽의 두 인물 사례를 바탕으로 아동학대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에서 집단학살극을 벌인 브레이비크, 스웨덴에서 총리가 된 뢰뷔옌의 사례를 통해서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운명이 180도로 바뀌었다는 거다. [편집자]

#총기 난사로 77명 죽인 브레이비크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학대와 방임
#웃지도 울지도 않는 인격장애 초래
  ‘즉시 분리’ 진단 받았지만 집행 안돼
#양육 가정 출신 뢰뷔옌 스웨덴 총리
  “사회의 개입 덕에 기회를 얻었다”
#유기, 방임, 정서적 폭력도 아동학대
  학대 대물림 3대째에 가장 큰 피해
  정보 공유, DB 구축으로 예방해야

인터넷 포털에 뜬 아동학대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안데쉬 베링 브레이비크(Anders Behring Breivik).
2011년 여름, 노르웨이 오슬로 정부청사에 차량폭탄테러를 감행하고, 곧바로 당시 집권당이던 노동당 청년 캠프가 진행 중이던 우퇴이야 섬에 찾아가 10대 청소년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가해 무려 77명의 목숨을 빼앗고 319명에게 중상을 입힌 살인마다.

사건 발생 초기엔 무장세력이 테러를 주동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다수였다. 그러나 범인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브레이비크는 금발에 파란 눈, 브라이틀링 시계에 라코스테 티셔츠를 즐겨 입고 샤넬의 에고이스트 향수를 뿌리는 노르웨이 남성이었다. 단독범이었다.

브레이비크는 체포된 후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좌파가 다문화주의를 채택해 순수 노르웨이인에 대한 복지를 포기하고, 페미니즘을 인정해 백인 남성을 차별한다’고 분노감을 드러냈다. 재판정에서 나치 경례로 인사를 대신한 그는 “유럽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운동”이라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공판 과정에서 희생자에 대해 어떤 후회나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청년 CEO처럼 보이는 브레이비크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 아동 학대와 방임

브레이비크는 1979년 2월에 태어났다. 아빠는 경제학자 출신 외교관, 엄마는 간호조무사였다. 부모는 그가 한 살도 되기 전인 1979년 말 별거에 들어가 이듬해 법적 이혼 절차에 들어갔고 완전히 따로 살았다.
엄마는 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낙태를 원했으나 당시 법적으로 낙태가 가능한 시점인 3개월이 지나 어쩔 수 없이 출산했다. 아들을 낳은 후에도 아이를 자기 삶의 걸림돌이라 여겼다. 모유 수유도 일찍 끊었다.

아빠는 런던과 오슬로를 오가며 지냈는데 별거 전에도 부부는 자주 싸웠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밤새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도 부모가 달래는 기척이 없었다 했다.
엄마는 브레이비크가 두 살 때 간호사 일을 다시 하겠다며 양육가정에 아이를 맡기려 했다. 당시 상담과정에서 엄마는 “아이가 지나치게 엉겨 붙어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다. 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

브레이비크가 네 살 되던 해, 엄마는 아들을 아동청소년심리센터(SSBU)에 보내 검사를 받도록 했다. 여덟 명의 전문가가 한 달간 살펴본 후 작성한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이에게서 정서반응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는 웬만해선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끔 억지웃음이 관찰됐는데 그건 감정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적응 반응 같은 것이라고 했다. 친구와 어울리려는 욕구도 없고 정리정돈에 매우 집착했다. 어떤 장난감을 주어도 반응하지 않았고, 어휘력이 부족했는데 특히 감정이나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를 몰랐다고 한다.

엄마는 의사에게 “아들의 천성이 심술궂고 사악하며 나를 망치려고 태어난 아이 같다”고 말했다. 아이는 네 살이 되도록 음식 대신 젖병에 주스를 담아 빨아먹기를 고집했고 엄마 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브레이비크는 이런 집착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의 담당 의사는 ‘엄마가 일찍부터 아이의 요구나 정서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집안을 어지럽힐 경우 지나치게 꾸짖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으나 정서적 학대와 방임이 극심했을 거란 얘기였다. 병원에서 집중치료를 받는 동안 브레이비크는 조금씩 나아졌다. 학습능력이 뛰어나 점차 성취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칭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담당 의사가 쓴 보고서에는 “가능성이 많은 애지만 모친의 양육방식이 염려스럽다”고 적혀 있다. 엄마에게선 경계성 인격 장애, 우울증이 관찰됐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공공연히 어린 아들에게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보기에 엄마가 아이를 분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정서적 학대 사례였다. 그래서 ‘아이와 엄마를 즉시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보고서를 냈다. 그럼에도 아동복지국에선 모자(母子) 격리 같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83년 아동청소년심리센터는 아이 아빠에게 ‘아들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빠는 변호사를 통해 양육권 소송을 진행했으나 재판 전 조정 단계에서 기각되었다. 복지국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아이가 유치원에서 아무 문제가 없으며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거였다.
이후 아동청소년심리센터는 재차 아동복지국에 편지를 보내 “아이와 엄마를 당장 분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비뚤어진 인격으로 자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엄마는 담당 심리학자를 고소했다.

결국 최종 결정 전에 사회복지사가 월 1회씩 방문 점검을 하는 조건으로 엄마의 양육권이 유지됐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방문은 세 차례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보기에 아이는 차분하고 상냥하고 예의 발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고 싶은, 불쌍한 엄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학대 대물림 3대째에 가장 큰 피해

브레이비크의 엄마인 벤케 베링의 어린 시절도 행복하지 않았다. 브레이비크의 외할머니, 즉 벤케의 엄마는 딸을 낳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감염으로 소아마비를 앓게 됐다. 벤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져 2년 후에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벤케가 8세가 되던 해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벤케는 하반신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하는 엄마를 보살펴야 했다. 당시 외진 곳에 살던 벤케는 그 역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였음에도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벤케의 엄마는 편집증, 피해망상, 환각 증세가 있었으며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며 딸을 탓하고 꾸짖었다. 벤케는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벤케는 17세에 가출했고 다시는 가족과 연락하지 않았다. 벤케는 간호사로 일하며 혼인관계 없이 아이를 낳아 혼자 기르다 34세에 옌스 브레이비크를 만나 아들을 낳았다.

브레이비크의 가정사를 이렇게 길게 소개한 것은 2011년 우퇴야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브레이비크와 엄마(벤케)의 분리를 주장했던 해당 의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때 브레이비크가 가족과 분리되었다면 다른 인격체로 발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동복지국이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아서,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서 결국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까지 했다.

해당 의사는 ‘3세대 가설’을 주장했다. 아동 학대가 3대째 이어지면 손주 때 가장 큰 피해가 나타난다는 거다. 누군가 부모 학대를 받으며 자랐을 경우, 자신의 자녀와도 좋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고, 이런 상황이 3대째 계속되면 때때로 심각한 폭력성이나 중대한 인격 장애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브레이비크는 외할머니, 어머니를 거쳐 3대째 학대를 당했고, 부자(父子) 관계도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 브레이비크는 오슬로에 있는 아빠(옌스)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왕궁 근처, 고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소위 ‘물 좋은 동네’에서 자랐고, 노르웨이 왕세자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이웃과 동창의 증언에 따르면 종종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고, 또래와 어울리지 못해 친구가 없었다.

브레이비크는 여섯 살이 되어서야 아빠를 처음 만났다. 이후 규칙적으로 아빠를 방문했지만 그렇다고 부자간에 각별한 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의무적으로 만났다. 청소년기에는 반항적 기질을 갖고 힙합에 빠졌다. 허가 받지 않은 곳에 그라피티를 그렸다가 두어 차례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후 아빠는 아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1995년 브레이비크가 16세일 무렵부터 부자는 서로 왕래조차 하지 않았다. 영유아, 청소년 시절을 통틀어 주변에 그를 사랑해주고 인정해 준 사람이 없었다.

#유기, 방임, 정서적 폭력도 아동학대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학교나 다른 기관으로부터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보고가 있으면 곧바로 사회복지사가 해당 가정을 방문한다. 조금이라도 폭력, 정서적 학대가 존재하거나 심지어 아동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아이를 데려간다. 지자체 관할 아래 대부분 양육 가정에 맡겨 자라게 한다.

한국의 아동복지법 제2조 3항은 아동학대를 이렇게 규정한다.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이다. 여기에 더해 유기와 방임 역시 학대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아동 학대를 신체적 폭력 중심으로 다뤄왔지만 브레이비크의 경우를 보면 정서적 학대만으로도 심각한 인격 장애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성적 폭력이나 방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하고 발견할 수 있을지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자녀 체벌을 포함한 가정 폭력을 ‘집안 일’로 여겨왔다. 그 때문에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웠다. 민법 915조에 명시된 ‘자녀 징계권’의 폐지와 ‘즉각 분리 제도’ 실시를 계기로 한 단계 높은 아동 보호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전체 아동의 0.5% 가 공권력에 의해 부모와 분리된 후 양육가정이나 기관에서 자라고 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대형병원의 놀이치료사로 수년 간 일한 친구의 말을 들어봤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경우 상당수 아이가 가정 안에서 정서적 학대나 방임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는 자신이 당한 일이나 부모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때때로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병원을 찾아온 부모 중에는 유명인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다수여서 상담 전까지 그런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상상조차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 발생하는 아동 학대는 현재 시스템으론 인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필자는 가정 바깥에서 알아차리기 힘든 각종 학대 사례를 관계기관들이 제때 인지하려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의 행동이나 반응을 보고 역추적 해야 한다. 아동 학대를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교육 관련 기관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선 지역 아동심리센터나 상담기구 등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쉽게 찾아가 가족 전체가 상담을 받게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세대 대물림으로 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아동 학대를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 경찰, 교육기관의 위기아동 정보공유 역시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신질환자인가, 정상인인가

공판 과정에서 브레이비크의 변호사는 감형을 위해 “그가 온전하지 않은 정신상태에서 저지른 일이고 실제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질환이 인정되면 복역 기간에 감옥이 아닌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하지만 브레이비크는 자신을 정신병자로 보는 것은 인격모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범죄심리학자(법원 지정)가 주도해 작성한 1차 보고서에선 브레이비크가 편집증, 조현병 등 정신장애증상을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유족의 재감정 요청에 따라 진행한 2차 보고서에선 브레이비크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다만 반사회적 인격장애, 자기애적 인격장애,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브레이비크는 결국 병원이 아닌 감옥으로 갔다. 노르웨이 대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뜻밖에도 브레이비크 역시 이 판단을 반겼다. 자신의 행위가 어느 미치광이의 짓으로 여겨지는 것이야말로 그에겐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브레이비크는 충동이나 욕망에 의해 감정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테러를 계획하며 자금을 모으고, 폭탄 제조를 위해 유령회사를 세워 화학약품을 준비하기까지 9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영국의 범죄 심리학자인 이안 스테판 박사는 “자기통제를 극도로 훈련한 사람으로서 내부의 분노를 천천히 불태워 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복수극을 펼친 것”이라고 평했다. 한 마디로 사이코 패스라는 얘기다.

브레이비크는 최근 노르웨이의 법정 최고형인 21년에 더해 예방구금형을 받았다. 당시 32세이던 브레이비크가 최고형을 다 살아도 감옥에서 나오면 53세다. 노르웨이 사회는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인물에게 21년은 너무 짧다고 반발했다. ‘절대 사회에 복귀시켜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 법원은 예방구금형을 추가로 선고해 국민 정서를 달랬다. 2001년 노르웨이 법원이 도입한 예방구금은 형 만료 이후에도 수감자가 여전히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형을 5년씩 연장하게 된다. 이를 적용하면 이론상 종신형이 가능하다. 브레이비크에겐 외부 접촉도 편지 외에는 모두 차단됐다. 다른 재소자와도 격리 수감 중이다. 브레이비크의 모친(벤케 베링)은 201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 총리도 양육 가정 출신

“어머니가 나를 보살필 수 없었을 때, 사회가 개입했다.”
현재 스웨덴 총리인 스테판 뢰뷔옌(Stefan Löfven)은 1957년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고아원에 맡겨져 양육가정에서 자랐다.
양아버지는 벌목 작업자, 양어머니는 재가(在家) 복지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있었고 뢰뷔옌은 이들과 함께 자랐다. 양부모는 열정적인 사회민주당 지지자이자 당원이었다. 식탁에서나 거실에서나 아이들과 자주 토론하고 대화를 나눴다.
뢰뷔옌은 양부모의 생각을 자연스레 물려받았다. 아이스하키를 좋아하고 사투리 흉내를 잘 내서 사람들을 곧잘 웃기곤 했다. 그는 13세에 지역 청년사민당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의장(조직 책임자)이 되었다.

그의 생모는 상황이 나아지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뢰뷔옌은 생모와 편지만 몇 차례 주고받다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서로 처음 만났다. 생모는 어린 시절 그를 키우지 못한 데 큰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뢰뷔옌은 “아이를 떠나보낸 것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결심이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고 한다. 후회도 원망도 없다고 했다.

뢰뷔옌은 어릴 때부터 공동체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남을 돕는 걸 좋아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려 했다. 하지만 복지사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됐고 자신의 성향과도 맞지 않았다. 대학을 그만둔 그는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옴부즈맨(1995년)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아나가 금속노조 대변인, 부의장(2001년), 의장(2005년)이 됐다. 뢰뷔옌은 이후 사민당에 들어가 다양한 위치에서 정치적 능력을 드러내 2012년 당 대표에 취임했다.
사민당이 정권을 잡자 2014년엔 마침내 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뢰뷔옌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그를 “가정적이며 좋은 친구이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뢰뷔옌 총리는 2018년 아동권을 주제로 열린 유엔 고위급 회담에서 연설자로 나서 이례적으로 자신의 개인사를 밝혔다.
“우리는 오랜 시간 실패를 거듭해왔다. 폭력적인 가정에 아이를 방치하고 좋지 않은 양육 가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꿈꿔보지 못한 미래를 주기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 아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보살필 수 없었을 때, 사회가 개입했다. 나는 사랑이 넘치는 양육가정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고, 오늘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두 사람의 인생을 가른 것은 타고난 유전자나 경제적 환경이 아니라, 자신들을 사랑하고 지지해준 존재의 유무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불우했다고 모두 불행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다만 어릴 때 학대당한 경험이 무서운 범죄로 발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정서적 학대도 큰 상처를 남긴다. 브레이비크를 모친에게서 분리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청했던 노르웨이 아동청소년심리센터의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아동복지국은 가장 어렵고도 복잡한 일을 맡고 있지만, 갓 대학을 마쳤거나 경험이 부족한 복지사를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안에는 브레이비크 같은 존재가 없을까? 인터넷상에서 포털뉴스 댓글을 보고 있자면 소수자 혐오가 도를 넘어섰다. 또한 지역, 이념, 성(性), 연령 등 갖가지 차이를 찾아내 상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언론 매체에선 활자로 읽기에도 끔찍한 아동 학대 뉴스를 잇달아 내보낸다.
한국 사회도 이젠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줄 양육 환경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모든 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미래다.


하수정 필자

북유럽연구소 소장. 한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공부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서울시장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라곰: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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