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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인터뷰] 더 많은 ‘백종원’을 만드는 게 대통령의 몫…각계 인재를 정치권이 그만 망가뜨려야

by | 2020년 6월 25일 | 정책, 정치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55세, 3선)이 12년 만에 여의도 정가로 돌아왔다. <피렌체의 식탁>은 지난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90분 동안 그를 만났다. 10년의 정치적 휴지기를 거친 이광재 의원의 내공은 몇 년 전과 크게 달랐다. 그는 30대 후반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40대에 국회의원, 45세에 최연소 도지사(2010년 6월)가 됐으나 6개월 만에 ‘박연차 게이트’ 관련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지사직을 잃었다. 그에겐 크나큰 시련의 세월이었다.

이광재 의원은 그 사이에도 각종 연구·집필 활동을 하는 한편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재단법인)의 출범을 주도하고 국내외 리더, 특히 중국의 차기 리더들과 깊은 교분을 맺어왔다. 90분 인터뷰 내내 묻는 질문도 많았지만, 그에 답하는 내용도 평범한 정치인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의원의 답변에선 팍팍해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소득 사회보다 저비용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소신을 줄곧 느낄 수 있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정치

#백종원, 방탄소년단, 봉준호처럼
  각 영역의 대통령이 많이 나와야
#임금소득 아닌 가처분소득 관점서
  소득주도성장 접근방식 재고 필요

-3선 의원으로서 12년 만에 여의도에 귀환했다. 의원실 홈페이지를 보니 “원대한 꿈의 주인공이 되는 도시”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원대한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혹시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나?

▲대권은 아니다. 30대에는 정도전처럼, 40대에는 이성계처럼 살겠다, 이런 호기로운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우리 정치인들이 GDP를 거의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살아 왔는데,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원주에서 중소도시 삶의 모델을 만들어 보려 한다. 일자리, 주거, 교육, 의료, 문화 5종 세트의 저비용 도시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향후 어떤 의정 활동을 구상하는가? 이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소명(calling)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가(statemen)가 되고 싶다. 권력이나 자리, 명예 같은 세속적인 성공을 탐하는 정치인(politician), 정치꾼이 아니라 생각의 힘을 만들고 생각의 힘을 전파하는, 조금은 이상적인 그런 사람이 되려 한다.
정치 자체가 허망함과 위대함의 그 사이에 있다. 마치 시지프스 신화에서처럼 바위를 계속 언덕 위로 굴려 위대함을 향해 올라가려 하지만, 계속 허망함으로 떨어지는 그런 거다. 그래도 그 위대함을 향해 도전해보는 게 정치가의 역할 같다.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의원공부모임인 ‘우후죽순’을 만들었다. 또한 여권 잠룡들이 대거 참여하는 당내 지방자치 연구 모임인 ‘포럼 자치와 균형’의 결성을 주도했다. 일각에선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한 남자만 사랑한 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이다. 두 모임을 만든 건 지난 10년간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이 나갈 방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우후죽순’ 모임은 미래, 경제의 문제에 집중하려 한다. 자치와 균형도 중요한 문제다. 이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도시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왔다. 중소도시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100세 시대에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올릴 수 있다. 앞으로 지방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다.

-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를 열어 이해찬 대표의 후임자를 뽑는다. 당 대표 출마 예정자인 김부겸 전 의원이나 홍영표, 우원식 의원 등은 당권·대권 분리를 주장한다. 일종의 반(反) 이낙연 연합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정치에서 뭘 반대해서 잘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거 같다. 나는 정치를 기록경기라고 생각한다. 수영, 육상 같은 기록경기처럼 정치도 자기가 잘하면 된다. 과거에는 격투기 성격이 강했다. 1노3김 시대에는 조직선거가 많아선지 합종연횡이 많았다.
요즘엔 워낙 미디어가 발달돼 정치인이 자기 메시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욕을 많이 먹으면서 당선됐던 것도 ‘아메리칸 퍼스트’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힐러리는 학벌도 좋고 경험도 많은 사람인데 자기만의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국 정치에서도 점점 더 자기 브랜드, 자기 메시지를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화제다. 차기 대선 후보로 누가 적당하냐는 질문에 “백종원이면 어떨까요” 했다는데, 이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나?

▲백종원은 음식에 통달한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많은 중소영세 상인들의 대통령이다. 방탄소년단은 아이돌계의 대통령, 봉준호 감독은 영화계의 대통령인 것처럼 각 분야에서 더 많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각자 영역에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대통령들이 많이 나오는 게 좋다. 정치권에서 이런 분들을 끌어들여서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된다.
기업인들은 눈에 보이는 걸 모은다. 돈을 1억이든 2억이든 모으면 된다. 그러나 정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이 나눠 줘야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많이 모아서 어느 순간에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되고, 양이 질로 전환되면서 500조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런데 정치인은 어느 순간에 흔적도 없이 대중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영역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더 많은 백종원을 만들어 주는 게 대통령의 몫이다.

-이 의원에겐 ‘노무현의 남자’라는 닉네임이 붙어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비교할 때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같은 점은 진보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노 대통령은 소수 권력이었고, 지금은 확실하게 안정된 권력이다. 또 다른 점은 노 대통령은 약간 이상을 지향하는 현실주의자, 문 대통령은 현실을 중요시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리더다.
노 대통령은 약간 거칠고 투박했지만 과감한 편이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10개를 만든다든지,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 받고 평택 미군기지를 만든다든지, 한미 FTA를 추진한다든지 어마어마한 논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차분하게 한 단계 한 단계 전진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상에 치우쳐 급속하게 추진한 정책들이 있었다.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은 언젠가 도입해야 할 과제였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위기를 불렀다는 평가가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산업구조와 글로벌 경쟁구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경기하강 국면에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한 것이었다. 두 개 중에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최저임금을 16.6% 올린 이후로 평균 인상률은 연 8%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번에 16.4%를 올리니 과도하다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약간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복기해보면, 학자 출신 중심으로 이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더 본질적으론 소득주도성장의 접근 방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것을 구상할 때 임금소득을 중심으로 생각한 거 같다. 그러나 임금소득은 회사에서 이익을 내지 않으면 줄 수 없는 거다. 이건 정부가 회사 측에 권고 정도만 할 수 있는 민간의 영역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소득이 아니라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쪽으로 집중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거다. 예를 들어 집값, 교육비, 교통비, 통신비와 같은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 좋다. 임금을 아무리 올려봐야 생활비가 이렇게 올라가면 국민들 입장에선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주52시간제 계도기간을 두었는데 내년에 이것도 사실상 연장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계 금융회사나 벤처기업 종사자는 주52시간제가 힘들 수밖에 없다.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미래통합당 김세연 전 의원은 2050년에 주 20시간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술혁명이 본격화되면 국민들이 어떻게 소득을 확보할지 연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주40시간 일하는데, 실제로 노동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구글 같은 곳에서 화이트칼라의 사례를 분석하니 출근 후 집중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하루 3시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출퇴근을 하느라 1~2시간 걸리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된다. 스마트 오피스가 생기고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일하는 효율이 훨씬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국민소득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연동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이 진화하고 노동시간은 줄어들면, 플랫폼 기업들이 다 이익을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부분을 경계해야지,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소득구조와 함께 저비용으로 살아나갈 방식을 고민하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진보진영이 민주화와 복지사회를 위해 기여한 바가 많지만 포퓰리즘,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이 많다. 극복방안을 말해 달라.

▲포퓰리즘 자체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닌데, 포퓰리즘만으로 가는 게 문제다. 요즘 보수·진보가 모두 문제다. 예를 들어 대학생 반값 등록금은 보수 쪽에서 시작했다. 한전이 전기료를 올려야 하는 상황인데도, 이명박 정부 때 일반회계로 한전의 손실분을 보전해줬다. 이렇듯 보수도 자기 역할을 못하고 표를 따라 움직였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인상 깊은 발언을 남겼다. “정치인의 성공이란 현실에서도 승자가 되는 거지만, 역사에서도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역사에서 승자가 되는 길을 자꾸 생각해야만 눈앞의 표만 쫓아가는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주역>을 보면 많고 적음의 균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대중의 마음만을 쫓아가는 정치보다는 무엇이 더 정확한 솔루션인가를 찾으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대중심리에는 묘한 부분이 있다.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했는데, 막상 전쟁을 끝내고 나니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주장한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줬다. 이렇듯 유권자의 마음엔 상당히 냉정한 부분이 있다.

-민주당에서 친노-친문 그룹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향후 친노-친문 그룹의 진화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친노, 친문이 같이 하는 일도 많겠지만 분화하는 일도 많을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설계할 때 기획팀장으로서 대한민국 국정과제에 대해 고민했었다. 동북아 균형자론, 디지털 경제, 정부 혁신, 지역균형발전 등 네 가지가 있다. 특히 디지털경제의 리더가 되는 게 노 대통령의 꿈이었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는 생태주의와 관련해 유럽 책들을 많이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발전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셨다.
노 대통령이 구상했던 것들은 내가 정치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와 같다. 노 대통령은 현실 정치인이라기보다 사상가에 가까운 분이었다.
정부가 민간보다 유능하지 않으면 끌고 갈 수 없는 시대다. 어떻게 민간과 융합해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구상했던 네 가지 과제의 사상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이건 단순히 어떤 라인에 줄서기를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열어가는 지침을 만드는 일이다.

-재단법인 ‘여시재’ 창립을 전후로 이 의원의 정치적 거취를 놓고 여러 가지 설(說)과 루머가 나돌았다. 아무래도 좌우를 넘나드는 광폭 행보 때문인 것 같다. 특정 인사의 대권 구상과 맞물려 있다는 항간의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나?

▲여시재란 싱크탱크를 만들 때 그래도 여야가 함께 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진보적이니까 보수 성향 인사들도 모셨다. 여시재를 놓고서 처음에는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캠프’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홍석현 캠프’, 그 다음에는 ‘안희정 캠프’라고 하더라. 시간이 흘러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걸로 결론 났다. 그러자 ‘결국엔 너를 위한 거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모두 다 루머일 뿐이다.
중국 진나라가 강성해진 걸 두고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라 한다. 작은 물줄기도 다 받아들여야 강과 바다 같은 큰 물줄기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싱크탱크 역시 여야가 미래를 향해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회색분자’란 소리를 듣곤 하는데, 그럼 회색분자가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한다.

◇미래비전, 정책

#삶의 질 높은 저비용 사회 만들자
  일자리·주거·교육·의료·문화 중요
#한국이 ‘아시아 넘버원’ 될 것 기대
  교육은 기술력-경제력-국력의 뿌리

-인류는 장차 100억 인구, 100세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삼아 기후변화 위기, 국제정세 불안, 불평등 위기 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첫째, 미중 간의 세기적인 대결은 앞으로 세계사의 가장 결정적 변수가 될 거라 본다. 둘째는 디지털혁명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거다. 셋째, 기후변화는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냥 뭐 되는대로 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부족과 물 부족, 빈번한 재난과 질병의 창궐을 경고했다. 또 하나가 수명 100세 시대의 개막이다. 이 네 가지를 근본적으로 연구해야만 우리에게 살 길이 생긴다.
네 가지 문제 해결의 철학적인 토대가 뭘까. GDP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저비용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다. 궁극적으로 자유, 평등 가치로부터 건강, 행복 가치로 옮겨 가야 하지 않을까. 건강이란 곧 조화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조화를 어떻게 건강하게 이룰 것이냐 고민하게 된다.
하버드대학에서 지난 70년간 연구한 결과, 행복은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대도시에서 또 다시 창궐한다면?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그래서 혁신 역량이 있는 중소도시로 눈을 돌려야 한다. 중소도시의 발전은 곧 이웃의 발견이다. 좋은 이웃을 탄생시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를 꿈꿔야 한다.

-대한민국은 2050년에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사회복지 재정비, 소득불균형 완화 등이 필요하다. 이 의원은 혹시 2050 프로젝트를 구상한 적이 있나?

▲적어도 새로운 문명의 주인공이 미국은 아닌 거 같고, 유럽은 틀린 거 같고, 아시아 어딘가에서 나올 것 같은데, 그게 어딘지는 모르겠다고 자크 아탈리 전 EBRD(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가 5년쯤 전에 얘기한 바 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도 얼마 전 자신의 기고문에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동양과 서양을 융합하는 자가 세계의 주인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한국이 적어도 ‘아시아 넘버원’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전제는 남북 간에 통일이 아니라 협력 관계를 잘 구축하는 거다. 세계 흥망사 연구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폴 케네디가 말했듯 국력은 경제력이고,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나오는데, 이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요컨대 세계 최고의 기술을 낼만한 교육혁명을 이룰 수 있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렸다.
교육혁명이란 ‘외우는 대한민국’에서 ‘질문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서 결판난다.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가 교육 분야의 넘버원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한국형 뉴딜 프로젝트에서 가장 세게 밀고 나가는 부분이다. 디지털혁명이 오지 않았다면 전 세계 최고의 리소스를 갖춘 미국 일류대학들을 절대 못 이긴다,
또한 기술은 30년간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제도는 나라를 100년간 부강하게 만들어준다. 무슨 제도여야 할까? 싱가포르, 네덜란드, 이스라엘 같은 선진 제도인데, 세계 일류들이 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 국민들은 일하는 시간도, 노는 시간도 전 세계 1등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인데, 이것이 결국은 세계 일류와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기반이다.
예컨대 한류(韓流)는 왜 성공했을까. 우리 세대는 학교 다닐 때 영어 배운다고 팝송을 듣고, 일본 만화, 홍콩 영화를 봤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취직을 할 수 없어서 문화 쪽으로 많이 갔다. 거기서 저항의식이 꽃핀 문화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들이 낳은 자녀들은 세계화의 세례를 받았다.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 같은 스타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역사상 가장 경쟁력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대한민국, 일류와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2050년쯤 아시아 40억 시장의 넘버원이 될 수 있다.

-교육혁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론을 생각해 봤는지.

▲다음,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가 ‘국민 참고서’인 시대다. 그러나 검색해서 들어가면 블로그 기반의 지식이라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꾸 구글 검색으로 넘어간다. 네이버, 다음을 옛날 동아전과 수준으로부터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로는 우리가 대학교에서 하버드대학 논문을 검색하면 비용이 싼 데 집에서 검색하면 너무 비싸다. 이걸 어떻게 싸게 해주느냐다. 셋째,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디지털라이징(digitalizing)이다. 미국 국회도서관을 디지털라이징 하는데 8년쯤 걸렸다. 이 때 어떻게 검색을 쉽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여기서 검색엔진인 야후, 구글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모든 도서관 자료들을 디지털라이징 하고 AI(인공지능)로 검색할 수 있게 만드는데 대략 1조원이 든다고 추정한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교육을 해본 선생님들이 지적한 최대 문제점이 저작권이다. 교육 자료를 만들려고 하면 다 저작권에 걸린다는 거다. 문화체육관광부, EBS, KBS가 갖고 있는 모든 동영상의 지적재산권들을 통합해 기본 리소스를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
넷째는 코세라(Coursera)는 2012년 개설돼 스탠퍼드대, 예일대, KAIST 등 세계 100여 개 대학이 참여하고 개설 과목 450여 개, 수강생 500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무크(MOOC) 플랫폼이다. 코세라에는 학생 6000만 명, K-MOOC에는 100만 명이 들어가 공부하고 있다. 아마 올 연말쯤이면 우리 학생들이 어떤 과목들을 누가 잘 가르치는지 온라인으로 다 판단할 거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국내외 석학들 1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1인당 1억 원씩 주고 ‘석학 강의’를 계약해 한국 학생들은 다 공짜로 듣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면 어떨까? 코세라를 넘어서는 플랫폼과 시스템을 만들자는 얘기다.
우리 기업체들이 인재를 뽑을 때 대졸자를 뽑아놓고도 현장에서 금방 쓸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지금 대졸자 전공과 회사 업무 사이의 미스 매칭이 40%를 넘고 있다. 외국 애들은 4학년 때 다 인턴을 하고 오지만 우리는 그렇게 못하지 않는가.
스웨덴 방식으로 노벨상 미래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1만8000명이 참가하는 주니어 노벨프라이즈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노벨상의 국가인 스웨덴의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세계적인 석학들을 만난다. 한국도 20~30대부터 그런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10년, 20년 뒤엔 노벨상 후보감을 배출하지 않겠는가. 1년에 1조원을 써서라도 그런 세계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TV의 좋은 콘텐츠들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볼 수 있는 서비스 체제를 만들어 놓으면 해외에 콘텐츠를 팔기도 좋고,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지식을 흡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본다. 이른바 ‘디지털 집현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식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고, 사교육비도 확 줄이게 해줄 거다.

-4.15 총선 이후 정치권과 언론에서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기본소득, 전국민 고용보험, 최저생계비 가운데 이 의원은 어느 쪽을 선호하나? 그 이유는?

▲세 가지 모두 다 같이 검토돼야 한다. 디지털시대가 본격화하면 소득이 줄고 고용이 불안해진다. 기대수명이 100세인 시대인데, 고비용 사회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제의 취지 중 하나인 고용 안정성을 위해 노력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세금 낼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세금 쓸 사람만 늘어나고 있다.
만약 기본소득을 한 달에 50만원 준다 한들, 그걸로 괜찮을까? 막대한 재원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 생활비와 생활 패턴을 생각해봐야 한다. 보통 직장인들은 출퇴근을 위해 깨어 있는 시간에서 1.8시간을 쓴다. 차를 끌고 다니면 유지비도 상당하다. 직장과 주거가 가까운 ‘직주 근접 사회’를 만드는 게 실질적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을 얼마나 많이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보다는 참여소득이 맞을 거라고 본다.
마이데이터를 이용해 사회적 활동을 데이터화한 ‘사회적 도토리’ 제도를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어린 자녀를 어딘가에 맡기곤 돈을 지급한다. ‘자란다’라는 교육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다. 이것의 장점은 누군가 내 아이를 돌봐주면 내가 다른 집 애들의 영어 공부를 시켜주고, 이렇게 커뮤니티에서 사회적 도토리를 만들면서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누리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도토리, 참여소득 방식이 기본소득 방식보다 더 현실적일 거라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저비용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포스트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장 역점을 두려는 건 ▲주거복지+돌봄 ▲주거복지+의료 ▲주거복지+교육이다. 저비용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주거복지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수도권 부동산값 안정시키려면
①금융시장에서 과잉유동성 흡수
②1인가구 시대 맞게 공급 늘리고
③지방도시 잇는 철도망 확대해야
④유럽처럼 공공주택 비율 올려라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52%나 급등했다고 경실련이 발표했다. ‘진보정부는 부동산값도 못 잡는 무능한 정부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부동산 대책이 정부 의도와 달리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 된다. 하나는 유동성 과잉문제다. 작년에 부동산시장에 2100조가 들어갔다. 결국은 이 돈을 부동산이 아니라 주식이나 다른 쪽으로 선순환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는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표면상 통계로는 주택 공급율이 높은 걸로 나온다. 근데 1인당 GDP가 1만 달러였을 때 대부분 건설한 집이다. 지금은 3만 달러 시대 아닌가. 게다가 가구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4인 가족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1인 가구가 너무 많다. 전체 가구의 30%, 600만 가구나 된다. 결국 주택 공급을 많이 늘려야 한다. 그런데 수도권에서만 늘려봤자 소용이 없다. 32평짜리 아파트값이 10억을 넘나드는 데 이래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
지방도시 거주를 늘리려면 유럽처럼 과감하게 철도망을 확대해서 수도권과 혁신도시 10곳, 기업도시 6곳을 서로 연결하는 거다. 원주에선 32평 아파트가 1억7000만 원인 게 많다. 여주, 원주를 철도로 판교역과 연결하면 40분밖에 안 걸린다. 판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원주, 여주, 춘천, 충주 같은 중소도시에서 살 수 있도록 철도망을 확대하고 좋은 주택단지와 교육·의료·문화 시설을 과감하게 조성해야 한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설명으로는 국민연금이 연 3%쯤 수익을 내는데 우리가 월세 이자를 대략 8~10% 낸다. 세입자가 아예 연 5%만 안정적으로 내게 한다면 지방도시 1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월 50만 원쯤 내면 된다. 서울서 조금만 벗어나면 지방에 평당 몇십 만 원짜리 땅이 많다. 이걸 국가가 개발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 우리의 공공주택 비율이 5%인데 비해, 유럽은 20~30%나 된다. 지방도시에다 공공주택을 많이 짓고 철도망을 확대한다면 삶의 만족도도 올라가고, 이웃을 발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됨에 따라 재정건전성 문제가 제기된다. 올 연말께 국가부채는 830조원, 명목 GDP대비 43.5%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부채비율은 역대 정부 중 가장 가파르게 높아질 것이다. 재정개혁과 증세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내년 연말까진 재정 투입이 불가피할 거라고 본다. 한국의 금융자산은 대략 1경8000조라고 한다. 재정 투입을 줄이려면 금융시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 또 하나는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인프라펀드 같은 곳에 투자하면 5% 분리과세를 해주고 있는데,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곳에 세제 혜택을 주면 뭉칫돈이 확 몰릴 수 있다. 셋째는 기금의 활용이다. 은행 보통예금에 들어가 있는 기금 돈을 국가적 사업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지금 국가예산이 500억 이상 들어가면 예비타당성(예타) 심사를 한다. 그러나 쓰고 난 뒤 결산 평가는 너무 부실하다. 사후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 예산실명제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지자체에선 30~50억 원을 넘을 경우 예타 심사를 하는데 지자체 공무원 중에 예타 심사를 할 만큼 훈련받은 인력이 부족하다. 웬만한 광역지자체가 몇 조원씩 예산을 쓰고 있지만 지방의원 몇 명이 이거를 다 감당할 수 없다. 큰 회계법인 몇  개를 추첨 방식으로 선정해서 결산검사를 하게 도와줘야 된다. 그럴 경우 지방공무원들이 돈 쓰는 게 훨씬 깐깐해질 거다. 일종의 외부감사제도를 도입하자는 얘기다.
요즘 대한민국 모든 사회단체에서 주말만 되면 영수증을 붙이느라 애를 먹는다. 대학교수 연구비 횡령사건, 이런 게 발생하는 이유도 영수증 때문이다. 이걸 다 블록체인으로 해놓으면 얼마나 쉽겠는가.
그렇게 예결산 시스템을 개혁하면 복지지출 하나만 해도 씀씀이를 굉장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재정개혁 범위를 투자심사부터 결산, 지방정부까지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영국의 가디언 지는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를 신고하면 포상하겠다’란 구호를 내걸며 유명해졌다. 국가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도전적으로 예산관리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가 예산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증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정부 예산이 DJ 때 100조, 노무현 정부 때 200조, 이런 식으로 100조씩 늘어나 지금 500조가 넘었다. 정권 5년마다 100조씩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삶은 그만큼 좋아졌는가,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된다.
우리가 너무 시장에 기대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경인고속도로는 민자(民資)로 건설했는데 이걸 민간기업에 다 줄 필요가 있었을까. 일종의 국민주 참여 방식으로 수익을 나누었다면 분배효과를 낳지 않았겠는가.
요즘엔 도시계획의 결과가 국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지금은 재개발·재건축으로 20층, 30층을 지어도 건설회사가 이익을 다 가져간다. 그러나 30~50층을 짓게 했다면, 최소 3개 층 정도는 어린이집 같은 공공시설을 만들게 해야 한다. 실질적인 국민소득을 늘리게 만들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부분적인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자는 건가?

▲부분적으로 공적 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 길이 막힌 맹지의 경우 땅값이 10만원 하던 게 도로가 나면 100만원으로 오르고, 철도가 생기면 3000만원으로도 된다. 철도가 어디에 건설될지는 정부가 제일 잘 알 거다. 정부가 공영개발을 할 때 역(驛)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이 되도록 조성해줄 수 있다. 역세권 개발도 정부가 나서서 커피숍이나 식당 말고 어린이집 같은 공공시설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정치개혁, 교육개혁이 가장 시급
  국가 미래 청사진 먼저 만들어야
#외우는 교육에서 질문하는 교육으로
  정치 리더 양성 시스템도 고민해야

-한국 사회가 10여 년 전부터 더 좋은 미래를 위한 각종 시스템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개혁, 노동시장 개혁, 연금개혁, 세제개혁, 교육개혁 등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얘기하지만 ‘나 말고 너부터’라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5가지 개혁을 꼽는다면?

▲정치개혁과 교육개혁 두 가지다. 정치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국가 미래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조그만 계모임이든 규모가 큰 회사든 리더의 크기만큼 성장하게 돼 있다. 우리 국회의원들의 스펙을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청사진을 만드는 곳이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 KDI, KIST 같은 국책연구기관들은 정부 용역을 하느라고 바쁘다. 여야 정당의 연구소는 선거를 연구하는 곳이다. 민간 싱크탱크들은 정부가 뭐라 하니까 다들 내부용 연구로 돌아가 버렸다.
미국에는 싱크탱크도 많고 케네디 스쿨 같은 리더 양성 코스가 많다. 중국엔 중앙당교가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누가 정치지도자와 CEO를 교육하는가? 대학교수들이 정치권에 오면 ‘폴리페서’라며 오가지 못하게 막는다. 국회의원 연봉을 얼마 줄이고 이런 게 정치개혁이 아니다.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청사진을 갖게 된다면 여야 간에 불필요한 정쟁이 훨씬 줄어들 수 있다.
둘째는 교육개혁이다. ‘외우는’ 대한민국에서 ‘질문하는’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사교육에 대한 생각도 달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학원 시스템이 뉴욕, 런던, 베이징까지 진출했다. 이걸 그냥 사교육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상대적 강점을 갖는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방송통신대학을 만든 나라 아닌가.

◇한반도 정세

#中, 글로벌 스탠더드엔 아직 멀어

  주변국에게 존경 받는 일을 해야
#에너지, 물 부족, 스마트시티 등
  미중이 필요한 뭔가로 위상 높이자

-이 의원은 정치권을 떠나 있는 기간에 중국 차세대 지도자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중국은 과연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만한 잠재력과 품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2000년대 초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그는 매파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북한에 다녀온 존 켈리를 만나는 걸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이 미·중·일·러 그리고 북한 문제를 풀지 않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서 차세대 지도자가 될 사람이 누구냐, 찾아보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를 듣고 중국 쪽을 파기 시작했다.
2004~2005년에 미국 국무부를 방문했을 땐 두 가지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하나는 국무부의 그 넓은 사무실에서 한반도 담당 부서는 맨 끝 구석자리에 있더라. 또 하나는 그 긴 사무실과 책상,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상당히 많은 책상 위에 일본 가부키 인형이 놓인 걸 보고 일본이 이렇게 미국에 집요하게 로비를 하는구나, 느낀 바가 많았다.
중국이 과연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냐고 묻는다면,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지난 2000년 역사에서 중국이 전 세계 1등을 차지한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중국이란 나라의 DNA에는 아메바 같은 특성이 있다. 뭔가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수·당 시대에 선비족이 쳐들어왔지만 나중에는 선비족 땅이 중국에 편입됐다. 그 다음에 원나라 몽골족도, 청나라 만주족도 역시 자기네 땅을 잃고 중국으로 송두리째 흡수됐다. 보통은 외부 침략을 받으면 문화를 잃고 나라가 없어지기 마련인데, 중국은 오히려 상대를 흡수해버린다. 굉장한 생명력과 융합 능력을 갖고 있다는 역사적 증거다.
게다가 중국의 지도자들은 굉장히 우수하다. 2011년부터 칭화대학에서 2년간 연수할 때 보니까 저녁 11시가 되면 기숙사마다 일제히 불을 끄더라. 그러면 학생들이 복도로 의자를 갖고 나와서 불빛이 있는 쪽에서 공부를 했다. 칭화대는 100만 명 중에 1등을 해야 들어갈 만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그렇게 열심히 실력을 쌓은 국대급 수재들이 지금 중국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 미국의 패권은 계속될 거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교육제도를 갖고서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을 모아왔기 때문이다. 당 태종 시절에 장안(長安)의 인구가 100만 명인데 그중 10만 명이 외국인이었다. 그럴 때 중국은 세계 중심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 국가적 도전과제도 많이 남아있다. 지적재산권의 확실한 보호와 새로운 국가시스템이라는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를 강조했듯, 지금은 중국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주변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존경받는 일을 해야 될 시기라고 본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중 갈등이 격화돼 무역전쟁, 기술패권전쟁을 벌이고 있고 홍콩 민주화, 대만 독립, 인권 탄압 등 각종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 의원이 생각하는 대미, 대중 외교 전략은 무엇인가?

▲일단 미국, 중국은 우리를 사랑하게 돼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나라이고, 한국 없이는 두 나라도 살기 힘들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우리 외교안보와 남북문제 해결의 원칙을 분명하게 해야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길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미중 두 나라가 한국 없이는 못 사는 뭔가를 갖춰야 한다. 한국이 그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걸 찾기 위해 열심히 고민해야 한다. 말의 성찬보다는 국익이란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중국은 단기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14억 인구 중 60%가 도시에 살고 있어서 장차 에너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 이후 에너지 수출국이 됐다. 우리가 두 나라를 잇는 동북아 가스허브 거래소를 만들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도시화가 빨라져 가스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그러면 미중이나 동남아에도 좋은 일이고, 우리로서는 굉장히 큰 국가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상호 이익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 나가면 국가 위상을 저절로 높일 수 있다.
저비용 사회를 위한 솔루션도 중요하다.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를 만드는 걸 제일 잘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왜냐하면 가장 많은 신도시를 만들어 봤고, ICT가 발달돼 있고, 동양인이 편하게 사는 방식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인천 송도에 스마트시티 연구소를 만든 이유도 한국의 신도시 건설 경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스마트시티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계속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면 미중 모두 물 부족, 사막화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가 어떻게 솔루션을 찾을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경제와 산업을 챙기면서 인류문명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나는 그게 에너지, 물, 스마트 도시라고 생각한다. 미중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같은 첨단기술, 싱가포르처럼 세계 일류와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트럼프, 주한미군 감축 어려울 것
  조금 더 증액 수준서 타결 바람직
#외교 부총리, 외교안보통상 총괄
  부처 간 인적 교류와 융합 꾀해야

-중국의 각종 현안에 대해서 침묵 내지 방관하는 외교 전략 때문에 “한국은 친중 성향”이라는 평가가 워싱턴 정가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트럼프는 최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때문에 독일에서 미군을 전격 축소하는 등 동맹국 압박전략을 계속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에 찬성하나?

▲주한미군 감축은 어려울 거라 본다. 이미 상당히 감축한 상황이고, 이미 효율적으로 재편돼 있는 군대다. 또한 평택 미군기지는 세계 최강의 기지다. 이 기지를 원활하게 운영할 정도로 병력 규모가 유지돼야 한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수준은 너무 과하다. 그렇게 늘릴 순 없지만, 조금 더 증액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우리가 미국산 무기를 구매할 때 기술이전, R&D 참여, 부품공급비율 확대 등을 전제로 추가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제일 중요한 건 우리의 전략자산과 무기체계에 대해 좀 더 효율적으로 딜(deal)을 할 필요가 있다. R&D 역량을 키우는 거다. 이스라엘 무기 ‘아이언 돔’도 히브리대학 여대생이 아이디어를 내고 미국이 돈을 줘서 개발할 수 있었다. 미국의 사드 체제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체제를 비교해보면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근접전에 강하다. 그러면 우리가 이스라엘 무기를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이스라엘과 안보 분야에서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강원도는 접경지역과 군부대 배치가 많은 지역이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피해를 많이 받는 곳이다.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뭔가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는 남북 대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중 갈등을 먼저 풀어야 남북 관계도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 둘째는 주변 4강의 박수 속에서 한반도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지금 걱정하는 건 북한 내에 미군이 오는 거다. 북한을 어떻게 하면 베트남처럼 만들 것인지 그런 담론과 설계가 분명해져야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이 부처의 벽을 넘어서서 하나의 세트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리지만 그때그때 현안을 조정하는 정도에 그친다. 외교부가 명실상부한 부총리가 되고, 거기에 나머지 부서들이 함께 하며 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무기체계를 모르고 외교 전략을 세운다는 게 웃기는 일이다. 외교를 모른 채 국방 전략을 세운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한 쪽 생각만 갖고선 절대 한반도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미중관계 이걸 모르고 한반도 문제를 푼다? 말도 안 된다. 지금 외교부 숫자가 굉장히 적다. 2200명 수준인데 훨씬 더 늘려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국정원의 외교 파트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하고, 통일부도 결국 외교부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외교안보통상 라인의 시스템 자체를 전반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 국회에도 미·중·일·러를 연구하는 ‘국제전략 연구처’를 두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 외교부의 지원을 받는 해외 컨퍼런스들이 많이 열리는데 거기에 가보면 매번 만나는 사람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선 절대로 미국이나 중국의 핵심부를 뚫고 들어갈 역량을 키울 수 없다.

-외교부총리가 외교·안보·통상 분야를 총괄하는 일종의 ‘대부제(大部制)’를 하자는 건가?

▲그렇다. 외교 전략도 어떨 땐 작은 무기 하나 때문에 바뀔 수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만 봐도 어떤 무기체계 하나에 상황이 확 바뀌지 않았나. 결국 서로의 분야를 다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드웨어 시대를 넘어서 소프트웨어 시대로 진입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살아나갈 힘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 내는 데 있다.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바로 생각하는 힘에서 나오고, 생각하는 힘은 시선의 높이만큼 나온다. 과감한 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담대한 생각을 만들고 품는 그런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대담=이양수 편집주간
정리=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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