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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칼럼] 볼턴 회고록과 트럼프의 속셈, 그리고 북이 남의 뺨을 세게 때린 까닭

by | 2020년 6월 22일 | 국제, 한반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2018년 4월~2019년 9월)을 지낸 존 볼턴(John Bolton)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사진)을 훑어보다가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이번 주에 출간 예정인 회고록 가운데, 특히 그가 따로 하나의 장(章)을 할애해 자세히 다룬 ‘하노이회담’에서 ‘판문점회담’까지의 미국과 남북한, 그리고 일본의 움직임, 저자의 평가 등을 읽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하노이회담이 성사됐다면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선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존 볼턴이다. 일본 아베 정권도 적극 가담했다. 볼턴 스스로 그것을 회고록에서 자랑스레 떠벌인다. 이는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명의로 발표된 이례적인 대남 비난 담화문으로 촉발된 남북 간의 대립·긴장 사태와도 연결돼 있다.
볼턴의 회고록을 토대로 우리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비건의 국무부 협상안을 폐기시킨 볼턴

먼저,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안했던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 방식의 북한 비핵화방안은 합의될 가능성이 있었다.

당시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고 있던 스티브 비건(Steve Biegun) 부장관이 국가안보회의(NSC) 한국담당국장을 지낸 앨리슨 후커(Allison Hooker)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올리려고 작성한 대북 협상안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대북제재 부분 해제’를 골자로 한 것이었다. 만일 그것이 수용돼 합의내용으로 발표됐다면, 김정은이 가장 갈망했던 경제제재 완화, 경제난 해소로 이어졌을 수 있고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도 지금과는 전혀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와 북한이 함께 준비했던 그 협상안이 하노이 회담 직전에 폐기됐다. 거기에 볼턴이 앞장섰다. 그의 회고록은 그런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왜곡이나 과장, 생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명(實名)들을 거론한 그의 직설적인 주장들은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어떻게 입안되고 결정되는지 날것으로 보여준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활약한 볼턴은 비건과 후커가 작성하고 마이크 폼페이오(Michael Pompeo) 국무장관이 승인한 협상안이 북한의 행동 대 행동 방식과 다를 바 없는, “마치 북이 작성한 듯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NSC와 국방부 등의 우익인사들을 총동원해 폐기시키고 말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볼턴은 구체적으로 지명한다.

볼턴과 보수우익의 끈질긴 폐기 공작

예컨대 하노이회담 보름 전인 2019년 2월 12일 북미정상회담에 대비한 제1차 브리핑(the first Hanoi prep session)이 백악관 웨스트윙의 상황실(Situation Room)에서 열렸다. 상황실 회의에는 NSC 참모들이 운영하는데, 참석자는 대통령과 주요 참모진들로, 국가안보보좌관, 국토안보부 보좌관,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포함된다.

회의 초반에 역대 대통령들의 대북협상 관련 행적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필름이 상영됐다.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가 등장했고 2018년 6월의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의 행적, 그리고 북이 어떻게 여전히 미국을 속이고 있는지(deceiving)를 보여준다.

말미엔 미국 보수우익의 우상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해 1986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레이캬비크(Reykjavik, 아이슬란드 수도)에서 핵군축회담을 벌일 때의 협상전략을 얘기한다. 협상 초기에 레이건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렸는데, 그것이 결국 회담 성공의 관건이 됐다는 얘기.
이런 필름을 보여준 NSC 참모들의 의도는 뻔했다. 대통령에게 북한과 합의하려는 국무부 안(案)을 거부하라는 것이고, 필요하면 회담장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오라는 얘기다.

두 번째 브리핑은 그 사흘 뒤인 2월 15일 열렸다. 북의 호전적인 전쟁게임을 발췌 편집한 필름이 상영됐다. 당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고 있었는데 북은 여전히 그 지경이라는 걸 대비시키면서, 국무부 식의 자잘한 협상(small deal)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북의 완전한 핵 해체 선언(complete denuclearization, full baseline declaration)을 이끌어내는 빅딜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볼턴이 끌어들인 우익인사들이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합참의장 조지프 던포드(Joseph Dunford)를 비롯해,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가 금방 그만두었던 패트릭 섀너헌(Patrick Shanahan) 당시 국방차관, 공화당 강경우파 믹 멀배니(Mick Mulvany) 의원, 반(反)이민에 앞장선 트럼프의 극우 정책보좌관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국가안보 부보좌관 찰스 쿠퍼먼Charles Kupperman, 그리고 마이클 펜스(Michael Pence) 부통령 등이었다. 비건 등 국무부 온건파들로선 중과부적이었다.

제3차 브리핑은 21일 열렸고, 그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베는 김정은이 들고 나올지 모를 ‘와일드 카드’ 대비책도 세워둬야 한다면서, 좌우간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회담 사흘 전인 2월 24일 하노이로 떠난 볼턴은 재급유를 위해 기착한 앵커리지에서 비건과 후커가 작성한 북미선언(US-North Korea statement) 초안을 받아들고는, ‘마치 북한이 작성한 것 같다’며 그것을 용인한 폼페이오에 대해 화를 내면서 에어포스 원에 트럼프와 동승한 멀배니, 밀러 등과 연락했고,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뒤집기 공작’을 벌였다.

빅딜이냐 스몰딜이냐 결렬이냐

하노이회담 이틀 전인 2월 25일, 트럼프는 마침내 협상안을 ▲빅딜(big deal) ▲스몰딜(small deal) ▲회담장 나가버리기(walk away) 세 가지로 정리하면서 결론을 내렸다. 빅딜은 김정은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없을 테니 불가능한 안이고, 스몰딜은 대북 제재만 약화시키고 미국에겐 실익이 없다고 했다.

결국 회담장 나가기, 즉 결렬을 선택한 것인데, 여기에는 그의 개인 변호사들 중 한 명으로 하원 청문회장에 나가 트럼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작정이던 마이클 코언(Michael Cohen)의 발언과 언론 관련 보도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트럼프는 하노이회담 일정과 겹친 코언의 증언과 언론 보도에 온통 신경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것은 볼턴이 보기에도 사적 이해와 국가적 이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심한 행위였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세 번째 안, 즉 회담장 박차고 나가기로 작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트럼프로선 코언의 증언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가라앉히려면 매우 극적(dramatic)이거나 예상 밖의(unexpected) 일이 터져 주면 좋을 텐데, 강경우파 볼턴의 생각으론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 즉 결렬시키는 게 그 답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 자신도 더 큰(bigger) 효과를 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결렬을 택했다.

예컨대 북의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 방식에 가까운, 영변 핵시설 폐기와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스몰딜에 대해 트럼프는 그것이 북에게 시급한 경제현안 해결에 도움이 될 뿐 미국에겐 별 이득이 없고, 영변을 폐기하더라도 다른 핵시설들이 있어 소용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다.
만일 스몰딜에 합의할 경우, 국내에서 쏟아질 민주당과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의 비판·비난 폭탄도 그에겐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아쉽지만 더 안전한 카드를 그는 택했을 수 있다. 폼페이오도 결국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회담은 다음에 또 할 수 있다”며 트럼프의 결정에 동조했다.
이게 볼턴이 밝힌 하노이 회담 결렬의 또 다른 뒷얘기다.

하노이회담 결렬 4개월 뒤 열렸던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회동 이후 다시 비건의 스몰딜 방안이 부활 조짐을 보이자, 볼턴은 이를 서둘러 고사시키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우익들이 바라마지 않는 대북 강경책을 되살리는 데에 앞장섰다.

남측 정부에 기댔던 김정은의 좌절

두 번째는, 하노이회담 당시 북한이 준비해 간 협상안이 그렇게 폐기되면서, 오늘날 위기로 반전되며 폭발한 남북 간 긴장의 역사가 그때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행동 대 행동 방식의 북측 협상안은 비건과 후커가 작성한 미 국무부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북측과 국무부의 그런 의견접근에는 양국을 오가며 회담을 주선한 한국 정부의 역할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회담장에 극적으로 이끌어낸 한국 정부의 제안, 즉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해제 맞교환이라는 행동 대 행동 방식이 미국의 동의를 얻어 사실상 거의 확정된 것으로 믿고 회담장에 나갔을 수 있다.
회담이 끝난 뒤 확인된 것이지만, 당시 김 위원장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도 없이 트럼프를 만났다. 합의될 것이라 확신했고, 그만큼 한국 정부를 믿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졌다면?

북이 남을 세게 때린 이유?

세 번째, 결국 회담은 결렬됐고,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김정은은 크게 낙망했다. 북한 내 정치적 입지, 즉 최고존엄의 위상까지 흔들렸을지 모른다.
그해 6월 30일의 남북미 3개국 정상들의 판문점회동에도 불구하고 북이 갈망했던 대북제재 완화 내지 해제는 불발로 끝났으며, 남북철도 연결이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조차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말잔치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코로나19 재난으로 대외교역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북의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됐고, 미국의 반대를 뚫지 못한 한국 정부의 한계 속에 아무런 변화 없이 이대로 계속 갈 경우 경제적 파산상태를 지나 자멸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지 않았을까.

북은 어떻게든 현상을 깨뜨릴 필요가 있었고, 그것이 상당 기간 준비해온 끝에 발표한 김여정 담화와 그 후속조치들이 아닐까. 한국 정부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분노의 표시’가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로 바뀌면서, 그것을 코로나19 재난으로 위기에 봉착한 트럼프 재선 가도에서 그의 관심을 다시 북미관계 변수로 돌리려는 회심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만일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어떻게든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에 처했다면, 지금이 미국을 겨냥해 신호를 보낼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대처 실패로 인한 대규모 인명 손실에다 인종차별로 인한 대규모 시위사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심각한 경제위기까지 가중돼, 그토록 자신했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만일 또 다른 반전의 카드가 절실해질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판단한다면, 뭔가 반전효과를 낼 묘수를 찾지 않을까. 북핵 카드는 이전까지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조그만 가능성에도 눈을 돌려야 할지 모를 트럼프의 위기가 북측에는 호재일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만만한 남(南)을 호되게 후려쳐서 한반도 위기상황을 조성한 뒤 미국의 관심, 트럼프의 관심을 끌고, 그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시도하려 하지 않았을까.
민주당 쪽과는 아예 코드가 맞지 않는 북한의 그런 시도가 트럼프 재선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북으로선 먼저 민주당 집권을 막아서 좋고, 나아가 트럼프 2기 정부와의 더 유리한 딜(deal)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현상 타파를 위한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미국 상황이 그런 시도를 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볼턴이 방해했던 온건파의 비건 식 스몰딜, ‘행동 대 행동’ 방식을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트럼프로서도 볼턴은 이미 자기 곁을 떠났고, 게다가 ‘볼턴 회고록’이 자신에게 덮어씌울 부정적 영향을 죽이기 위해서라도 그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던 북미협상을 비건 식으로 되살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일본의 끝없는 방해공작이 노리는 것

또 한 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끊임없는 관여와 개입이다. 회고록의 이 한반도 관련 장에서 아베는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초지일관 대북 제재를 해제해선 절대 안 되며, 대북 군사적 압박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일본과 일체가 돼 추진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일본을 위한 정책일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은 철저히 일본 편이다. 회고록에서 저자 볼턴은 이런 기막힌 말까지 한다.

“문(대통령)은 역사가 한일관계의 장래에 방해물이 돼서는 안 되는데, 일본이 이따금 역사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물론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건 일본이 아니라 문이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렇게 한다. 내 생각엔 다른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처럼 문은 내정(內政)의 어려움에 처할 때 일본을 쟁점으로 삼으려 애썼다.”

미국 우익들은 일본 우익들의 황당한 역사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징용공)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 대법원과 그 판결 이행작업, 또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 쪽의 맞대응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그렇다.
볼턴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국내정치 문제에서 난관에 봉착한 한국 정치인들이 여론의 관심을 일본으로 돌리려는 간교한 정치공작일 수 있다. 이제까지의 경험들에 비춰볼 때 볼턴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 보수주류 대부분이 그런 시각일 거라고 판단된다.

지난해 말 한일 무역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가 가까워졌을 때 동아시아로 날아와 한국의 종료 결정을 뒤집은 것도 볼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과 전쟁을 하게 될 경우 한국이 일본과 협력해서 함께 싸울 수 있는지 물었다. 그들에게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필요한, 미국의 지휘를 받는 한일의 통합된 군사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과 합동군사훈련을 할 수 있고 함께 싸울 수도 있지만, 일본군이 한국 영토 안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고 볼턴은 썼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전근대 주종관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하는 잔인한 문답이다.

심지어 볼턴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판결과 그 이행작업을 ‘1965년 한일협정을 무너뜨리려는 문 대통령의 계획적인 도발’이라 주장하는 일본 쪽 주장에 동조하는 듯하다.
아베 신조가 징용공 배상판결을 한일협정, 국제법을 위반한 거라며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공격하는 것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볼턴의 회고록은 시사한다.
그것은 북한 때문이다. 1952년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근거로 한 1965년 한일협정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기하지 않았고, 그것을 이유로 한국에 배상도 하지 않았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일본이 한국에 건넨 돈은 그래서 배상이 아니라 독립축하금 내지 경제협력지원금 명목이었다.
장차 북일관계를 정상화할 때, 한일협정과 유사한 협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협정을 맺을 경우 일본이 져야 할 부담은 엄청나게 커진다. 일본 우익들이 한일협정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집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장차 북일관계 정상화도 한일관계 정상화(?)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계산에서다.

북 미사일 발사와 분담금 50억달러

그리고 또 한 가지. 북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등 측근들에게 늘 했던 얘기 중의 하나가 “북 미사일 발사로 50억 달러를 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볼턴은 썼다.
트럼프 정권은 일본에 대해 지금 25억 달러인 방위비분담금을 80억 달러로 올리라 요구하고 있고, 한국엔 지금의 10억 달러 수준을 50억 달러로 올리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주한미군 연간 총운영비가 50억 달러다! 말하자면,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고 있으니 그 비용을 다 대라는 얘기다)

방위비분담금 50억 달러 인상안이 한국 쪽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있지만, 북의 도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 결국 받아낼 수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계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여정 담화문 발표로 야기된 최근 위기야말로, 적어도 그런 점에선 트럼프 정권이 내심 환호하고 반기지 않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혹시 한국 정부가, 아직 차마 발표는 못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장담대로 이미 그렇게 굽히고 들어간 게 아닐지 걱정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한승동/ 메디치미디어 기획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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