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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한은, 실질적 금리 인하를 고민할 때: 국채매입은 필수, 통안증권 발행은 그만

by | 2020년 6월 10일 | 국제, 정책



기획재정부가 지난 3일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발표했다. 단일 추경안으론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 원에 이른다. 추경안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올해에만 97조7000억 원쯤 늘어나 연말께 840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명목 GDP(국내총생산) 대비 43.5% 수준인데, 전년보다 6.4%포인트 높아지는 것이다.
올해 국채 순증액은 지난해(44조5000억 원)의 두 배를 넘는다. 이 수준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반면 국채 발행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은 경제의 영역이다.

벌써부터 국채 금리는 미미하게 오르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채 발행 때문에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정책효과는 반감할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가 “한은이 늘어나는 국채 물량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던 이유다. 재정자금의 조달을 민간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절박한 표현이다.

현 상황에서 한은이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채 발행이 봇물처럼 터지는 시대를 맞아 어느 나라의 중앙은행이나 국채 매입을 확대하고 있다. 그것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의 조화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국채 발행을 공개시장조작의 수단으로 삼은 덕분에 세계 최고의 금융시장으로 발돋움한 미국이 그 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어느 중앙은행도 공개시장조작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에서는 한은과 정부가 취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은은 발행시장에서 새 국채를 인수하지 말고 유통시장에서 오래 된 국채를 매입해야 한다. 또한 대강(大綱)의 매입 목표액과 일정을 공개하는 게 적절하다. 아울러 통안증권 발행은 당분간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것만으로도 기준금리 추가 인하의 효과를 낼 것이다.
정부는 국채의 만기구조에 신경을 쓰면서 장기국채 발행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국채 발행의 기술적인 사항들은 한은에 위임하되 재정집행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선택과 집중을 고민해야 한다.

한은 국채 매입, 발행시장 아닌 유통시장에서

중앙은행이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직접 인수하는 것, 즉 정부와 중앙은행이 국채와 현금을 맞바꾸는 것(monetisation)은 위험하다. 중앙은행이 음성적으로 정부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미국, EU(마하트리히트 조약), 스웨덴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도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대정부 여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브라질, 칠레, 과테말라 등 재정파탄을 경험한 중남미 국가들은 헌법으로 금지할 정도다.

※출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5월 19일자)
※양적 완화를 왕성하게 펼치는 상황에서도 각국 중앙은행은 국채 인수(monetisation)를 실시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법은 상당히 후진적이다. 정부에 대한 여신과 국채의 직접 인수를 허용(제75조)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정부가 한은법에 근거해 한은에 낮은 금리로 국채 인수를 강권했다. 그 결과 국채시장과 채권시장이 불모지대처럼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채권시장이 아시아 2위의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한은이 국채 인수 관행을 폐지하고, 정부가 국채 발행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꾼 덕이다.

그러므로 올해 국채 발행액이 크게 늘어나더라도 한은의 직접 인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본은행법(제34조)은 한은법과 마찬가지로 국채의 직접 인수를 허용하지만, 일본은행은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인수하지 않는다.

한은의 국채 매입 여력은 충분하다

중앙은행이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하더라도 약간의 부작용은 여전히 남는다. 중앙은행의 국채 투자가 늘어날수록 민간에 대한 유동성 공급은 줄어든다.(구축효과)  또한 국채시장에서 중앙은행의 존재감과 활약이 두드러질수록 유통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큰 문제가 없다. 4월 말 현재 한은이 보유하는 국채(국고채)는 17조원 규모인데, 이는 발행잔액의 2.7%밖에 안 된다. 1차, 2차, 3차 추경을 통해서 정부가 추가 발행하기로 한 35조 원 규모(올해 국채 순증액의 3분의 1)를 한국은행이 추가 매입하더라도 그 비율은 7% 안팎에 머문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에 비해서 여전히 낮다.

미 연준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말에 국채 발행잔액의 8% 정도를 보유했으나 현재는 그 수준이 24%에 이르고 있다. 규모로는 중국, 일본, 한국이 보유하는 양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런 상태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다음, 연준의 국채시장 점유비중은 27% 정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란은행도 사정이 비슷하다. (2019년 말 현재 점유비중 24%)

반면 일본은행은 상황이 심각하다. 국채 발행잔액의 42%를 일본은행이 혼자서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일본은행의 점유비중은 50~5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비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일본의 국채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지만, 거래량은 보잘 것 없다. 은행, 증권, 보험사들은 국채 금리에 신경도 쓰지 않고 거래에도 관심을 잃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본은행이 국채를 더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의 국채 유통시장은 그야말로 ‘좀비’ 상태다.

한국은 상황이 매우 양호하다. 한국은행이 유통시장에서 매입하는 국채가 발행잔액의 10%를 하회하는 한, 유통시장 위축 같은 부작용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은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국채를 매입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한은, 국채매입 스케줄을 공개하는 게 바람직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은은 국채 매입과 관련해 정부에 적극 협조할 의사를 보이면서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채권시장이 불안하면”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채매입을 임기응변(stopgap)으로 대처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방식은 구태의연할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은행이 자산매입 일정을 밝히는 것은 이미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이 곧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다. 커뮤니케이션을 정책수단으로 삼겠다며 양적 완화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은행이 이런 사정을 무시한 채 국채매입을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겠다고 표명하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금융기관들이 한은에 국채를 매각하고 나면, 새로 발행되는 국채를 매입할 여력이 생긴다. 따라서 한은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의 국채매입보다는 연간 계획을 미리 밝히고 추진하는 선제적 방식이 시장금리 상승을 막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국채 매입에 관한 포워드 가이던스는 한은에게도 유익하다. 유통시장에서 어떤 국채를 매입할 지는 순전히 한은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뿐만 아니라 장기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을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라고 한다. 미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공식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했다. 정책금리의 추가 인하가 어려울 때 실질적 금리인하를 유도하는, 매우 요긴한 정책수단이었다. 

다만 중앙은행이 금융시장과 약속한 국채매입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역효과가 발생한다. 일본은행은 월간 국채매입 한도(80조 엔)를 설정했지만, 그것을 잘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지난 4월 말 그 매입한도를 철폐한다고 예고했을 때 시장에선 콧방귀를 뀌었다. 일본은행이 국채매입에 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채매입에 관한 한은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실천 가능한 범위에서 구체화하는 게 현명하다.

한은, 통안증권의 발행 중단을 고민할 때다

한은이 결정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은행이 발행해 오고 있는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의 계속 발행 여부다. 통안증권은 1961년 11월 처음 발행되었다.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더불어 은행 대출, 해외 수출이 급증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자 시중에 풀린 과잉유동성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요즘엔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통화량 관리라는 개념이 폐기되었다. 그렇다면, 통안증권을 더 이상 발행할 이유가 없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한은은 3조원의 국채를 매입하고 매주 환매조건부채권 매입(RP) 방식을 통해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과잉유동성을 흡수한다면서 통안증권을 발행하고 있다. 이래선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통안증권 발행이 중단되면 자본시장에서 당장 채권 공급물량이 축소된다. 160조 원이 넘는 통안증권 발행잔액의 절반만이라도 채권시장에서 사라진다면, 국채, 특수채, 회사채는 물론 CP의 금리가 일제히 하락 압력을 받는다.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에 부담을 갖는 한국은행으로선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다.
물론 통안증권 발행을 중단하면, 부작용도 있다. 콜금리가 0% 수준으로 떨어져 환율이 상승하게 된다. 그것을 막으려면,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하듯이 지급준비금에 정책금리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면 된다. 그 정도의 보완책만 있으면 통안증권 발행은 당장 중단할 수 있다. 이제 통안증권은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 국채의 만기구조에 신경 써야

민간 기업들은 공장 짓는 돈을 3개월짜리 어음으로 마련하지는 않는다. 금방 갚을 운전자금을 10년짜리 고금리 대출로 조달하지도 않는다. 자금 조달은 자금회수 일정과 연계하는 게 상식이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채무의 만기는 당장의 이자비용이 아니라 장기 재정수지 전망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까지는 그런 생각이 부족했다. 국가채무가 급증하는데도 이자비용을 감안해 단기 국채만 발행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장기 재정수지 전망에 맞추어 장기국채 발행비중을 조절하고 있다.

       ※출처 : 미 의회 보고서(2018)

우리 정부는 얼마 전부터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정책의 경제적 효과는 언제쯤 본격화돼 세수 증가로 이어질까? 그 기간이 10년이라면 10년짜리 국채를, 20년이라면 20년짜리 국채를 발행하는 게 정답이다. 정부는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국채의 최장 만기는 50년이다. 국가채무 비중이 사상 최고에 이른 지금, 그 비중이 쉽게 낮아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국채의 최장 만기를 50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영국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영구채(consol)를 발행했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 중이다. 그래서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자는 다시 영구채 발행을 제안하고 있다. 마침 시장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초장기 국채 발행을 확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방법을 통해 국채의 평균만기를 늘리는 것이 재정자금의 안정적 확보에 훨씬 유리하다. 금융시장에서 결정되는 초장기 국채금리는 국민연금이나 생명보험사의 장기 자금운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 금융기관들은 요즘 대출이든 투자든 뭉칫돈을 굴릴 데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년물 이상의 한국 국채시장은 해외 투자자에게도 큰 매력이 될 것이다.

기재부, 잔기술보다 재정집행 효율성에 집중해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선 지금부터 정부가 할 일이 태산 같다. 올해 안에 지출해야 하는 금액만 547조 원인데, 장관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큰돈을 만져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집행의 효율성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

반면 재정자금의 조달, 즉 국채발행은 비교적 덜 중요하다. 국채시장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어 발행물량을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에서 일시 부족자금을 40조 원까지 끌어다 쓸 수도 있다.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이라서 국채발행에 약간의 차질이 생겨도 안전판 역할을 한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상당수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의 대정부 여신이 일절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실무진들은 재정자금 조달에 애로가 생길 것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국채관리방식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가 국채의 연간 총발행액(gross issuance) 아닌 순발행액(net issuance)을 심의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차환, 바이백(buy-back), 교환처럼 국채의 발행잔액(순발행액)을 변동하지 않으면서 금융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기법들을 도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국채 발행의 실무기법, 한은이 맡는 게 효과적

이미 발행된 국채를 금융시장에서 차환, 바이백, 교환을 하는 것은 순수한 재정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실무기법은 재정정책 가운데 말단지엽적인 잔기술에 속한다. 금융시장에서 금융기관들을 상대하는 그런 일은, 정부보다 중앙은행이 맡는 게 더 효과적이다.

세계에서 국채시장이 가장 큰 미국에서는 국채발행 사무를 재무부가 뉴욕 연준에 일임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국고국 업무를 통째로 중앙은행에 넘겼다. 국채시장이 세계 2위인 일본도 정부가 바이백, 교환 등 잔기술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재정집행에 집중한다.
우리나라도 국채발행과 관련한 실무의 상당부분은 이미 한은 국고증권실이 대행하고 있다. 한편 통안증권과 국채는 경쟁재다. 따라서 한은이 통안증권 발행을 중단하면, 국채발행과 관련한 업무를 더 많이 대행하더라도 이해상충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재정팽창시대를 맞아 정부와 한은은 협업의 분야와 방식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보자면, 국채관리의 기술적인 문제쯤은 정부가 한은에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정부 위탁사무가 늘어난다고 해서 한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건비와 책임만 늘어난다.
그래도 그것은 정부의 은행(government’s banker)이 해야 할 일이다.


차현진 필자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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