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최근편집 2020. 07-14. 15:04

[김강기명 칼럼] 코로나19, 전면감시사회,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어떤 논쟁

by | 2020년 5월 27일 | 국제, 기획


필자는 최근 <피렌체의 식탁>으로부터 코로나19 위기와 유럽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칼럼을 청탁받고 관련 기사들을 정리할 겸 페이스북에 공유해왔다. 보통은 따로 코멘트를 달지 않기 때문에 마치 자료실처럼 기사가 쌓이고 있었는데 5월 초에 공유한 칼럼 ‘How Germany Is A COVID Failure‘ 에 뒤늦게 인류학 전공자인 독일인 친구 M이 상당히 분개한 어조로 댓글을 달았다. 원 기사는 스리랑카의 언론인 Indi Samarajiva가 영어로 쓴 칼럼인데, 이 거친 논조의 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구 언론은 독일의 코로나19 대응을 가장 주요한 성공사례로 꼽고 있다.
▲그런데 기사를 쓸 당시 독일의 사망자 숫자는 5500명으로 이란보다도 더 많았다. 반면 중국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에선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은 무슨 신비한 아시아 전통문화에 기반한 게 아니라 그냥 감염병 방역의 과학적 스탠더드에 기초했을 뿐이다. 왜 베트남의 방역은 성공사례가 아닌가?
▲이들 아시아 국가의 사례를 다루지 않는 이유는 서구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 때문이다. 한국은 종종 ‘독일과 더불어’ 성공사례로 다뤄지는데 (기사 작성 당시) 240명이 사망한 한국과 5500명이 사망한 독일을 같은 성공사례랍시고 함께 묶는 게 말이 되는가?
▲독일의 대응도 실패 사례일 뿐이다. 메르켈 정부가 한국 정부였다면 벌써 정권이 뒤집혔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미디어는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을 ‘백인 영웅'(white heroes)으로 만들고 있다.

이 기사에서 시작해 밤늦게까지 필자와 M은 코로나19, 감시사회, 아시아 문화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점에서 부딪히면서 논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쌓인 대화 내용을 살펴보다가 나는 이 대화가 오늘날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낸 새로운 세계상을 둘러싼 유럽인들의 고민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원래 청탁받았던 글 대신에 이 대화를 조금 더 가공해 대화체의 에세이로 쓰는 게 오히려 한국 독자들에게 좀 더 친숙한 방식으로 많은 내용을 제공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산만한 이 대화의 일부를 공개한다.

-아시아 코로나 대책의 사생활 침해를 지적하는 게 백인우월주의?
-‘팀 민주주의 vs. 팀 권위주의’ 도식엔 문제 있어

M: 아주 이상한 논조네. 난 그럼 이 ‘구조적 인종주의’를 몇 개 더 던져주지. 이란의 숫자는 확실히 페이크(fake)야. 사망자 숫자는 훨씬 더 많다고 알려져 있어. 그리고 서구 미디어는 적어도 한국에 관한 한 확실히 찬사를 보내지 않았나? 특히 검사와 추적에 있어서 세계 최고였다고. 구글에 “Südkorea Corona Strategien”를 넣으면 온갖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하지만 동시에 그 방식은 많은 이들의 사생활 개인정보를 완전히 희생한 결과잖아? 이번에 서울 이태원의 게이골목 사례를 한번 돌아봐.

기사 내용대로라면 서구 사회가 해야 할 계몽된 탈(脫)식민주의적 코로나 대응이란 건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아시아인들의 ‘우월한’ 집단주의 마인드를 수용하는 건가? 나는 이런 식의 ‘비판적 백인 연구’ 담론들이 지긋지긋해. 물론 백인우월주의 마인드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런 식으로 탈식민주의 이론이 신-본질주의로 가는 건 세계의 복잡함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 아니야?

김강: 아마 몇몇 지점에선 너한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는 너무 거칠고, 필자가 비서구 국가들을 묶는 카테고리는 여전히 매우 자의적이야. 하지만 몇 가지 들을 만한 주장 때문에 나는 이 글을 공유했어.

1. 필자는 여기서 어떤 ‘우월한’ 동양 문화나 아시아적 문명에 대해 (네가 말한 ‘공동체/집단주의’ 같은 것?) 언급하지 않고 있어. 사실 그건 그저 오리엔탈리즘의 한 요소지. 대신에 필자는 비(非)서구 국가들의 코로나 대응이 그저 ‘서구(과학)의 복사물’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건 문화적이거나 문명적인 차이가 아닌 거지.

2. 네가 말한 것처럼 서구 언론은 몇몇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선 충분히, 혹은 너무 많이 다루고 있어. 특히 대만, 한국에 대해선 그렇지. 하지만 난 여전히 한국, 대만, 홍콩은 칭찬하고, 이들과 비슷하게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베트남, 태국 등을 무시하는 데서 유럽중심주의를 느끼고 있어.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건 비서구 국가들 간의 ‘서구화’ 혹은 ‘자유주의화’ 정도의 차이 같아. 서구 언론이 한국이나 대만을 선택한 배경에는 ‘중국 혐오’가 있어. 서구 언론들은 이 서구적 가치의 우등생들과 사악한 권위주의 적(敵)을 비교하고 있는 거지. ‘Team Democracy’ vs. ‘Team Dictatorship’이랄까? 다른 한편으론 서구 미디어에서 주로 “가난하고, 미발전되었고∼” 식으로 묘사되는 베트남 같은 나라들의 방역 사례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지.

-서구에선 개인의 자유를 생명만큼이나 중시
-자유주의는 물론 근대적 권위주의도 서구 유산

M: 글쎄. 코로나 방역에서 문화의 차이, 그로 인한 방역 성과의 차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핸드폰 GPS 데이터나 신용카드 거래, 약품 구입 기록, CCTV 영상 등을 감시하는 건 우리 사회의 자유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가치들과 맞지 않으니까 수입할 수 없는 거지. 이걸 안 배운다고 구조적인 인종주의나 백인우월주의?

간섭받지 않는 자유(liberty)의 가치란 서양에선 때로 수천 명의 죽음이나 경제적 손실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되곤 해. 이 필자는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위기를 이유로 자유를 잃어버리면 위기가 지나가도 그게 결코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그걸 제2차 세계대전 같은 걸 통해 경험한 바 있어.

김강: 나는 ‘구조적 인종주의’ 같은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야. 왜냐하면 실제 관계[Sachverhalt]란 인종주의 같은 개념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팀 서구가치’ vs ‘팀 감시사회’ 같은 도식은 분명히 애용되고 있고, 나는 이게 서구사회와 비서구 사회 사이에서 발생하는 실제 갈등이나 차이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해.

너는 이 감시 테크놀로지들이나 근대 행정학, 통치성 같은 것이 애초에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해? 오늘날 ‘자유주의적 사회들’과 ‘권위주의적 사회들’  사이의 구분선은 서구 자유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모호해. 이미 푸코가 그의 (자유주의적) 통치성이나 생명권력 개념을 가지고 잘 분석한 바 있잖아?

내가 무언가를 ‘인종주의적’이라 부른다면 그건 바로, 서구인들이 이 사실을 무시한 채 감시기술 등을 ‘아시아적 문화’라고 타자화하고, 유럽을 마치 완전히 리버럴한 곳인 양 재현하는 그 점에 있겠지.

-동서양 문화 차이는 자의적 도식일까?
-방역 테크놀로지, 애초부터 서구 근대성의 요소

M: 당연히 감시체제나 권위주의는 아시아의 발명품이 아니지! 하지만 감시 테크놀로지들을 아시아적이라고 타자화하는 것은 분명 사생활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그래 나를 그렇게 몰아붙이고 싶다면 ‘본질적인’—가 지금의 중국 같은 나라들과 독일 같은 나라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 ‘본질주의’를 부정한다 해도, 문화적 차이가 쉽게 그런 ‘구성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중국인들 다수가 사생활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생체 정보를 통한 디지털 결제와 같은 기술들을 받아들이지만, 사생활에 환장한 독일인들은 도통 현금 거래를 포기하려 하지 않지. 마치 현금이 ‘인쇄된 자유’인 양 말이야. 이건 궁극적으로 서구의 사유 전통에 있는 개인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물론 집단문화는 당연히 서구에도 있고, 개인주의는 당연히 동양에도 있겠지. 하지만 분명 강조점에 있어서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아?

팬데믹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 줬어. 부정적인 의미에서 권위주의적이거나 집단주의적인 정책이 분명 방역 측면에선 효과적이었다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윤리적 질문도 던져 봐야 해. 서구가 이미 과거에 재앙처럼 경험했던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나 정책, 행동양식을 과연 아시아로부터 다시 수용해야만 할까?

김강: 나는 서구가 아시아 국가들의 그런 정책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당연히 우리가 전체주의적 감시에 기반하지 않은 대책들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 그러니 그 질문엔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진짜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게 뭔지 알아? 지금 서구 각국의 정부들은 말로는 ‘서구의 근본적 가치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상 (중국식은 아무튼 간에 아니라니, 한국 방식의) 각종 감시대책들을 받아들이려는 유혹에 이미 얼마간 굴복하고 있다는 거야. 왜냐하면 이런 감시 기술들이나 권위주의가 결코 서구적 근대성에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이게 바로 오늘날 서구 근대성의 발전이 보여주는 딜레마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태란 근대성 안에 있는 역학(疫學)적 합리성(epidemiological rationality)이 똑같은 근대성의 요소인 자유주의적 정치적 합리성(liberal political rationality)을 향해 방역에 효율적인 감시 수단들을 실행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상황인 거야. 방역 테크놀로지란 게 애초부터 서구 자유주의 근대성의 핵심에 있는 거였어. 동시에 오늘날 유럽인들의 자기정체성이 된 ‘서구적 가치들’과 길항관계에 있는 것이고. 너도 푸코의 연구를 잘 알잖아?

그리고 솔직히 신용 결제, 디지털 결제와 ‘가치관’을 직접 연결시키는 네 이야기는 내가 보기엔 완전히 자의적인데, 유럽에서 가장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나라가 어디야? 스웨덴이잖아. ‘현금 없는 시장’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스웨덴이 앞서 있는 정책이었지. 그렇지만 사생활만 자유주의 가치인가? 한국식 감시체제를 정당화하는 ‘투명성’이라는 구호도 권위주의보다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가깝다고!

-아시아의 권위주의, 공동체 문화는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
-한국은 집단주의보다는 超개인주의적 사회

M: 네가 말한 ‘팀 자유주의 대 팀 권위주의’ 말인데, 그래. 전면 감시 정책이나 테크놀로지는 아까도 말했지만 서구 사회에 있었고 지금도 있어. 어디에도 완전한 이상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왜 홍콩 사람들한테 이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어보지 않는 거야? 거기선 “언론의 자유를 갖거나 그렇지 않거나”, “헌법에 따른 사법적 시스템을 갖거나 정치 활동가들이 그냥 사라지거나”의 문제라고. 난 솔직히 네가 이런 현실들을 그저 유럽중심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기만 정도로 치부하는 게 충격적인 걸?

김강: 나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정치 구조나 사회적 분위기가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이런 감시 체제를 배우지 않으려는 것이 곧 서구사회의 인종주의라는 기사의 관점에도 동의하지 않아. 하지만 유럽 각국의 록다운(lockdown) 대책들이 자유주의적이고 ‘서구적 가치’에 기초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제재, 금지 그리고 벌금을 통해 코로나 파티나 여는 거만한 시민들을 길들이는 훈육국가적인 정책들 말이야.

‘팀 자유주의 vs. 팀 권위주의’ 도식은 내가 보기엔 매우 자의적이야. 솔직히 어떤 한국 사람들은 타켓팅된 감시와 검사를 바탕으로 시민의 이동과 영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 자신들의 모델이 훨씬 ‘자유주의적’이라고 생각하고 유럽 각국의 록다운 대처 모델은 이동 통제, 출입‧접촉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국식 권위주의적 모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실제 상황이란 언제나 이렇게 더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중하게 다양한 각각의 케이스들을 살펴야 하는 거지.

전체 아시아를 집단주의적 문화로 범주화하거나 본질화하는 시선들을 한번 보자고. 오늘날 다양한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적 공통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어떤 시각에서 보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전혀 공동체주의적이지 않고, 초-개인주의적이고 초-리버럴한 사회야. 거기서 지배적인 가치 중 하나는 ‘투명성’이야. 서구사회에서보다 더 급진적으로 말이야.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도 투명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뒤집혀. 물론 그건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아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지.

이건 그저 우리가 왜 여러 사회들을 몇 가지 재현들이나 현상 형태들만 가지고 정의할 수 없는지의 한 예일 뿐이야. 어떤 ‘문화’가 과연 정말 서로 다른 모델의 방역 정책들을 만드는 ‘배경’이나 ‘원인’인 것일까? 내가 보기엔 그것들은 배경이 아니라 ‘전경’,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까워 보여.

솔직히 나는 네가 유럽 국가들의 저 높은 사망자 숫자를 낭만화하고 있다는 게 매우 놀랍다. 감시와 추적 정책들을 악하고 외래적인 것으로 말하기 위해서 말이야. 인류학 연구자로서 너는 정말 차이에 대한 이 분석이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독일은 자유·생명 가치 균형을 잘 잡은 성공적 모델
-문화 차이보다 근대성 내부 공통성 속에서 정치를 사유해야

M: 이건 인류학이 아니라 정치적 신념 문제야. 그리고 같은 근본적 질문을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할 수 있어. 우리는 경찰국가와 자유의 제한을 통해 테러리즘을 완전히 박멸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자유로운 사회를 지키기 위해 얼마간의 테러리스트 공격을 고통스럽더라도 겪어야만 하는 걸까?

네가 만약 후자인 나의 신념을 ‘낭만주의’라고 가치절하 한다면, 그래, 난 그 낭만주의와 더불어 살겠어. 만약 나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이 자유사회에서 살 수 있는 대가라면 테러 공격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죽는 편이 더 나아. 물론 뭐 그런 일이 그렇게 높은 확률로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말해 보자면 그렇단 거야.

독일은 코로나 사망자 숫자를 평년의 독감바이러스 사망자 숫자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 그런 점에서 보면 독일은 확실히 자유와 생명이라는 가치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봐. 한국도 잘 하고 있지만 강조점은 자유보다는 생명에 있어 보여. 이게 내가 저 기사의 비판이 매우 일차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야. 저 칼럼니스트는 자유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어. 생명의 가치란 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자유는 그렇지 않지.

그리고 너의 질문 “유럽의 록다운 정책들이 유럽적 가치에 맞는 자유주의적인 것이냐?” 말인데, 아, 당연히 아니지. 그것들이 어떻게 자유주의적인 것이겠어. 나를 바보라고 생각해? 이건 고전적인 자유주의 관점에서는 억압이고 자유의 제한이지,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고전적 정치 이론에선 모든 정부의 법령은 억압과 강제력(Gewalt)이니까. 아시아의 정부냐, 유럽의 정부냐 그것과는 무관해.

하지만 분명 좀 더 자유주의적인 행정의 형태들과 좀 더 권위주의적인 행정의 형태들은 분명 존재하고, 이상적 수준뿐만 아니라 현실의 특정 현상형태들(Erscheinungsformen)로 나타나고 있잖아. 어떤 사회는 자유를 더 제한하고, 다른 곳에선 좀 더 자유를 주고 말이야. 너는 선명한 경계를 긋기에는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독일과 중국의 통치 형태를 보면, 자유주의 사회와 권위주의 사회 사이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히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김강: 그래. 우리 모두 중국과 독일 사이의 차이를 꽤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독일과 대만, 독일과 한국, 또는 다른 민주주의적 비서구 국가들 사이에선? 서구적 가치, 비서구적 가치라는 도식은 서로 다른 사회들을 분석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난 어떤 대가에도 불구하고 자유가 중요하다는 너의 정치적 신념엔 동의하겠지만, 문화적인 것을 이렇게 도식화하는 건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서구 문명의 핵심가치 아니었던가?

나는 그런 점에서 유럽인들이 좀 더 20세기에 비-서구 지역들에서 더 급진적으로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 통치성, 생명권력 그리고 훈육적 국가의 유럽적 기원에 대해 다시금 자기 자신의 것으로서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봐.

몇몇 비-서구 사회들은 21세기에 이르러서 비-서구적인 게 아니라 초-근대적 혹은 초-서구적 사회가 되었어. ‘우리’가 국제주의적이고 세계 시민주의적 입장의 좌파라면(그래, 이게 내 정치적 입장이다), 소위 서구적 가치들의 패키지에 계속 점착되어서 다른 문화들을 특정 이름으로 가치절하하기보다는 ‘우리’의 공통적인 근대성 안에서, 아니 그 공통적인 근대성의 ‘균열’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봐.

-유교적 정체성은 아시아인 스스로 주장한 것
-유교 민족주의는 민주화 탄압 도구이기도

M: 하지만 그럼 너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는 문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 그게 집단주의 공동체 문화의 표현이 아니라면 말야. 왜 이런 문화가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표출될까?

당사자로서 너의 경험이 갖는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진 않아. 그리고 오늘날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초-개인주의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네 분석에도 동의해. 자본주의는 거대한 개체화의 도구니까. 문화란 항상 여러 다양한(heterogenous) 요소들이 섞인 어떤 거지.

하지만 아시아의 공동체주의적인 사회들이 유교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은 정말 틀린 거야? 중국, 한국, 베트남 혹은 일본에서 개인-공동체 간의 전통적인 관계란 그럼 뭐였어? 서양의 기독교적, 중세적 관계와 짝을 이루는 동양적인 것 말이야.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 같은 개념은 유럽인들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리콴유 같은 아시아인들 스스로가 서구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편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해서 만든 것이지 않았어? 난 서구 문화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게 아니야. 상대적인 문화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자는 거지.

김강: 아시아의 몇몇 지식인들이나 리콴유나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사회적 가치로는 사망했던 유교를 20세기 중반에 다시 소환해서 아시아인들의 문화적 오리지널리티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한편으로는 바깥을 향해 반-서구중심적, 반-제국주의적 반응으로 나온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건 내부를 향해서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고 그들의 권위주의 노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어.

이들과 달리 지도자급 정치인 중에 이 유교적 정체성의 기능이 그저 이 지역의 민주화에 대항해 전통적 요소 몇 가지를 도구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은 나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정치인 김대중이었어. ‘Foreign Affairs’ 상에서 벌어진 리콴유김대중 사이의 논쟁은 지금 봐도 읽을 만해.

나는 아시아인들 스스로의 동아시아 유교문화 정체성에 대한 이런 식의 주장들이 그저 뒤집힌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생각해.  21세기에는, 물론 중국 정부가 예전에 싱가포르나 한국의 독재자들이 유교의 이름으로 했던 걸 지금 하고 있긴 한데,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더 지배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체성이야.

-전통과 문화라는 차이의 틀은 여전히 중요
-서구에서도 개인의 자유·존엄을 평등하게 누리지 않아

M: 하지만 분명 아시아적 권위주의란 것이 실존하고 있고, 거기에는 역사적 이유와 요소들이 있지 않나? 예를 들면 근대 이전의 서구 사회 역시 권위주의 사회였고, 근대적 통치성에도 네 말대로 권위주의적 요소들이 있어. 그것들은 기독교에서 온 것, 봉건적 구조에서 온 것, 근대 안에서 만들어진 것, 프로이센의 군국주의 그리고 히틀러의 나치즘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내 생각에는 네가 오히려 동아시아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서구 근대성의 틀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교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김강: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나는 비-서구 사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전통적 사회가 외부로부터, 그러니까 서구의 식민주의 권력 혹은 서구적 근대성에 의해서 단절되었었다는 점을 다른 무엇보다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봐.
근대 이후 어떤 전통으로부터의 성공적인 내재적 발전이란 대부분의 경우에 어렵거나 혹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지. 그래서 비-서구의 근대성이란 항상 키메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현대 아시아 국가들은 동양적이지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양적일 수도 없어.

“근대화되어야 한다”, “세계 시장에 통합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근대성의 명령어들을 통해서 아시아 사회들은 어떤 면에서는 서구 근대보다 더 근대적으로, 그러니까 초-서구적, 초-근대적으로 된 거지.
서구 근대성의 어떤 요소들은 더 과장되게 받아들이고, 어떤 요소들은 무시되고 그러면서. 누군가는 권위주의의 성공에 대해 아시아에선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에 완수되어야 했던 근대화, 자유화, 자본주의화를 이유로 들 수 있을 거야. 또 세계 시장 속에서 경쟁관계를 탐색하는 정치경제학적 설명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애초에 식민지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에서 ‘서구 근대성’이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라는 가치의 패키지였을까? 홍콩 사람들이 중국 반환 전에는 언론의 자유, 집회시위 및 선거의 자유를 막 누렸던가?

반대로, 그럼 과연 ‘서구적 가치’라는 개인주의가 오늘날 서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가치일까? 히잡을 쓴 이민 배경의 여성이 백인들이 누리는 만큼의 개인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해?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노동인구로서 살아가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민자에게도 개인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가 그렇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일 수 있을까?

-문화적 차이란 우발성들의 교차에 의해 생산
-상대성만 강조 땐 유럽중심주의로 귀결, 차이를 차이화해야.

M: 네가 마지막에 말한 게 분명 서구의 문제점인 건 사실이야. 불평등이 존재하지. 하지만 난 여전히 이 개인적 자유가 모든 이들에게 확장되는 것이 서구적 해법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의 주장에선 너무 많은 길이 로마로 통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시아를 유교로 환원하는 것도 그렇지만, 서구적 근대화로 환원하는 것도 부적절하지 않아? 다양한 요소들과,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있겠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서구와는 다른 아시아적인 것의 특징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나?

김강: 나는 모든 것을 서구근대성으로 환원하기 위해서 이 개념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아니야. 아시아 및 모든 비-서구의 권위주의적 근대화와 서구 사회의 연루 관계, 혹은 공범 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하려고 하는 것이지.

서구인들은 그토록 거부하는 그 마스크 쓰는 문화도 공동체 문화 같은 것 말고 이런 점에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봐. 물론 아시아로의 제조업 이전 때문에 이 지역 공기 질(質)이 안 좋아서 팬데믹 아니라도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점은 지적해 두자.

비-서구, 특히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항상 더 근대적이 되라는, 더 시민윤리를 갖추라는, 더 서구적이 되라는, 그래서 더 위생적이 되라는 사회적 압력이 근대화 시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 왔어. 정작 마스크를 쓰는 건 유럽이나 서구 문화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는 그게 근대화와 위생, 시민적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됐을 수도 있어.
이런 게 비-서구 혹은 구-식민지 국가들에 있는 식민주의적 유산 같은 거지. 혹은 내가 말한 초-서구성 같은 것. 물론 다른 개연성 있는 설명들도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야.

문화를 어떤 것들의 ‘원인’이나 ‘배경’으로 바라보는 문화 환원주의적 접근은 항상 매력적이고 활용하기 쉽지. 하지만 이 공통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감시 테크놀로지들을 아시아인들이 폭넓게 수용하는 데에도 권위주의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긴 설명이 가능할 거야.

‪나는 우리 시대의 생명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가치’에 기반하거나 ‘문화’에 기반한 선명하고 쉬운 클리셰들보다는 훨씬 모호한, 모든 방향에 비판적인 접근법들이 필요하다고 봐. 그런 클리셰들은 근본에서는 결국 유럽중심주의로 귀결되는 것이었어.

M: 오케이. 이제 밤이 늦었다. 재밌는 대화 고마워. 다음에 만나면, 우리가 서로 허그하며 인사할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이야기해보자고.

김강: 그래. 나도 이 늦은 시간까지 너랑 오랜만에 토론 같은 토론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  ‪

 

최신기사 링크

[조세영 인터뷰] 코로나19 이후 해외서 인종차별 피해 30~40건…4만3000명 안전한 귀국 지원

한국 외교는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선진 방역시스템과 공동체 의식, 보건의료 역량을 바탕으로 어느 때보다 공공외교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공부하는 외교관, 할 말은 하는 외교관으로 손꼽힌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는 강 장관을 보좌하면서 실무를 지휘해왔다. <피렌체의 식탁>은 지난 10일 오후 조세영 차관을 만나 해외교민...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의사결정의 달인이 되려면? 일의 경중, 타이밍, 협업을 잊지 말자

보름 전 과천으로 이사했다. 이사는 평생 동안 몇 번 없는 큰일 중 하나다. 이삿짐을 싸고 나르는 일은 힘들지 않다. 손 하나 까딱할 필요 없다. 이삿짐센터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 문제는 의사결정이다. 이삿짐센터를 어디로 할지부터 어떤 가구를 버리고 갈지, 새로 사야 할 가전제품이나 소파는 어디에서 구입할지 등등. 소파나 책장만 해도 왜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다 거기서 거기고, 고만고만한데 아내는 쉬지 않고 묻는다. 그렇다고 짜증내면 어떻게 될까. “나 혼자 이사해?”로...

[김연수 칼럼] 코로나19 시대 스마트치안과 빅브라더 사이…한국 경찰의 미래를 묻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범죄 양상도 변화 인류는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각종 정부 및 연구기관은 코로나19 위기의 여파로 경제활동 위축과 함께 세계 주요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경제위기와 치안환경의 관계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전통적 노상 범죄(Street Crime)는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인터넷 쇼핑몰 사기, 보이스피싱 같은 사이버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