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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한국형 뉴딜과 ‘기업안정자금 지원’…“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by | 2020년 4월 23일 | 정책,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경제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선언한 것이다. 이 회의에선 여러 대책과 함께 ‘기업안정화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앞으로 일자리 안정과 함께 SOC, 디지털 분야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해 나갈 전망이다.
이날 발표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20조원 규모의 저(低)신용 회사채 및 CP(기업어음)를 매입하는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하는 계획이다.  그동안 <피렌체의 식탁>이 차현진 필자의 ‘코로나 딜’ 칼럼을 게재하며 주장해온 정책 대안이다.
차현진 필자가 이번에는 SPV 자금지원방식의 성공을 위해 한은, 기획재정부, 국회가 주목해야 할 점을 담아 후속 칼럼을 썼다. 차현진 필자는 그동안 ‘코로나 딜’을 큰 주제로 ①SPV 설립을 통한 미국의 민생·금융지원 방식을 소개한 뒤 <3월 25일자>, ②증시·채권시장 안정펀드처럼 금융기관 출연금에만 의존하는 ‘이헌재 프레임’을 극복할 것 <3월 31일자> ③정부가 한국은행의 SPV 여신에 대한 국회 지급보증 동의안을 준비할 것 <4월 6일자> 등을 제안한 바 있다.  [편집자]

필자는 네 차례 칼럼을 통해 한국은행에 대해서는 회사채·CP의 직(直)매입을 넘어 여신하는 방법(통화주의 극복)을 택하고, 영리기업을 지원할 때는 전대(轉貸) 방식이 아닌 직접 여신을 택하며, 정부 지급보증만 기대하는 ‘조순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도입키로 한 ‘금융안정 특별대출제도’는 그런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서양 속담대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앞으로 정부가 한은의 SPV 여신에 얼마나 지급보증을 하느냐, SPV를 어떻게 설립·운용하느냐가 두 개의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정부와 한은에게 10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째, 적정 지급보증비율이란 개념은 없으므로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 문제에 시간을 끌지 말고, 둘째, 제3의 기관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한국은행이 SPV를 직접 소유·운영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1. 정부 지급보증비율, 중요한 문제 아니다

정부가 한국은행과 협의하여 SPV를 설치하는 목적은 저신용 등급의 회사채와 CP를 매입하는 데 있다. 이미 발표된 채권시장안정펀드와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특별대출제도>는 우량 회사채까지만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SPV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지급보증력이 약하다면, SPV는 손실 가능성 때문에 저신용등급의 회사채, CP를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SPV에 여신하게 될 한국은행은 가급적 정부보증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지급보증엔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우발채무라서 국가채무를 늘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SPV에 대한 지급보증비율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보인다. 1992년 한국은행이 투자신탁 3사(社)에 여신할 때도 정부는 2조 9000억원의 대출금 전액을 지급보증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지급보증비율은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저신용 등급의 회사채·CP를 매입해서 한국은행이 손실을 입으면 한국은행이 정부에 납입하는 순이익금이 줄어들고, 그 손실을 정부가 벌충하면 재정수지가 악화된다. 그 둘을 합한 결과는 똑같다. 그러므로 지급보증비율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오늘날 모든 경제학자들은 거시경제를 분석할 때 정부와 중앙은행을 하나로 묶어서 본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사잔트는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회계적 결합을 ‘강제결혼’이라고 부른다. (Shotgun weddings between Fiscal and Monetary Policies, 2019)
딸을 임신시킨 청년에게 장인이 총으로 위협해서 책임지고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는 상황이다. 국민(장인)의 눈으로는 손자(기업)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완력을 써서라도 남녀의 결합(재정+통화정책의 결합)을 추진하고 심정이다. 통화정책의 자주성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회계적 측면에서는 재정·통화정책을 분리하는 노력은 아무 의미 없다.
그러므로 정책목표는 저신용등급 회사채·CP를 어떤 조건으로 매입하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전부다. 기업에게는 적정 부채비율이 없고(모딜리아니-밀러 정리), 국가에게는 적정 채무비율이 없으며, 중앙은행에게는 적정 지급보증비율이 없다!

#2. 그러나 국회의 지급보증 동의는 필요

미국 연준(Fed)은 연방정부의 지급보증비율에 연연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연준의 수많은 영리기업 여신 프로그램 중 민생경제 회복과 관련 있는 TALF 하나만 정부의 지급보증이 따랐다. 나머지는 정부의 지급보증 없이 연준이 단독으로 추진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은 1992년 투자신탁 3사를 지원할 때 정부가 100% 지급보증 했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이른바 ‘조순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을 따르는 한국은행은 신용리스크 없는 최종대부자를 추구한다. 이는 최종대부자 개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최종대부자 개념을 소개한 <롬바르드 스트리트>에서 월터 베젓은 정부의 울타리 안에서 신용리스크 축소에만 신경 쓰는 뉴욕의 은행가들을 한껏 조롱했다. 그러면서 최종대부자는 신용리스크를 걱정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종대부자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신용리스크가 아니라 구제금융의 정당성과 차입기관의 도덕적 해이다.

구제금융의 정당성은 왜 중요한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의회 승인을 얻어서 재정자금으로 집행해야 할 것인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 해결하면, 행정부와 의회 간의 견제-균형의 원리가 균열한다. 중립성을 유지해야 할 중앙은행이 자원배분에 간여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선발(정치자원 배분)에 간여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연준이 영리기업에 여신할 때 행정부가 약간이라도 지급보증 하는 것을 준칙으로 삼는다. 그렇기 위해서는 EESA 법(글로벌 금융위기), CARES 법(코로나19 위기) 등을 통해 의회 승인을 얻는다. 필자가 여러 번 강조했지만, 한국은행의 영리기업(SPV)에 대한 여신을 정부·여당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려면, 한국은행의 영리기업 여신에 정부가 지급보증 하는 것을 국회가 반드시 승인해야 한다. 국회가 주례를 서는 ‘강제결혼(shotgun wedding)’이라도 없으면, 아이(영리기업)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한국은행)는 세상의 온갖 편견을 혼자서 견디기 힘들다.

#3. SPV 손실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

우리 정부엔 뼈아픈 기억이 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두 차례에 걸쳐서 출자, 출연, 예금대지급, 자산매입, 부실채권 매입 등으로 총 16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이중 회수한 자금은 117조원에 그쳤다. 나머지 52조원은 여전히 회수 중이다. 사실상 회수가 어렵다는 얘기다.

동일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방정부가 GM도 지원하고, 시티은행 후순위채에도 투자했다. 연준은 영리기업에 엄청난 규모로 대출했다. 그러나 손해를 보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그 결과를 인터넷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 한국과 미국 정부는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10년 뒤에는 그 금전적 성과가 비교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원자금이 허투루 쓰이거나 무원칙하게 지원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금융경색이 반복될 때마다 동원해왔던 ‘금융시장 안정대책’들과 다른 점이다.

공정성을 위해서라면 한국산업은행이나 컨설팅회사, 회계법인 등 제3의 기관을 동원할 수도 있다. 공정하게 처리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수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고용 유지. 임원 급여 동결 등을 저신용 회사채·CP의 매입조건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국회는 지급보증 동의안을 의결할 때 그런 점들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작동하는 SPV 지원방식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K-경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4. 한국은행이 SPV를 소유·운영하는 게 바람직

정부 발표에 따르면, SPV는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고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여신하고 거기에 대해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데, 제3의 정책금융기관이 왜 개입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SPV의 투자금 거의 전부가 한국은행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한국은행이 SPV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미 연준이 그렇게 해 오고 있다.

저간의 사정을 추측해 보자면, 한국은행이 한국은행법 제103조를 이유로 드는 것 같다. ‘영리기업인 SPV’를 직접 설치하거나 소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한은법이 미 연준법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한국은행의 주장은 영리기업에 대한 해석에서 오류가 있다.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은 영리법인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익성을 띤 학교법인과 의료법인은 영리기업이 아니다. 학교나 병원은 등록금과 진료비를 받는 등 영리행위를 하지만, 출자자에게 이익을 배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리기업이 아니다.

한국은행도 비영리법인이다. 한국은행의 주된 수입은 대출이자와 외화자산 투자수입이지만, 그것은 공익을 위한 통화신용정책의 결과다. 부동산 임대료나 간행물 판매대금 등 설립목적에서 벗어난 소득도 조금 있지만, 한국은행의 순이익금은 전부 국고로 환수된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예금보험공사 등과 더불어 영리행위를 하지만 영리기업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영리기업은 영리행위와 별개다. 회사채나 CP 매입을 목적으로 하는 SPV의 설립 목적이 고용 및 금융시장 안정에 있고 그 이익금이 한국은행을 통해 정부로 귀속된다면 영리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5. 기획재정부가 한은법 해석을 도와줘야

영리기업의 기준은 법률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예금보험공사는 법인세가 면제되지만, 한국은행은 법인세를 낸다. 세법에서 예금보험공사를 비영리기업으로, 한국은행은 영리기업으로 보는 탓이다. 이처럼 세법은 대단히 황당하다. (이는 전두환 정부 시절 법률이 잘못 고쳐진 탓이다. 우리나라 국회는 이를 40년째 그냥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도 한은법은 고쳐져야 한다)

어찌되었건, 영리기업의 기준이 엉터리다 보니 법을 지켜야 하는 한국은행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고민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하다. 그런 고민의 일차적 해결기관은 기획재정부다. 기획재정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한은법을 관장하는 주무부서로서 한은법의 운용과 관계된 해석을 해야 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행은 공익목적의 SPV를 설립·운용할 수 있는지 기획재정부에 물어야 한다.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아무 상관없다. 기획재정부가 저신용등급 회사채·CP에 투자하는 SPV를 비영리기업이라고 확인해 주면, 문제는 아주 쉬워진다.

#6. 행정해석은 이미 존재한다

한국은행의 영리기업 소유 여부가 문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6년 한국외환은행법을 만들 때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1966년까지는 한국은행이 유일무이한 외국환 취급기관이었고, 상업은행들은 단 1달러도 보유할 수 없었다. 국가적으로 외환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과 더불어 수출입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해방 이후 한국은행이 독점해 왔던 외국환업무를 민간에 넘길 필요가 생겼다.

당시 우리나라 금융계에는 외국환업무를 취급할 전문인력도 없었고, 재정사정도 넉넉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은행 외국부를 분리(spin-off)해서 한국외환은행을 설립하되, 자본금 100억원도 한국은행이 출자토록 했다. 이것이 한국외환은행법의 골자였다.

당시 야당에서는 한국외환은행법이 영리기업 소유를 금지하는 한은법(당시 제112조)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에 맞선 사람이 김정렴 재무부장관이었다. 그는 1950년 한은법 제정 작업에 참가했던 당사자라서 한은법 해석의 최적임자였다. (그는 한국은행 외국부의 전신인 조선환금은행에서도 근무했었다) 그러므로 그의 설명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당시 김정렴 장관은 정공법을 택했다. 신법(新法) 우선의 원칙(나중에 만든 한국외환은행법이 한은법을 제압한다)을 내세우는 대신 “외환은행은 상법상의 영리기업이 아니라 국가시책으로 세워지는 특수법인이므로 한국은행법 위반이 아니다”고 설명했다.(1966년 7월 11일 국회 본회의)

그날 국회는 김정렴 장관의 설명을 듣고 한국외환은행법을 가결했다. 김정렴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은행이 국가시책을 위해 세워지는 SPV를 소유하는 것은 결코 한은법 위반이 아니다.

#7. SPV 소유에 관한 한국은행 주장은 모순

한국은행은 2013년 외환은행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수출입은행과 주택금융공사의 주식은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영리기업 소유·운영 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인가?

한국은행이 두 기관에 출자한 근거는 한국수출입은행법(제4조)과 한국주택금융공사법(제5조)이 아니다. 해당 법률은 두 기관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출자금을 받는 근거이지, 한국은행에게 출자를 명령하는 근거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타 기관 출자 여부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다.

과거 금융통화위원회가 수출입은행과 주택금융공사의 출자를 결정한 이유는 두 기관이 영리법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외환은행에 출자할 때와 똑같은 논리다. 한국은행이 SPV를 소유·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수출입은행과 주택금융공사 지분부터 처분해야 한다.

#8. 한국은행법은 미 연준법과 다르지 않다

출자와 여신은 다르다. 한국은행이 비영리기업인 SPV를 소유·운영하더라도 거기에 여신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현재 한은법 제80조에서는 상업은행 이외의 ‘영리기업’에 여신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비영리기업(SPV)에는 여신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제80조는 일종의 입법 오류다. 여기서 의미하는 ‘영리기업’이란, 정확히 말해서 은행 이외의 법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SPV가 포함된다. 즉, 제80조의 영리기업은 비은행 법인(non-bank enterprise)이며, 제103조의 영리기업(non-commercial enterprise)과는 의미가 다르다. (한국은행법에는 이런 식의 동의이의어가 꽤 많다. 그것을 고치는 것은 국회 몫이다)

종합해 보건대, 한국은행은 ‘비영리기업’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은행 법인’에게 여신할 수도 있다. 법률적으로는 한국은행과 미 연준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9. 답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법률이나 관행을 통해 영리기업을 소유하지 않는다. 캐나다은행법(제23조(b))도 캐나다은행(중앙은행)의 은행주식 소유를 금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은행은 1944년부터 1975년까지 캐나다산업개발은행(IDB)을 소유했었다. 캐나다은행이 IDB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IDB 본점은 캐나다은행 본점건물 안에 있었다. (과거 한국외환은행도 이와 똑같았다. 현재 공사 중인 한국은행 제5별관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IDB 임원들은 캐나다은행 총재를 포함한 임원들이 겸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IDB는 국책사업 수행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업이기 때문이었다. (이후 법률이 개정되어 IDB는 BDC로 바뀌고 지분은 정부로 이관했다)

미국은 캐나다와 법률체계가 같다. 그러므로 미 연준이 위기극복을 위해서 각종 SPV를 설립할 수 있는 법 논리도 캐나다은행의 사례와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설치된 SPV는 비영리기업이므로 미 연준은 얼마든지 소유·운영할 수 있다. 만일 미 연준이 설립한 SPV가 영리기업이라면, 그 운영과 재무상황을 의회에 보고할 이유가 없다.(영리기업의 활동에 의회가 개입하면, 위헌이다)

#10. 지금의 결정이 한국은행의 미래를 결정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이후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1분기에 이어서 2분기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최종대부자 역할을 어떤 논리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많은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SPV는 영리기업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설립을 주도할 수 없고, 제3자가 설립하면 여신은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엉뚱하다. 월터 베젓은 <롬바르드 스트리트>에서 최종대부자 뒤에 정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한국은행을 보면 최종대부자가 정부의 뒤에 숨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전 세계는 지금 코로나19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경, 넥스트노멀에 발을 딛고 있다. 경제학자 페리 멜링의 말처럼 <신(新) 롬바르드 스트리트>를 써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이 어디까지, 어떤 조건으로 돈을 푸느냐를 고민할 때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위중한 시기에 엉뚱한 논리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사람이 일하기만 힘들어진다. 그래서 서산대사는 이렇게 충고한다.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사족
한은법 각 조(條)의 의미와 배경을 자세히 알려면 필자가 최근 출간한 <법으로 본 한국은행>(율곡출판사)을 참조하시라.


차현진 필자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 있으며 그동안 여러 매체에 칼럼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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