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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05-28. 06:07

[한윤형 칼럼] 정의당, 생사 갈림길…청년·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를 껴안아라

by | 2020년 4월 3일 | 정책, 정치

#준연동형 선거제로 존립 위기 봉착 
  민주당이 정의당 몫을 빼앗고 있다?
  민주당 행보 맞춰 ‘개평’ 얻어왔을 뿐
#정의당 지지층, 따로 존재하긴 했나?
  586의 사회운동 부채의식에 기댔지만
  지지기반 더 넓힐  명분·근거 확보 못해
#기존 진보담론보다 상황 따라 진화해야
  하다 못해 민주노총 변화라도 좇아가라

정의당은 지난해 연말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만 해도 최대 수혜자가 될 거라 기대했다. 현재 의석수인 6석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4·15 총선에서 바람을 타면 15% 이상 지지율을 얻어 단독 교섭단체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기대까지 있었다.  다음은 지난해 11월 하순 파이낸셜뉴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정의당, 어디서부터 꼬였나

그런데 넉 달이 지난 요즘,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현상유지도 못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정의당이 원래 20석 목표에 집착한 데에는 교섭단체 성사 문제가 있다. 현재 국회법상으론 20석 이상 의원 집단을 이뤄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으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1석 정당’과 ‘19석 정당’에 큰 차이가 없다고들 한다. 역대 국회에서 공동교섭단체라는 편법이 동원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2008년엔 18석의 자유선진당과 3석의 창조한국당이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만들어 만 1년가량 교섭단체를 운영했던 전례가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2018년에는 14석의 민주평화당과 6석의 정의당이 헌정 사상 세  번째로 공동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 모임은 넉 달을 채우지 못하고 고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붕괴했다.

돌이켜 보자면 그랬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다소 형편이 좋을 때의 목표는 언제나 ‘20석’이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목표 의석 숫자도 20석이었으며,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이 선거제 개혁을 통해 추구한 목표 의석 숫자도 20석이었다. 이는 2012년에도 2020년에도 다소 무리한 목표였으나, 진보정당으로서는 언제나 돌파하고 싶은, 돌파해야만 한다고 느낀 ‘선(線)’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절실함이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협상 과정에서의 조급함으로 바뀔 때 발생했다. 정의당이 어느 시점에서 잘못 판단했는지를 적시하기는 어렵다. 정의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포괄해서 봐도 매 순간 그들이 함께 내린 판단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택들의 누적이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4+1’의 준연동형 선거법 개정 협상의 말미에는 정의당이 너무한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10여 석의 손해를 감수하는 게 분명해 보였고, 정의당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익은 거대 양당 모두 비례정당을 만들 때는 상쇄되고 말 운명이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이 사기를 친 셈이 되었다. 민주당은 그런 오명을 쓰기 싫어 한 번 더 애매한 짓, 비례정당을 시민사회 및 소수정당과 함께 구성하겠다는 방안을 강행했다. 이 사이에 벌어진 난맥상은 민주당의 문제를 더 드러낸 것이긴 했지만 대처 과정에서는 오히려 정의당의 정당 지지율이 떨어졌다.

의석수, 선거제도 탓만은 아니다

뭐가 문제였을까. 먼저 나는 정의당 내부에서 본인들의 역량과 기반에 대한 착각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선거제도 때문에 ‘민주당이 정의당의 몫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견해가 그러하다.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이 7%를 득표했으므로, 제대로 된 선거제도라면 21석은 보장해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러한 주장에는 합리성이 없다. 유권자는 선거제도까지 감안해서 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에 정당 투표를 한 7%의 유권자들은 본인이 기표한 정당명부 투표가 300석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47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국민의당이 민주당을 앞서서 정당 투표 2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개정 이전 선거제도는 소수 정당에게 너무나 불리한 제도였다. 정의당 입장이라면 어떻게든 정당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전체 의석에 연동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바람을 ‘사실 유권자들은 정의당에게 20석을 주고 싶어 하는데, 거대 양당의 협잡의 산물인 기존 선거제 탓에 6석밖에 주지 못한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종종 거대 양당을 비판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말을 사실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유권자들에게 정의당이 20석을 넘어설 정도의 매력적인 정당으로 느껴지지 않을 엄연한 가능성, 현실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정의당 지지층이란 것이 과연 따로 존재했는가’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정의당 지지율이 정의당의 행보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민주당의 행보와 관련이 있다. 여기엔 두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하나는 진보적 유권자층이 민주당의 행보에 불만을 품는 경우다. 그런 경우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모습이 흔히 관측되는데, 이때 정의당은 민주당을 향한 노란 신호등, 경고등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꼭 이런 경우가 아니라 민주당이 잘 나가는 경우에도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가기도 한다. 진보적 유권자층은 민주당이 잘하기 시작하면 다시 민주당 지지 응답을 높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 지지율이 보수정당 지지율을 압도하면 다시 정의당에게 인심을 쓴다. 일종의 ‘U’자형 곡선을 그리는 셈이다. 사실 이때 정의당은 ‘개평’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정의당 지지율이 고공 상승한 이유도 내부 요인으로부터 찾기는 어렵다. 그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철저하게 망해서 진보적 유권자층의 마음이 느긋해졌기 때문이라 봄이 더 타당하다. 그해 8월에는 정의당이 한국갤럽조사 기준 15%의 지지율로 자유한국당을 잠깐 제치고 정당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조차 했다.


정의당 지지층은 어떤 사람들인가

“정의당은 어디에도 기반이 없이 민주당 지지층의 교차투표에 의해 살아가는 ‘개평’ 정당이었다”고 적는다면 이는 사실에 다소 어긋난다. 앞서 나는 ‘민주당 지지층’이란 표현 대신 ‘진보적 유권자층’이란 표현을 썼다. ‘최순실 게이트’ 이전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인 유권자의 35%가량이 새누리당과 확고하게 동조했다면, 그 반대편의 30~35%는 ‘민주당 지지층’이라 부를 정도로 확고하게 동조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민주당 지지층’이라기보다는 ‘반(反) 새누리 성향 유권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했다. 그래서 민주당을 지지할 수도 있고 정의당도 지지할 수 있었다.

이 점 역시 정의당의 착각 내지는 오판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한 맥락이다. 정의당 지지층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당 지지층과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한 찬성 의견이 정의당 지지층에서 민주당 지지층보다 더 높게 나오는 일도 흔하다. 사실 그 사람들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을 원해서’ 정의당을 지지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 진보적 유권자층의 민주당에 대한 심정적인 동조율은, 과거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층의 새누리당에 대한 동조율만큼 높지 않다.(※최근에 자주 호명되는 ‘문파’라는 그룹은 전국적으로 30~35%에 해당하는 이 유권자 층을 포괄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도권 한정 10~15% 정도는 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특히 수도권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들이 민주당에 다소 불만을 가지고 대안정당에 투표를 하고 싶을 경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기준 내지 문턱은 당연하게도 ‘민주당보다 진보적인가?’란 물음이 아니다.

첫째 기준은, ‘미래통합당(과거 자유한국당, 그전의 새누리당 계열의 정당)과 합당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들은 민주당 지지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반 새누리 성향이란 말이 어울렸을 정도로 그 계열 정당에 대한 비토 심리가 강하다. 그래서 미래통합당의 의석을 늘릴 가능성이 있는 선택은 결코 하지 않는다. 이름을 바꾸며 이합집산해온 자칭 개혁보수 정당들이 정당 지지율에서 헤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기준은, ‘민주당과 합당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는 첫 번째 기준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중요한 기준이다. 민주당에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리려고 투표했는데 그 결과물이 민주당에 합류해 버린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물론 둘째 기준은 첫째 기준만큼 결정적인 사안은 아닐 것이다)

정책 성향의 문제는 그 다음에야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들이 정의당을 지탱해온 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전신으로 하는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거대 양당 중 어느 쪽에도 합류하지 않을 거라는 점만큼은 정당 역사를 통해 보증됐기 때문이다. 즉, 정책적 성향이 아니라 독립성 차원에서 오히려 평가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정의당 몫을 선거제도를 통해 갈취하고 있다’가 안이한 판단이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정당을 원하는데 민주당이 미래통합당 핑계를 대며 차악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주장 역시 정의당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발화는 할 수 있을지언정 본인들까지 믿으면 안 되는 주장이었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유권자들이 좌익으로부터 우익으로까지 정렬한 하나의 선분 위에서 본인이 원하는 이념적·정책적인 정당을 선택하는 것처럼 간주한다. 본인들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다수 유권자들 역시 그럴 거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안이한 것이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3.7%(3월 3주), 4.6%(3월 4주)로 저조했는데 정당 투표 의향에선 6.0%(3월 3주), 5.9%(3월 4주)로 비교적 버티고 있는 원인도 그것이다. 정의당 지지층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주당 지지층 성향과 거의 흡사한 이 한 덩어리의 유권자 중에서 누가 정의당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느냐의 문제엔 당연히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비례정당은 물론이고, 위성정당까지 나오는 상황이 정의당에는 위협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 진보지지층의 실망’을 상쇄해 보겠다고 청년후보들의 입을 통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판한 것도 악수(惡手)에 가까웠다. 정의당이 애초부터 조국 전 장관에 대해 강단 있는 비토의사를 밝혔다면 또 모르겠으나, 정의당을 지지하거나 비토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입장 변경은 ‘그럼에도 정의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보다는 ‘정의당 지지를 철회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낼 확률이 더 높다.

사회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줄어드는데…

몇 가지 기술적인, 혹은 운이 나빠서 생긴 실수나 오류들도 있었다. 현재 정의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이것은 정당 투표를 통해 의석 대부분을 만들어야 할 정당에겐 치명적인 문제다. 그런데 이 역시 누군가의 의도로 이렇게 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정의당 지도부는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전략공천을 상당한 비중까지 섞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준연동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개정한 그 선거법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할 때 민주적 심사 및 투표 절차를 거쳐 후보를 결정토록 하라는 조항을 구체적으로 넣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선관위는 개정법 조항에 근거하여 전략공천이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전략공천은 불가능하게 됐고, 청년명부를 따로 두는 식의 조정 외에는 경선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 상위 순번자들의 과거에 대한 논란은 경선이 끝난 이후에야 문제가 됐다. 정당 내부 경선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충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네거티브 캠페인에도 일정한 기능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또한 정의당 내부에서 허리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 초반 출생 정치인들의 원내진입 실패는 정의당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갑갑함을 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굵직한 문제를 봐야 한다. 나는 앞서 ‘민주당이 정의당 몫을 선거제도를 통해 갈취하고 있다’란 주장도, ‘사람들은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정당을 원하는데 민주당이 미래통합당 핑계를 대며 차악으로 억누르고 있다’란 주장도 사실에서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저런 주장들이 정의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로서 잘 먹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의당 사람들은 저런 말을 줄곧 입에 담다가, 정세 판단을 그르치게 됐을 것이다.

그 주장이 먹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먹혀든 토양은 특정 세대, 특정 성향 유권자층이 가졌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등 사회운동 세력에 대해 가졌던 부채의식’이라 생각한다. 즉, 이 부채의식이 있는 이들에겐 저런 주장을 반복할 때 그게 다소 사실에서 어긋날지라도 먹힐 여지가 있다. 물론 없는 이들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저 부채의식은 주변에서 경험한 바와 여론조사의 연령별 격차를 통해 짐작해본다면 1970년대생들에게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고, 1980년대 초반생들에게까지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1980년대 후반생들부터는 현저하게 옅어진다. 1990년대생들에게로 넘어오면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옛날 얘기가 된다. 정의당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과거 사회운동 세력’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원내정당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꽤나 길어지기도 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된다. 정의당은 저 부채의식을 더 넓은 유권자 집단에 확산시키는 작업도 못했고, 그 부채의식 이외의 경로로 정의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지도 못했다. 노회찬의 부재는 역시 뼈아픈 일이다. 그는 정의당의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광범위한 유권자층에 부채의식을 전파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들 노회찬을 계승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후보군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정의당이 1970년대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정서를 토대로, 민주당에도 불만이지만 반대편 정당의 의석을 불리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이들의 불만을 주워 담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지율의 최대치가 아마도 2016년 총선의 성과인 7%대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그때보다도 덜 매력적인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들고 이 7% 지지층 중 어느 정도 선까지나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술적 싸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6년 총선이 ‘노유진의 정치카페’(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합심하던 시절을 보여주는)가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시점에 치러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쉬운 미션이 아니다.

4·15 총선에서 정의당이 몇 석을 건질지도 지켜봐야 하겠지만 총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전망조차 별로 밝지 않다. 현재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서 앞 순번에 위치한 이들이 정의당 현역 의원들보다 잘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전가의 보도로 들이밀어야 할 존립 의의,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필요한 이유’의 타당성도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논의됐던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문재인 정부가 기존 진보담론에 비해 ‘오른쪽이라서’ 문제가 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하지 못해 실망한 것이 아니다.

존립의의 되묻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기존 진보담론의 문제, 혹은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함은 ‘정규직 노동자’를 기본적 경제주체 단위, 사회적 약자로 고수하는 점에서 발견된다. 사실 문재인 정부도 그러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다양한 불만 내용, 비판 내용만 본다면 현 시점 한국 사회에서 중도파는 문재인 정부보다 오른쪽의 정책을 사용하는 정당으로 이탈해야 한다. 그렇지만 개혁보수 정당에 표를 줬다간 미래통합당의 세를 불리게 될 가능성이 보이므로 그러지는 못한다.

그들에게 정의당은 어떻게 느껴질까?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교사의 눈치를 보느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할 것처럼 여겨질 때, 정의당은 어떠한 집단으로 여겨질까? 문재인 정부가 고연봉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년연장이나 실행할 정부라고 비판받을 때, 정의당은 어떠한 집단으로 여겨질까? 이때에 정의당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기보다는, 문재인 정부보다 훨씬 더 경직된 화석 같은 집단으로 여겨질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엔 정치에 관심을 갖고 파보면 파볼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정의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보다는 민주당에서 포퓰리즘 정치인이 탄생해서 그 영역을 타격할 가능성이 차라리 더 높다고 보여진다.

이런 부분의 경우 기존 진보담론과 정책의 관성이라는 경로가 강하게 작용하는지라, 하루이틀 안에 바뀔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진지하게 정의당의 구성원들이 본인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의 존립 의의가 무엇인지까지 따져봐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변화의 물결이 정의당보다도 차라리 민주노총에서부터 먼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신규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한국노총의 규모를 능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가되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일자리가 불안정 한 노동자군에 해당한다. 정규직 노조원들은 어쨌든 정년이 차면 은퇴를 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만 세월을 더하면, 민주노총의 구성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노총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는 달리 ‘비정규직 노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몇년 후부터는 그런 상황의 전조를 보여주는 흐름이 슬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정의당은 적어도 이 흐름에, 민주노총의 체질이 변화하는 속도로는 발맞춰야 한다. 청년 및 비정규노동, 프리랜서를 껴안는 길에서 민주노총과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근속년수를 채울 수 있는 업종의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고, 이직을 많이 하는 업종의 눈높이에서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방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빨리 변할 것이고, 미래통합당 세력은 도태되느냐 혁신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당 구도로만 따지면 진보정당이 대중에게 먹힐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소임을 정의당이 맡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정의당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시대적 역할을 떠맡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너무 기본적인 얘기지만 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이켜 보자면, 민주노동당 시절 갑론을박하면서 반성했던 것들은 정의당에서 거의 다 실현됐다.(※그 노회찬조차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시절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사민주의 정당을 선호한다고 했었다)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피드백을 하고 고쳐나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유권자들은 그것도 느리다고 봤고 중간에 진보정당 운동의 파행이 왔다. 지금 부여잡고 있는 원칙이란 것들도 10년 후의 시선에서 보면 그렇게 부질없어 보일 가능성이 크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고, 또한 코로나19 이후 더 많은 것들이 변할 이 시기에, 철학과 원칙은 너무 무거운 옷일 수 있다. 정의당이 누구를 대변하는지를 정확하게 결정하고 그들을 위해 각 상황에 맞춘 ‘땜질’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게 차라리 실질적인 진보정당의 길일지도 모른다. 철학, 원칙, 일관성을 훼손하는 길이 거꾸로 진보정당의 존립 의의를 되찾는 길인지도 모른다.


한윤형 필자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 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컨설턴트 업체 등에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디어 시민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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