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20. 04-03. 18:32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리더는 갈등을 ‘변화의 디딤돌’로 만든다

by | 2020년 3월 16일 |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나는 늘 갈등한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택시와 지하철을 놓고, 그리고 청소기와 세탁기 중 하나를 택하라는 아내 앞에서. 일상이 갈등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느끼는 갈등은 견딜 만하다. 단지 나의 우유부단함이 불만스러울 뿐,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문제는 사람과의 갈등이다.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커피숍 옆자리에 앉은 생면부지 사람과 갈등이 생길까봐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하는 게 힘들다. 아내와 다투고 갈등 상태에 있는 게 너무 불편하다. 직장을 10번 넘게 그만둔 것도 갈등에 취약한, 나의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 갈등에 대해서는 더 소극적이고 취약하다. 노사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의 당사자가 되는 게 두렵고 싫다. 갈등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나처럼 갈등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댓글로 달면 조용히 ‘친구 삭제’를 한다.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도 비겁하게 듣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지금처럼 사회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다. 왕성하게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어서 그런 듯하다. 모두가 이전보다 나아질 수 있었고, 함께 윈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배해야 할 때는 다르다. 더 갖는 사람과 덜 갖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 또 그때는 강압적인 독재체제였다. 갈등을 물리력으로 틀어막았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켜켜이 누적된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회적 욕구가 복잡해지면서 갈등요인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업체와 오프라인업체 간, 대형마트와 골목가게 사이의 갈등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갈등의 시대다. 갈등으로 인해 힘든 사람이 많고, 갈수록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내가 모신 리더들은 불필요한 내적 갈등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비결은 자기만의 기준과 원칙을 갖고,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내적 갈등은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되, 또한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한 태도로 극복할 수 있다.

아내는 무조건 짬뽕이다. 그러면서도 기분 내키면 짜장도 시킨다. 하지만 그것으로 원칙이 무너졌다거나 자신이 줏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칙은 짬뽕이지만 짜장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갈등하지 않는다. 또한 목표를 분명히 해도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음주나 비만으로 갈등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목표가 분명하면 먹을지 마실지 갈등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자신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다.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그럼 이제라도 똑똑히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 이런 사람이야.” 갈등은 저마다 다른 욕구, 관점, 의견, 취향, 성향, 이해가 충돌할 때 일어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받아들이면 갈등할 이유가 별로 없다. 남과 다른 나를 인정받으면 갈등 상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을 꾸미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나답게 살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일관성을 갖게 된다. 그러면 내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이나 기대가 단순하고 분명해진다. 그만큼 갈등은 줄어든다. 또한 자신도 마음 편하다.

내 경험으로,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상대에게 내가 맞추거나, 상대방을 내게 맞추거나, 만나지 않거나. 세 번째는 해결 방법이 되기 어렵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밖에 없는데, 리더들은 상대방을 내게 맞추는 방법을 쓴다. 설득이나 회유, 또는 카리스마나 힘으로 그리 한다. 나는 상대방에게 내가 맞추거나, 나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갈등을 피한다.

내적 갈등이나 관계 갈등은 리더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일은 리더의 몫이다. 개인적 갈등은 적을수록 좋지만, 조직이나 사회에서의 갈등은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갈등을 회피하면 여러 폐단을 낳는다.

무엇보다, 실력으로 경쟁하는 분위기를 해친다. 경쟁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따른다. 화합과 경쟁은 상충하는 개념이다. 화합을 내세워 ‘각박하게 경쟁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무능하고 나태한 사람이 활개를 친다. 그런 사람이 실력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향해 ‘능력도 있고 다 좋은데 왜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못 맞춰.’ 라고 훈계한다.

뿐만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면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화목과 단합을 핑계로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유야무야 넘어가면 갈등 상황이 만들어지진 않지만 문제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히 위기 대처도 안 된다. 물속에 불순물이 있으면 휘저어서 눈에 띄게 하고,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휘젓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덮어놓는다고 고름이 살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갈등을 회피하면 변화와 혁신도 어렵다.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수용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런 갈등을 잘 관리하면 변화는 물론, 구성원 간의 관계도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변화 이전보다 더 돈독해지고 신뢰가 굳건해질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외면하면 변화와 발전을 위한 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해야 하는가. 먼저, 갈등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밝히는 건 갈등을 자초하는 일이다. 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부딪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반대하고, 누군가는 내 말에 앙심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 상황은 소통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귀찮고 골치 아프지만 갈등을 의제화해서 수면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갈등을 감수함으로써 갈등을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개방적인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고 균형 있고 공정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뒤엉킨 갈등 상황을 풀려면 서로의 처지와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공감 수준을 높여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상호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의견을 펼치는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내용을 퍼트리는 등 부정한 경쟁이 되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증오만 부추기는 감정싸움이 되지 않도록, ‘모 아니면 도’ 식의 치킨게임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런 역할에 태만하면 중간지대에 있는 대다수는 갈등을 외면하고, 양극단의 목소리만 커지게 돼 결과적으로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든다.

갈등의 외피를 쓴 불의, 불합리를 가려내는 안목도 필요하다. 정의와 불의 간, 정당함과 부당함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은 중재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쌍방과실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일방적인 가해자가 있거나 압도적인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일어난 갈등 상황에서 양측 모두에게 양보와 절충을 요구하거나, 부당하게 갈등을 야기한 가해자 측이 있는데도 공정성을 내세워 양시양비론을 펼치면 안 된다. 단호하게 옳고 그름을 가려줘야 한다.

갈등을 조정하려면 포지션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선수인가, 감독인가, 심판인가, 아니면 관중인가. 갈등 사안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운동장에 직접 뛰어들어 ‘선수’로 뛸 필요도 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한발 뒤에서 ‘감독’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기업에서 국내부문과 해외부문, 개발파트와 영업파트 간 갈등이 있을 때 최고경영자는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부서장이나 본부장은 관할 부서나 본부 안에서 갈등이 불거졌을 때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말없이 지켜보는 ‘관중’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말의 형식도 선언, 담화, 발표, 간담회, 면담 등 다양해질 수 있다. 포지션을 잘못 취하면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조장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갈등의 성격과 본질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갈등은 세 가지 이유로 일어난다. 힘겨루기 즉 파워게임이거나, 이익다툼이거나, 정체성과 명분 싸움 중 하나다. 이해타산 갈등이 명분의 탈을 쓰기도 하고, 파워게임과 이익다툼이 한 쌍을 이루기도 하지만 갈등의 속성은 힘, 이익, 명분이다. 세 측면을 중심으로 왜 갈등이 일어났는지부터 파악한 후, 그에 맞는 해결 방식,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철저하게 경쟁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든, 중재를 통해 타협하게 하든, 어느 한쪽이 상대를 수용하거나 양보하게 하든, 상호 협력하게 하든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문제 해결이 답이다. 갈등을 풀려면 갈등을 야기한, 갈등의 뿌리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갈등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문제 해결에 진력하는 게 갈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길이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도 여러 갈등이 불거졌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확실한 방법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것이다.

갈등은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도, 변화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갈등을 관리하는 역량이 리더십의 요체이고, 갈등은 리더의 소통역량에 의해 관리된다. 가정이건 직장이건 사회에서건 내가 리더인지 아닌지, 혹은 바람직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알고 싶거든, 갈등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방식을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리더가 아니다.


강원국 필자

작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최근에는 강연 등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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