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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제 문제 해법은 경제 안에 있지 않다. 문제와 해법은 경제 밖에 있다. 경제 문제를 경제관료들과 대통령이 풀 수 있었던 때는 박정희나 전두환 때까지다. 그때는 경제의 규모가 작았고,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해 계엄령, 10월유신 같은 것들로 정치를 통제하고, 노동 탄압, 환경 경시 등 사회를 억누를 수 있었다.
지금의 경제 문제는 경제정책으로만 풀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경제정책의 문제인가? 4차산업혁명은 경제의 영역에 속하는가? 과학기술이다. 더구나 이런 변화들은 예상을 벗어나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 2018년 한국은 미래로부터의 급습에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안은 통합된 대책지휘부의 설치다.

청와대 정책실이 맡아 경제를 살려본다고 하다가 요즘은 내각의 경제부총리를 믿고 맡겨본다는 흐름이다. 아니다. 그것은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경제부총리와 경제부처를 봐왔다. 결코 현재의 경제팀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경제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 영역을 망라하는 통합 지휘부가 필요하다. 대통령 또한 여기서 국외자일 수 없다. 통합적 시각과 통합적 대책을 만드는 주조종석에 정좌해야 한다.

 

통합 대책은 누가 만드는가.

그간 경제를 ‘만져온’ 사람들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민간 전문가, 미래 전략가, 인문 사회학자 중 큰 생태계로 세상을 이해하는 인사들이 기용되어야 한다. 특히 민간 분야에서 적극적인 성과를 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멀리 보고 넓은 시각을 가졌으면서도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 최근 대기업이 난타당하고 있지만 수천~수만 명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제 민간 대기업인 출신밖에 없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역경을 딛고 도전해서 성공해 본 분들이다.

이제는 경륜이라는 말을 듣기 어려울 정도로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쓸모없어 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생태계로 통합되고 있기 때문에 개별 분야의 전문성은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판을 넓게 입체적으로 볼 줄 아는 미래 전략가들을 중용해서 정책의 최전선을 맡겨야 한다.

 

핀란드의 예를 보자.

이 나라는 여야 의원 26명이 미래위원회를 만들어 30년 뒤의 국가 미래를 논의한다. 국가 부채나 미래의 위험과 관련된 법안은 반드시 이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 새 총리가 집권하면 이 위원회에 15년 뒤의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제가 강한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주도하되 행정부 수반의 위치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국가원수적 입장에서 이끌어야 한다. 여기에 여야와 전문가 그룹, 재계, 학계, 관계, 시민대표가 동참하도록 하는게 정치력이다. 경제가 정치다. 설득력과 리더십, 그리고 실행력이 능력이다.

 

지휘부는 장기 사회 비전부터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패전 후 미국을 따라잡자는 ‘Catch Up’ 비전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 중반 경제적 측면에서만 미국을 따라잡자, 일본은 방향성을 잃었다. 이후에도 사회구조의 개혁 없이 경제 성장에만 몰입한 결과, 버블이 붕괴되면서 28년째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금 한국도 장기적인 방향성이 없어 보인다. 지난 시절 고성장의 관성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고자 하는 지향점이 없는 사회는 늘 자멸하곤 했다. 국민소득 10만 달러 등과 같은 경제적 비전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정의가 기초가 된 나라’, 혹은 ‘원칙이 통용되며 기회가 평등한 사회’ 등과 같은 국가와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비전과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다. 이게 있어야 장기적인 정책이 가능해지고 실행력이 높아진다. 경제는 경제가 아니다. 정치가 경제다.

 

먼저 온 미래가 현재라는 ‘녀석’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 매년 20~30만 명 정도 취업자가 늘어났었다. 그런데 올 2월부터 갑자기 취업자 증가 폭이 1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특히 5~6월은 남북관계 호전, 지방선거와 월드컵 등으로 소비와 고용이 늘어났어야 했다. 경제성장의 중심인 제조업 고용은 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도소매, 교육 서비스업과 같이 소비 영향력이 강한 업종에서도 고용이 악화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원인 진단과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정책 실패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중국 관광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로, 그리고 미투(Me Too) 현상에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까지 결합되자 내수 경기가 얼어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정책당국은 고령화와 디지털 사회화로 일자리 증가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또한 작금의 각종 개혁조치가 효과를 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경제는 여러 요인이 어울려 효과가 발생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 개혁조치의 역효과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세계 경제가 이미 하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출 중심인 한국은 세계경기가 하강할 때마다 경제 위기를 겪곤 했다. 세계경기 하강을 감안해도 최근의 고용 동향은 심상치 않다. 필자는 근본 원인을 해외요인과 함께 ‘저출산 고령화’, 4차산업혁명, 부(富)의 양극화와 미투, 갑질 같은 전근대적인 사회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로 해석하고 싶다.

 

미래의 구조적 변화가 본질이다.

교육서비스업종의 추락에 담긴 메시지를 보자. 이 업종은 지난 1년 간 10만 명 이상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갑자기 모두 공부를 안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미 전조 증세가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교육비 지출증가율은 전체 소비지출 보다 현저하게 낮아져 왔다. 전체 소비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부터 빠르게 감소했다. 대입 중심의 한국 교육시장은 지금의 대학입시생이 태어났던 20년 전에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이미 위기가 잉태돼 있었다. 추가로 온라인 교육의 확산도 일조했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이 노인 복지문제 보다 사교육시장에서 먼저 나타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예상 수준이던 미래의 변화가 현재의 삶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소비지출과 교육비 지출 증가율 (자료: 통계청)

 

한국은 세계 1위의 로봇 사용 국가다. 지금도 기업들은 비용 축소와 품질 향상을 위해서 스마트팩토리 건설에 열중하고 있다. 이 결과 고도의 작업을 수행하는 전문직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지만(전년대비 12만개 증가), 기능•기계조작 조립•단순노무자의 일자리는 빠르게 줄고 있다. 도소매, 숙박, 음식 업종도 대형화, 디지털화되면서 고용이 줄고 있다. 52시간근로나 최저임금 인상은 현재의 손익에 관계된다. 그러나 장기적 생존문제는 디지털화에 달려있기 때문에 자동화 투자를 줄일 수 없다. 결국 4차산업혁명을 막을 수 없다면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다.

이런 변화가 한국만의 현상일까? 사실 선진국의 고용 구조도 한국과 비슷하다. 전문직 일자리는 늘지만, 단순노무자 일자리는 줄고 있다. 최근 5년간 미국의 백화점 종업원은 15퍼센트 줄었다. 반면 배달•택배원 숫자는 30퍼센트나 증가했다.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전문직 일자리와 교육, 보건, 레저, 병원 등 고령화 관련 일자리만 늘고 있다.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조차 10만 달러에 달하던 1인당 국민소득이 최근 7만 달러까지 줄게 되자, 일자리를 두고 사회 갈등이 커지고 있다. 결국 한국의 경제와 고용문제는 세계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는 장기적이고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두 번째 글로벌 부채위기도 대비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지만,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도 만만치 않다. 지금 세계 모든 국가는 역사상 가장 많은 ‘빚’을 떠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2~3년 내 부채폭탄이 터질 것으로 보지만 입 밖에 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자 금리가 오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 폭탄은 저절로 터진다. 이럴 경우 세계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더욱 피할 길이 없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 전쟁은 한국 수출에 치명타다.

만일 두 번째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현재의 개혁정책은 추진이 어렵고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경제는 한번 악순환에 빠지면 탈출이 어려워서 위기 방어비용 보다 복구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따라서 조만간 터질 부채폭탄과 경기 침체에 대비하는 선제적 투자를 서둘러야 하는 시점이다. 최우선적으로 서둘러야 한다!

 

통합지휘부를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

필자는 이런 이유로 통합 지휘부를 구성을 제안한다. 이의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놓아야 하기에 이 문제는 이쯤 지적하고, 이 지휘부에 몇몇 정책 아이디어를 남기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는 공공보육이다. 최근 10년간 늘어난 일자리의 약 40퍼센트는 정부 주도의 보건과 복지 분야였다. 향후에도 이런 트렌드는 유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이 보육시설에 예산, 시설, 인력을 대대적으로 투자하면 어떨까? 국가가 아이 보육을 완전히 책임진다면 출산율 하락의 중요한 요인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다. 제한된 예산의 선택과 집중으로 뭔가 확실한 매듭을 짓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변한다.

둘째는 이공계 장학금이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절대적으로 이공계 인력이 필요하지만 2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제조업 강국은커녕 성장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공계 고교생과 대학생 전원에게 국가가 대규모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도 생각해 볼 시점이다. 경제계에 주는 한방(韓方)적 선물이 될 듯하다.

셋째는 국토재설계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협소한 국토를 감안해서 한국을 거대도시 개념인 메가로폴리스(megalopolis)적 관점에서 재설계하면 어떨까? 이 부분은 중앙정부가 판을 깔고 관리감독해야 한다. 자잘한 자치단체의 지역에 함몰된 현재형 계획이 난무하면 이게 바로 난개발이다. 이미 오래 많이 겪었다. 위임이 능사는 아니다. 모럴 헤저드에 빠져있는 지방자치단체에 한국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양극화와 강남 집중현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종부세 강화 등 세제 개편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급 확대와 강남 이외 지역의 인프라를 혁신해야 한다. 서울 서북이나 남서쪽에 제2의 강남을 건설해서 현재 강남·북에 위치한 정책 기관들을 우선 입주하고, 지하철 등 교통 인프라를 강남 이상으로 공급한다면 대기업이 입주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광역고속철도(GTX) 사업을 확대하고 서둘렀으면 한다. 위성도시에서 시내 중심부 진입을 용이하게 하면 청년층의 주택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또는 획기적인 쓰레기 재활용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결합해서 집중 투자한다면 환경문제를 다소나마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통일 후까지 길게 생각한다면 많은 투자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원래 투자는 미래의 변화를 보고 선제적으로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민주당의 프로페셔널 정치인인 빌 클린턴.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아버지 부시를 이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남을 말을 던졌다. 우리가 잘 아는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이제 틀렸다. 지금 전세계 주요국의 문제는 통합된 시각의 부재와 미래 변화를 선도하는 ‘정치의 부재’다. 리더십이다. 그게 없이 경제는 풀리지 않는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CEO, 저술가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