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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08-14. 17:05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브렉시트의 마지막 장면: 여성의 말 vs. 남성의 말

by | 2020년 2월 11일 | 국제,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지난 1월 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가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의 입법기관인 유럽의회에 진출해있던 영국 출신 의원(MEP: Member of European Parliament) 73명은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월 29일, 유럽의회는 브렉시트 안을 통과시켰고, 영국 출신 의원들은 더 이상 EU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유럽의회 회의장에서는 잠깐 동안 소란과 함께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회의장에서 발언한 내용 때문이었는데, 여성 세 명의 발언과 남성 한 명의 발언이 화제의(혹은 문제의) 발언이었다. 그들의 말을 한 번 비교해보자.

(여성) 케이토: “그 꿈을 살려 두어야”

영국 출신의 녹색당 의원이자 대학교수인 몰리 스캇 케이토(Molly Scott Cato)가 행한 짧은 연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EU 부의장인 마리드 맥기네스가 그에게 1분 동안의 발언 기회를 허락했고, 동료 의원들의 박수 속에 케이토는 준비해온 짧은 원고를 읽었다.

그런데 그는 두 번째 문장을 끝내자마자 울음이 터지려고 한다.

※다음은 연설 요지. 다음 링크를 통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https://youtu.be/3Buts8BW_PI

감사합니다, 의장님.
Thank you so much, President.

지난 4년 동안 저희가 강력한 캠페인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희가 오는 금요일에 유럽연합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슬픔과 회환을 가지고 받아들입니다. 아, 눈물이 나네요.

In spite of the powerful campaign we’ve waged for four years, with grief and regret, I accept that we will leave the European Union on Friday. Oh no, here come the tears.

우리나라가 장차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구호 몇 개 외에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이는 우리 앞에 아주 중요한 정치적인 과제가 남아있음을 의미합니다. 브렉시트로 인한 손실이 쌓여가는 중에 우리는 배신의 내러티브와 싸워야 합니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전략을 선전했던 사람들이 그 피해의 책임을 EU와 브렉시트에 반대한 사람들에게 덮어 씌우려 하고 있습니다.

Our future as a country has no clear shape beyond a few slogans and this means that we have some very important political tasks ahead. As the Brexit losses mount we must counter the betrayal narrative where those who promoted the doomed strategy try to shift the blame for the damage onto the EU and on to those of us who argued against it.

우리는 영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EU 시민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함께 단결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지금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EU에 가입하기 수십 년 전에 활발했던 우호단체와 자매결연 노력을 다시 활성화해야 합니다.

We must demonstrate compassion and solidarity with EU citizens living in the UK who feel vulnerable and fearful and we must revitalize the friendship groups and twinning associations that thrived in the decades before we joined the EU.

아직은 EU로 다시 돌아가자는 캠페인을 할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살려두어야 합니다. 특히 압도적으로 친 유럽적인 성향의 젊은 세대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Now is not the time to campaign to rejoin but we must keep the dream alive especially for young people who are overwhelmingly pro-European.

저는 언젠가는 영국이 유럽의 심장으로 되돌아온 것을 축하하러 이 회의실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품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 hold in my heart the knowledge that one day I will be back in this chamber celebrating our return to the heart of Europe. Thank you.

케이토의 주장은 ‘영국의 젊은이들은 EU에 남아있고 싶어하기 때문에 결국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희망이었지만, 작은 도버해협이 그렇게 멀구나 싶은, 가슴 아픈 말이기도 했다. 케이토는 ‘영국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을 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동료 의원들은 케이토를 번갈아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

눈물 없이 보기 힘든, 우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남성) 파라지: “끝인데요, 뭐. 다 끝났어”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2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영국의 EU 탈퇴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를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래 발언에서도 등장하지만, 그는 유럽 의회에서 아무도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분개를 종종 내보인다.

그런 그의 주장이 2016년의 기적적인 국민투표로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기쁨을 넘어 조롱에 가깝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끝이네요. 이게 영국이 한 번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47년 동안의 정치실험의 마지막 장이고, 그 길의 끝입니다.

Thank you very much. So this is it. The final chapter. The end of the road. A 47-year political experiment that the British have never been very happy with.

제 어머니, 아버지는 경제공동체(common market)을 하자고 투표했지, 정치연합을 구성하자거나, 공통된 국기나 국가, 대통령을 원했던 게 아닙니다. 이제는 군대도 같이 갖기를 바라고 계시죠. (중략)

My mother and father signed up to a common market, not to a political union, not to flags, anthems, presidents, and now you even want your own army. (중략)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겁니다. 1월 31일 금요일 밤 11시는 이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됩니다. 우리가 (EU를) 떠나면 우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는 솔직히 말해 세부사항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갑니다. 가버릴 거고요, 제 정치적인 야심의 절정이기도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여러분들, 엄청 우습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2016년이 되니까 여러분이 웃음을 멈추더라구요. (중략)

… but the most significant point is this. What happens at 11:00 p.m. this Friday, the 31st January marks the point of no return. Once we’ve left, we are never coming back and the rest frankly is detail. We’re going, we will be gone, and that should be the summit of my own political ambitions. I walked in here, as I’ve said before, you all thought it was terribly funny. You stopped laughing in 2016. (중략)

나이젤 파라지는 그러고 나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연결하면서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단순히 미국만도 아니고, 인도와 브라질, 필리핀 등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포퓰리즘이 미래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서구 유럽과 미국,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리즘과 포퓰리즘의 싸움입니다. 포퓰리즘을 싫어하실 텐데요, 웃긴 거 하나만 알려드릴까요? 포퓰리즘은 아주 인기(popular) 있어요. (중략)

Indeed there’s an historic battle going on now across the West in Europe, America, and elsewhere. It is globalism against populism. And you may loathe populism but I tell you a funny thing: it’s becoming very popular. (중략)

그런데 그가 도를 넘은 건 다음 대목이다. 자신은 물론 주변에 앉은 영국독립당 의원들과 함께 몰래 준비했던 작은 영국국기, 유니언잭을 꺼내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의회에서 금지된 행동이다.

여러분이 영국을 그리워 할 거 알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국기를 금지한 거 아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흔들어서 작별인사를 할게요.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함께 일할 때는 주권…  (마이크 꺼짐)

I know you’re gonna miss us, I know you want to ban our national flags, but we’re gonna wave you goodbye and we’ll look forward in the future to working with you as sovereign…

그들은 마치 중학생들처럼 회의 규칙을 어기면서 낄낄거리고 국기를 흔들어댔다.


(여성 사회자) 맥기네스: “누구도 증오하면 안 된다”

회의를 주재하던 EU 부의장 마리드 맥기네스(Mairead McGuinness)가 파라지와 영국독립당 의원들의 노골적인 장난과 조롱 언사에 냉정하게 마이크를 꺼버렸다. (※따라서 파라지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룰을 어기면 마이크를 끕니다. 국기 좀 치워주시겠습니까?
If you disobey the rules, you get cut off. Could we remove the flags?

파라지씨, 국기 좀 치워주시겠습니까?
Mr. Farage, could we remove the flags, please?

의장의 진행발언에 파라지는 낄낄거리며 더욱 무례한 말을 이어간다.

끝인데요, 뭐. 다 끝났어.
That’s it. It’s all over.

그러던 중에 다른 의원들을 “만세! 만만세! Hip, hip, hooray”를 외친다. 맥기네스 의장은 무례한 영국의원들을 조용히 시키려 하지만 실패하자, ‘그렇다면 지금 나가시라’고 한다. 

(※비디오를 보자:  https://youtu.be/LIgmfpHBiDw)

착석하시기 바랍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국기를 좀 치워주세요, 여러분들 떠나시는 거니까, 지금 떠나시는 거라면 국기도 같이 갖고 나가세요.

Please sit down. Resume you seats. Put your flags away, you’re leaving and take them with you if you are leaving now.

하지만 맥기네스는 흥분하지 않고 의장다운 성숙한 말로 이런 교훈을 이야기한다.

잘 가세요.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된다면, 참고로 한 말씀 드리면, 방금 전에 말씀하신 분이 증오(hate)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 전에 말씀하신 내용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어느 나라도, 어떤 민족도 증오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Goodbye. Can I just say, if I may say, just in its life reference the word hate was used in the last contribution and I really think given what we listened to prior to this so we should not hate anyone or any nation or any people.

브렉시트에서 승리한 나이젤 파라지는 자신의 승리를 겸손한 태도로 전달하고 퇴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가 지난 주에 상원에서 ‘탄핵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열어 온갖 자랑과 함께 상대 당 의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파라지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포퓰리즘(이라기 보다는 선동정치)을 이끄는 정치인들이 하나 같이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남성 정치인들이라는 것은 우연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성) 라이덴: “이별의 고통 속에서 사랑의 깊이를 본다”

이날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또 다른 한 사람, 유럽위원회 의장 우르슬라 폰 데어 라이덴(Ursula Von Der Leyen)의 발언은 차분하고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대변해준다.

그는 EU가 싫다고 떠나는 영국이지만, 그들 중에서 EU를 사랑했던 의원들에게 EU를 대표해 애절한 작별인사를 전하면서 영국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세심함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 시인은 조지 엘리엇(George Elliot)이라는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지만 여성 시인이었다. 폰 데어 라이덴은 그것을 알고 여성 대명사 ‘she’를 사용하는 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인 영국인들께,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여기에 계신 많은 영국출신 의원 분들에게 유명한 영국 시인 조지 엘리엇(George Elliot)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엘리엇은 “이별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본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저희는 멀리 있지 않겠습니다. 유럽 만세.

And to our British friends and many, perhaps not all, but many of our British MEPs here in the room, I want to use the words of the famous British poet George Elliot. She said, “Only in the agony of parting do we look into the depth of love.” We will always love you and we will never be far. Long live Europe.

“이별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본다”는 깊고 아름다운 시어(詩語)와 “다 끝났는데 뭐”라는 무례한 파라지의 발언은, 같은 영국인이 사용한 영어이지만 그 격이 너무나 크게 달랐다.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여러 매체에 디지털 미디어 및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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