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보수·진보의 진영싸움이 치열한 세상이다. 내가 상대를 통째로 부정하면 상대도 나를 통째로 부정하는 안타까운 싸움이 반복된다. 하지만 삶의 질이 높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면 타협과 절충의 지점을 찾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자유당 시절인 1958년 언론계에 입문해 1979년 공화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4선 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다’는 표현대로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폭넓은 행보를 자랑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조봉암 선생에 대한 ‘사법 살인’을 아쉬워했고 대구 출신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상일 선생의 평전을 소개했다.

남재희 전 장관은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부유세·종부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남북 관계는 통일보다 평화에 주력하되 분단이 점진적으로 소멸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중 관계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펼쳐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시각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한 마디로 정치 현안부터 미래 비전까지 거칠 것 없이 넘나드는 대화였다. [편집자]

 

-최근 현안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둔 범보수 통합이 화두입니다. 범보수 통합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황교안 대표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황 대표가 언제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적이 있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법무장관, 국무총리를 시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촛불혁명에 의해) ‘박근혜 레짐’이 부정당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도 부정될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당 대표가 되기는 했는데, 황 대표로는 보수 진영이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없습니다. 게다가 공안검사 출신입니다. 시대적 명분이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라면 누가 있을까요.

“자유한국당만 놓고 보면 지난 번 당 대표 경선에서 맞붙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더 낫습니다. 괜히 무상급식 문제로 시장 직을 걸어 사퇴하고 말았는데, 국회의원 시절에는 중요한 법을 많이 만들었어요. 나도 국회의원을 네 번 했지만 내 이름을 건 법안을 만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오세훈은 역량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최소한 황교안 대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범보수 통합도 어렵다고 보시나요.

“통합은 별개의 문제예요. 누구를 중심으로 통합할 것이냐 인데,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장래성이 없다고 봅니다. 차라리 유승민이 용감한 정치인입니다. 유승민은 여당 시절에 박근혜 체제에 과감하게 도전을 했다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다만 정치 근거지가 대구인데, 대구는 친(親) 박근혜 정서가 강한 곳이어서 (총선 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민주당 ‘반 걸음’ 알맞은 보폭

-여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적 스탠스로 볼 때 정의당의 절반쯤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적이지만 그 정도가 우리나라에 알맞는 것 같아요. 더 진보적이면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기자 생활을 시작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국회의원을, 김영삼 정부 때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셨죠. 역대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출중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수재였죠. 그런데 3선 개헌 욕심을 부렸고, 후계자로 이기붕 같은 멍청이를 내세워 4·19를 부르고 말았습니다. 4·19 이후에 장면 정권이 들어섰는데, 정국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적 상황에서는 혁명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거친 말에 올라타 고삐를 쥘 인물이 필요하죠. 프랑스혁명을 통해 나폴레옹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장면도, 윤보선도 정국을 장악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죠.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에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하지만 똑똑한데 현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명에 가고 말았죠. 전두환의 경우 광주의 원죄가 있습니다. 다만 집권 기간에는 공평하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노태우는 철저하게 참모 의존형이었죠. 어느 정도였냐면, 김학준이 노태우의 스피치 라이터를 했는데, 김학준의 퇴임 행사 때 쓸 인사말도 김학준 본인이 쓰게 했습니다. 김학준은 자기 퇴임 격려사를 자기가 쓴 셈이죠. 이 정도로 (노 대통령이) 참모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선 큰 일 없이 무난히 넘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촛불 혁명은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혁명적 상황에서 집권을 했습니다. 혁명적 사건은 반쯤 혁명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4·19 혁명 당시엔 그걸 못해 민심의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후 반쯤 혁명적으로 ‘적폐 청산’을 했지만 이걸 너무 오래 끌면 안 됩니다. 더욱이 조국 사건으로 타격이 너무 큽니다. 지금부터는 꼭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북-경제-외교 3대 난제

-2020년 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뭐가 될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 좋은데, 상황이 모두 다 안 좋습니다. 특히 세 가지가 문제입니다.

첫째, 남북문제. 문 대통령이 올인 하다시피 했는데, 안타깝게도 남북문제는 1~2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6·25 전쟁 때 미국이 북한 지역을 어마어마하게 폭격해 쑥대밭이 됐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2년을 더 버텨 휴전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핵 협상은 더 길어질 겁니다. 나는 문 대통령의 임기를 넘겨서 4~6년은 더 걸릴 거라고 봐요. 애초에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이죠. 국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 경제. 박정희 시대에는 포항제철을 짓고 고속도로를 뚫고 정부가 경제를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간이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입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국제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 국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복지정책에 전력을 다했지만 경제가 안 좋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책임만 있는 건 아니라는 얘깁니다. 날고 긴다는 홍길동이 와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경제도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 좋을 수밖에 없죠.

셋째, 국제 관계. 동북아 지정학 질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6·25 전쟁을 계기로 우리는 미국과 완전히 밀착하게 됐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전초기지가 됐고 중국과는 담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6·25 이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달리 지금은 대중국 정책이 변화해야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 많이 달라졌지만 더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달라졌습니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과거의 군사대국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 이전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만 해도 생각이 달랐어요.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가서는 안 되고, 일·중 관계를 개선해 동북아 평화질서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하토야마 정권을 견제했고 정권은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은 아베 정권의 군사대국화 방향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토야마 식의 평화 질서가 바람직하지, 아베 식의 군사대국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베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중국과의 군사대결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대외 환경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21세기 광해군의 딜레마

-미·중 간 군사적 갈등 때문에 우리나라가 2016년 사드(THADD) 사태 당시 피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드 문제도 그랬지만 지소미아(GSOMIA) 문제도 그런 앵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의 군사적 밀착 관계를 끊을 수 있었는데, 미국의 온갖 압박에 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좀 거창하게 얘기하면 조선 광해군 때 명‧청 교체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파병 후 명나라의 국력이 약해지자, 만주족의 후금·청나라가 일어났습니다. 조선에선 주전론과 주화론이 대립했는데 광해군은 현명했어요. 청나라를 적대시하지 않고 적당한 우호 관계를 유지했죠. 그런데 명나라에 대한 보은을 내세우는 친명(親明) 사대주의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다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섣부르게 청나라를 적대시하다가 임금이 머리를 세 번 찧으며 굴욕스럽게 항복했습니다.

380여 년 전과 똑같은 상황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생각해볼 점이 많습니다. 6·25 전쟁 때 우리가 미국에게 입은 은혜를 갚아야 해서 중국과 적대 관계가 되어야 하는가. 거꾸로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를 멀리하면 정권이 타도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한·일이 서로 더 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중국에 대항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지소미아 문제도 미국이 문재인 정부에 온갖 창피를 주고, 결국 일본에 협조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외교란 1~2년에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10년, 20년, 30년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해가는 게 외교입니다. 조급하게 서두르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요.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동조해 북 치고 장구 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 발 한 발 빼야 합니다. 너무 급격하게 움직이면 이번 지소미아 문제처럼 미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조가 청나라에 대한 태도를 하루아침에 뒤집었다가 굴욕을 당했던 교훈을 잊으면 안 됩니다.”

-바깥 문제도 어렵지만 내부적으로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등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소위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을 광폭으로 하느냐, 소폭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광폭으로 하려면 부유세, 토지세 등을 대폭 올려야 재원이 생깁니다. 그러면 반대 세력의 반항이 거셀 텐데, 그걸 극복할 정치 역량이 없기 때문에 혁명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지간히 노력하고 있지만 (반대 세력의) 저항이 안 생기게 조금씩 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경제에라도 활력이 생기면 재원 뒷받침이 되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국민들이 보기엔 시들해 보일 수밖에 없죠. 그럼 경제의 활력을 높여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장하성‧김상조 같은 전문가들도 결국 뾰족한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경제에는 기적이나 혁명적 변화가 있을 수 없어요. 더구나 우리 경제가 국제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리 홀로 혁명적 변화를 꾀한다면 자본이 외국으로 다 도망칠 것입니다. 한은 총재까지 지낸 박승을 만나 물어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조금씩 개선해 나갈 수밖에.”

물, 공기, 토지는 공공 자산

-부유세나 종부세 같은 부동산 관련 세금을 늘려야 할까요.

“나는 찬성합니다. 미국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가 토지세를 주장했습니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본래 공기, 물, 땅은 인류 공동 자산이기 때문에 특정인이 독점하면 안 된다는 사상을 주장했어요. 토지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강화해도 좋습니다. 건물은 투자가 필요하니까 별개이고, 토지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세율을 올려도 좋을 것입니다. 원래 1980년 민정당 창당 때 내가 정강·정책에 토지공개념 조항을 넣었었죠. 노태우 정권 때 조순 부총리가 토지공개념을 제도화했습니다. 토지초과이득세법, 택지소유상한법, 개발이익환수법을 도입했는데,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필요하다면 헌재의 위헌결정 이유를 연구해 다시 토지공개념을 추진해야 합니다. 내가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강서구·양천구에는 논밭, 과수원, 뚝방 밑 빈민촌이 많았어요. 그 땅들은 아무개 퇴역장군, 아무개 경찰서장 땅이었는데 다들 떼부자가 됐습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벼락부자가 됐는데, 오른 땅값만큼 대중을 수탈한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 해소 등을 위해 스웨덴·독일과 같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회적 대타협 방식과 함께 국지적인 노사 협상으로 점진적 타협을 해나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대타협 방식보다 개별 사업장의 협상을 통해 사회적 축적을 해 나가는 방식이 좋다고 봅니다. 예컨대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권을 억제하고 자본에게 이득을 줘서 공장 유치,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모델입니다. 사회적 대타협과 국지적 협상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봐요. 기업 현장에서는 개별 갈등이 생겨나 새로운 타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처럼 국가적으로 큰 틀을 만든 뒤 거기에 끼워 넣는 하향식 타협보다, 개별 사업장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상향식 타협이 한국 현실에 맞다고 봅니다.”

대표는 비례, 결정은 다수결

-2020년은 총선이 있는 해입니다. 정치권이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반드시 통과돼야 합니다. 득표 수, 의석 수가 어느 정도는 비례해야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는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비례에 접근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전 비례대표제입니다. 비례대표를 대폭 늘리는 게 유러피언 모델입니다. 민의가 그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복지사회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 같은 우리나라 소선거구제에서는 49% 민의가 반영이 안 됩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미국이 안 한다는 이유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데,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의 인기가 높지만 상·하원 의석에 반영이 안 되지 않습니까. 미국이 한다고 다 좋은 제도가 아닙니다. 유러피언 모델이 복지정책에는 더 유리합니다. 나는 법대를 나왔는데 대학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배운 민주주의 원칙은 ‘대표는 비례로 하고, 결정은 다수결로 한다’는 것이었어요. 민주주의 철칙입니다.”

-그 다음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개헌 때 더 넣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지금은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군 통수권 문제가 걸려 바로 내각책임제로 전환하기는 어렵습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될 경우 내각책임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결론은 유러피언 모델

-남북 통일은 어떤 형태로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다볼 수 있는 장래에 통일은 어렵다고 봐요. 억지로 통일을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독일 통일 당시엔 서독이 경제대국이었기 때문에 동독의 마르크화를 1대1로 교환해주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안 됩니다. 나는 남북 긴장이 완화되고 서로 왕래가 자유로워져 휴전선이 유명무실해지면 그 때 통일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평화적 공존이 오래 유지되면 자연스럽게 경계선이 사라지고 분단이 소멸될 것입니다. 그런 형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은 쇠락하고 있고,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50년에는 인구가 2500만 명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불과 30년 남았는데,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결론은 유러피언 모델입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등 유럽에는 작지만 잘사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 나라들은 경제대국이 아니지만 프랑스, 독일 같은 큰 나라들 못지않게 행복하게 잘 삽니다. 우리도 그런 모델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세계 몇 위 경제대국이라고 선전하는데, 과대망상이 심해지고 있어요. 알뜰살뜰한 복지국가로 가야 합니다. 경제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빈부 격차가 작고 복지제도가 잘 돼 있으면 소득 수준이 낮아도 사람들의 불만이 높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허영심을 버릴 때가 됐습니다.”

인터뷰: 김하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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