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21세기의 세 번째 10년(decade)이 곧 열린다. 첫 10년은 IMF 외환위기의 뒤끝에서 남북정상회담, 미국발 금융위기 등이 있었고 두 번째 10년에는 잇단 보수정권의 출범과 촛불시민혁명, 페미니즘과 소수자 권리 강화 등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눈에 띈다. 20세기 말의 인터넷에 이어 두 번째 10년 서두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그 사이 전세계를 초연결사회로 만들었다.

새로운 10년에는 어떤 것이 등장해 어떻게 흘러갈까. <피렌체의식탁>은 임박한 2020년대를 맞이해 사회 각 분야 원로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격변하는 사회라고 어른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눈길을 주지 않았을 뿐.

어른, 원로의 기준은 세 가지다. 한 분야에 오래 40년 이상 종사해왔으되 통섭의 시각이 있을 것.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시류(時流)를 이길 수 있는 자기 소신이 있을 것, 무엇이 되겠다는 야망보다 한국사회의 발전과 진일보를 중시했을 것.

원로는 역사라는 명분아래 옛날 얘기를 하기 십상이다. 이번 연쇄 인터뷰에서는 역사 그 이상의 철학과 관점을 가진 분을 찾으려 노력했다. 첫 번째로 교육 분야에서 전성은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을 모셨다.

전성은 선생은 학교 현장에서는 물러섰지만 샛별초등학교, 샛별중학교, 거창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거창고등학회 이사장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도 집필, 강연, 성경 번역 등 그가 평생을 지켜 온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 시민 양성’이라는 건학 이념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는 거창읍내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거창고 농장 한 켠에 자리 잡은 전성은 선생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기자가 도착하자 손수 사과와 감을 깎아주고, 인터뷰가 끝나자 막차 시간 물어보며 메밀국수 한 그릇 먹여 보내는 전성은 선생의 모습을 보며 오랜 만에 ‘스승’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

 

입시·경쟁보다 창의성 중시하자

-산업 현장에서는 신입사원들에 대해 ‘과제 수행력은 뛰어나지만, 능동적으로 업무를 이끌어 가는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들려옵니다.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교육에서도 ‘창의성’ 함양이 가장 큰 화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산업발전 일변도의 성장 중심 교육을 해오면서 학교를 ‘산업역군’ 양성소 취급을 했지만 원래 학교 교육의 목적은 평화여야 합니다. 피스메이커를 기르는 것입니다. 학생 개인 차원에서 보면 창의적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건 교육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인 교육의 이념입니다. 창의성의 기본은 ‘기존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이 살아나야 하고, 다양성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자율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획일적 잣대를 갖고 그 기준에 맞춘 경쟁만 시키고 있으니 창의성이 나올 수 없습니다. 중앙대 사진학과가 50세 미만의 자랑스러운 졸업생 5명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리키 리(이승희)를 비롯해 3명이 거창고 출신이었습니다.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가 그러더군요. ‘거창고 애들은 사진을 안 배우고 오는 게 최고 장점’이라고요.”

-‘입시 사진’에 길들지 않은 것이 창의성의 원천이군요.

“그런데 우리는 ‘창의성’이라고 하면 흔히 예술이나 과학 정도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덕적 창의성, 종교적 창의성, 철학적 창의성 등 인간 정신이 깃든 모든 분야에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전통(tradition)은 정통(orthodox)으로 변질돼 창의성을 막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이들이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철학을 내놨고, 공자는 새로운 사상을 내놨으며, 예수도 당대 가장 창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탄압을 받았죠. 지금 시대에서도 창의적인 사람들이 발붙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웃음) 창의적인 인간이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창의성 교육이 가로 막힌 원인이 무엇일까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이고 경쟁 중심의 교육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교육 체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교육부 관료주의의 높은 벽입니다. 교육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이 교육의 획일화를 일으키는 주범들입니다. 여기에 관련된 인력만 수백 명이고 예산만 수천억 원입니다. 이들이 결국 교육부 안에서 회전문 인사를 하면서 기득권을 고수하고 있어요.”

교육부는 지원기관에 그쳐야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교육부 독립을 주장하시는 겁니까?

“교육부 독립이라고는 하는데 사실상 교육부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핀란드에 교육 견학을 많이 다녀오더라고요. 그런데 가서 보고 온 사람들이 나보고 그럽니다. ‘갔더니 교육청에 직원이 둘 밖에 없어요.’ 그러면 내가 바로 잡아 줍니다. ‘아냐. 셋이야. 책임자 한 명에 실무자 둘. 그런데 이 사람들아. 그걸 가서 보고 와야 알아? 내가 이미 다 책에서 주장했던 거잖아.’라고 핀잔을 줍니다. 핀란드처럼 교육부를 없애면 교육이 산다는 것을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다 압니다. 알면서도 안 하는 겁니다. 교육부는 그냥 예산을 전달해주는 지원 기관 역할만 하면 돼요. 교육 결정권을 일선 학교에 줘야 합니다.”

-일선 학교, 교사가 교육 결정권을 갖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교과서 자율화’입니까?

“미국에서 사회과목은 ‘Common core’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사회 수업에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수돗가에 물을 마시러 갔을 때 줄을 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 과목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입니다. 식민 지배를 가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현재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대신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어요. 지금도 학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가르치지 않잖아요. 달러 환율이 바뀌면 내 경제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선거 때 건강보험 제도 개혁안이 나왔는데 어떤 게 나에게 유리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야 하는데 교육부가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방 선거에서 시도 교육감을 선출하는 등 교육 자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 자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선거로 교육감 뽑으면 뭐 합니까. 자치라는 것은 교육부에서 독립하는 것인데, 하나도 독립돼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교육부에서 부교육감을 보내 교육 행정을 통괄합니다. 게다가 입시 제도에 목을 매는 학교 구조에서는 선거로 뽑힌 교육감은 입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만 해도 당장 서울대 진학률 조금 떨어지면 지역 언론들이 난리를 칩니다. 지금 교육감 제도에서도 단기적인 정책만 쓰게 되는 겁니다.”

2003년 혁신안 무산돼 아쉬움

-선생님께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맡으셨는데. 그 때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2003년 12월 1일 교육개혁 마스터 안을 대통령에게 올렸는데, 그때 내가 품고 있던 혁신 시나리오는 이랬어요. ‘먼저 법적인 교육감 협의체를 만들어 교육부의 많은 권한을 교육감 협의체에 넘긴다. 그 다음 단계에는 지역 단위 교육청을 강화해 시도 교육청의 권한을 내려 받는다. 그 다음에 다시 일선 학교로 권한을 또 내려준다. 그런 준비를 위해 교과서 자율화부터 시작한다. 한편 자기가 자기 수업을 기획해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는 교사양성제도의 준비가 앞서야 한다.’ 이렇게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바꿔나가는 데 계산해보니 18년이 걸리는 걸로 나왔습니다. 그 때 시작했으면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안 됐습니까?

“보나마나죠. 교육부가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2004년 1월에 안이 나왔는데, 교육부에서 내게 ‘딜’이 들어왔습니다. 교과서 자율화는 받아들이겠지만 교육부 독립안은 철회해달라고요. 교육 자치 강화안이 교육부 폐지안이라는 걸 아는 거죠. 교육부가 딜만 시도한 것은 아닙니다. 사방팔방에서 공격이 들어왔어요. 교육부와 친한 학자들은 각종 보수언론에 칼럼을 써서 나를 물어뜯었더군요. ‘전성은만 아니면 된다’고. 게다가 곁다리로 내놓은 국립대 역할론은 ‘서울대 폐지론’으로 둔갑이 돼 나는 서울대 출신 기득권층의 원수가 됐어요.”

직업교육 강화, 교과서 자율화를 핵심으로 상정해 건의

-결국 기득권의 벽에 막힌 것인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그래도 정치권 인물 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의 혁신안을 잘 이해하는 분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나를 교육부 장관 시키려고 ‘교육에 대해 공부 좀 하자’면서 불러 3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장관이 되면 나는 딱 두 가지만 하고 나머지는 장기 안을 만들고 그 기초를 놓겠다고 했죠. 첫째, 상고·농고·공고 등 직업교육 강화 및 장애인 교육 강화. 둘째, 교과서 자율화를 목표로 한 장기 개혁. 이 외에 다른 건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거 아니면 나를 장관 시킬 필요가 없다고 했죠. 그랬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아. 나는 정치가인데’ 하면서 웃어요.”

-‘정치인’? 정치인이 왜 문제입니까?

“정치가는 당장 귀에 쏙 들어오는 뭔가 하나를 발표하기를 원합니다. 그 때가 2004년 총선을 앞둔 때였어요. 결국 내가 낸 혁신안은 일단 뒤로 미루어 놓고, 안병영 장관의 EBS 수능 교육 강화안이 나왔습니다. ‘EBS만 보면 수능 보는 데 문제없게 하겠다’고. 결과요? 뻔하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생각 안 하고 일단 선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뒤 불러서 이정우 정책실장 등 4명이 가서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가 잘 못 생각했다고 미안하다고 정식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요.”

자사고·외고 필요 없는 환경을

-최근에도 ‘조국 사태’를 계기로 ‘학종 논란’에 이어 대통령의 ‘정시 확대’ 지시, 자사고 폐지 등 교육 제도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뭘 없앤다고 되고 말고 하는 게 아닌데… 답답합니다. 자사고나 외국어고가 필요 없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없애도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과거 전두환 정권이 과외 금지했다고 과외가 없어졌나요? 오히려 불법 고액 과외만 늘어나 부잣집 애들만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거창고 영어 선생님은 자기가 복무했던 부대의 사단장 사모님이 ‘방학 때 와서 과외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정도였죠. 그 때 과외 금지 시켜 샛별중·거창고 선생님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새벽과 야간에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무료로. 그랬더니 교육부가 사색이 돼 내려왔어요. 내려온 관료들한테 ‘서울은 과외를 없애도 학원을 가면 되지만, 시골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학원 지어 줄 거냐’고 따졌어요. 교육의 ‘교’자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교육을 맡아 하니 교육부 관료들에게 휘둘리고 근시안적인 정치적 결정을 하니 교육개혁이 되겠습니까. 문재인 정부의 개혁 우선 과제가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등인 건 알겠어요. 물론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당장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교육개혁의 기초는 시작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 개혁 관련 논의 테이블을 만들 때도 몇몇 패거리들이 틀어쥐고 앉아서 ‘저 사람은 예전 전성은 혁신위 팀이니까 안 돼’라고 배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정치가 문제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교육학자가 쓴 책 중에 ‘미국인들이 믿기 좋아하는 교육의 10가지 잘 못된 신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오래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간다’, ‘시험을 많이 치면 시험을 잘 본다’ 이런 그릇된 인식 때문에 미국 교육이 답보하고 있다는 지적인데, 문제는 정치가들이 교육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서 교육 공약을 내걸고, 주지사도 출마하면서 교육 공약을 내걸고. 시장이 출마하면서 교육 공약을 내는 등 정치적인 공약만 난무합니다. 전세계 선진국 중에서 교육이 제일 엉망인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고 미국이 그나마 나은 데도 그래요. 미국이 나은 이유는 교육의 자율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육부는 우리와 다릅니다. 교육부 장관은 예산을 내려주는 일만 하고 대부분은 지역에서 다 결정을 합니다. 교사의 자율성도 높습니다. 그런데 아들 부시 행정부 때 미국의 학력 수준이 떨어졌다고 난리를 쳐서 ‘No Child Left Behind’라는 이름으로 교육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그런데도 연방 정부 안을 따른 주가 스물 몇 개 밖에 안 됩니다. 이 정도 자율성만 확보돼도 좋은데.”

사학 비리, 검찰이 직접 수사해야

-거창고 처럼 훌륭한 학교만 있으면 좋지만, 교육 자치를 전면 실시하기에는 학교 간 수준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거창고는 교장이 교사들에게 수업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사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학교라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달라서 선생님이 열심히 안 하거나 실력이 부족한 티가 나면 지역 사회에 ‘저 선생은 실력도 부족하면서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고 소문이 금방 쫙 퍼집니다. 그러면 버틸 수가 없어요. 이에 비해 공립학교 교사들은 오히려 이런 데서 더 자유로워요. 전근 다니니까.”

-교사의 질 측면에서는 사립학교가 딱히 더 낫다고 볼 수 있을까요?

“거창에서는 제가 엄청난 부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재단에 초·중·고 학교 3개에 교사가 수십 명이니 현금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거랍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사립학교는 교사들이 취직할 때 3000만 원 씩 내지 않냐’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지만 국민들 인식이 그렇습니다. 100만 원 하던 게 금방 700만 원 됐고, 지금은 2000~3000만 원이랍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다 알면서도 안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부가 이런 관행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요. 사립학교법 없애고, 이런 비리는 검찰이 다루게 해야 합니다.”

상류계층의 선입견을 고치자

-그러고 보면 교육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거나 할 때 옆 사람이 나더러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절대 교사, 교장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내 직업을 밝히는 순간 ‘선생님. 교육은요…’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비행기 내릴 때까지 쉼 없이 교육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정치와 교육에 대해 ‘모른다’는 사람이 없어요. 다 자기들이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안 다고 착각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보와 보수, 지역으로 갈라져 있는 정치적 선입견. ‘예수 믿어야 천당 간다’는 종교적 선입견. 이에 못지않은 것이 공부 잘해서 일류 대학 나와 재벌기업에 취직하거나 고시 합격해 성공했다는 소위 ‘상류 계층’ 사람들의 선입견입니다. 이들은 교육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제1 가치로 둬요. 선입견의 노예가 돼 있어서 고칠 생각도 하지 안 해요. 특히 이런 사람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으니 한 걸음도 못 나가는 겁니다. 이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거나 그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돈을 가진 집단, 권력을 가진 집단, 그리고 학계를 지배하는 집단들은 한 쪽이 눈만 끔뻑해도 알아듣고 맞장구치는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요. 이 벽을 느낄 때마다 절망감이 들기도 합니다.”

교육부 관료, 정권 하수인 역할

-선생님의 교육 혁신 철학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급진적인 것 같지만, 거창고는 별도 대안학교가 아니라 제도권 내 일반학교 형태를 유지해왔습니다.

“내가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나와서 사회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 때 신교육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교육은 ‘충량한 황국 신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해방 뒤에는 ‘반공’이 교육의 목적이었죠. 반공 교육 하려고 윤리교육과를 만들고 그랬어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반공 교과서 첫 장을 펴면 ‘자유는 혼란을 가져오고 강력한 통제가 안녕과 번영을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수업 시간에 그냥 넘어가고 딴 얘기하고 그랬어요.(웃음) 박정희 정권 때는 ‘산업입국’이 추가됐습니다. 교육을 산업 발전의 하부 구조로 여기는 것입니다. 산업체 고등학교 지어 놓고 중학교에서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학생들 보내라고 각 중학교에 공문을 내려 보냈어요. 전두환 정권 때는 고등학교에서 학도호국단 등 군사교육까지 시켰습니다. 학도호국단 검열을 예비고사 직전에 해서 합격 못하면 예비고사를 못 보게 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대학에 보내려면 시키는 건 다 했어야 했죠. 철저하게 연습시켜 대학에 보냈습니다. 진짜 나쁜 놈들입니다. 사법부는 독재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고 과거사위원회 만들어 반성하고 그러는데, 교육부 관료들의 독재 정권 하수인 노릇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도에 순응하셨던 것 아닙니까?

“70~80년대에 대학에 간 학생들이 내게 운동권 논리를 펴면서 ‘개량주의자’라고 비난을 해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단거리로 가는 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은 항상 차선, 차차선, 차차차선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막스 베버가 ‘깨진 오크통’을 예로 들었습니다. 오크통 한 쪽이 깨져 있으면 술이 깨진 곳 이상 찰 수가 없어요. 한 사회의 개혁은 어느 한 쪽만 앞서가고 어느 한 쪽은 뒤처지고 그러지 않습니다. 다 동일한 수준으로 차오릅니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어느 한쪽의 개혁만 서두른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장기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같이 가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18개년 계획안을 냈던 것입니다.”

자녀를 대통령 만든다고 성공 아냐

-선생님께서는 <왜 학교는 불행한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이른바 ‘교육 3부작’을 출간하셨는데, 지난 7월 나온 책 제목은 <왜 부모는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가>입니다. 사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부모인데, 우리는 교육 문제는 전부 학교 탓으로만 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은 평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평화로 갈 수 없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빌리자면 정의와 사랑이 성숙해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고 했습니다. 자녀 교육의 목적은 피스 메이커를 키우는 일입니다. 요즘은 자녀 교육과 관련해 심리학 책이 많이 나옵니다. 분명 유용한 측면이 있어요. 도벽과 같은 아이들의 일탈 행동은 심리적 치유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건 정신의학적 치료이지 교육은 아닙니다. 자기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는 게 교육의 목적,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식을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만들면 성공입니까. 대통령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떤 대통령을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겁니다. 교육의 주체는 학교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념이 교육의 주체입니다. 학부모는 교사를 탓하고, 교사는 교육 정책을 탓하고 서로 탓만 하는데, 본질은 우리 사회의 교육 이념부터 제대로 세우는 겁니다.”

-평생을 일선 교육 현장에서 활동해오셨습니다. 뿌듯한 점이나 아쉬운 점은 없습니까?

“인터뷰를 하면 이런 질문을 꼭 합니다.(웃음) 글쎄… 뿌듯한 점은 교사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나는 원래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아버지(전영창 선생, 거창고 설립자)께서는 미국 유학 중 6.25 전쟁이 나자 귀국해, 갖고 있던 5000달러로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우셨습니다. 그 때 외과를 맡으신 분이 장기려 박사님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장기려 박사님을 존경해 나는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거창고 이사장이신 원경선 선생님(풀무원농장 창업주)께서 내가 고3 때 학교에 와서 사흘 동안 로마서 강의를 해주셨는데, 그 강의를 듣고 ‘농사짓는 교사가 돼 농민들을 잘 살게 하겠다’고 꿈을 바꿨어요. 그래서 서울대 농경제학과에 진학을 했고, 졸업 후 돌아와 교사가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여의치 않아 농사는 짓지 못했지만 교사가 되기를 잘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교사가 되도록 인도해주셨다고 믿습니다.

후회스러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했습니다. 연줄이나 백이 아니라 공부 잘 해서 출세하는 시대가 열렸는데도 지역 유지 자식들이라고 해서 지들끼리 서클을 만들어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려는 놈들이 있었어요. ‘이 자식들. 세상 바뀐 줄도 모르고 설쳐 대냐’며 엄청 두들겨 팼습니다. 내 급하고 과격한 성격을 조금 더 일찍 바꿨어야 했는데. 그 때 잘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이 후회스럽지만 후회는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합니다. <교육은 인간을 왜 불행하게 하는가> 책을 쓰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글 순서를 바꾸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했어요. 20대 때 했던 고민부터 30대, 40대, 50대… 고민의 연령 순서로 구성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나중에 곽노현 교육감이 책을 읽고 편집장에게 ‘7장까지는 알겠는데, 8~9장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길래, 내가 편집장에게 그랬어요. ‘나이가 아직 7장까지 밖에 안 왔으니 8~9장에 나온 고민들을 어떻게 알겠냐’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나는 한 길을 택했는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은 모르는 길입니다. 안 가 본 길에 대해서는 후회 할 수도 없고, 후회 할 필요도 없습니다. 갔어도 후회 했을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답답한 것 같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차차차차선이라도 멀리 보고 조금씩 사회 다른 분야와 보조를 맞추며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뷰: 김하영 편집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