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한국에서 대입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늘 치열하다. 수능과 학종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고 정시·수시 비율, 수능 과목, 공교육 정상화, 특목고·자사고 같은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TV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입시교육 현장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정시(수능 위주 전형) 비중 확대 원칙을 밝힌 뒤 교육계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찬반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과연 ‘결과의 격차’와 ‘과정의 공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책은 없을까.

교육 평론가인 이 범 선생은 세 가지 대안을 내놓는다. 결과의 격차가 클수록 과정의 공정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시 확대를 지지한다는 전제 위에서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정시 이외의 전형에서 내신성적의 반영률을 높이고, 이후 내신 고교학점제와 더불어 지역별·계층별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강남 쏠림, 특목고·자사고 쏠림을 막기 위한 보완책이다. 예컨대 쿼터 비율을 전형별 모집정원의 50%로 정한다면, 지역별·계층별로 50%를 우선 선발한 뒤 나머지 50%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둘째, 수능을 15년에 걸쳐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교육 대란을 막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논술형 비중을 15년간 점진적으로 70%까지 확대하고 이후 100%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이 대부분 채택한 방식이다.

셋째,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공·사립대 공동입학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기존 ‘국립대 통합론’과 다른 점은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주요 사립대까지 포함시키고, 고졸자의 30~40%를 공동 선발하는 방식에 동의하는 대학을 재정적으로 집중 지원하는 것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대입 정시 확대의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이범 선생의 소신과 경험이 농축된 글을 전문(全文)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나는 대입 논쟁에서 양비론자이다. 나는 수능을 옹호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능을 비판하고, 학종을 옹호하는 사람을 보면 학종을 비판한다. 수능 옹호론자에게는 ‘5지선다 교육에 무슨 미래가 있냐?’고 묻고, 학종 옹호론자에게는 ‘교과를 혁신해야지, 왜 비교과를 갖다 붙이냐?’고 묻는다.

내가 보기엔 수능이나 학종이나 모두 이상한 제도이다. OECD 35개국(2017년 기준)을 조사해 보면 입시는 대체로 논술형이며 주요 선진국 가운데 선다형 입시를 가진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선다형 입시가 고교 교육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고, 일본은 본고사를 병행하므로 선다형 입시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주요 대입전형에서 비교과를 반영하는 나라는 OECD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미국과 영국밖에 없고, 특히 내신성적을 상대평가로 반영하는 나라는 OECD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대입제도는 여러 모로 갈라파고스적이고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글 뒤의 ‘보론: OECD 국가 대입제도 비교’ 참조

‘정시 확대’ 입장을 옹호하는 이유

학종은 현재 초중고 교육계와 대학 양쪽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주장에 대하여 교육계 전체가 반대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초중고 교육계가 학종을 지지해온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내신성적 반영은 공교육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둘째, 세특(교과 활동에서 드러난 학생의 특성을 교사가 적어주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수업·평가방식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셋째, 비교과는 학교 내 학생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학이 학종을 지지해온 이유는 학종 입학자가 정시(수능 위주 전형) 입학자에 비해 대학 재학 중 성적이 더 높고(평균평점 3.10 대 3.33), 재수 등으로 인한 중도탈락률은 낮기(6% 대 2.5%) 때문이다. 이 수치는 서울지역 주요 10개 사립대 공동조사 결과인데(2015~2016년 입학자 합산 통계), 서울대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시 확대’ 입장을 옹호하려 한다. 대통령과 현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학종/수능 논쟁의 역사적 의미가 교육계에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학종의 단점으로 지적해온 것은 전형요소가 다양한 만큼 챙길 게 많아서 부담이 크다던가, 비교과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기회 불평등, 내신성적과 세특에서 발생하는 학교별·교사별 편차 등이다.

한국 교육계는 ‘입시 위주 교육은 좋지 않다’ 라든가 ‘점수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는 식의 미국식 대입 담론에 근거하여 학종을 지지해왔다. 이는 극심한 대학 간 격차와 일자리 격차로 인한 경쟁에 허덕이는 대중의 감수성과 정면으로 상충한다. 대중은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과정의 공정’을 더 크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시 확대론을 이른바 ‘교육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무엇보다 정치 문제이자 사회 문제이며, 엘리트와 대중의 문제이다. 이런 면에서 이 글은 교육계 전체에 시각의 전환을 요구하는 글이기도 하다.

1. ‘정치적 가치’와 ‘교육적 가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공언했다. 공정성과 정시 확대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은 상황임을 고려해서 일종의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다. 초중고 교육계는 진보-보수 할 것 없이 학종을 지지하고 있고, 대학도 상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 학종을 지지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직접 정시 확대를 요구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많은 교육계 관계자들이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방침에 반발하며 교육이 정치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정치적 기준과 교육적 기준이 상충할 때, 정치인이 정치적 기준을 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그런 판단을 한 적이 두 차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교육적 기준보다 정치적 기준을 우선시한 첫 번째 사례는 2014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내신 절대평가 도입을 포기한 것이다. 내신 상대평가는 소집단 내에서 제로섬 경쟁을 유발하여 체감 경쟁강도가 높고 협력적 인성 형성을 방해한다. 아울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은 다른 학생들에게 기피 과목이 되는’ 현상을 유발하여 합리적 과목 선택을 방해하여 ‘다양한 교육’에 역행한다. 선진국에서 내신 상대평가를 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모두 절대평가(등급제 또는 원점수제)이다.

교육부는 2012년 중1부터 중학교 내신성적을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전환했고, 2014년 고1부터 고등학교도 절대평가(성취평가제)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0월에 고등학교 내신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고교 내신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강남 쏠림, 특목고·자사고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올바르고 선진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파장을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교육적 기준보다 정치적 기준을 우선시한 두 번째 사례는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의 도입을 포기한 것이다. 국가영어능력시험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수능 영어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절대평가 형식의 시험으로, 읽기·듣기뿐만 아니라 쓰기·말하기까지 평가하는 온라인 기반 시험이다. 읽기·듣기 위주로 치우쳐있던 영어교육의 편향을 바로잡고 선진적 영어교육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하여 인수위 시절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수능 영어를 국가영어능력시험으로 대체하는 계획은 포기되었고, 결국 국가영어능력시험 자체가 폐지되었다. 교육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조처이지만, 청와대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 판단이었다. 쓰기와 말하기가 대입에 반영되는 순간 사교육비가 폭증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어 교육업체들은 국가영어능력시험 시행에 큰 기대를 걸고 대규모 선행 투자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시의 집권세력이었고, 박근혜 정부가 국가영어능력시험을 포기한 것은 일종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교육이 정치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는 쉽다. 하지만 교육적 가치와 정치적 가치가 상충할 때, 교육적 가치를 우위에 놓아야 하는가? 이런 입장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내신 절대평가는 교육적으로 올바르다. 하지만 만약 박근혜 정부가 고교 내신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했다면, 강남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작은 대치동’의 집값이 오르고 중3 학생들의 특목고·자사고 지원 경쟁률이 치솟았을 것이다. 국가영어능력시험은 교육적으로 올바르다. 하지만 만일 박근혜 정부가 이를 도입했다면 영어 학원과 해외 영어연수 수요가 급증했을 것이다.

교육계가 정치인을 향해 특정한 정책의 시행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교육계가 아니라 흔히 ‘집권세력’이라고 불리는 정치집단이다. ‘학종이 정시보다 교육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여론을 존중해서 대입제도를 결정하고 또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다. 대통령은 그런 차원에서 ‘정치적’ 결정을 한 것이다.

대통령이 교육적 가치를 저버렸다고 비난하기 전에, 어떤 국민이든 스스로 진정한 ‘주권자’로서 ‘내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떠한 판단을 할 것인가?’를 역지사지 해봐야 한다. 드라마 <송곳>의 대사처럼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것이다.

2. 당신이 믿는 공정함은 ‘형평성’인가 ‘비례성’인가?

공정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늘 혼란이 생긴다. 공정함의 첫 번째 의미는 ‘형평성’이다. ‘부잣집 아이들이 명문대를 독점하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때 ‘공정함’은 ‘형평성’, 또는 ‘결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공정함의 두 번째 의미는 ‘비례성’이다. 결과가 실력이나 노력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신이나 세특이 교사별 편차 때문에 불공정하다거나 비교과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때의 ‘공정함’은 ‘비례성’ 또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한다.

당신은 ‘학종이 더 공정하다’고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공정함을 ‘형평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형평성을 기준으로 보면 학종이 수능보다 공정하다. 2017년 3월에 발표된 서울지역 10개 주요 사립대 공동조사를 보면, 학종 입학자는 정시 입학자 대비 중·저소득층 비율이 높고(‘소득1~4구간+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정시 25.5%, 학종 31.3%), 전국적으로 비교적 골고루 뽑힌다(비수도권 비율은 정시 29.4%, 학종 43.9%). 서울대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왜 그럴까? 학종의 구성요소를 ‘내신성적+세특+비교과’ 라고 할 때, 비교과는 기회가 불평등하고 세특은 교사별 편차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내신 성적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강력한 ‘균등 선발효과’가 발생한다. 학력수준이 높은 고등학교든, 낮은 고등학교든 상관없이 ‘상위 4%까지 1등급, 11%까지 2등급, 23%까지 3등급’ 식으로 주기 때문이다. 학종이 계층별·지역별로 비교적 골고루 뽑히는 요인은 내신성적(상대평가)에 있다.

참고로 수능성적이 부모의 소득 및 사교육과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 있다. 이것은 흔히 수능성적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이러한 주장 또한 전형적으로 공정함을 ‘형평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수능성적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비교과도 부모 소득이나 사교육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만 비교과는 워낙 다양하여 정량화가 어렵기 때문에 부모 소득과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가 없다. 따라서 수능과 비교과 중 어느 쪽이 부모 소득을 더 많이 반영할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내신성적도 부모 소득 또는 사교육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수능처럼 ‘전국적’ 소득분포가 아니라 ‘학교별’ 소득분포를 반영하기 때문에 수능보다는 그 영향이 덜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든 수능성적만 부모 소득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당신은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공정함을 ‘비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비례성을 기준으로 보면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 비교과는 기회가 불평등하여 OECD 국가 중 미국, 영국,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내신성적이나 세특은 상당한 교육적 의미가 있지만 학교나 교사에 따라 편차가 발생하므로 비례성이 떨어진다.

비례성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능과 같은 입시, 엄밀하게 말하자면 학교 밖 기관에서 주관하는 외부 시험(external exam)을 치르는 것이다. 이것의 명칭은 나라에 따라 인증시험, 졸업시험, 대입시험 등으로 다양하나 모두 그 성적이 대학입학 여부를 가리는 데 활용된다.

3. 비례성, 능력주의, 학생서열화(성적순 선발)는 보수의 가치인가?

사회심리학자 조너던 하이트는 저서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 2012)에서 ‘공정함을 보수는 비례성(proportionality)으로, 진보는 형평성(equality)으로 이해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대입 논쟁에서는 ‘보수=비례성, 진보=형평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2019년 9월 4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시 선호도는 진보/보수 여부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대학교가 신입생을 선발할 때, 주로 고등학교 내신성적, 학교생활기록부를 기준으로 하는 ‘수시 제도’와, 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즉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정시 제도’ 중, 어느 제도가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정시’라고 답한 비율을 보면 민주당 지지자의 64.5%, 자유한국당 지지자의 59.2%, 바른미래당 지지자의 85.0%, 민주평화당 지지자의 55.1%, 정의당 지지자의 58.6%이다. 정치적 입장과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무당파 포함 전체 결과는 정시 63.2%, 수시 22.5%)

비례성이나 입시(외부 시험)가 보수의 전유물이라고 단정해서는 곤란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OECD 국가 대부분(35개국 중 33개국)에서 어떤 식으로든 외부 시험을 시행하고 이를 대입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내신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외부 시험 성적을 중심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나라들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적지 않은 숫자다. 비례성에 매우 충실한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들이 ‘매우 보수적인’ 나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핀란드의 고등학생들도 필수 1과목, 선택 3과목의 논술형 대입시험을 치르며, 추가로 많은 대학에서 모집단위별로 본고사를 시행한다. 핀란드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에는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대입시험과 본고사를 활용하여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핀란드도 비례성에 충실한 나라인데, 그렇다고 해서 핀란드가 보수적인 나라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대입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인 바칼로레아(과목별로 치르는 논술·구술형 대입시험) 뿐만 아니라 내신성적도 반영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프랑스 학생들은 반대하고 있다.

과거에도 내신성적을 반영하자는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프랑스 학생들은 이에 반대해 왔다. 내신성적은 교사별 편차가 필연적이다. 그런데 어떤 교사를 만났느냐에 따라 내신성적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대학 입학 여부가 달라진다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학생들은 전형적으로 공정함을 ‘비례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학생들은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 중에는 비례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비례성을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서열화와 능력주의를 긍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열화와 능력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는 바람직한가?

설령 프랑스처럼 일정 성적만 되면 대학에 입학하는 특이한 제도를 도입한다 할지라도, 의대처럼 면허가 제한되어 있어 경쟁이 불가피한 분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의 경우 의사가 되려면 그랑제콜이 아니라 일반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데, 바칼로레아에서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일단 의대 입학을 허가한다. 그리고 진급 과정에서 탈락시킨다. 결국 최초 입학자의 80% 이상이 탈락한다. 탈락 기준은 ‘성적순’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서열화이자 능력주의 아닌가?

‘학생 서열화’라고 해서 다 나쁜 게 아니다. 이수자 서열화(즉 내신 상대평가)와 응시자 서열화(즉 수능 상대평가)는 나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대평가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고, 그래서 선진국의 입시와 내신은 절대평가(등급제 또는 원점수제)가 보편적이다. 하지만 지원자 서열화(성적순 선발)는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고, 교육적으로 나쁘다는 근거도 없다.
흔히 성적순 선발이 대학 서열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성적순 선발이 대학 서열화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을지언정 결코 대학 서열화의 ‘원인’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 대학은 모집단위별로 지원자들을 줄 세워 성적순으로 선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 서열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학 서열화는 학생 서열화(성적순 선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간 교육여건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4. 경쟁의 원인은 시험이나 능력주의가 아니라 ‘결과의 격차’

왜 한국에서는 의대에 가려는, 혹은 공무원이 되려는 경쟁이 치열한가?

의사 또는 공무원이 되느냐 못되느냐에 따른 결과의 격차(생애소득 및 안정성)가 크기 때문이다. 즉 경쟁은 성적순 선발과 능력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격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능력주의를 비판하거나 시험을 혐오하는 방식으로는 경쟁을 완화할 수 없다. 시험성적과 능력주의가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시험성적과 능력주의가 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은 아니다.

경쟁을 완화하려면 ‘결과의 격차’를 축소해야 한다. 금메달은 10만원, 은메달은 3만원, 동메달은 1만원을 받게 된다면 경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반면 금메달은 10만원, 은메달은 8만원, 동메달은 6만원을 받게 된다면 경쟁의 강도가 완화되고 사회적 비용과 스트레스가 줄어들 것이다.

시장경쟁은 격렬해서 나쁠 것이 없지만(소비자 후생의 측면에서), 교육경쟁이 격렬해지면 청소년기 정신건강과 부모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에서 교육 경쟁은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이다. 따라서 반드시 교육 경쟁의 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입 경쟁이 극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그 결과(진학하는 대학)에 따른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경쟁의 규칙을 바꾸는 것으로는 대입 경쟁 자체를 완화할 수 없다. 성적만으로 뽑는 것이 문제가 있다면서 다른 전형요소를 이것저것 덧붙이면, 오히려 경쟁의 종목이 늘어나서 각종 부담과 사교육을 더 크게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정시(수능) 정원이 늘면 사교육이 증가할 거라는 예측이 나도는데, 경험적으로 별 근거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학종 정원비율이 높아지는 와중에 최근 2016~2018년 3년 연속으로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가파르게 늘어났다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학 간 격차(대학서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흔히 대학서열의 원인으로 ‘학벌주의’를 지목한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대학서열이 사람들의 ‘의식’이나 ‘믿음’ 때문에 나타난 것이며, 대중의 의식을 개혁하면 대학서열도 달라질 것이라는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래서 결국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의식개혁’으로 경도되거나, 대중의 계층상승 욕망을 비난하는 도덕주의로 귀결된다. 적지 않은 교육관련 시민단체가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다. 물론 의식개혁론이나 도덕주의의 귀결은 대중과의 불화, 그리고 좌절과 무력감이다. 원인 진단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은 우리의 믿음이나 문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대학 서열에는 명확한 물질적 근거가 있다. 대학 간 격차 혹은 대학 서열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 네 가지라고 할 수 있다.

①교육여건(학생 1인당 투입 교육비, 교수 대 학생 비율 등)
②재학 중 소속집단의 성향에 의한 차이, 즉 또래효과 또는 동료효과(peer effect)
③소속 대학의 사회적 평판에 의해 좌우되는 후광효과(halo effect)
④동문 인맥으로 인한 네트워크 효과

그런데 ①~④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연 ①교육여건이다. 이를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①을 충분히 높임으로써 개교하자마자 단시간 안에 최상위권 서열에 오른 대학들이다. 1980년대 중반 포항공대(포스텍), 과기대(나중에 KAIST 학부과정으로 개칭)는 개교 후 단기간 내에 SKY급 대학이 되었다. 2010년대의 GIST, DGIST, UNIST도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 서열상 연·고대와 서·성·한 언저리에 있는 대학이 되었다.

이 대학들은 새로 설립된 대학이어서 학벌 효과(③과 ④)가 없었다. 다만 과감한 투자를 통해 높은 수준의 ①교육여건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위 서열에 오른 것이다. 대학 서열의 구성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①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학 서열이 학벌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비록 사례들이 이공계 중심 대학들로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문과 계열 전공에서도 유사한 시도를 했다면 유사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서 ①교육여건과 관련된 수치를 두 가지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학생 1인당 (투입되는) 교육비’이다. 2018년 기준으로 서울대는 4334만8천원, 연세대는 3024만7천원, 한양대는 2138만8천원, 중앙대는 1504만5천원이다. 상당히 큰 격차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서열과 잘 들어맞는다. 참고로 국립대 중 서울대를 제외하고 가장 액수가 높은 대학은 전북대인데 1719만6천원이다.

둘째는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이다. 대학알리미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더하여 계산했는데, 학부생(법정 정원이 아닌 실제 재학 중인 학부생) 숫자를 대입하여 다시 계산해보면 서울대 7.4명, 연세대 11.3명, 한양대 15.2명, 중앙대 19.3명, 전북대 17.1명 등이다. 이것도 통념적인 대학 서열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리 밝히자면 이 통계에는 결함이 있다. ‘학생 1인당 교육비’에는 학부생뿐만 아니라 대학원생이 포함되어 있고, 교육비로 계산된 항목들 가운데에는 실제로 교육비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것들도 있다. ‘진정한 학부생 1인당 교육비’를 정밀하게 계산해 보면 수치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밝힌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는 대학원생을 빼고 다시 계산한 수치이지만, 대학원의 규모가 큰 대학일수록 전임교원 비율이 높을 것이므로 이 지표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이 수치가 ①교육여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이처럼 보완의 여지가 있는 통계이긴 하지만, ‘학생 1인당 교육비’나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와 같은 수치들은 ‘대학 서열’이 단순히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물질적 격차임을 잘 보여준다. 대입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러한 교육 여건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만일 나에게 1년에 4300만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과 1년에 1500만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답은 명약관화하다.

5. ‘결과의 격차’가 클수록 ‘과정의 공정’이 중요해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왜 불공정 시비로 비화되었는가?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누구는 치열한 경쟁과 선발을 거쳐 정규직이 되었는데 누구는 ‘우연히 특정한 시기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손쉽게 정규직이 된다면, 비례성을 저버렸다는 의미에서 불공정한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가 작았다면 이렇게까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은, ‘결과의 격차’가 크면 공정함(비례성)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짐을 잘 보여준다.

대입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의 교육 여건에 큰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선발 방식의 공정함(비례성)에 대한 요구가 클 수밖에 없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예전부터 입시(수능과 같은 외부 시험)를 없애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대두되었고, 심지어 대입에 추첨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비례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극히 불공정한 방식이다. 1년에 4300만원어치 서비스(대학)와 1500만원어치 서비스(대학)를 배분하는데 가장 비례성이 높은 방식(입시)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추첨을 통해 결정하자는 얘기가 말이 되는가?

대중은 ‘큰 격차’에 상응하는 ‘큰 비례성’을 요구한다. 이것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저에 있는 근본적인 ‘정의 감각’(sense of justice)의 문제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는 공정함에 대한 요구를 키워왔다. 한국은 예로부터 대학 간 격차가 큰 나라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에는 ‘대학 간 격차’ 뿐만 아니라 ‘일자리 격차’도 커지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 혹은 ‘이중 구조’가 확립된 것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1980년대 대기업 근로자의 90%를 넘던 것이 나날이 낮아져 지금은 60% 수준이고, 저임금 노동자 비율(임금 중앙값의 2/3미만 소득자 비율)은 OECD에서 미국, 아일랜드에 이은 세 번째이다.(2015년 기준 OECD 통계)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도도 높아졌다.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지니계수인데, 한국의 지니계수는 설문조사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신뢰도가 낮다. 그 대신 국세청 실증자료를 활용한 ‘상위 10%의 소득 비중’을 보면, 최근 30년간 꾸준히 높아져 OECD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가 되었다.(2015년 기준 World Inequality Database 통계)
그밖에 평균 근속년수가 5.6년으로 OECD에서 꼴찌라든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년 내 11%, 3년 내 22%로서 OECD에서 역시 꼴찌라는 등의 통계는 한국 사회의 ‘일자리 격차’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통적인 ‘대학 간 격차’에 더하여 이처럼 ‘일자리 격차’가 더해짐에 따라, 대중의 공정함(비례성)에 대한 감수성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기간 동안 대입에서는 공정함(비례성)을 약화시키는 변화가 나타났다. 4년제 대학 전체 수시전형의 정원 비율은 김대중 정부 말에 30%, 노무현 정부 말에 50%, 이명박 정부 말에 65%, 박근혜 정부 말에 80%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정원 외 전형’으로 시범 도입되었다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 확대됐고 이후 학종으로 개편되면서 계속 비중이 커졌다. 대입제도가 대중의 감수성과 정 반대 방향으로 진화함에 따라 대중의 반감과 피로감이 쌓여갔다.

대중이 수능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한 제도를 좋아해서’라든가 ‘특권층의 행태에 분노해서’가 아니라, 내신성적·세특·비교과 모두 수능만큼의 공정함(비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입에서 유난히 ‘변별력’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서 1년에 4300만원어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고 1500만원어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의대를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생애소득과 안정성에 큰 격차가 발생하지 않는가?

따라서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합격/불합격의 기준을 요구하게 된다. ‘결과의 격차’가 큰 만큼 날카롭고 객관적인 변별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수능 등급제(2008학년도 대입)나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던 수능 절대평가(등급제), 이명박 정부 시절에 본격 도입된 입학사정관제와 이를 계승한 학종 등은 모두 변별력을 무디고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6. ‘기관의 자율’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이 중요하다

한국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것은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파가 한국의 학계와 지식인 사회에 미쳐온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이들은 귀국하면서 ‘미국 제도가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함께 들여왔다.

서구 선진국의 대학들은 대체로 입시 성적과 내신 성적을 위주로 선발하며, 비교과까지 반영하는 입학사정관제는 미국과 영국에 국한되어 있다. 그나마 영국은 비교과 비중이 작고 성적이 중요한데, 미국은 비교과가 매우 중시되는 예외적인 나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가 선진적인 제도의 대표인양 알려졌다.

입학사정관제-학종을 도입하고 확대하는 과정에 진보와 보수는 일종의 ‘합작’을 하게 된다. 입학사정관제를 사실상 처음으로 공론화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였다.

그런데 이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안’에서 천명된 ‘자율’이라는 가치와,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장관에 의해 천명된 ‘한줄 세우기가 아닌 여러 줄 세우기’를 결합시켜 보라. ‘자율+여러 줄’의 논리적 귀결은 ‘대학 자율로 여러 줄을 세워 선발하는 것’이 된다. 그 방법은 첫째로 다양한 (수시) 전형을 신설하는 것이고, 둘째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내놓은 ‘5·31 교육개혁안’은 이후 20년 넘는 동안 한국 교육에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5·31 교육개혁안의 핵심 개념은 ‘자율’이다. 자율 없이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자율화가 필수라는 것이다. ‘자율-규제 프레임’은 자율 쪽이 자동으로 승리하게 되어있는 질문이다. ‘자율이 좋아? 규제가 좋아?’라고 묻는데 ‘규제가 좋다’라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프레임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5·31 교육개혁의 ‘자율’ 개념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 누구의 자율인가?

5·31 교육개혁안의 ‘자율’ 개념은 별로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하지만 5·31 교육개혁안 이후 교육정책을 보면 ‘기관’의 자율만 강조되었을 뿐 ‘개인’의 자율은 무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자율이란 주로 학생 개인의 자율, 교사 개인의 자율이다. 교사의 수업과 평가에 대한 자율권, 학생의 이수과목 선택권 등이 핵심적인 ‘개인’의 자율이다. 창의적 교육으로 전환하려면 개인에게 자율권을 줘야 한다. 창의력의 궁극적 원천은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강력한 국가 중심의 관료적 교육시스템은 ‘개인의 자율’을 열어주는 데에는 인색했고 대신 ‘기관’의 자율, 특히 학교(대학과 사립학교)의 자율만 허용했다.

김대중 정부는 5·31 교육개혁안에 이미 담겨있던 자사고(당시 명칭은 자립형 사립고)를 6개 인가했고,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를 대폭 늘렸다. ‘대입 자율화’는 김대중 정부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의 지론임과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이든 고교이든 학교라는 기관은 일종의 권력체이고, 학생과 학부모는 을(乙)이다. 따라서 학교의 자율을 강조하면 학생·학부모의 권익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학생의 선택권’이 아니라 ‘학교의 선택권’(선발권)이 강조되는 결과를 낳아 경쟁과 사교육을 자극한다.

한국의 교육 담론에서 ‘자율’ 담론의 특징은 이처럼 개인의 자율을 배제하고 기관(학교)의 자율을 강조하는 불균등에 있다. 5·31 교육개혁안은 ‘자율’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지만 교사의 교육과정 구성권(성취기준-평가기준 등을 구성할 권리)이나 ‘자유발행제’로 대표되는 교과서와 관련된 권리(교과서 집필권 및 선택권) 등은 5·31 교육개혁 이후 20여 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다.

심지어 중·고등학교엔 1반부터 끝 반까지 시험문항이 동일해야 한다는 규칙이 존재한다. 담당 교사가 서로 달라도 시험문항은 같아야 한다는 것인데, OECD에서 한국과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규칙이다.

‘교사 개인의 자율’ 뿐만 아니라 ‘학생 개인의 자율’도 제자리걸음이다. 학생 개개인의 이수과목 선택권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이다. 외국어를 더 많이 선택하면 외고 역할을 하고, 수학·과학을 더 많이 선택하면 과학고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영국 등에 비싼 사립학교는 있지만) 외고·과학고 등의 특수목적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학생 개인에게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고교학점제’라는 이름으로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참이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교육은 ‘개인’을 발견하지 못한, 근대 이전의 단계이다.

5·31 교육개혁의 ‘자율’ 개념에 던지는 두 번째 질문: 사회가 허용하는가?

완전한 자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업의 자율은 노동환경이나 임금에 관한 법에 의해 규제된다. 제아무리 상업적 거래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인신매매나 마약 거래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흔히들 자율의 성격과 수위가 ‘법’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긴다.

문제는 법이 가변적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역사에는 인신매매도 합법이던 시절이 있었고(노예제),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대마초 규제의 수위가 차츰 낮아지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법이 고정불변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결국 자율의 성격과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 그 자체, 혹은 사회적 합의다.

대중이 학종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진 이유는 대중이 규제를 좋아하는 국가주의자여서가 아니다. ‘대학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학종의 부정적 영향력이 그것의 긍정적 효과를 능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론적·이념적 입장이 아니라 일종의 소박한 경험적 판단이다.

입학사정관제 이전에도 대학은 ‘대학 자율’에 근거하여 본고사를 도입하거나, 여러 가지 희한한 전형을 신설하거나,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려 했다. 그 결과는 대체로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열어주고 대중의 불신을 높인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대입 논쟁은 ‘대학 자율’이라는 기조 하에 이뤄진 지난 20여 년간의 대입정책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대학은 ‘정시 확대’ 흐름에 대하여 ‘대학 자율’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교육 정책과 관련하여 지난 20년간의 ‘자율’ 담론은 그 효력을 다했다. 자사고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7. 세 가지 제안

(1) 고교학점제와 더불어 지역별·계층별 쿼터제를 도입하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종은 정시(수능)에 비해 고소득층 및 서울·수도권 출신 비율이 낮다. 비교과의 기회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상대평가 내신성적이 가지는 강력한 ‘균등 선발효과’ 때문이다.

그런데 정시가 확대되면 형평성 또는 균등 선발효과는 떨어진다. 고소득층 및 서울·수도권 학생에게 유리해진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균등 선발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신성적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학생부 교과전형(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는)의 정원 비율을 높이거나, 학종 전형과정에서 내신성적의 반영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완책은 한시적이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내신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내신성적의 ‘균등 선발효과’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2022년 고1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일반고에 전면 도입하는 시기를 2025년 고1로 연기한 바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이수할 과목을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학교별 다양화’가 아니라 ‘학생별 다양화’를 추구하는 정책으로서, 서구 선진국에서는 예외 없이 시행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유럽 대륙 국가들은 문과/이과보다 상세하게 4~6개 계열 중 하나를 선택한 뒤 이수과목을 고르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계열 없이 바로 이수과목을 고른다. 한국의 고교학점제는 미국과 유사한 방식이다.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를 패키지로 포함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하면 ‘합리적 과목 선택’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능에서 나타나는 물리 기피, 경제 기피, 아랍어 쏠림 현상은 바로 수능이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런데 내신성적이 절대평가로 바꾸면 상대평가일 때 나타나던 ‘균등 선발효과’가 붕괴하고, 학종의 장점으로 꼽히던 형평성도 무너질 것이다. 강남 쏠림, 특목고·자사고 쏠림이 필연적이다. 설령 특목고와 자사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 할지라도, 강남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분포해 있는 ‘작은 대치동’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이런 이유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2014년으로 예정되었던 내신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포기한 바 있다. 2025년에 대통령이 누구이든 간에,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서 동시에 학종이 가진 공정함(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신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도 형평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지역별·계층별 쿼터제이다. 이것은 학종에서도 시행 가능하고, 정시에서도 시행 가능하다. 가장 유력한 방법은 모집정원 중 일부를 지역별·계층별 쿼터제로 선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쿼터 비율을 50%로 정한다면 지역별·계층별 쿼터에 따라 모집정원의 50%를 우선 선발한 뒤 나머지 50%를 선발하는 것이다.

(2) 수능을 15년에 걸쳐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하자

일각에서는 수능을 ‘암기 위주 시험’이라고 폄하하는데, 이는 타당하지 않은 비판이다. 1993학년도 이전의 대입학력고사와 비교했을 때 수능이 되면서 암기력의 비중은 낮아지고 독해력·추론능력 등 기초 역량의 비중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이 선다형 시험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하나의 정답을 가진’ 질문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지선다 문항으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역량을 유도하고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흔히 ‘창의력’으로 대표되는 비판적 사고능력이나 특정한 결론을 유도한 이유를 묻는 ‘논증 능력’을 5지선다 시험으로 알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OECD 국가 다수가 입시를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핀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입시를 논술형 문항으로 출제함으로써 창의적인 학교교육과 연계(align)시킨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입시가 선다형이지만 입시가 고교 교육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구조적으로 분리된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이에 대해서는 글 뒤의 ‘보론’ 참조)

참고로 현재 한국의 논술고사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없는 희한한 시험이다. 과목이 불분명하고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성도 낮다. 반면 유럽 각국의 논술형 입시는 과목별 시험이며 고교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

문제는 수능을 이같은 과목별 논술형 시험으로 급격히 전환하면 사교육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출제와 채점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채점을 위해 대학 측의 조직적인 참여와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매우 조심스럽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 해에는 논술형 문항을 과목별 총점 대비 5% 내지 10%에서 시작하고, 그 비중을 매년 5%씩 천천히 높여 70%까지 높이도록 하자. 이 과정에 15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고, 이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나머지 30%는 단번에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고등학교 직업교육 이수인원의 증가 및 과목별 낙제제도 도입과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메이저 국·공·사립대 공동입학’으로

대입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국립대 통합’ 혹은 ‘국립대 네트워크’가 제안되어 왔다. 그런데 이 모델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서울·수도권 고졸자 대비 이 지역 국공립대 정원이 3~4%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거점 국공립대를 통합하여 가칭 ‘한국대’를 만들자는 제안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서울지역 상위 사립대가 한국대보다 선호되는 대학이 될 것이다. 서울 캠퍼스 배정 확률이 15% 정도밖에 되지 않을 한국대와 달리 서울캠퍼스 배정이 확실하고, 동문(학부) 인맥이 단절되는 한국대와 달리 동문 네트워크가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수도권 주요 사립대들을 끌어들이는 대학 공동입학제가 필요하다.

고졸자의 30~40% 가량을 공동 선발하는 ‘4년제 대학 공동입학제’에 동의하는 대학에 정부 예산의 1%(약 5조원) 가량의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안한다.

여기에 국립대는 물론이고 서울·수도권의 대부분 사립대와 일부 지방 사립대를 포함시키자. 이 재정을 이용하여 각 대학은 학부생 교육여건(앞에서 언급한 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향평준화하고, 남는 돈은 연구비로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부 교육여건이 이미 좋은 대학은 추가되는 재정을 주로 연구비로 쓰게 되어 연구중심대학으로 진화하고, 학부 교육여건 개선에 우선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대학은 상대적으로 교육중심대학으로 진화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방대에 대한 인센티브가 포함되어야 한다.

국립대 통합론자들은 흔히 몇 가지 함정에 빠진다. 첫째로 한국은 사립대 비율이 OECD 최고인 나라이고, 특히 인구의 절반이 집중된 서울·수도권 지역 대학들이 대부분 사립대이다. 섣부른 국립대 통합은 ‘연고대 등의 서울지역 사립대가 최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통합국립대는 그 아래가 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이들이 제안하는 공영형 사립대 모델은 공익이사를 50% 이상으로 설정하여 사립대의 핵심 권한(인사권과 재정권)을 사실상 사회화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이어서, 서울·수도권 지역 주요 사립대를 끌어들이는 데 비현실적인 모델이다.

셋째로 학부와 대학원을 구분하지 않고 상향평준화를 거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모든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혹은 연·고대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만드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목표이다. 미국의 명문 학부중심대학(liberal arts college)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연구 성과를 포함하는 전체 대학 서열과 학부생 교육여건의 서열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명확한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 것은 ‘학부생 교육여건’의 상향평준화이다.

8. 결론

교육적 가치는 중요하다. 학종을 지지하는 초·중·고 교육계 및 대학 측의 입장은 나름의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올바른 정책을 만들었으니 정치세력은 이를 실행하면 된다는 주장은 편협하다.

무엇보다 정치를 ‘미리 준비된 올바른 정책을 실현하는’ 관문이나 도구 정도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 폄하이자 정치 도구주의이다. 정치는 의외로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고, 온갖 종류의 가치판단을 재단하고 종합하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표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다. 이를 충분히 헤아리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학종을 싫어하고 정시를 선호한다. 그 이유를 사람들이 교육에 무지하거나 능력주의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게으르고 부정확한 분석이다. 한국은 예로부터 대학 간 격차가 큰 나라이고, 최근 20년간 일자리 격차도 부쩍 커졌다. 격차가 커짐에 따라 공정함(비례성)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면에서 정시 확대 여론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반발과 일맥상통한다. 무엇보다 2019년 현재 대중의 관심이 왜 공정함(비례성)에 꽂혀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대중은 물론 격차를 줄이기를 원하지만, 일단 큰 격차가 현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공정함을 요구한다.

다만 ‘비례성’에 치중하다가 ‘형평성’을 놓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대중은 비례성도 원하지만 내심 형평성도 원하기 때문이다. 정시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상위권 대학에 고소득층 및 서울·수도권 출신의 입학 비율이 더 높아지면 형평성에 대한 감수성의 스위치가 켜질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 세심한 정책 튜닝이 필요하다. 정시 이외의 전형에서 내신성적 비중을 높이는 방안, 학종과 정시 모두에 계층별·지역별 쿼터제를 실시하는 방안이 있다.

‘일자리 격차’보다는 ‘대학 간 격차’가 해결하기 쉽다. ‘일자리 격차’는 세계화, 고용·임금제도, 기업 간 위계, 계급전략의 부재와 산업정책의 불비(不備)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그에 비하면 ‘대학 간 격차’의 원인은 비교적 단순하다. 돈, 즉 대학 재정이 핵심이다. 대학서열화가 학벌주의나 학생서열화(성적순 선발) 때문이라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따라서 재정 구조를 중심으로 대학 교육 여건을 상향평준화함으로써 대입경쟁을 줄여야 한다. 다만 OECD에서 사립대 비율이 가장 높고, 특히 서울·수도권이 대부분 사립대인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여, 유럽식 대학평준화론이나 국립대 통합 및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넘어선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 이를 인도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대타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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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OECD 국가 대입제도 비교: 한국 대입제도는 ‘갈라파고스’

OECD 35개국의 대입제도를 비교해 보면 다음 네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한국 대입제도가 얼마나 예외적이고 희한한 방식인지를 엿볼 수 있다.

1. 대부분 입시성적과 내신성적으로 선발, 비교과 반영은 예외적이다

OECD 대부분의 나라들은 입시성적과 내신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입시성적만 반영하고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나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있다. 내신을 반영해야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주장은 꼭 올바른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내신 반영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 학생들은 내신 반영에 반대하고 있다. 내신을 반영하면 교사에 따른 평가의 편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신성적이 가진 고유의 가치가 있다. 선다형보다는 논술형이 더 폭넓은 역량을 평가할 수 있고, 논술형보다 수행평가가 더 폭넓은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프로젝트 수업-평가와 같은 경우는 입시로 그 기능을 대체하기 어렵다.
그래서 입시성적과 내신성적을 합산하여 반영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독일, 호주, 스페인, 덴마크 등이 입시성적과 내신성적을 합산하여 반영한다.

그밖에 입시성적과 내신성적을 선별적으로 반영하는 나라로 스웨덴, 핀란드가 있다.

스웨덴의 경우 모집단위별 정원의 3분의 1 이상은 입시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입시/내신 가운데 무엇을 이용해서 지원할지를 학생이 결정한다. 핀란드는 입시/내신 반영 여부 및 비율이 대학 자율로 맡겨져 있는데,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입시와 내신은 나름 기회가 평등하다. 하지만 비교과(extra-curricular)는 아무리 교육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기회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독서의 예를 들자면, 교과수업 및 평가에서 이뤄지는 독서활동은 기회가 평등하다. 하지만 비교과로 이뤄지는 독서이력은 부모가 고졸인 경우와 부모가 대학원을 졸업했을 경우 상당히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교내대회 수상이력의 경우엔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간편하게 준비하는 경우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부모 찬스를 활용하여 대학 연구실에 가서 인턴으로서 연구에 참여하기도 한다.

대입에서 비교과를 반영하는 나라는 (정확히 말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나라는) 예외적이다. 어느 나라의 대학이든 유학생 지원자에게는 대체로 자기소개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자국 고교 졸업예정자에게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밖에 없다. 영국 대학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비교과를 반영하나 그 비중이 낮고 성적(입시성적)의 비중이 크다. 미국 대학은 상대적으로 폭넓은 사회적 역량을 강조하는 반면 영국 대학은 학문적 역량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대학들이 간혹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비교과가 매우 중요한 나라는 미국이다. ‘성적만으로 어떻게 사람을 평가하느냐’, ‘잠재력이 중요하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입시 담론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은 입시성적과 내신성적 뿐만 아니라 비교과를 큰 비중으로 반영하고, 고도의 대학 자율에 기반한 입학사정관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유대계 이민자의 자손이 미국의 아이비리그 입학 비율이 높아지자 미국 주류인 WASP의 주도로 1920년대부터 비교과를 반영하여 유대인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입학사정관제의 시작이다. 이후 1960년대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Affirmative action)가 추가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2. 대부분 나라에는 입시가 있으며 입시 없는 나라는 2개국에 불과하다

진보 교육진영에서는 꾸준히 수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OECD 35개국 중에서 입시가 없는 나라는 캐나다와 노르웨이밖에 없다. 내신성적 만으로 학생을 평가하거나 선발하는 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입시’라고 표현하고 있는 고등학교 외부 시험(external exam)의 첫 번째 기능은, ‘과목별 이수 인증’의 기능이다. 즉 낙제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은 OECD에서 유급과 낙제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잠을 자도 출석만 하면 졸업장을 받는다. 이것은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이 최저인 것과 아울러(OECD 평균 45%, 한국 19%) 명백한 포퓰리즘이고, 국가의 책무성과 교육의 효율을 방기하는 제도이다.

선진국에서 대체로 유급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존재하고, 낙제는 고등학교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초등-중학교에서는 학생이 기초학력에 도달하도록 학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유급을 시켜 그 학년을 다시 다니도록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유급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 시험(입시)에서 일정 점수에 미달하면 낙제를 시킨다. 즉 해당 과목은 이수 인증을 받지 못한다. 대학으로 치면 F를 받는 셈이다.

낙제 여부를 고등학교 교사 재량에 맡긴다면, 학교나 교사에 따라 낙제 여부 판별기준이 달라진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 바로 일제히 외부 시험(입시)을 치러 낙제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다. 참고로 최근에 미국 학생들이 SAT보다 ACT를 더 많이 응시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ACT를 고등학교 이수 인증시험(즉 낙제 여부를 판별하는 시험)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입시’라고 표현하는 고등학교 외부 시험의 두 번째 기능은, ‘과목별 성취도’를 측정하여 비교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앞에서 많은 나라의 입시가 ‘이수 인증’ 기능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시험으로 단순히 이수/낙제 여부만 판별하지는 않는다. 영국과 핀란드는 낙제점 위에 6개 등급을 부여하여 대입 선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프랑스는 낙제점 위에 11개 등급을 부여한다. 독일은 등급뿐만 아니라 보다 자세한 점수(원점수)도 부여한다.

예를 들어 A지역 (가)고등학교의 ㄱ교사가 매긴 90점과, B지역 (나)고등학교의 ㄴ교사가 매긴 90점은 동등한 것일까? 동등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비교해보려는 것은 학생을 서열화시키겠다는 악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인 의문이다. 이 의문에 답하는 명쾌한 방법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시험(입시)을 치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시가 존재하지 않는 예외적인 나라에서는 대학에서 지원자의 성적을 어떻게 비교하는가? 캐나다의 경우, 내신성적을 짜게 준다고 알려진 지역·고교 지원자의 성적은 높여준다. 내신성적을 후하게 준다고 알려진 지역·고교 지원자의 성적은 깎는다. 대학에서 내신성적을 보정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내신성적을 보정하는지를 대학에 질문하면, 캐나다의 대학들은 이를 절대 비밀로 삼고 밝히지 않는다. 내신성적 보정 방법을 밝혔다간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비밀에 부치는 것이다.

3. 입시는 대체로 논술형이며 선다형은 일부이다

입시가 선다형인 나라는 OECD 35개국 중에 한국, 일본, 미국, 터키, 칠레, 멕시코 등 6개국이다. 이 6개국과 입시가 없는 2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입시는 논술형이다. 이 나라들의 논술형 문항을 들여다보면, 교육의 목표가 ‘창의성’과 ‘민주시민 교육’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영국 대입시험(A 레벨) 역사 시험문항:
지금까지 배운 전쟁들 중 하나를 선정하여, ‘전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명제의 타당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하시오. /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가 1차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의 가혹한 배상 요구로 인한 복수심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근거를 들어 서술하시오.

∙프랑스 대입시험(바칼로레아) 철학 시험문항:
진리는 경험을 통해 확증될 수 있는가? / 우리는 욕망을 해방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가?

∙핀란드 대입시험 심리학 시험문항:
성격이 페이스북 또는 기타 소셜 미디어에서 개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설계하시오. 해당 유형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고려 사항에 대해 논하시오.

∙스웨덴 대입시험 국어 시험문항:
파편화된 사회보다 하나로 뭉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총리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공모한다. 총리에게 보낼 서한문을 작성하라. 공동체 형성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왜 자신의 프로젝트가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논하라.

∙독일 대입시험(아비투어) 수학 시험문항:
(기상측정 데이터를 세 개의 그래프로 보여준 뒤) 다음 3개의 상관계수 0.974, 0.911, 0.126이 각 어느 그래프에 해당하는지 연결하고 그 이유를 쓰시오. 그리고 다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시오. “기온은 일조시간과 강수량에 영향을 받지만, 놀랍게도 계절과는 상관이 없다.”

참고로 이런 국가들의 대입시험 수학 문항들을 살펴보면, 문제를 풀거나 답을 구하라는 문항이 많다. 하지만 답만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전개 과정도 평가하여, 답이 맞았다 할지라도 논리가 틀리면 감점한다. 답이 틀렸다 할지라도 단순 계산 실수일 뿐이고 논리 전개과정에 허점이 없으면 상당 수준의 점수를 준다. 이것이 수학 학습의 목표에 보다 부합하는 평가방식일 것이다.

주요 선진국 가운에 입시가 선다형인 나라는 미국·일본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은 선다형 입시인 센터시험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많은 대학들이 본고사를 치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선다형 시험의 원조이다. 선다형의 기원이 된 IQ테스트와 여론조사가 모두 미국에서 발달했고 SAT는 1926년에, ACT는 1959년에 치러지기 시작했다.

이 시험들은 한국의 수능처럼 선다형이지만 그 기능적 맥락은 다르다. 한국은 수능을 고등학교에서 준비해주지만 미국의 SAT·ACT는 고등학교에서 준비해주는 시험이 아니다. SAT와 ACT는 각각 1년에 7번, 6번 치러지며 응시 횟수와 시기가 학생 자율에 맡겨져 있다. 대입 지원 전 2년간 받은 성적이 모두 유효하며 여러 번 치러도 된다.

따라서 고교에서 정규수업을 통해 이 시험을 준비해주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SAT나 ACT는 원칙적으로 학생이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치르는 시험인 것이다. 이를 틈타 한국식 학원이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학교에서 SAT나 ACT를 준비해주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정규수업이 아닌 방과후 선택형 보충수업의 형태이다.)

미국의 입시는 선다형이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평가는 대부분 논술형 및 수행평가이다. 학교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입시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학교에서 ‘입시 교육’을 한다. 다만 입시가 논술형이다 보니 책 읽고 토론하고 글쓰는 것이 입시 교육이다. ‘입시 위주 교육’이 좋지 않다는 한국 교육계의 통념은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입시 위주 교육’이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이다.

4. 입시와 내신이 대부분 절대평가 방식이다

OECD 국가들의 입시와 내신은 대부분 절대평가이다. 등급을 부여하거나, 원점수를 부여한다. 상대평가를 하는 경우는 터키의 입시(선다형)에서 표준점수를 부여하는 것인데 예외적이다.

미국의 SAT와 ACT는 상대평가인지 절대평가인지 모호한데, 적어도 한국의 수능과 같은 유형의 상대평가는 아니다. 2016∼2018년 3년간 SAT 공식 통계를 보면, 생태생물학(ecological biology) 만점자는 응시자의 3%였는데 물리학(physics) 만점자는 응시자의 13%로 무려 4배 이상 차이 났다. 전형적인 상대평가라면 있을 수 없는 결과다.

왜 상대평가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상대평가가 ‘합리적 과목 선택’을 방해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수능에서 물리나 경제가 기피과목이 된 이유를 흔히 ‘선택자가 적어서’라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통념이다. 선택자가 소수여도 선택자 중 저학력자가 많으면 오히려 높은 성적을 받기에 유리하다. 그런데 물리나 경제는 비교적 학력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목이다. 이것이 물리나 경제가 기피 대상이 된 이유다. 이런 과목을 선택하는 순간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경쟁해야 되기 때문에 자동으로 불리해지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대학에서 뭘 전공할지,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이 무엇인지가 선택 기준이 되기보다는 속된 표현으로 ‘깔아주는 아이들’이 많은 과목이 무엇인지가 선택 기준이 된다. 즉 상대평가는 ‘합리적 과목 선택’과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한다.

더구나 물리는 수능 과학탐구에서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중 대학에서 가장 쓸모가 많은 과목이다. 2005학년도 이후 이과생만 과학탐구를 선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물리 선택자가 제일 적다.

나는 수능 사회탐구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역사와 경제라고 생각하는데, 경제 선택자는 2019학년도 수능의 경우 사회탐구 응시자의 2.2%에 불과했고(꼴찌), 세계사 선택자는 사회탐구 응시자의 7.1%에 불과했다(꼴찌에서 두 번째).

제일 황당한 것은 제2외국어인데, 2019학년도 수능에서 아랍어 선택자가 제2외국어 응시자의 70.8%로서 다른 8과목 선택자를 다 합친 것의 2배가 넘는다. 한국 입시에서 가장 웃픈 장면이다.

세계적으로 그나마 입시에서는 상대평가를 간혹 찾아볼 수 있지만, 내신을 상대평가로 매기는 나라는 선진국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학교 성적표에 상위 몇%인지를 표기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참고사항일 뿐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내신 상대평가는 ‘합리적 과목 선택’을 방해할 뿐 아니라, 문/이과별로 수십 명 내지 100여 명 사이에서 제로섬 경쟁을 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에 체감 경쟁 강도를 높이고 협력적 인성 형성을 방해한다.

※이상의 본문 및 보론은 2019년 10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김병욱·김해영 의원실이 주최한 <정시 확대,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발제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임.

이 범 /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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