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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의 티핑포인트]<br>동북아의 요동, 남북통합의 기회? – 01

by | 2018년 7월 17일 | 한승동의 티핑포인트

ⓒ 연합뉴스

“일본이 최전방국가(frontline state)가 될까 걱정스럽다.” 4월 하순 남북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 종전선언 가능성이 언급된 뒤 일본 아베 신조 정부 안보정책 담당 보좌관을 지낸 이가 한 말이다. “이는 곧 ‘38도선’이 쓰시마 해협까지 남하해 온다는 얘기”라고 집권 자민당의 총재 외교특별보좌관 가와이 가쓰유키는 말했다.(6월 5일, 로이터 통신)

 

휴전선, 대한해협으로 남하?

일본이 한반도 평화기조를 ‘우려’하고 있다. 최전방국가 한국 너머에는 중국·북한에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북방 ‘대륙세력’이 있다. 이는 남방 ‘해양세력’에 대한 대결적 개념이며, 해양세력의 중심은 미국과 일본이다. 분단 한국은 그들의 최전선 방어기지이자 완충지대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경천동지의 변화다.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가 약화되고, “미군이 한국 방위에 대한 관여를 줄이면 한반도가 중립화할 리스크가 생긴다.“(미치시타 나루시게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 ‘리스크’란 표현은 한국이 떠맡아온 심각한 군사·안보 불안과 엄청난 비용 등의 막대한 인적·물적 부담을 떠안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표출일 수 있다.

한국의 탈최전방국가화는 동서 냉전 종식 이후에도 요지부동이었던 한반도 냉전체제의 붕괴 및 남북통합 가능성과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이 해양세력의 최전방국가라면, 북한은 대륙세력의 최전방국가다. 동족이 각기 인적·물적 손실을 감내하며 외세의 최전방국가 노릇을 해 온 지 70년이 넘었다.

 

미-일동맹의 동북아 지배구조 균열

한반도의 근대는 일본의 침략과 미국의 사실상 지배 속에 시작됐고, 그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전방국가 한국은 한국전쟁 중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다져진 미일동맹체제의 산물이다. 그 역사는 1차 대전 이후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직전까지 유지됐던 미-일 연합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원 속에 조선 병탄에 앞장섰던 가쓰라 다로가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다. 사토 에이사쿠(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의 2차 대전 후 최장수 총리자리, 나아가 가쓰라의 역대 최장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아베 총리가 철저한 친미파라는 사실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자주파 총리’라 불리던 오자와 이치로, 다나카 가쿠에이, 하토야마 유키오 등 미국과 불화한 총리들의 퇴장은 대조적이었다.(마고사키 무케루,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미국은 2차 대전 중인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에 대한 40년간의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의 남하와 한반도 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 무장해제 명분으로 한반도를 분단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한반도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일본의 패전은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유린한 일본제국주의를 청산하고 일본과 동아시아에 새로운 대안구조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미국은 마오쩌둥의 중국대륙 통일 이후 냉전을 가속화하면서 자국의 글로벌 헤게모니 확보를 위해 천황체제와 전범자들을 재활용함으로써 일본의 구체제를 사실상 온존시켰다. 한국은 그 복사판이었다. ‘친일 부역자들’과 손잡은 미군 점령체제하에서 한국은 미일동맹의 최전방국가로 재편됨으로써 식민지 잔재는 확대·재생산됐으며, 대결적 남북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지고 강화됐다.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홋카이도를 분할지배하자는 소련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한반도를 분할했다. 19세기 중반 이래 미국의 동아시아정책 거점이었던 일본을 통째로 차지하려던 전략의 산물이었다. 중국 등 대륙을 겨냥한 미-일 해양세력 연합은 2차 대전 때의 충돌 뒤 전승국 미국 주도의 동맹으로 더 단단하게 재결합했다. 한국의 탈최전방국가화는 한 세기 넘게 지속된 미-일 연합 우위의 동북아 지정학적 구조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무역전쟁, 미-중 헤게모니 쟁탈전의 연장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포인트’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다. 북핵 해결의 행보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린 채 주류 매체들로부터 난타당하고 있는 트럼프 정권에게 11월 중간선거에서의 결정적 득점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도 트럼프의 중간선거 전략과 연결 짓는 논자들이 많다. 그러나 미-중 무역분쟁은 좀 더 복잡하다. 국내정치적 계산 이상의 거대한 맥락, 팍스아메리카나 해체기의 헤게모니 쟁투,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신흥 대국과 그 도전을 제압하려는 기성 대국 간의 장기적 대결 구도 위에 전개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미국은 자국 헤게모니의 토대였고, 2차 대전 뒤 미 자국이 주도해서 수립한 이른바 ‘자유무역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자가당착적인 보호무역주의로의 경사에는 이유가 있다. 중국 정부의 생각을 대변하는 <환구시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워싱턴의 새로운 목표는 미국을 다시 무역 흑자국으로 바꾸고, 전 지구적 제조업 대국으로서의 미국 지위를 회복하며, 과학기술의 전면적 선도국 지위를 확보하고, 어떤 도전자의 출현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으며, 한 세대 앞선 군사무기 우위와 비교 불가능한 종합적인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 등이다.”(7월 3일 사설 ‘우리는 어쩌면 세계 대변동의 전야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군사 분야 등을 빼고는 이미 최강자가 아니거나 아닌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는 건 중국만의 시각은 아니다.

지난 6월 미국정부 보고서는 중국기업의 미국 기업비밀 ‘절취’에 따른 피해액이 연간 1800억~54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미-중 무역전쟁 배경에는 “기술유출을 막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 첨단기술과 군사적 우위를 빼앗길 것”이라는 미국 조야의 초당파적 대중국 경계감이 짙게 깔려 있다.(<아사히신문> 7월 6일) 미국은 대중국 무역적자만 매년 3천억 달러가 훨씬 넘는다. 일반 제조업은 물론이고 전자, 우주, 드론, 전기자동차, 로봇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미국 우위는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이런 미국 현실과 그 현실에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미국 유권자들의 욕구와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그의 소신이자 백인과 지지자들의 패권유지 욕구에 영합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단기 처방전이기도 하다. 미국의 초대국적인 지위는 앞으로 상당기간 유지되겠지만,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의 헤게모니 교체 역사에서 보듯 중국의 급격한 대두에 따른 헤게모니 쟁탈전의 파열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탈냉전 다자 평화공존이 해법

중간선거가 끝나고 미국 내 정치상황이 바뀌면 트럼프의 북-미 접근전략은 다시 바뀔까? 적어도 그때까지는 양쪽 모두에게 접근전략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이 커지더라도, 협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것을 중단했을 때의 전략적 손실이 압도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지면 나머지 임기 내 무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체제안정화와 경제개혁에 필수적인 대북제재를 제거 내지 완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도 협상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탈최전방국가화에 유리한 공간을 벌려 놓을 공산이 크다. 무역전쟁에서 보듯 청일전쟁 이후 압도적 힘의 우위 속에 공세적이었던 해양세력과 수세였던 대륙세력 충돌의 역관계가 정반대로 바뀌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열린 공간을 탈최전방국가를 위한 에너지와 지혜로 채울 수 있는 남북의 능력과 의지이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중국(대륙세력)과 미-일(해양세력)을 가르는 필리핀에서부터 대만, 오키나와를 거쳐 서해에 이르는 대분단선, 그 파생물이면서 상호연동적인 한반도 휴전선·대만해협 같은 소분단선을 분쟁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적 공생 벨트로 만드는 것을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런 변화는 남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라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양극 대결구조를 다자적 평화공존 구조로 바꿔 놓을 수 있다. 남북의 통합과 탈최전방국가화는 그런 구조 전환과 궤를 같이 한다.

 

ⓒ피렌체의 식탁

 

20%만 바뀌면 불가역적

1960년대 초에 미국 시카고대 모턴 그로진스 교수는 어떤 물체들에 무게를 조금씩 더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균형을 잃고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물리 현상을 사회학에 응용했다. 그는 백인들이 주로 사는 특정지역에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가족들이 계속 이주해 올 경우, 어느 지점(통상 20% 정도의 변화)에 이르면 그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백인들 다수가 일거에 그 지역을 떠나는 현상에 주목했다. 작은 변화가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점, 바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다.

기존 체제 변화를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일본 지배세력처럼, 미국 내에도 한반도 평화구조를 달가워하지 않는 군·산·정·학·언의 거부감이 엄존한다. 그들을 위해 지난 70년간 복무해온 최전방국가 한국 내에도 그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광범위한 기득권세력이 포진해 있다.

북핵 해체 작업과 관련해 트럼프는 그것이 20% 정도 진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도 티핑 포인트를 의식하고 있었을까.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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