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피렌체의 식탁> 57호에 발행된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의 칼럼남자의 종말과 청년보수의 등장이 매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유창오 소장이 그 후속편으로 경제적 관점에서의이남자’(20대 남성) 현상에 대한 분석을 이어간다. [편집자]

한국은 386 나라인가” : 언론을 도배한 86세대 논쟁

이 글은 2주전피렌체의 식탁에 실린 <남자의 종말과 청년보수의 등장>의 후속편이다. 그 글에서 나는이남자(20대 남자)’ 현상을 진보의 다수파 전략과 관련하여 분석하고, 이남자가 보수로 자기정립 하는지 살펴봤다. 하지만이남자현상의 현재 진행양상과 향후 전망을 다루지 못해서 아쉬웠다. 지면의 제한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편집부의 요청으로 이렇게 후속 칼럼을 2주 만에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2주 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쟁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조국 장관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하는 서초동 집회가 열리더니, 이에 질세라 조국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광화문 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언론은 86세대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경쟁하듯이 양산해냈다. 그러잖아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86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책과 보도들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조국 사태는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부어, 조국 장관에 대한 찬반이 86세대 논란으로 전환되었다.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86세대에 비판의 담론은말로는 민주화와 진보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성과의 과실을 가장 많이 누리고, 최악의 불평등을 아래 세대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조국 장관이 현재 비판받고 있는 포인트가 86세대의 일반적 특성이 된 것이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조사(중앙일보, 9.23~24)에서 조국 장관이 16%를 얻어 1위를 차지하고,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리얼미터, 9. 23~27)에서도 조국 장관이 갑자기 13%를 얻어 3위로 급부상하자, 조국 장관의 이미지를 활용한 86세대 이미지의 재규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지금 86세대는 100대 기업 임원의 72%, 20대 국회의원의 44%를 차지하고, 다른 세대보다 오랫동안 소득 수위를 차지하여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처럼 후속 세대에게 배분돼야 할 부()와 권력을 86세대가 오랫동안 독점하면서 갈수록세대 간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날 앞 세대를 비판해서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온 86세대가 이제는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아버지 세대에 도전한 문제적 세대 : 86세대와 19세대

나는 <진보세대가 지배한다>라는 책에서 64세대와 86세대를 비교했다. 64세대는 4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이고, 86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다. 두 세대야말로 한국 정치에서의 문제적 세대였다. 64세대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구도 정치체제(보수 다수파 시대)를 이끌었다면, 86세대는 현재의 탈지역주의 정치체제(진보 다수파 시대)를 이끌어냈다.

세대효과는 20대 무렵에 형성된 정치성향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64세대도, 86세대도 그들이 태어낸 시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20대를 보낸 시대다. 그들의 정치의식이 그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64세대와 86세대가 20대였을 때,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64세대는 일제강점기~해방~전쟁으로 이어지는 40년대에 태어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6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따라서 그들은 반공을 체화했고, 산업화 논리로 무장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고,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와 지역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1987년 민주화가 이뤄졌을 때 40대로서 대한민국의 중추였던 이들 세대는 지역주의 정치체제와 보수 다수파 정치구도를 만들어냈다.

64세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86세대는 부모 세대인 64세대에 도전하여 한국 정치를 변화시켰다. 경제개발이 시작되던 6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전두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대중적 민주화의 시기이자 3저 호황의 호시설인 8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따라서 그들은 민주주의를 체화했고, 민족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탈지역주의 성향을 가졌다. 그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도 진보성을 유지했고, 후속세대의 진보성을 이끌어내 결국 지금과 같은 진보의 다수파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 오랜만에 한국 정치에서 문제적 세대가 등장했다. 바로 지금의 20대인 ‘19세대.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2010년대인 지금 20대를 보내면서 정치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중 남자는 반문재인이고, 여자는 친문재인이다. 최초로 젠더문제가 커다란 정치 갈등의 요소로 등장했고, 진보적이었던 20대가 남자의 경우 보수적 성향을 띄고 있으며, 특히 여자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남자가 오히려 보수적이라는 것이 ‘19세대의 큰 특징이다.

젊은 보수인이남자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일상적 정치지형도 일부 바뀌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보수꼰대젊은진보의 대립이 일상적 정치지형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진보꼰대젊은보수의 대립도 적잖게 일상화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결국 세대의 문제다

19세대의이남자는 아버지 세대인 86세대와 대립하는 것일까? 그 핵심에는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보통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로 접근한다. 하지만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무엇보다 세대의 문제다. 이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직원의 직급별 분포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역피라미드 모형이다. 좋은 일자리인 이들 기업의 정규직은 높은 직급과 86세대가 많고, 낮은 직급과 젊은 세대는 적다.

이는 왜인가? 86세대들이 취업할 때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정규직 취업이 쉬웠는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정리해고에 드는 비용이 높아지자, 사내하청과 비정규직, 아웃소싱을 급격히 도입해서 노조 가입대상인 정규직을 뽑지 않았다. 금속노조의 전직 간부는 이를 두고정규직 노동과 자본이 중하층 하청과 비정규직을 함께 착취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병희 등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노동조합이 2005년까지는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2006년부터는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또한 한국 노동조합은 2016년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의하면 상위 50% 소득분위가 조합원의 76%를 차지하고, 상위 30% 소득분위가 조합원의 58%를 차지한다. 이처럼 노조가 소득 상층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세대별로 보면 86세대가 노조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이는 금속노조 조합원의 세대별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17만 명의 금속노조 조합원 중 50대가 39%로 가장 많고, 40대가 32%, 30대가 22%인 반면, 20대는 6%에 불과하다. 민노총의 중심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86세대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중심의 일자리 창출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최근 감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 근로자 1,285명 중 15%가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었고, 전직ㆍ퇴직자까지 합하면 19%에 이르렀다. 이처럼 경쟁을 통해서 적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뽑지 않고 경쟁 없이 들어온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이렇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은 대부분 20대가 아니라 윗세대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OECD에서 가장 높은 한국의 50 임금상승률

특히 한국에서 86세대가 불평등을 확대하는 데 핵심이 되는 요소는임금체계의 이중구조. 그것은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은 연공식 호봉제를 채택한 반면, 외부자들(사내하청, 파견직, 비정규직, 아웃소싱)은 직무기준 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중구조다. 이러한 임금체계의 이중구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사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연공식 호봉제는 노동자 집단 내에서 끈질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메커니즘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규직과 취약집단 사이의 임금격차를 만들어내는 주된 원인도 바로 연공식 호봉제다. 그런데도 86세대는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나아가 65세로 연장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직무급 임금제를 도입하지 않고 연공급 호봉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너무도 무리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제적으로 비교해 봐도 확연하다. 다음의 그래프는 OECD 국가 중에서 50대 직장인이 10년 근무에서 20년 근무로 근속연수가 늘어날 때 예상되는 임금상승률을 비교한 것이다. OECD 평균이 6%인데, 한국은 15%가 넘어서, OECD 전체 국가 중 1위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복지국가로 지칭하는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는 2% 이하였다. 이처럼 86세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상승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연공식 호봉제에 있다.

또한 다음 그래프는 ‘40대와 비교한 50대 임금 상승률 ‘60대 노동시장 잔류율을 국제 비교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대 임금상승률과 가장 낮은 60대 노동시장 잔류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가장 낮은 50대 임금상승률과 가장 높은 60대 노동시장 잔류율을 보이고 있고,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가장 낮은 50대 임금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86세대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위와 같은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민노총은 조합원의 다수인 86세대의 이기주의로 인해 아들세대가 고통 받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와 같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그들과는 정반대로 가장 높은 50대 임금상승률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연공식 호봉제를 직무급제로 전환해야 한다. 더구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자면서 호봉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들세대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20대의 일자리 창출의 길은 무엇일까? 안상훈 등의 연구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그 연구에 따르면 신규 일자리 창출에는 신규 기업이 주역이라고 한다. 오래 존속한 업력 5년 이상 유지사업체들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부분보다 이 기간 중에 진입한 사업체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혁신의 주역인 창업기업과 젊은 고성장기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일자리 창출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노동조합 중심의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혁신성장으로 성장한 신규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20대 일자리 창출의 길이라는 것이다.

과연 19세대는 아버지 86세대를 넘을 있을까?

마지막으로 19세대(‘이남자’)가 정치적 세력으로 발전하여, 86세대에 이어 아버지 세대를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살펴보겠다. 나는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86세대와 달리 19세대는 그 정치적 지향점이 아직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세대를 향해 호명하는 정치세력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19세대, 특히이남자의 정치적 지향점은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여론조사(코리아리서치, 8. 13~14)에 따르면이남자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유승민 의원이 무려 15%, 이낙연 총리 9%, 황교안 대표 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이여자의 경우에는 이낙연 총리 12%, 유승민 의원 6%, 황교안 대표 0%인 것과 비교해서도 확연히 달랐다.

지난 2017년 대선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유권자는 안철수 후보를 18% 지지했고, 유승민 후보를 13% 지지했다. 둘을 합하면 31%에 달해서 전체 세대 중에 가장 높았다. 대체로 이 두 후보를 지지한 20대는이여자보다는이남자의 비중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이상을 볼 때, 19세대(‘이남자’)의 지향점은 황교안과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유승민과 바른미래당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정치세력은 같은 보수이지만 지지하는 유권자로 나누자면올드 보수영 보수로 확연히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가능하지만 내가 그것을 함부로 재단하여 글로 쓰기에는 부적절한 일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바는 ‘19세대’, 특히이남자의 소망이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여겨지게 되어이남자현상이 소멸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생물인 만큼, 그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의 기존의 진보 프레임으로이남자현상을 재단하여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과 아픔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서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유창오 /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