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송환법’ 갈등으로 시작된 홍콩 시위가 장기화되는 것은 물론, 공항 점거 등 시위 방식도 진화하면서 베이징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 특파원을 지낸 이양수 피렌체의 식탁 주간이 시진핑 주석의 선택지를 가늠해봤다. 홍콩은 서울에서 2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홍콩 사태 격화로 한국에 미칠 경제적, 정치적 영향은 1989년 텐안먼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다. 우리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

한국의 외교 역량을 실험할 ‘홍콩발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10주 넘게 계속되고 있는 홍콩 시민의 반중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게릴라식 시위에 맞서 중국 당국은 ‘강경 진압’을 시사하고 있다. 대규모 무장 병력의 진압 훈련 도 홍콩과 56km 떨어진 선전(深圳)에서 포착되고 있다.

미국·영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은 만의 하나 홍콩에서 천안문사태 같은 강경 진압, 유혈 사태가 발생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결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병력 이동설에 대해 직접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다. 이번 사태로 인해 ‘누구도 죽거나 다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언급까지 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미중 패권싸움으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현실에서, ‘홍콩 변수’는 서방에겐 중국을 겨누는 창(槍)으로, 중국에겐 체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서방세계가 크게 우려하는 강경 진압 사태는 국제 사회에서 거대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언뜻 생각해 봐도 금융허브인 홍콩 경제의 위축, 서방과 중국의 충돌, 세계증시 추락, 시진핑 체제의 불안 등 불길한 단어들을 너무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가 만약의 사태 발생 시 충분한 외교적 대응방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1989년 톈안먼사태 땐 한·중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한국 정부는 심각한 고민 없이 서방 진영 논리에 따를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 뒤, 한국 외교의 선택을 어렵게 하는 ‘중국 변수’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너무 커져 버렸다. 우리에겐 가급적 끼어들고 싶지 않은 싸움이다. 한·일 갈등 속에서 중국까지 건드려선 곤란하다는 현실 감각도 무시할 수 없다.

홍콩 시위는 한국 정부에 ‘가치 외교’와 ‘실리 외교’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는 앞으로 세 가지 대안이 존재할 것이다. ①과거와 같은 침묵·방관 ②인류 보편 가치에 기반한 비판·개입 ③유엔 및 국제기구 따라 하기.

한국 사회가 국격과 실리를 균형 있게 추구하려면 유비무환(有備無患) 자세로 이번 사태를 관찰하고 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경제규모 11위답게 외유내강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배꼽이 머리를 흔들고 있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홍콩 시위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 못지않은 최대 현안이다. 당·정·군 핵심 인물들이 여름철 휴가 시즌에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어쩌면 첫 번째 이슈로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뒷받침하듯 주미대사·외교부장을 역임한 양제츠 정치국위원은 1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깜짝 회동을 가졌다.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 중, 대외 관계를 책임진 정치국위원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가 얼마나 고심하는지 엿볼 수 있다. 양제츠는 접촉 결과를 시진핑 주석에게 직보(直報)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에게 홍콩 시위 사태는 ‘3대 핵심이익’이란 측면에서 그 무엇보다 긴박한 현안이다. 3대 핵심이익이란 무엇인가. ①국가체제, 정치체제 및 정치적 안정 ②주권 보호, 영토 보전, 국가 통일이다 ③지속적인 경제·사회 발전이다.

이 관점에서 홍콩 시위 사태를 살펴보면 중국 지도부의 위기감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먼저 홍콩인들이 요구하는 법치·민주는 중국공산당 일당지배를 흔들 사안이다. 고도자치 요구는 국가통일을 위협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홍콩의 금융·무역·서비스 산업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핵심이익 세 가지가 모두 걸린 ‘트리플 A’ 중대사안인 셈이다.

홍콩의 잇따른 대규모 시위는 시진핑 주석의 권력 기반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2017년 10월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산당 당장(黨章)에 ‘시진핑 사상’을 명기해 이를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1992년 이후 최고지도자 교체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격대지정(隔代指定; 차차기 지도자 지정)을 생략함으로써 당 총서기(5년 임기)를 두 번만 한다는 관례마저 무시할 뜻을 내비쳤다. 시(習) 주석을 진시황(秦始皇)에 빗대 ‘시 황제’라고 칭하는 이유다.

시 주석은 2012년 이후 7년간 파죽지세로 권력을 휘둘러 왔다. ‘정적(政敵) 놀음’을 했던 보시라이(薄熙萊) 전 충칭시 당 서기 및 주변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모든 장애물을 말끔하게 치워버렸다.

시 주석의 트레이드 마크는 중국몽(中國夢), 중국의 꿈이다. 1인당 GDP를 1만 달러까지 끌어올리고, 서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와 차별화된 중국식 발전 모델을 정착시키겠다는 야망을 과시해왔다. 미국에 대해선 중국을 동등한 강대국으로 인정하라는 ‘신형 대국 관계’를 요구하는 한편,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스트롱 맨’ 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홍콩 100만 시위 사태의 장기화는 시 주석의 자신감과 지도력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가 홍콩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장악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홍콩 행정 관료들이 무능력, 무소신, 무책임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시위는 20대 젊은이의 치정 살인극(사건 현장은 대만)으로 시작됐지만, 살인 피의자를 대만이 아니라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 ‘범죄인 송환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듯 확산됐다. 민심을 장악한 화두는 ‘홍콩의 급속한 중국화’, 홍콩이 자랑하던 자유·자치·법치의 축소였다. 덩샤오핑이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가 50년은커녕 25년도 채 안 돼 깨지고 말았다.

홍콩 시위 사태는 시진핑 주석에게 아주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최고 권력을 건 물밑 혈투도 각오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잘못 수습하면 2022년 예정된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직 3연임’의 야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시 주석의 기세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정적들, 예컨대 장쩌민 전 주석 계열의 상하이방 출신, 후진타오 전 주석 계열의 공청단(共靑團) 출신들이 반격을 가할 공간을 허용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중국 대륙과의 양안 통일을 거부하는 대만 쪽에도 ‘일국양제’의 약속을 믿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시진핑이 마주한 3가지 갈림길

시 주석은 홍콩 시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세 개의 책략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마치 중국 고전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오나라에 간 유비에게 위기 봉착 때 열어보라고 건네준 세 개의 비단주머니, 금낭묘계(錦囊妙計)라고 할 만한 대책이다.

첫째는 덩샤오핑(鄧小平)이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채택한 ‘강경 진압’이다. 무장병력을 풀어, 시위 주동자들을 잡아 가두고, 유혈 사태도 불사하는 원천 봉쇄 방식이다. 홍콩 행정 관료도 베이징에 충성도가 강한 인사들로 채운다. 중국 정부가 “급진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는 것은 엄중한 범죄이자 테러의 시작”이라고 경고한 것을 보면, 베이징에서 검토하는 대안 중 하나로 생각된다. 중국 지도부는 톈안먼 사태를 아직도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규정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무장경찰(武警) 1만2000명이 홍콩 인근에서 폭동진압훈련과 함께 언제든 출동할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 방책은 모두에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시 주석은 톈안먼 사태 당시 36세의 푸젠성 닝더(寧德)시 당 서기였다. 톈안먼 참극의 경험과 교훈을 몸소 체험하지 못했다. 국제도시인 홍콩에서 강경 진압,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몽’은 영영 잡기 힘든 산 너머 무지개가 될 수 있다. 진압 후에도 홍콩 민심이 돌아서지 않고 게릴라식 시위가 계속된다면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시 주석의 권력, 명예, 권위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수 있다. 강경 진압의 명분, 타이밍, 테크닉 못지않게 홍콩 민심을 수습하는 게 핵심 포인트다.

둘째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자주 구사했던 대중 동원과 포위 전략이다. 홍콩인 사이에는 중국 대륙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친중 세력도 20∼30%를 차지한다. 이 전략은 홍콩 안팎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홍콩 내부에선 친중 단체 및 언론 매체를 동원해 경제 파탄, 홍콩 이미지 추락, 시위 과격성(폭력성) 등을 비난한다. 시위대와 시민 사이에 폭력 사태를 조장한다. 동시에 홍콩 인접 지역에서 무장병력의 실전 훈련을 계속한다. 두세 달 동안 시위대 기운을 빼놓은 뒤 ‘폭란’ 진압에 나선다. 동시에 행정장관 교체, 선거제 개혁, 홍콩 경제 진작책을 내놓는다. 일종의 강온 양면 작전이다.

이 방식은 중국 지도부에 위험 부담도 적고, 과거 홍콩 시위 때도 두세 차례 약발이 확인됐다. 스트롱맨 성향의 시 주석으로선 성에 차지 않겠지만 행정 관료들은 선호할 법하다. 하지만 국제 여론이 개입할 경우 사태가 꼬일 수 있다. 양제츠 정치국위원이 미국을 급히 방문한 이유도 미국 측 심중을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짐작된다. 시위대와 시민을 효율적으로 분리하고 국제사회에서 친중 여론을 확산시키는 게 핵심 포인트다.

시 주석은 집권 초기에 ‘덩샤오핑처럼 생각하고, 마오쩌둥처럼 행동한다’는 평판을 얻었다. 홍콩 시위 진압을 위해 현재로선 마오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덩샤오핑 방식도 불사할 것인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을 훨씬 뛰어넘는 악몽이 될 수 있어서다.

셋째 대책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고도 자치 및 직선제 개혁을 부분 수용하는 방안이다. 한국의 19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군부정권이 6·29 선언으로 대응한 것과 비슷하다. 민주화 요구에 봉착한 버마 군부 역시 선제적으로 점진적 민주화의 길을 택한 바 있다.

홍콩 언론매체는 의회 격인 입법회(의원 70명)가 직능대표 30명, 선출대표 40명으로 이뤄지는 데 친중파가 과반 의석을 쉽게 얻는 구도라고 비판해왔다. 이와 함께 조롱거리가 된 행정장관 간선제를 아예 주민 직선제로 바꿀 경우 시위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중국을 못 믿던 대만과의 일국양제 통일협상에도 탄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홍콩 시위보다 더 큰 체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중국 대륙의 민주화 욕구를 분출시켜 공산당 일당지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홍콩 시위를 ‘폭란’으로 규정한 마당에 폭도들의 요구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 하지만 ‘중진국의 함정’을 통과하려면 정치체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전문가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덩샤오핑이 경제 분야의 개혁개방을 했다면, 시 주석은 정치 개혁의 적기를 만난 셈이다. 물론 당·정·군 지도부가 합의할 지는 전혀 미지수다. 자칫하면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슬픈 운명을 답습할 수 있다. 그는 톈안먼 사태 당시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다 덩샤오핑과 보수파에 의해 축출됐다.

홍콩 민심 악화 “문제는 경제야”

홍콩 민심은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추진을 시작점으로 중국 품을 떠나 범민주파로 급속하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첫째는 경제적 요인이 크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홍콩 GDP(국내총생산)는 중국 GDP의 18% 안팎이었다. 이것이 20년 뒤에는 3% 아래로 떨어질 만큼 중국 내 홍콩의 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쪼그라들었다.

홍콩인들은 홍콩이 선전·상하이에도 추월당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생각한다. 과거의 경쟁 상대였던 싱가포르는 멀찌감치 달아나고 선전·상하이만도 못한 ‘이류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반중 시위, 젊은 층의 혐중 정서는 이와 무관치 않다.

홍콩의 1인당 소득(GDP)은 4만8960달러에 이르지만 저출산·양극화 속에서 중산층·서민, 특히 젊은 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각해지고 있다. 계층 간 빈부 격차를 말해주는 지니계수(1991년 0.476→2016년 0.539)는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중국 당국이 언론·문화·시민사회에 가하는 통제와 압박은 일상화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홍콩 모델과 베이징 모델이 갖고 있는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홍콩의 여론 주도층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회자돼 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100여 년간 쌓인 격차와 가치관 차이를 무시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6월 9일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103만 명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홍콩의 도심, 지하철, 공항을 무대로 게릴라식 시위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홍콩 역대 시위 가운데 최장 기록(79일)을 갖고 있는 2014년 ‘우산 혁명’을 훌쩍 뛰어넘을 기세다. 시위 방식도 진화를 거듭해 종횡무진, 임기응변, 선택·집중의 양상을 띠고 있다. 홍콩 경찰로선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국 ‘가치 외교’ 시험대에..

홍콩 시위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엇갈린다. 정부 차원에선 사태를 주시하면서 외교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금까지 티베트·위구르 지역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및 무력 진압에 대해 침묵했던 것처럼 홍콩 시위에도 사실상 노코멘트 전략이다. 인권 외교보다 중국 입김을 더 의식하는 분위기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나 언론에선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일부 언론은 홍콩 시위대가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매개로 이미 연대감을 간접 표출한 바 있다. 유혈 사태가 발생하면 동조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홍콩 시위 사태는 한국 외교의 고질적인 약점인 ‘가치 외교’의 존재를 묻고 있다. 인권·자유·민주라는 주제어는 힘센 상대를 만나면 불모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외면하거나 침묵하거나 회피하거나, 그중 하나다. 그래선 국가의 품격, 외교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좀 더 다른 외교를 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양수 / 피렌체의 식탁 편집주간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