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이유는 “안보상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이었을까? 시계를 조금만 더 되돌려보자. 초계기 갈등 때 일본은 “동맹국에 표적 조준하는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한국을 비난했었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일까?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이 안보의 관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 상황을 분석한다. 아울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고 이사장은 서울대 중문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유학했으며, 대기업 중국 현지 법인에서 오랫동안 일한 뒤 정당 싱크탱크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등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편집자]

일본의 아베 정권이 반도체 부품 수출에 대한 개별승인 전환과 화이트리스트(무역 우대국 명단)에서의 한국 배제는 한국의 국민정서를 들쑤셔 놓았다. 우리 정부는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부품 소재의 국산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우리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배제하는 등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국민들도 일본 제품과 일본 여행에 대한 보이콧으로 항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바둑에서 상대가 수싸움을 걸어오면 이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체 대국의 맥락을 보면서 상대의 진정한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잘 간파해야 한 귀퉁이에서의 수싸움에 말리지 않고 최종적으로 대국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관련 규제는 한국에 대해서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가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 목표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것을 부수적으로 노릴 수도 있지만 이번 조치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한미일 안보체제의 핵심국가인 미국에게 ‘한국은 안보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다. 이는 한발 더 나아가면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개헌을 통해 정식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이러한 배후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0년대 이후의 글로벌 정세 변화라는 더 큰 판을 읽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과 INF 조약 폐기

1990년 이후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0년대 이래로 1700만 명 선을 꾸준히 유지해왔던 미국의 제조업 종사자는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의 10년 동안 무려 1/3에 가까운 500만 명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리고 중국이 무역흑자로 번 달러는 환율유지를 위해서 미국 내에서 국채매입 등에 사용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유동자금이 풍부히 공급됐고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 중 일부가 됐다.

미국은 금융위기 발생 이후인 2010년 즈음부터 중국에 대해서 단순히 미국 경제에 대한 가해자라는 인식을 넘어서서 글로벌 패권 다툼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14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국민총생산(GDP)은 미국을 넘어서서 세계 1위가 됐다. 그러자 패권 경쟁자로서의 중국에 대한 경각심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경제와 안보 모든 영역에 걸친 파상공세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중상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익히 알려진 관세 폭탄,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무역전쟁 이외에도 미국은 군사안보적 차원에서 중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경제 봉쇄를 뚫기 위해서 그리고 에너지 및 자원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1)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기 주도하는 2중 기술 표준, 2중 시장 진영2), 2중 국제기구 체제3)를 구축하려는 장기전을 시도하고 있다.
1)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단순히 육로와 해로를 통한 무역을 활성화하는 ‘실크로드’의 복원이 아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즉 사실상의 중국 봉쇄전략으로 인해서 말라카 해협을 통한 원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원이 차단됐을 때를 대비해 육로로 유럽, 러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로부터 수입하기 위한 에너지 안보 전략이자 유라시아 국가 협의체 수립을 통한 지역 안보체제의 수립이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핵심 목적이다.
2)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320억 달러(2017년), 원조 및 인프라 건설 차관은 1200억 달러(2015-2018), 교역규모는 1880억 달러(2017년)에 이른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주요 방송사들을 인수하고 주민들에게 위성 안테나를 보급하여 중국에서 공급하는 콘텐츠를 아프리카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중국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호감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60~70%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남미와 동남아에서도 중국에 대한 주요 국가 국민들의 호감도는 60%를 넘고 있다.
3)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8개국은 정회원국,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몽골, 벨라루스 4개국은 준회원국. 스리랑카, 터키는 협력 파트너, 투르크메니스탄, 독립 국가 연합과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은 초청 국가 및 기구. 또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 네팔 등은 대화 상대국으로 지정.

얼마 전 8월 2일에 미국은 러시아와의 INF 금지 조약을 폐기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INF 금지 조약을 중거리 미사일 금지 조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INF는 글자 그대로 옮기면 중거리 핵 무기(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이다. 미국이 이 조약을 탈퇴한 명분은 러시아의 조약 위반이지만 실제 목적은 사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이다.

INF 금지 조약의 핵심은 3가지이다. 첫째, 사거리 500~5500㎞의 미사일에만 해당한다. 둘째, 미국과 러시아에만 해당한다. 즉 중국은 이 조약에 의해서 제약을 받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 및 배치해왔다. 중국이 그동안 배치한 탄도 미사일은 5% 정도만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고 나머지 95%는 중거리 미사일이다. 셋째, 육상 배치는 금지되지만 함상 탑재는 허용한다.

중국의 군대는 그동안 지방 내란 진압 및 자급자족 체제를 위한 육군 중심의 지역방어 체제인 7대 군사구역(軍區)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해안에 대한 방어는 주로 사거리 1500km의 동펑(東風)21 미사일에 의존하는 반접근 지역방어(A2AD: Anti-Access, Area Denial) 전략을 유지하여 왔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를 잇는 제1도련선(島鍊線 iceland-chain)과 그보다 먼 일본-괌-뉴기니-인도네시아를 잇는 제2도련선을 경계로 작전범위를 설정하여 왔었다. 중국은 동펑21 중거리 미사일을 통해서 해안으로부터 2000km 떨어진 제2도련선 안쪽으로 접근하는 함정에 대해서 공격을 하는 전략이었다. 미국 역시 이 도련선 개념을 이용하여 제2도련선 부근에서 INF에서 허용된 미사일 적재함으로부터 중국 내륙을 향해 중국보다 사거리가 긴 중거리 미사일로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3년에 7대 주둔구역를 5대 작전구역(戰區)로 재편하면서 한반도 및 일본 방향의 황해합동작전지휘부(北部戰區)4), 대만 및 괌 방향의 동중국해합동작전지휘부(東部戰區), 베트남 및 남사군도 방향의 남중국해합동작전지휘부(南部戰區) 휘하의 3대 군구와 수도 방위 중심의 中部戰區, 그리고 서북지역의 西部戰區로 재편했다. 즉 공격과 방어를 겸비한 해양 작전 중심의 3군 합동전투 체제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최대 5000km에 달하는 신형 동펑(東風)26 미사일을 개발해 해안에 배치함으로써 제2도련선 부근의 INF 미사일 함대를 무력화함은 물론 중국 해안에서 3000km 거리에 있는 괌의 미국 해군기지까지도 사정권에 놓이게 됐다.
4)기존에 두 개의 군사구역(軍區)로 나뉘어져 있던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하나의 작전구역(戰區), 하나의 황해합동작전지휘부 산하에 배치했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INF 금지 조약을 폐기함으로써 중국 근방의 육상 즉 한국과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미국은 다중영역전투(Multi-Domain Battle)라는 새로운 작전개념을 도입하였는데, 그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가 고속이동차량 탑재 미사일 발사 시스템(HiMARS: High Mobility Artilery Rocket System)이다.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에 비해서 중거리 미사일은 불과 5분에서 10분 정도의 비행시간이 소요되기에 요격과 대피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군함은 항상적으로 적군의 레이더 및 인공위성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고 기동성이 떨어져 해상에서 미사일에 대한 회피기동을 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고속이동차량에 탑재된 미사일 발사 시스템은 피탐지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회피기동을 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협상 카드로 러시아, 중국, 미국 3자간에 INF 금지 조약을 다시 체결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그럴 경우 미국이 중국 해안에 근접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져서 이를 수용하기 힘들다.

만약 미국이 베이징으로부터 1000km 떨어진 한국에 이러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게 되면 중국은 마치 1962년 소련이 미국의 코앞인 쿠바(하바나-워싱턴 거리 1800km)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다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까지 이어졌던 쿠바 미사일 위기 때와 유사한 위협감을 느낄 것이며, 사드 배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위협을 가해올 수 있다.

일본의 글로벌 안보 플레이어로서의 위상 확보 전략

한편, 일본은 전후에 군사안보를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고 자신은 경제발전에만 집중해 왔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일본이 미국과 무역마찰을 빚기 시작하면서 직물, 자동차, 컬러TV, 철강 등 협상에서 매번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였으며 수출 쿼터의 ‘자율규제’를 약속했다. 1985년에는 급기야 개별 제품 분야가 아니라 한 나라의 대외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을 강제로 절상시키는 플라자 협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 후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고 잃어버린 20년을 넘어서 아직까지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5)
5) 일본에게 이런 일이 첫 번째가 아니다. 1895년 청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인 요동반도를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 의한 ‘3국 간섭’으로 뱉어내야 했다. 이 일로 자존심을 구긴 일본은 절치부심하여 결국 10년 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국방력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안보 플레이어로 인정받지 않는 한, 국제적 협상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 급격히 부상한 중국의 영향력은 일본을 긴장시켰다. 2010년과 2012년에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은 그렇지 않아도 전세계에서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인 일본6)으로 하여금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하는 안보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6) 2014년 미국의 여론조사 회사 Pew Research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 중 중국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는 비율은 7%에 불과한 반면 비호감을 가지는 비율은 무려 91%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중국에 대한 호감은 56%, 비호감은 42%이다.

일본이 2012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대외전략의 핵심은 동북아 지역을 넘어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플레이어로 부상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개헌을 통한 정식 군대 보유’와 이를 통한 ‘인도-태평양 안보 체제의 핵심국가 위상 확보’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 유화책을 펼쳤기 때문에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 대해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강한 압박과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을 동시에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러한 일본의 의중과 서로 일치하여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 봉쇄하는 개념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동추진이 2017년부터 미일정상회담에서 합의되었고 2019년 6월 1일 미국 국방성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일본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주춧돌(cornerstone)”로 묘사된 반면에 한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구심점(linchpin)”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일본을 더 넓은 지역안보와 관련된 국가로 간주했다.

지난 7월 21일 총선에서 자민-공명 연합으로 간신히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아베 총리는 올해 안에 평화헌법을 고쳐서 군대 보유가 가능한 ‘보통 국가’로 전환하는 것을 정권의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일본의 의도에 가장 강하게 반발할 한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부터 고민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공격 초점: “(안보에 관해서) 신뢰할 수 없는 국가”

일본 정부는 작년 말에 한국 구축함에 의도적으로 위협적인 근접비행을 한 일본 초계기에 대해서 우리 군함이 조사(照射)한 레이더 전파가 탐색용 레이더냐 표적조준용 레이더냐 논쟁을 유발했다. 이를 통해서 한국이 ‘동맹국에게 표적조준을 하는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주장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합의한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을 문재인 정부가 해산한 것,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판결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따지기 보다는 한일 청구권 협정이라는 ‘국가 간의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 문제라는 식으로 국가 간 신뢰의 상실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다.

이번 반도체 부품 수출의 개별승인 전환 및 화이트리스트 배제도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 관리 문제 등 ‘안보 상의 이유’이지 결코 징용노동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또한 한국에 대한 경제적 피해를 주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WTO 규정을 고려할 때 보복이나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없지만, 일본은 2017년부터 일관되게 ‘한국은 국제적 안보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 특히 미국에 심어주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며칠 전인 8월 8일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개별허가 대상인 반도체 부품 1종에 대해서 수출을 허가했다. 경우에 따라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신청에 대해서 모두 신속하게 허가해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었지만 B그룹의 국가라도 자유무역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한국 경제에 피해를 주려고 하거나, 정치적 이유로 자유무역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 경제에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실제로 실행에 옮길 경우 한국의 기업들과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항의 열기도 점차 식게 될 수도 있다. 당장 언론에는 “포토레지스트 수출허가, 외교가도 헷갈리는 아베의 속셈”이라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의 속셈은 한국 경제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한국의 안보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것에 있다. 한국과 맞물려 있는 일본 경제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의 대응 방향

한국은 수싸움은 수싸움대로 진행하면서 일본의 전략적 목표가 실현되지 않도록 더 큰 수를 두어야 한다. 수싸움에서는 승부를 내기 쉽지 않다. 만약 개별승인제로도 반도체 등의 생산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허가를 내주는 상황에서 포괄승인제를 고집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비(非)화이트리스트 국가로 강등시킨 한국에게 절차를 더 신속하게 진행해주어서 화이트리스트 복귀 명분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상황변화에 따라서 정부가 명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한미일 안보체제에서 굳건한 파트너로서의 이미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일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를 협상수단으로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신뢰도를 저하시키려는 일본의 수에 말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대북 감시능력은 상호보완적이다. 한국은 북한에서의 발사 관련 정보탐지 부분에서 우수하고, 일본은 동해 상에서의 탄착 관련 정보탐지 부분에서 우수하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정보수집 위성 6기를 포함해 한국군보다 더 많은 정보수집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의 경우 한국군이 지상에 설치한 그린파인 레이더 탐지면 이하 고도에서 풀업 기동을 하기 때문에 미사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정확한 궤도를 추적하려면 일본 정보수집위성으로부터 포착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는 며칠 전 김현종 안보실 차장이 우리도 정보수집위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미일 안보체제 내에서 우리의 역할을 더 강화하는 것을 기조로 삼아야 하지만 한미일 안보체제 자체가 중국-북한과의 대결을 전체로 한 것이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는 미국의 요구를 마냥 들어줄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와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 요구이다. 그리고 방위비 분담 가중 또한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으면서도 한미일 안보체제에서 우리의 역할을 키우는 길은 자주국방력의 강화에 있다. 미국이 직접 한반도에서 미군 군사력을 증강하려는 요구를 수용하기 보다는 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한미일 안보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더 강화하고, 또 한편으로는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 내 미군 군사력 증강보다는 덜 위협적인 것이라고 인식시킬 수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강화를 위해서 투자를 아끼지 말 것을 강조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최근에 북한에서 발사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이스칸데르급에 해당하는 한국의 현무2-C 미사일은 사거리 800km의 중거리 미사일이다. 미국과 협의하여 사거리를 늘림으로써 우리 비용으로 2000km 이상 사거리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배치하겠다고 미국을 설득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에 적절한 형태로 참여하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는 한편 우리의 대양해군 양성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3050 클럽7) 7개국에 속하며 GDP 규모는 세계 14위, 수출 규모는 세계 6위의 글로벌 강국으로, 1인당 GDP는 구매력 기준으로 일본과는 단지 한 끗 차이만8) 있을 뿐이다.
7)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며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나라
8) IMF가 올해 발표한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일본 31위, 한국 32위이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이미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지만 안보와 관련된 우리의 관심은 여지껏 오직 한반도 내에만 머물러있다.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유사 민주주의 제도만 갖춘 일본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함을 앞세워 설치도록 놔둔 채 우리 앞마당에만 관심을 쏟다가는 미래에 더 큰 후환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진보세력이 앞장서서 우리의 경제적 실력에 걸맞는 강한 군대를 육성하고 지역 및 글로벌 안보 체계에서 적극적 평화유지자 역할과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문화 전파자의 역할을 위한 대외전략 노선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한편으로는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상 주도권을 외국이 아닌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국가안보에 대해서 안심하고 정부를 따르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고한석 /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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