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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규 칼럼]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은 ‘촌놈’들이었다

by | 2019년 4월 26일 | 정책

  • 125년 만에 찾아온 국제정세 위기: 이번엔 다르다
  • 첨단산업 리더십 확보는 단순 먹거리 아닌 안보와 번영 이슈
  • 미중 무역 분쟁: 한국에게는 또 다른 기회
  • 미국 기술 패권 파트너십 전략 활용해야
  • 비메모리(파운드리) 산업 전략 가치 커져
  • 이공계 인력 질적‧양적 확충해야
  • ‘촌놈’들이 이룬 기술 강국, 해외 우수 ‘촌놈’ 유치해야
  • 외국인 인력 활용으로 첨단산업 글로벌 리더십 확대
  •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 중요

화웨이(중국)가 애플에 손을 내밀자, 애플은 덥석 퀄컴(미국)의 손을 잡았다. 미중 무역 분쟁이 첨단산업의 국제 분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파운드리)의 강자였던 대만-중국 라인에 미국이 거리를 두자 삼성전자가 재빠르게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며 파고들고 있다. 정부도 전폭 지원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2018년 9월 <피렌체의 식탁>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분쟁은 한국 첨단산업에 오히려 기회”라고 내다봤었다. 임형규 전 사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첨단산업 글로벌 리더십 확보는 단순한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패권 쟁투가 심화 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안보와 번영을 담보할 확실한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

1894년 청일전쟁, 갑오경장을 통해 조선이 일본에 의해 반 강제적으로 청국과 결별하고 근대화되는 과정을 보면 서글픔이 앞선다. 근대화의 흐름에 완전히 뒤쳐진 조선이 수십 년간 격심한 내부 분열로 우왕좌왕하는 하면서 망국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오늘의 한반도가 겪고 있는 분열과 혼란의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지리적인 경계성이 우리 내부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이다. 10여 년 전부터 명확해진 중국의 부상은 한반도의 뿌리 깊은 좌우분열과 맞물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혼란의 주요 요인이다. 중국의 성공과 한계를 보는 눈들이 다르고, 그 시각 차이만큼 한국의 위치 설정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시각 차이를 좁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만큼 분열과 혼란도 길어질 것이다.

현대의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지난 2000년간 거대한 섬처럼 중국 중심의 독자적인 문명으로 구축돼 있던 동아시아가 서구 문명에 전면 노출됐다. 그리고 모든 선진 문명을 중국을 통해 흡수 할 수밖에 없었던 한반도의 지리적인 한계도 해소되었다. 그리고 냉전 시대는 한국에게 비약적 발전의 기회였다. 특히 미국의 앞선 과학기술을 받아 첨단산업을 육성할 수 있었다.

이 불확실성과 분열의 시대에도 미래 한반도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일들은 차질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노력해온 첨단산업 리더십 확보이공계 인재육성이다. 이를 통해서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대체 불가능한 기술‧산업적인 능력을 우리가 보유하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5G,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산업에서 한국이 세계최고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는 널려있다. 우리가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첨단산업 리더십 확보는 한반도의 안보와 번영을 이룰 확실한 전략이다. 전략적 첨단산업 육성은 단순 먹거리 문제를 뛰어넘어 한국의 미래 생존과 직결된다. 전략적 첨단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산업적 역량’을 보유하게 된다면 미국의 세계경영 전략산업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중국과 일본도 우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도 우리를 추종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오늘의 한국은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여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구한말보다 좋은 상황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보유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완전한 답은 국가 차원의 방대한 연구가 필요한 일이다. 다만 이미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보한 분야가 있고 그 경험으로 부터 필요‧충분조건을 배울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세계 IT기술 패권을 쥐고 있는 동안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기술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 돼 있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던 1995년경 세계의 전자산업 판도는 춘추전국시대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미국이, 디지털‧전자는 일본이, 그리고 이동통신(GSM)은 유럽이 주도하고 있었다. 디지털‧모바일혁명을 거쳐 4차 산업혁명이 가시화된 현재, 세계의 IT산업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스마트폰, 반도체 산업의 승자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다. 미국의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가치가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이들의 전략적 파트너인 삼성전자(메모리, 스마트폰), TSMC(파운드리)는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로 도약했다.

반면 유럽, 일본의 정보산업(컴퓨터, 통신,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의 3차 산업혁명 기반산업)은 존재감이 없다. 이 산업 재편 전쟁에서 벗어나 있던 중국은 텐센트, 알리바바 등을 키워왔지만 아직 글로벌 존재감이 약하다. 그리고 유일하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통신시스템 기업인 화웨이(HUAWEI)는 미국의 집중견제 대상이다.

적어도 향후 30년간 4차 산업혁명에서 미국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미국 기업들의 파트너들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유럽, 일본은 3차 산업혁명에서의 경쟁력 상실의 여파로 그들이 주도권을 가진 2차 산업혁명 산업들(제약, 화학, 정밀기계, 자동차, 항공 등)을 지키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IT기업들도 시장의 편중, 반도체 등 핵심기술의 미성숙 등 그 태생적 한계와 미국의 집중견제로 인해 글로벌 위너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한다. IT 산업 하드웨어의 중심으로 그 비중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디램,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이 메모리 산업을 기반으로 더 다양한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 전략적 관점에서 메모리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예리한 칼이 많다. 특히 파운드리 산업의 전략적 가치가 더 강해진다. 모든 시스템의 두뇌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제조는 이 파운드리 파트너십에 의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집중투자하면 세계1위 TSMC와 경쟁할 수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 의한 대규모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인공지능 프로세서, 5G 통신칩 등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미래 시스템을 하나의 칩 위에 구현하는 SOC(System on Chip)분야도 이 분야를 주도하는 엔비디아(NVIDIA), 퀄컴(Qualcomm) 등과 경쟁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를 뛰어넘는 관련 시스템 산업을 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산업적, 군사적 가치가 증가일로에 있는 이미지센서 산업도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소니(SONY)를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화웨이가 주도하고 있는 차세대 통신시스템도 한국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화웨이의 독주를 허용할 수 없는 미국이 스칸디나비아의 노키아, 에릭슨만으로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이들 외에 통신시스템 사업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한국의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미국이 핵심기술 파트너십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기회의 문은 열려있다. 이미 강력한 교두보를 확보한 IT산업 외에도 바이오, 항공, 미래자동차, 로봇 등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을 키울 수 있다. 모두 한국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술역량이 있는 분야이다.

둘째, 열정적이고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질적, 양적으로 확충하는데 투자를 늘려야 한다. 최근 인재 육성 방안으로 반도체 분야에서는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하고 기업은 100% 채용하는 ‘계약학과’가 실시되고 있고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들이 대학이나 학과를 설립해 필요 인력을 선발‧교육‧고용하는 과정에 더 큰 자율성을 주고 적극 참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기술 벤처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연구개발에 대한 세제혜택, 연구인력 임금 보조 등 국가의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정부 보다는 기업 주도로 이공계 인력을 육성하고 연구개발 하도록 하는 것이 더 경쟁력 있다. 교육이 전부는 아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이 많아져야 더 좋은 이공계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더 많은 이공계 인력이 육성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분야는 외국인 우수 인력 활용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첨단산업 리더십 확보 전략과 접목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이 기술 강국이 된 데에는 40여 년 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육 기회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로 우뚝 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 탄 ‘촌놈’들이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은 최근 사천, 호남, 호북 등지의 ‘촌놈’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천성 성도 과기대 한 학년 정원이 1만 명이고 이들이 대부분 졸업 후 상해, 심천에서 일을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그 촌놈들이 고갈돼 문제다.

미국은 여전히 테크 분야에서 우수한 외국 ‘촌놈’들을 잘 활용해서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고, 더불어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촌놈’ 외국인 유학생들을 적극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중국 유학생들은 경계해야 한다. 이들이 기술을 갖고 고국에 돌아간다면 손해가 크다. 관련 기반 산업이 없어 고국에 돌아갈 필요가 없는 제3세계 유학생들을 잘 선발하고, 교육해 이들이 우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들의 정착을 위해서는 입학허가에서 시민권 획득까지 전 주기가 면밀히 설계된 새로운 이민정책도 연구돼야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북한의 우수한 ‘촌놈’들을 선발해 첨단 기술자로 잘 교육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세밀한 전략을 세워 이공계 분야의 문호를 넓히는 것은 첨단산업의 글로벌 리더십 확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차원의 ‘한류’를 일으킬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파괴적 기술혁신 등 세계는 중요한 변곡점에 다가서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선택하여 집중하여 지원해야한다. 분명한 전략과 투명한 기준이 있으면 선택과 집중은 가능하다. 우리의 미래 생존이 걸린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국민 모두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무엇보다 범국가적 추진 기구를 구성해서라도 이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임형규 / 전 삼성전자 사장·SKT 부회장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반도체 불모지 한국을 세계 1위 국가로 만든 주역 중 한명이다. 메모리와 비메모리 개발을 고루 주도한 드문 케이스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카이스트 석사과정을 거쳐 삼성전자의 ‘해외연수 제도’ 1호로 선정돼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 반도체의 성공에는 임 전 사장과 같은 미국 유학파 임직원들의 기여가 크다는 평이다. 이들은 반도체 개발과 생산, 수출 과정에서 미국인들과 협업하며 “아시아 사람이지만 미국식 소통방식과 영어에 능통한 삼성 사람들”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반도체 협업은 80년대까지 일본이 독주했으나 임 전 사장 등이 본격 가세한 이후 90년대부터 일본을 추월해 현재까지 독보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임 전 사장은 삼성그룹 안에서 한 사람이 3가지 의미 있는 타이틀을 차례로 역임한 드문 경우다. 반도체 개발의 수장(삼성전자 메모리 개발사업 부장, SLSI 사업부장), 신수종 사업의 기획자(삼성전자 신사업팀 사장)이자 미래 기술 역량의 책임자(삼성종합기술원 원장) 등이다. 삼성에서 물러나온 뒤에는 SK 그룹의 권유로 반도체 사업의 자문을 몇 년 맡았다. 국제고체회로학회 (ISSCC) 편집위원, 대한전자공학회 부회장, 반도체 Society 회장, 한국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산업협의회 회장, 한국과학기술원 이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CTO 클럽 대표간사 등을 역임했다. 국제전기학회 (IEEE) 등에 26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국제특허(미국) 17건을 보유하고 있다. 1953년, 경남 거제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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