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총학생회장 출신 ‘스타’들 정치권 진출하며 ‘386’ 형성
  • 안희정-이광재 ‘중간 레벨’ 386, 2002년 노무현 바람 일으키며 당청 주류 장악
  • 이념 무장 핵심 조직 간부들은 오히려 ‘386’에서 이탈
  • 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 2000년 벤처 붐, 2004년 중국 경기 타고 경제적으로도 고속성장
  • 1997 외환위기: 아버지 세대 퇴출되며 386에게는 기회로 작용
  • 58~74년생 급증하며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입시 제도 계속 변화
  • 다음 대선에는 386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 비 운동권 386들, 2년 전 촛불을 끝으로 ‘민주화’ 마음의 빚 덜었다.
  • 지금은 386의 ‘민주화 동맹’ 해체 과정
  • 세대 갈등과 소득 계층 갈등이 중첩돼, 앞으로 소득 양극화 갈등이 더 심해질 것
  • 386의 ‘욕망을 죄악시’하던 네거티브 정치가 지금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 저성장 시대 서구 사회의 포퓰리즘 유행, 한국은?
  • ‘파천황’적 리더 없어 신생 포퓰리스트 정당은 등장 가능성 낮아
  • 386의 기득권 분배할 제도적 방안 모색해야
  • 정체된 사회에서 40대 리더십 등장, 한국은?
  • 새로운 시대 적응 못하는 세대는 도태될 것
  • 세대 교체는 무조건 희망적인가? 일본은 ‘아베 포퓰리즘’으로 퇴행

<피렌체의 식탁>이 만든 새로운 코너 [금요집담회] 두 번째 주제는 이른바 ’86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라는 논문이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곧 이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논란’이 불거지며 ’86세대’가 다시 사회 담론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사법, 시민사회 등의 영역에서 주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정국 전망은 물론 한국 사회의 나아갈 길을 파악하기 위한 주요 변수이다. 이와 같은 ‘세대 담론’이 옳은 것인지 부터 시작해,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맥락을 <피렌체의 식탁> 기획위원들이 짚어봤다. 외부 기획위원으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와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참여해 김현종 발행인, 한승동 편집인, 김하영 편집장과 함께 만든다. 격주로 발행 되며, 자유롭고 거침없는 의견 제시를 위해 발언자는 익명으로 게시한다. [편집자]

80년대 민주화 운동, 90년대 정치권 진출

허생
일단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586’은 원래 ‘386’이라 불리는 세대였다. 1960년대 태생으로 80년대 학번의 30대. 지금은 이들이 대부분 50대가 돼서 ‘586’이라고 하는 건데, 60년대 생이 성인이 됐을 때 대학 진학률이 50%가 안 됐다. 60년대 생을 모두 386, 혹은 586이라고 부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가오리
1970년대 말 4년제 대학 진학률이 10%, 2년제 대학 진학률이 10% 정도였다. 1981년도에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사실상 정원이 30% 이상 늘어났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이 1982년부터 25% 정도였고, 80년대 마지막에는 40% 정도 됐다. 사실 60년대 생 과반 이상이 정규대학 교육 혜택을 못 받았고.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도 이른바 서울의 메이저 캠퍼스에 한정된다. 과연 ‘386’이라는 표현이 세대적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숫자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그 당시 1985년 총선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사회를 움직여 왔다.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세대적 대표성이랄까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양자
‘386 세대’를 시대적 상징기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제 사회 권력구조는 이른바 ‘SKY’, 그 중에서도 서울대학교 동문 내에서 권력 서열이 정해졌지, 언제 연도별로 정해진 적 있나. 이런 세대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구분은 그 세대 스스로 하는 건가, 언론이 부여하는 건가.

세일러
그렇게 얘기하면 어느 세대도 세대를 정의할 수 없다.

허생
세대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라면 ‘집단’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이들을 대표하는 정체성은 뭘까.

가오리
왜 ‘386’이었냐. 이들이 30대가 되던 1990년대 중후반에 정치권에 들어갔다. 사실 기업체에 들어간 사람들이 30대의 나이에 주목을 받았겠나. 정치권에 가서, 야당의 이른바 ‘젊은 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1992년 김민석을 시작으로 1996년 총선에서도 몇 명이 출마를 했었다. YS의 신한국당과 총선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386이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간 때는 2000년이었다. 동교동계의 모 가신이 젊은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들 공천에 적극 개입하고 후견인을 자처했었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들은 그때까지 학교 다닐 때 학생회장 했던 게 유일한 직업이었다. 2000년 16대 국회에 대거 진출한 이후에는 후견인 역할을 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그들이 국회에 들어와 교두보를 확보한 뒤에 후배들을 계속 불러들였다.

세일러
2004년 탄핵 때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노무현 바람 이끈 중간 레벨 386이 당청 장악

가오리
처음에는 당 이미지 쇄신을 위한 깨끗한 이미지의 ‘젊은 피’로 들어왔는데, 이들은 학생운동을 통해 조직논리와 역학관계에 밝으니까 어느 사이 당의 핵심세력이 됐다.

세일러
제일 큰 건 2000년도였다. 그 전에 ‘제3의 힘’이라고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독자적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모임도 있었는데, 2000년 선거에서 대거 공천되면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자 도생하게 됐다. 이후 분당해 열린우리당이 생기면서 결정적으로 ‘86정당’이 됐다.

가오리
DJ가 야당 대표이던 1995~1997년 시절에 “30대랑 얘기할 때 가장 잘 통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광주항쟁의 비극을 대학 시절에 학습하고 그래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똘똘 뭉친 세대니까. DJ가 느끼기에는 그 때 30대들은 의식이 확 전진된 세대다. 1992년에서 2000년 사이에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김민석,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오영식 등 서울 메이저 캠퍼스 총학생회장 출신들이었다. 국회의원 되기 전부터 각종 투쟁, 수배 경력으로 이름이 났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때부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안희정과 이광재는 이전에 국회에 진출한 사람들에 비해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안희정과 이광재를 계기로 중간 레벨의 386 인사들이 대거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고,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당과 청와대에 대거 진출했다. 노무현 정권은 안희정과 이광재가 젊은 학생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포진시켜 손발이 돼 움직인 정권이었다.

세일러
학생운동권의 세력을 세 가지로 분류해서 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학생회장들이 있었고, 그 밑에 ‘언더’라고 불리는 조직운동을 치열하게 했던 그룹이 있다. 이들은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철저히 이념적인 인물들이었다. 이 그룹의 친구들이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공산권 몰락 등 현실에서 자신의 이념에 반하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고,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오히려 반정치 내지는 중도보수화 된 경우가 많다. IT나 일반 기업에 간 친구들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과, 학회 등 운동권 외곽에 있으면서 조직운동까지 가지 않았던 친구들이 지금도 그 당시 사고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양적으로는 이런 친구들이 다수인데, 이들은 반독재‧반재벌(경제민주화) 정도 인식을 갖고 있지만 철저하게 이념적이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로 무장한 조직 활동가들이 좌절을 겪을 때 일들은 좌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 수준에서는 오히려 승리의 경험이 많았다. 지금도 과거 투철했던 조직 활동가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 심사숙고하거나 시장주의적인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기업에 다니거나 투자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친구들이 노무현 바람의 핵심이었다. 노사모 조직은 지방부터 바람이 불어왔는데, 노사모에 참여했던 386들은 학생운동 관점에서 보면 거의 핵심인 적이 없었던 친구들이다.

3저 호황, 벤처 붐, 중국 경기 타고 경제적으로도 천운 타

조율사
386세대가 잘 나갈 수 있는 경제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80년대 말은 ‘3저 효과’를 누리던 시기이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를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한다. 취직이 다 잘 됐다. 학생운동 했어도 어디든 들어가서 뭘 하든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정치적 기득권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경제계도 마찬가지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기득권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버지 30년대 생들이 거의 직장에서 쫓겨났다. 30~40대 아들들이 부장, 차장 정도에 있다가 2000년대 초반에 빠르게 주류로 올라설 수 있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에 ‘벤처 붐’이 생기면서 벤처업을 하던 많은 586들이 수혜를 누렸고, 2002년부터 2008년에는 연평균 4% 이상 성장하는 세계적인 호황이 지속되면서 승승장구 했다. 특히 이 시기 노무현 정부 때 대 중국 수출 호황을 누렸다. 이 세대가 직접 학생운동을 안 했어도 민주화 세력의 지원자였다. 미안하니까. 그런데 2년 전 탄핵 때까지는 든든한 지원자였지만 급격히 보수화 돼 가고 있다. 점점 은퇴할 나이는 다가오는데 경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들 기억에 ‘3저 효과’와 같은 호황을 다시 누리려면 강한 정치 세력이 나와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386세대를 좀 더 확장해서 볼 필요도 있다. 1958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16년동안 태어난 사람이 지금 각 나이 별로 80만 명 이상 살고 있다. 역사상 인구가 가장 급격하게 늘어났던 시기를 겪었고, 역사상 인구가 가장 급격하게 고령화 되는 시기를 겪게 될 것이다. 세대 내 소득 양극화가 놀랄 만큼 심해지면서 빠르게 보수화가 진행될 것이다.

세일러
‘동맹의 해체’ 관점에서 세대를 볼 수도 있다. 30년대 생 중심의 산업화-반공 동맹은 1980년대 들어 해체되기 시작했다. 특정 목적이 완성 되면 동맹이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지금은 민주화 동맹의 해체 과정이라고 본다.

허생
‘승리의 경험’ 관점에서 세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긴급조치 세대’는 사실상 승리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심복의 총탄에 죽었으니까. 또한 1970년대 말에는 오일쇼크 등 경제 상황 안 좋았고 1980년대 초반 우리 경제는 긴축 기조였다. 반면 1980년대 학생들은 1987년 직선제 개헌 등 승리의 경험을 했다. 경제적으로도 ‘3저 호황’ 덕분에 취직도 잘 됐다. 그 다음 세대부터는 또 다르다. 1992년 소련 붕괴 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는 등 혼돈의 시기였다. 혼란스럽게 대학 생활 시작해서 졸업할 때 외환위기라는 더 큰 혼란을 경험했다. 현재 살아 있는 세대를 보면 ‘승리의 경험’을 가장 많이 한 세대가 86세대 아닌가.

세일러
중국 같은 경우에도 사회 기득권을 1960년대 생이 다 잡고 있다. 문화대혁명‧대약진 세대가 싸그리 망해 위에 아무도 없다. 60년대 생이 80년대 후반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했다.

조율사
1962년생부터 중국 베이비부머인데. 인구구조가 정삼각형이 아니고 소위 계급장처럼 울룩불룩하다. 중국도 인구가 확 줄었다가 1960년대 확 늘었다가 그랬다. 인구가 급증하는 시기가 있다. 급증한 인구의 요구에 맞춰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우리나라도 1958년 개띠부터 베이비부머인데,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니 딱 이 세대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 무시험 제도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연합고사가 생겼다. 그리고 몇 년 있다가 대학 졸업정원제 생기고, 또 몇 년 더 있다가 입학정원을 확 늘린 것이다. 인구 구조에서 불룩하게 부풀어 있는 세대가 586이다.

386이 세상을 바꿨나, 바뀐 세상이 386을 만들었나

양자
냉전 붕괴, 3저 호황은 전 세계적 현상 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 현상의 덕을 우리가 제일 많이 봤고. 세계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격변의 시대였는데,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어느 특정 세대가 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가 어떤 세대의 특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세일러
세대를 형성하는데 주관적 공감대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특정 세대가 공유한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폭넓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6.25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6.25가 가장 중요한 공감대일 것이고,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에게는 광주를 포함해 민주화 항쟁 경험이 아주 중요했다고 본다.

양자
1980년대의 학생운동권을 보면 매우 놀라웠다. 맑스-레닌주의를 달달 외다 시피 하고, 필독서들을 다 읽었고, 전체적으로 통일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 세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는 그런 류의 학생운동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우리’라는 의식이 있었을까.

허생
386들이 당 주류가 됐을 때 한 가지 특징이 자기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강하게 공유하는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전대협 계보를 모르면 대화에 낄 수도 없고, 자기들끼리는 다 친구, 누나, 선배, 후배였다. 다른 세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이들은 다 소외됐다.

가오리
평범한 대학생활을 한 386세대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런 토로를 한 적이 있다. 당 회의와 같은 공식 석상에서 하는 이야기, 저녁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 술집에 가서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르다고 한다. 문제는 실질적 의사 결정은 술자리에서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넌 그 때 도망갔잖아’와 같은 학생운동 시절 이야기 하면서 대학 때 행적으로 서열화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는 술자리에 따라가도 할 얘기도 없고 ‘나는 영원히 이들 사이에서는 주류가 될 수 없겠다’는 벽을 느꼈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이 현재 한국 사회 권력층의 정점에 다가가 있는데 이들이 조만간 대통령에 직접 도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반공-산업화 동맹 해체 이어 ‘민주화 동맹’도 해체 수순

조율사
‘민주화 동맹 해체’가 굉장히 좋은 개념인 것 같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끌어 온 586 인사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들이 30대 때 회사와 같은 조직 생활을 안 해본 것에 따른 무능함에 대한 불신이 크다. 사회의 변화에 대한 적응 측면에서도 전망이 밝지 않다. 가장 중요한 디지털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세대론도 많이 약화될 것이다. 세대적 공감대 보다는 계층적 유대감이 강화될 것이다.

세일러
지금은 묘하게 세대 갈등과 계층 갈등이 중복돼 있다. 86세대가 자산과 소득에서 우위에 있다. 세대와 소득 계층의 갈등이 중첩돼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권력 공백이다. 586세대를 이어 받을 대안 세력이 안 보인다. 10년 정도 지나야 개혁 공천이 이뤄지고 세대교체가 일어날 것 같다. 지금은 남 탓들을 하고 있다. 다음 총선 쯤 보수 진영에서 먼저 개혁 공천을 해 경제 쪽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할 거고, 진보 쪽에서는 그 다음 총선 쯤에서 개혁 공천이 될 것 같다. 그 전 까지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동기도 자원도 없다. 당분간 세대 간 불화의 시대가 지속될 것 같다.

조율사
586세대도 인구가 많다 보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민주화라는 공감대가 약화되면서 다양한 욕구가 분출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다양성이 엮어지지 않는 것이다.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586이든 그 윗 세대이든 아랫 세대이든 꽤 있다.

허생
586이 지금 권력의 쟁점에 있는 거 맞는 것 같다. 그럴 나이이니까. 문제는 1990년대 ‘386’일 때부터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장기집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그 아래 세대가 공통의 승리 경험이 없고 다 분산돼 있다는 것이다. 586세대가 갑자기 퇴장했을 때 권력을 이어 받을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가오리
86세대의 현재 기득권층은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단체장과 청와대 등 정치권에 몇 백 명이 있고. 언론계에서도 매체의 성향을 떠나 주류가 돼 있고, 시민사회단체의 주축도 이들이다. 대학 교수들까지 더하면 몇 천, 몇 만 명의 파워 엘리트 그룹이 동일한 사회적 의식 갖고 있다. 이에 비해 그 아래 세대들은 다 객체화 돼 있는 것 같다.

다음 세대가 안 보인다

조율사
1974년생 이후의 세대는 민주화된 이후 대학에 들어왔거나 고등학교 때 외환위기를 목격해 성인이 돼서는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화될 기회가 없었다.

가오리
문제는 이번 김의겸 대변인 사태도 그렇고, 86세대가 특별히 나쁜 자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사회적 인식이나 행동 양태가 2019년 한국사회의 주된 도덕 기준이나 윤리 규범과 거리가 안 맞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은 아닐까.

세일러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어느 정도 인정된 윤리도덕과 괴리돼 욕 먹는 게 아니라, 자기주장에 위반됐기 때문이다. 보수가 안보를 주장하는데 비밀을 북한에 넘기면 죽일 놈이지만, 보수가 투기를 하면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문제가 뭐냐면 네거티브 정치를 너무 오래 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 때부터 네거티브로 상대방을 거꾸러트리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네거티브가 과거에는 정치적인 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욕망을 억누르는 네거티브 정치를 해왔다.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어서 이와 같은 네거티브는 위험성이 크다. 재벌 욕하고 강남 부동산 욕하고 이러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해 있는 욕망을 절제하라는 식의 정치 노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포지티브하게 했으면 실패하더라도 실패했다고 하지 배신했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오리
지난 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공정성’에 대한 감수성을 건드렸다. 지금 젊은 친구들이 주창하며 사회적 공감대로 넓혀가는 도덕기준과 50대의 도덕기준에 차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젠더의 문제도 그렇고. 부동산 포함해서 재테크도 그렇고. 지금 젊은 친구들이 바라는 것은 불법이 아니더라도 공인이 그렇게 하면 안 된 다는 거다. 지금의 50대가 공인으로서의 엄격함에 대한 인식이 지금 시대의 기준을 못 맞추고 있는 것도 있다고 본다.

조율사
이중적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86세대는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자라면서 자유와 탈권위를 원했지만, 정작 그 시대가 됐을 때 자기 스스로는 못 바꿨다. 반면 아이들은 더 자유화되고 개인화 되고 원자화 돼 있다. 그런 아이들을 비난 한다. “요즘 것들 싸가지 없다”고.

가오리
이런 문제가 생길 줄 알았으면 했을까? 이 정도는 용인될 수 있을 거다 한 건 아닐까.

세일러
본인은 공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앞으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 같다.

저성장 시대 한국, 포퓰리즘 득세 가능성은?

허생
유럽 등 서구 사회의 젊은 층도 불만이 크다. 부모 세대들 좋을 때 살아서 나이 들어서는 연금 받으면서 행복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데, 자기들은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도 별로 없고, 부모 세대 부양하느라 너무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퓰리스트 성향 나타나는 것 아닌가. 소외된 중하층 백인들이 ‘트럼프 현상’을 만들었다. 지금은 계층 갈등이 세대 갈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지금 여당의 주류 근간은 586세대인데, 소득 계층 갈등이 세대 갈등으로 번지면 우리나라에서도 포퓰리즘이 등장하는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율사
포퓰리즘이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포퓰리즘 강화는 갈등이 세대에서 소득 양극화로 넘어간다는 신호다. 지난 20년 간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를 눈앞에 보이는 단기 정책으로만 대응해왔다. 사실 지금도 현 정부가 복지 관련 정책 등에서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전반적으로 포퓰리즘 심화될 것이고 정치세력들은 이용하려 들 거다. 중도로 보이던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미 훨씬 더 오른쪽으로 가 있지 않나.

가오리
정당은 지지기반과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지도자가 안 보인다.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때도 한국만 안 움직였다. 지지기반은 분명히 있는데 혐오와 냉소로 일관하고 있다. 포퓰리즘을 일으키려면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지도자가 없어 신생 포퓰리즘 당이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젊은 친구들도 기본적으로 범생이여서 강한 지도자가 안 나온다. 파천황의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정말 없다.

세대 간 갈등과 소득 계층 간 갈등이 중첩되고 있다

세일러
정치적 포퓰리즘, 경제적 포퓰리즘으로 나눠 보면, 정치적 포퓰리즘 배경은 배타와 혐오인데, 남혐‧여혐 있지만 정치적으로 드러나기에는 유권자 기반의 폭이 넓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 번 북한 문제가 포퓰리즘과 결합이 될 거라고 본다. 통일이 안 되더라도 경제 교류가 심화되면 온갖 사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술 먹고 싸운 정도의 사건도 남북 간에 일어나면 정치 외교 대결이 될 수 있다. 언론도 이런 사건사고를 십분 활용할 것이다. 경제적 불만은 토대에 계속 쌓여 가겠지만 휘발유처럼 젖어들겠지만 쉽게 터지지는 않을 것 같다. 휘발유도 점화를 위해서는 시너 같은 발화체가 필요하다. 오히려 일본이나 북한 문제 같은 대외적인 문제가 발화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조율사
세대 간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잠재된 아주 큰 문제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문제이다. 엄청난 세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슈이다. 구조개혁 등 제 때 대응하지 않으면 포퓰리스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휘발유가 될 것이다.

세일러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 혹은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인간은 없다. 착해져라 착해져라, 내려놔라 내려놔라 요구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결국 제도화의 문제다. 소득 계층 간 갈등을 완화 하려면 연금과 세금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연금의 취지는 원래 저소득층의 소득 안정을 위한 것인데, 지금은 고소득층의 재태크 수단처럼 돼 있다. 교정할 필요가 있다. 임금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는 전국적인 노사 합의를 통해 대기업의 임금은 억제하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올려주는 연대 임금 제도로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불가능한 것 같다. 결국은 우회된 연대임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누진적 소득세를 강화해서 소득 상위 20%까지는 소득세를 많이 올려서 소득 하위 층에 전이되게 하는 것이 서구의 연대임금제를 한국적 조건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것조차 굉장히 힘든 과제이긴 한데. 제도적으로 설정 가능한 목표다. 소득 상위 20%가 사실 586 세대에 다수 포진돼 있을 것이다.

가오리
586이 현재 힘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변화 욕구를 자발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변화에 대한 저항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세대 간 갈등이 더 첨예해질 것이다. 수축기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지키려는 자의 대표가 586세대가 될 수도 있다. 보수 언론에 포진한 586세대가 “강남에 아파트 하나 있는 게 뭐가 죄냐”는 식의 논리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유효한 변화를 위해서는 586세대에게 넘어 갈 대통령 자리를 건너뛰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하게 된다.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에 43세의 케네디가 등장했고, 영국이 위기에 빠지자 47세의 토니 블레어가 등장했다. 이들의 성공 여부를 떠나 사회의 발전이 지체되면 젊은 지도자 출현을 통해 해소됐다.

조율사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건너뛰는 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숙명이다. 586세대가 한국 사회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인구와 가장 많은 변혁을 겪은 세대다. 또한 윗 세대와 달리 무지하게 건강하다. 문제가 20년은 더 갈 것이다. 낡은 세대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세대 될 것이다. 사전투표가 실시됐듯이 10년 안에 온라인 투표도 가능해질 거라 보는데, 전혀 다른 세상이 올 것이다. 선거운동도 길거리 유세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온라인 선거 운동이 일반화 될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형태의 정치구조가 될 것이고, 여기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될 것이다.

양자
그런데 586세대가 물러나면 뭐가 달라지나.

세일러
바뀌리라 본다. 왜냐면, 이 세대는 지금 시대와 잘 안 맞는다.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이 시대에, 집단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세대는 잘 안 맞는다.

가오리
문제는 도전과 응전 속에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일본의 아베 포퓰리즘 현상, 한국은 자유로운가

양자
586 기성세대 뒤에 올 세대는 훨씬 희망적인가.

세일러
다음 세대들은 이미 우리와는 다른 플랫폼에서 살고 있다. 이 플랫폼을 우리가 막고 있는 거다. 다만 자연스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고 외부적 충격이 있을 거라고 본다. 경제적 충격일 수도 있고. 충격이 왔을 때 제대로 해쳐나가지 못하면 일정 기간 혼돈기는 있겠지만.

양자
일본을 보면 세대교체가 더 절망적일 수도 있다. 일본이 그렇게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안달복달 하다가 1980년대에 미국에게 깨지고 난 뒤에는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했다. 일본 보수층들은 “자기들은 목표를 상실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풍요로워 졌지만 지향점은 사라졌다. 일본 정치도 2세, 3세로 세습되며 퇴행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은 희망적인 사회라 볼 수 없다. 우리와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세대가 바뀐다고 무조건 나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율사
일본이 90년대 이후 ‘R의 공포’ 속에 장치 침체에 빠졌다. 그 사이 세대가 한 번 바뀌었다. 전쟁을 치른 세대들은 1990년대 상반기 모두 은퇴했고 이후 다양한 세력이 등장했는데, 정치적으로는 무라야마, 간 나오토, 고이즈미까지는 양호했다. 그런데 결국 안 되니까 포퓰리스트인 아베가 선택된 것이다. 일본이 지나온 과정도 우리가 참고해볼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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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