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입가경 일본 우익: 新정한론 까지
  • 1960년대 한국이 하던 ‘단교론’, 2019년 일본에 등장
  • <문예춘추> “한일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 대담도
  • “단교하면 일본도 큰 손해” 알면서도 끙끙
  • “일본은 탕 속의 개구리” 반성도 나오지만
  • 완전히 역전된 역사 흐름: 일본은 ‘코리아 배싱'(때리기), 한국은 ‘재팬 패싱'(무시하기)
  • 백촌강 전투, 임진왜란, 6.25전쟁까지 거론
  • ‘성조기를 휘날리는’ 한일 우익, 닮은 꼴

[한승동 /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일본 조야의 ‘한국 때리기’는 그들의 호언장담대로 한국에 대한 제재와 단교까지로 나아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건 불가능하다. 주한 일본기업 및 일본인 조직인 서울재팬클럽(SJC) 이사장을 지낸 다카스기 노부야 전 한국후지쓰제록스 회장 등도 이미 얘기했지만, 그것은 일본도 함께 죽이는 자충수다. <문예춘추>의 ‘한일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 대담 결론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경제분야만 그런 건 아니다. 제재·단교를 강행할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본이 입게 될 타격은 더욱 치명적이다.

일본의 ‘한국 때리기’ 어디까지 갈까

일본 조야의 ‘한국 때리기’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27일 집권 자민당의 외교부회(위원회)와 영토에 관한 특별위원회 등이 이날 연 합동회의에서는 한국에 대한 ‘제재’, 심지어 ‘단교’ 주장까지 속출했다고 <NHK>나 극우 <산케이신문> 등은 전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5년 12·28합의) 파기 등을 “한일관계를 근본부터 부수는 폭거”라며,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본마음을 보여줄 때”(신도 요시타카 전 총무상)라고 했고, “일본 기업에 대한 영향도 각오하고 큰 타격을 주는 경제제재를 해야 한다.” “외교를 단절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는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와 관련해 송금과 비자 발급 정지 등의 보복조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 지난 12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가 검토 중인 대응조치를 공표하는 것도 견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27일 회의의 한 참석자 발언에서 보듯, 이런 강경 발언들은 ‘친아베’ 인사들이 고위직을 장악한 <NHK>나 ‘아베 정권과 일본회의 대변지’라는 조소를 받는 <산케이> 등 보수언론들이 끊임없이 내보내는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 조야의 한국,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인식은 일본 보수우파세력의 핵심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는 월간 <분게이슌주>(이하 ‘문예춘추’로 표기)의 표현대로 “사상 최악”이다. <문예춘추> ‘4월 특별호’가 <아사히신문> 등에 5단 광고를 낼 때 가장 크게 부각시킨 특집기사의 하나가 “한일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이었다.

일본 조야의 ‘한국 때리기’는 과연 한국에 대한 제재와 단교까지로 나아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건 불가능하다. 주한 일본기업 및 일본인 조직인 서울재팬클럽(SJC) 이사장을 지낸 다카스기 노부야 전 한국후지쓰제록스 회장 등도 이미 얘기했지만, 그것은 일본도 함께 죽이는 자충수다. <문예춘추>의 ‘한일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 대담 결론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경제분야만 그런 건 아니다. 제재·단교를 강행할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본이 입게 될 타격은 더욱 치명적이다.

영토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도 요시타카 전 총무상은 전쟁범죄자 천황(히로히토)의 아들(아키히토)에게 사죄하라고 권고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을 두고 “견식 없음과 비상식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분노를 넘어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지만(<교도통신>), 지금 국내외 정세를 보건대 이 말은 일본 조야에 그대로 되돌려 줄 수 있다. 견식 없고 비상식적인 쪽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의 보수주류는 여전히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의,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경제적·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냉전시대의 세계관·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완전히 변해버린 탈냉전의 동아시아 정세 변동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본 조야의 ‘한국 때리기’ 이상 증세야말로 그로 인한 “견식 없음과 비상식”이 초래한 결과일 수 있다.

심한 ‘때리기’는 그만큼 자신이 없기 때문?

일본의 한국 제재나 단교가 불가능한 이유를 <문예춘추>의 대담기사 “한일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살펴보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주오코론(중앙공론)> 4월호에 실린 사회학자 오오사와 마사치와 소설가 히라노 게이이치로의 대담 한 구절부터 인용해 보겠다.

“지나치게 자신 과잉의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은, 실은 그렇게 과시할수록 그만큼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헤이세이(平成. 아키히토 지금 천황 연호. 1989~2019년 4월) 일본인들의 ‘일본 찬양(’니혼 보메‘. 혐한·혐중과 대비되는 일본 ’최고‘라는 예찬일색)’에서 그것과 유사한 것을 느껴요.”(오오사와)

“…전후(戰後)에는 더욱 미국에 의존하면서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 생각해 왔습니다. 마침내 1980년대에 ‘일본은 최고’라는 말을 미국인들한테서 듣고(에즈라 보걸의 <재팬 애즈 넘버원> 같은) 자신감을 가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이나 한국 등 근대 이후 계속 ‘반개(半開, 절반만 개화, 즉 반미개)’니 ‘야만’이니 하며 깔봤던 아시아 나라들이 일본보다 더 빠른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일본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동요했어요. 지금은 GDP(국내총생산)로도 확실히 중국이 경제적으로 대국이 됐습니다. 그 차가 벌어져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 아직도 중국은 일본보다 뒤처진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려 하지 않아요. 얼핏 보기엔 발전한 것 같아도 내실은 형편없다는 식으로, 최근 중국 붕괴론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습니까. 정치적으로도 미국에 굴종하고 있는 것의 심리적 균형을 아시아에 대한 차별의식(우월감)으로 보상하려 하고 있어요. 꼴사나운 얘깁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특히 그것이 심해져서 말기증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히라노)

“일본은 전쟁에 지고,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냉전 하에서는 미국에 종속당하면서도 나름의 포지티브(긍정적)한 의미부여를 할 수 있었어요. 비굴한 이유로 종속당하긴 했지만 일본도 서방세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기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거지요.”(오오사와)

오오사와는 냉전이 붕괴 뒤 일본은 나름의 포지티브한 역할인식조차 그 의미를 상실한 가운데 좌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영속패전>의 저자 시라이 사토시를 인용하는데, 시라이는 <국체론-국화와 성조기>에 이르는 일련의 저작에서 일본의 굴욕적인 대미종속이야말로 일본의 한계라며, 미국의 식민지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시라이는 <국체론>에서 일장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일본 우파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는데, 그것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한국 우파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결론은, 그런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제재·단교로 갈 수 없는 이유-경제

<문예춘추>로 돌아가서, 일본 조야에서 주장하는 한국에 대한 제재, 단교가 불가능한 이유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우선 경제 분야부터. 다카스기 노부야 전 JOC 이사장은 일본자본의 한국투자가 20억 달러 안팎이나 되고, 한국의 중국경제 의존율이 더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기업 영향력이 크다며, 특히 삼성과 LG 같은 기업들의 주요부품 공급처로서의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본기업이 없으면 “한국인의 ‘생계 수단’의 근간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역시 한국에 제재, 단교 조치를 취하면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삼성, LG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 일본기업들 역시 똑같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대기업 이토추상사가 사실상 매수한 스포츠 용품업체 데상트처럼 최대 판매처가 한국인 일본기업들이 특히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재한 일본인 약 4만 명 중 5000명이 비즈니스맨들인데 그들의 귀국 비용과 관련 손실만 해도 엄청난 데다 그것은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 구조 자체를 파괴함으로써 피해액은 너무 막대해서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대담 사회자격인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객원 논설위원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의 조사를 인용하면서 주한 일본기업의 85%가 흑자 기업으로, 이는 최근 몇 년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진출 일본기업 중에서 단연 최고의 성적이라며 “일본에게 한국시장은 작아서 없어도 상관없다”는 제재·단교론자들 주장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다카스기는 한국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본기업과 자본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이는 5명의 대담 참석자들 모두가 마찬가지), 삼성제품 부품의 대반이 일본제임을 재확인 하면서도 삼성의 디자인과 마케팅의 우수성을 얘기하며 한일 기업의 공생관계가 무너지면 “그들(한국기업)은 살아갈 수 없고, 우리가 한국에서 도움 받고 있는 면도 크다”고 얘기한다. 다카스기는 줄곧 양국 관계가 파탄나면 더 곤란해지는 건 한국이지만 일본도 큰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일본기업 피해가 한국보다 적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글로벌 시대의 기업들 공생관계는 한일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영국, 네덜란드와 동남아 등 전 세계와 밀접하게 서로 얽혀 있어서, 그 한 고리인 일본이 독자적으로 연결관계를 단절하는 건 치명적인 자해행위에 가깝다.

<문예춘추> 같은 호에서 고바야시 요시미쓰 일본 경제동우회 대표간사도 지적했듯이 아베 정권 6년간 일본의 명목GDP는 약55조 엔(약 550조 원) 늘었지만 국가와 지방 부채는 175조 엔(1750조 원)이나 늘어 일본의 채무 잔고는 GDP의 두 배가 넘는 1000조 엔(1경 원)을 훌쩍 넘겼다.(“일본경제, 헤이세이는 ‘패배’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미 마이너스에 가까운 금리조차 그 이자부담 때문에라도 올릴 수 없는 일본이 재정적자에서 벗어나려면 올해 10월까지 10%로 올리게 돼 있는 소비세율(지금 8%)을 2021년부터 매년 1%씩 올려 2024년에 14%, 2045년까지는 17%로 올려야 한다는 시산이 나와 있다. “‘지(知)의 퇴폐’ ‘자기변혁력의 고갈’에 빠져” 일본이 ‘5류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하는 고바야시 간사는 “현재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율이 74.7%에 이르고 18~29살 젊은층의 응답율은 83.2%에 이른다는 일본정부 내각부의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아베 정부 해석과는 달리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 응답결과에서, 세상은 정신없이 변해가는 데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포기한 채 당장의 연명에 안주하는 추세를 읽어내면서 이를 탕 속의 개구리에 비유했다.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최후까지 자신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죽어간다.

이처럼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이지 못한 일본경제에서 다른 것 제쳐놓고 일본기업의 수익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이 한국시장을 스스로 포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검토 중인 대응조치를 공표하는 것도 견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27일 회의 참석자의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의 제재·단교 위협은 실행을 위한 준비단계로서가 아닌,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로 협박효과를 올리려는 전술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그것밖에 달리 수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속 강한 톤의 위협을 되풀이하는 것은 애초에 실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구로다 위원과 데라다 데루스케 전 주한 일본대사가 얘기한, 한일갈등 양상의 기본흐름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장기간 서울에 살면서 생각한 것인데, 지금 한국인은 특별히 반일(反日)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거꾸로 일본 쪽 여론이 전체적으로 한국 배싱(때리기)으로 불타오르고 있지요. 이는 과거엔 없었던 구돕니다. 오히려 한국은 지금 정치·외교적으로는 일본 패싱(무시)입니다. 한국 때리기와 일본 무시라는 새로운 구도인데,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구로다)

“징용공 문제도 레이더 조사(照射. 대담 참석자들은 한국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공격용 레이더를 쏘았다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문제도 불씨는 ‘한국발’이지요. 이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겁니다. 예전에 내가 한국대사로 재직할 때는 한일간 국민감정이 충돌할 때는 반드시 ‘일본발’이었습니다. 예컨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나 ‘새로운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 쪽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한국 쪽이 이에 반발(반일)하고, 다시 일본 쪽이 반응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발생한 일에 일본이 거세게 반응하고 있어요. 완전히 흐름이 역전됐습니다.”(데라다)

일본 보수우파 주류의 한국 때리기를 일본의 상대적 지위 하락에 따른 박탈감과 초조 탓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하고 있다.

아사바 유키 니이가타 현립대 교수는 이런 변화 배경에는 일본의 상대적 지위 격하와 한국 등의 지위 격상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구조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을 이런 변화를 선도하면서 적극 활용하는 “일종의 혁명정권”이라고 말했다.

제재·단교를 할 수 없는 이유-외교·안보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제재, 단교를 할 수 없는 더 결정적인 이유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의 ‘횡포’에 흥분해서 다소 감정적인 상태가 돼 단교론까지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만, 감정적이라는 의미에서는 본래 한국인들 쪽이 금방 와-하고 달아오르기 쉽고 더 감정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런 그들에게 큰 소리로 보복이다, 제재다, 단교다 하고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그들이 더 감정적이기 때문에 반일 내셔널리즘을 자극하게 될 겁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북(북한), 또는 중국에 접근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건 냉정하게 생각해야지요.”

또 한 사람의 대담 참석자인 전 육상자위대 장성 출신의 전략가 후쿠야마 다카시는 서기 663년 왜와 백제 연합군이 신라-당 연합군에게 대패한 백촌강 전투까지 언급했다.

“단교할 경우 군사적으로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본만 (한국과) 단교한다. 둘째, 일본과 미국이 함께 단교한다. 곤란한 것은 후자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럴 경우 한국은 자연히 중국·러시아에 접근할 것이고, 조선반도는 중국 품으로 뛰어 드는 형국이 될 겁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바라마지 않는 것이지요. 조선반도라는 완충지대가 없어지면 일본열도가 미국군의 최전선 기지가 됩니다. 북방에서는 러시아, 남방에서는 중국해군이 있으니 3방면에 대처해야 합니다. 이는 일본의 안전보장상 악몽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그 위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일본·백제 연합군이 당·신라 연합군에 패배한 뒤 어떻게 됐습니까.”(후쿠야마)

후쿠야마는 나아가 “조선(한국)전쟁의 악몽”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조선전쟁에서 북조선은 한때 부산 바로 앞까지 제압했습니다. 부산 교두보 싸움에서 한미군이 저지하지 못했다면 공산주의 위협이 쓰시마 코앞까지 다가왔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과 연을 끊으면 안전보장상 리스크는 엄청 높아진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후쿠야마는 나중에 다시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 주역 중의 하나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한반도를 일본의 “이익선”으로 설정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때 이후 한국은 계속 안전보장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극히 중요한 존재였고, 아직도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과의 관계 유지는 그대로 ‘핵심적 국익’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후쿠야마의 이런 시각은 아베 정권 핵심과 그들을 지원하는 우파단체 일본회의 등 일본 보수우파 주류의 한국관, 한반도관을 대변하고 있다.

구로다 위원 역시 “현대의 한국은 이젠 ‘정한(征韓)’당할 관계는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신정한론’ ‘제한론(制韓論)’이라는 말로 후쿠야마의 시각에 기본적으로 동조했다.

요시다 쇼인과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그 ‘정한론’은 일본의 논객·전략가들 속에 여전히 살아 있고, 그들은 백촌강 전투와 임진왜란, 한일합방, 그리고 지금의 한반도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반동적이고 퇴행적이며 매우 위험한 식민주의의 변형일 수 있다.

그것은 19년간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체득했다는 다카스기가 얘기한 ‘한국인의 국민적 특성’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터무니없는 그의 한국인의 국민적 특성론은 이렇다.

“첫 째, 사대주의. 큰 쪽에 달라붙으려 한다. 둘 째, 자존망대. 허세를 부린다. 셋 째, 책임전가. 잘 못 되면 타인 탓으로 돌린다. 네 번째는 유교·주자학적 도덕, 정의감. 늘 ‘어느 쪽이 정의인가’라는 양자택일 중에서 ‘내가 정의’가 된다. 마지막 다섯 째는 ‘일본에게는 무슨 얘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산 주한 일본인·일본기업 대변자의 한국인·한국관은 70여 년 전에 패전으로 끝난 식민지배 시절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퇴영적 세계관을 지닌 그런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여전히 주역을 맡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 보수우파 주류라면, 거기에 희망은 없다. 따라서 그런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라는 것도 애초에 번지수가 틀린 것이기 십상이다.

그들도 인정하듯이 동아시아 국들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바뀐 지금 신정한론적 사고나 전략은 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거기에 집착하는 것, 그 귀결이 바로 자멸적 ‘갈라파고스화’다.

최근의 한일관계 갈등을 국제적 룰을 거역하는 ‘한국의 폭거’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한국의 최근 변화를 한마디로 ‘좌익’ ‘친북’으로 몰고 문재인 대통령을 “북의 에이전트”낙인찍으면서 배척하는 한편, ‘일본이 도와주었던’ 군사정권 시절의 ‘좋았던 한일관계’, ‘정상적인 한일관계’로의 복귀를 지향한다. 고바야시 요시미쓰 경제동우회 대표간사가 얘기한 갈라파고스적 일본의 지적 퇴락과 폐색감을 이런 과거 집착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도 그들과 쌍둥이처럼 닮은 존재들이 있다. ‘좌익’ ‘친북’ 척결을 외치고 성조기 휘날리며 좋았던 과거로의 복귀를 ‘정상’으로 인식하는 그들의 지구상 유일한 동지들. 그 일본의 한국경제 지원이라는 것도, 시라이 사토시에 따르면 냉전시기 미국이 동아시아 교두보 확보를 위해 일본을 경제·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분단 한국과 대만 등을 일본 자본주의(엔경제권) 확장용으로 제공해준 것이었다.

애초에 근대 일본의 산업화와 제국주의 팽창 자체가 조선과 만주에 대한 식민지배의 약탈과 착취를 토대 위에 쌓아올린 것이었다. 일본 보수우파 주류의 한국 때리기는 그 죄과를 얼버무린 한일 국교정상화와 한일간 정경유착이 한국 민주화 이후 부정당하면서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받고 있는 데에 대한 불편과 당혹, 분노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한일협정과 12·28합의 등 ‘불가역적 합의’를 한국이 거듭 번복하고 있다며 역정을 내며 비난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 과정에서 목숨과 일상, 그 총체적인 삶을 박탈당하고 유린당한 수백만, 수천만 피해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다. 징용공 피해자들 배상은 법에 따라 처리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착취와 인간성 유린이라는 그 보편적인 문제의 해결을 편협한 일본 우파 내셔널리즘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진짜 해법은 없다.

한승동 / 전 한겨레 국제부장, 피렌체의 식탁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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