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12-02. 08:00
  • 87년 직선제 부활 후 정치에 ‘말’이 돌아와
  • 90년 3당합당으로 촉발된 ‘음모의 정치’
  • 50대 이상 기득권 남성이 ‘남혐’을 낳고
  • ‘남혐’은 ‘여혐’을 낳고, 혐오의 정치가 지배
  • 구조적 모순보다 작은 이익에 민감
  • 사회 불안정해지며 아령형 쏠림 강화
  • 권위주의 붕괴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갈등
  • 문재인 정부 ‘쇼’는 잘하는데 ‘홍보’는 낙제
  • 고속성장 종료. 새로운 전략이 안 보여
  • 청년-노년 목소리 커지는데 중간에 낀 중장년은 허리만 휘어

<피렌체의 식탁>이 새로운 코너 [금요집담회]를 신설했다. 편집국 기획회의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지상중계한다. 기획회의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 등에 대한 정세 분석과 전망은 물론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피렌체의 식탁>의 고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의 연재다. 외부 기획위원으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와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참여해 김현종 발행인, 한승동 편집인, 김하영 편집장과 함께 만든다. 격주로 발행 되며, 자유롭고 거침없는 의견 제시를 위해 발언자는 익명으로 게시한다.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바란다. 첫 회 주제는 ‘음모의 시대, 혐오의 시대’이다. [편집자]

세상을 보는 시각, 음모에서 혐오로

가오리
한국사회는 1990년대초 3당합당과 함께 ‘음모의 정치’에 빠져들었다. 그전까지의 보도 행태가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의 주장, 입장을 복선보다 단선에 가깝게 전달했다면 90년대 초부터 매사를 음모론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전망하는 정치해설이 인기를 얻었다. 음모적 시각은 이때부터 한국정치에 자리를 잡았다.

2000년대의 두 번째 10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한국의 정치 사회적 정서에 음모보다 센 새 정서가 나타났다. ‘혐오’다. A가 B를 혐오하면 B는 A와 함께 C를 혐오하고, C는 A를 디스하는 형국이다. 대부분의 정치사회적 발언이 혐오의 심리에 바탕해 주장이 개진되고, 개인의 사회적 시선 또한 혐오의 형식을 통해 표출된다. 놀랍게도 90년대에도 그랬다. 그때에는 음모적 시각, 음모론이었고, 지금은 혐오적 시각, 혐오론이다.

부연설명을 해보려 한다. 좀 길 수 있다. 음모론은 어디서 왔던가. 1990년대보다 앞선 시기에, 직선제 대통령제가 사라진 1971년부터로 따지자면 한국의 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이었다. 이들은 간접선거라는 위력적 방법으로 집권했고, 몇 안 되는 제도권 언론(요즘 말로 레거시 미디어)은 표가 아닌 총으로 집권한 권력자에게 순종하거나 목졸려 지냈다. 대체로 대통령과 총리, 장관의 발표문을 전달하는게 스트레이트 기사였고, 그 발언이나 정책의 의미 정도를 간단히 전달하는게 해설기사였다. 신문은 4면, 8면을 발행했고, 방송의 밤 정규뉴스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인터넷이 없었기에 시민기자도 없었다.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얘기할 정보의 양, 근거가 별로 없었다. 그저 누가 좋다, 나쁘다를 논하는 정도였고, 6하 원칙에 미달하는 풍설이 가끔 포장마차에서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재수없으면 중앙정보부나 경찰에 끌려가 치도곤을 치르곤 했다.

87년 6.10항쟁과 직선제 대통령제의 회복, 그리고 12월의 대선 실시는 한국사회와 정치에 말을 한꺼번에 풀었다. 동정 보도나 가십 기사도 기사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스트레이트 기사는 발표가 아닌 기획기사가 늘어났다. 해설도 여야 입장을 고루 다루는 빈도가 높아졌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말할 때 소재가 늘어났다.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에는 김대중, 김영삼의 단식을 ‘재야인사의 식사문제’라고 표현하던 폭압적 우회의 시대가 지나갔다.

1990년의 3당 합당은 일대 카오스였다. 국민들은 야당이 여당 되고 민주투사가 여당 2인자가 되는 변화를 눈앞에서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게 끝인가, 더 큰 반전이 있다면 어떻게 진행될까, 뉴스 소비자들은 날이면 날마다 경마 중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무슨 이론이 먹히려면 그걸 받아줄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한데 당시 주요 진영 지지자들의 생각은 이랬다. DJ 지지자들은 “호남이 고립됐구나. 저들이 우리 선상님을 진짜 죽이려 하는구나, 저들은 다음에 무엇을 획책할까?” 고민했고, YS 지지자들은 “대권 잡으러 갔는데 욕 다 먹어가면서 군부정권 집권당에 갔는데, 영새미가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했다. 노태우 청와대와 민정계가 부지런하게 움직인 것은 양김 지지자들을 계속 자극했고, 관료와 재벌은 기득권이 망가질까봐 유사시에 대비한 고려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때까지만 해도 정권은 검찰권, 예산권, 인사권에 주요 언론까지 틀어쥐고 있었다. 비판론자들이 보기에 음모를 실현할 수단이 충분했다.

음모론적 보도는 이때 탄생했다. 매사를 철저히 음모와 반 음모의 역동적 대립으로 보는 정치해설기사가 인기를 끌었다. 민정계와 청와대, 검찰은 오늘도 쉬지 않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그 빙산의 일각은 이것이라는 보도였다. 잘 쓴다는 기자들은 사소한 우연도 음모로 해석했고, 액면대로 쓰거나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는 기자는 순진하다, 소신이 없다는 세평 속에 무능으로 낙인찍혔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신문은 보수여권 일변도의 언론판도에 변화를 가져왔고, 곽병찬 등 한겨레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시작된 (여권) 음모론은 선풍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보수나 중도언론도 경향성은 여전했지만 평면적 서술 형태에 머무를 수만 없었다. 이들은 주로 양김의 속셈을 대권욕으로 풀이하거나, 여권의 음모를 맞받아치려는 야권의 역 음모론, ‘정치는 악, 행정이나 경제는 선’으로 해석해 지지자들을 만족시켰다. 포장마차에서는 이런 기사들을 안주로 상대방과 논쟁하다가 소주병을 날리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 사회면 1단 기사로 등장하곤 했다. 안주꺼리가 확 늘어났고, 사람들은 정치를 입체적으로, 음모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음모론은 정치를 바라보는 첫 번째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는 투표심리가 연고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지연, 학연, 혈연에 입각한 정파적 개인적 이해관계의 교차가 언론의 집중적인 해부 대상이었다. 진보 또는 민주진영의 언론, 지식인들은 1961년 이후 장기집권하고 있는 대구경북출신 정치인을 첫 번째 악의 축으로, 군 출신 대통령에 봉사하는 육사와 서울법대 출신 학력엘리트를 두 번째 악의 축으로 상정했다. TK 출신에 서울법대를 나온 박철언 전 의원 같은 경우는 음모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실제 그의 활동이 그런 점이 있었다.

2017년 강남역, 2018년 혜화역을 거치며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이제 국민은 국민이라기보다 시민이다. 젊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음모가 아니라 혐오다. 피아를 가르는 기준은 지연이나 학연이 아니라 세대와 젠더다. 지연, 학연은 성층권 기득권자들의 피아 구분 기준으로 유효하지만 시민들은 자기 삶 주변의 모순, 기득권, 해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TK보다 수십 배 오래, 수천 년 간 기득권을 노려왔다는 점에서 혐오의 화살을 맞고 있다. 경제성장의 1단계(1960년대)에 출생해 2단계(1987년 이후)에 사회생활을 해온 50대는 젊은이의 공적으로 찍혀 있다. 흔히 586이라 불리는 50대 남자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공적이다. 실제 이들은 가진 게 많고 변화에 둔감하다. 한국의 부 즉 강남 아파트에서부터 주식, 채권, 펀드, 특허, 건물, 임야 등은 50대와 60대 남성의 명의로 등록돼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들은 창업주, 임원, 고위 공무원, 단체나 특정분야의 대표자, 어른 등으로 현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30년 전 TK 서울법대 출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사람들이 볼 때에는 채용권, 승진 좌천의 인사권, 더 나아가면 사람 키워주고 죽여주는 권한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 젊은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저들이 실제 갖고 있는 실력보다 많은 것을 쥐고 있고,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욕심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성들이 보기에는 50대 이상 남성 기득권층이 권력과 금력, 인사권은 물론 성적으로 해코지나 하는 놈들로 보일 수 있다. 이런 ‘남혐’이 또한 ‘여혐’을 낳고 각종 혐오가 양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허생
‘음모론의 시대’에는 역으로 정치와 언론의 유착도 가능했다. 정치권은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특종을 흘려주고, 언론은 그걸 받아 영향력을 과시하는 ‘거래’가 횡행했다. 언론이 ‘제4부’라 불릴 만큼 행세를 했다. 그만큼 유착에 의해 권력화된 주류 언론에 대한 상호 견제 기능도 중요했다. 언론이 정치의 음모론적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비평 기능도 컸다. 지금은 정치 메시지가 언론을 거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시대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 갔다’고 했던가. 과거에는 이른바 ‘찌라시’들의 주 활약 무대가 서여의도(국회)였는데, 지금은 동여의도(금융)다. 언론은 담론 형성의 매개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30년 전에도 ‘혐오’의 정치는 있었다. 예전에는 ‘지역’(영호남 지역 갈등)과 ‘이념’(보혁 대결)에 따른 혐오가 강했는데 지금은 젠더와 세대의 갈등이 더 커 보인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작은 이익에도 민감한 사회가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다. 정치적으로는 이념적 상징성이 큰 이벤트였지만, 젊은 세대들은 ‘무임 승차’라며 반발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우리는 시험 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며 역시 ‘무임 승차’라는 반발이 일었다. 과거에는 민주와 반민주, 재벌과 서민 등 큰 세력 간의 구조적 갈등이 컸다면, 지금은 계층(세대) 내부에서 작은 갈등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경제적 토대 흔들리며 ‘아령형 사회’로

조율사
90년대 초반을 돌이켜 보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독일 통일과 소련 붕괴 등 냉전 체제가 해체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돼 오던 ‘냉전 체제’라는 방향성이 사라져버렸다. 토대가 흔들리면 중립적 성향보다 어느 한 쪽에 속해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등 기존의 익숙한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가 다시 바벨(barbel)형 사회로 가고 있다. 실타래처럼 중간이 두툼해야 하는데, 사회가 불안해지면 아령처럼 양 극단으로 몰리고 중간이 약해진다.

세일러
‘혐오’나 ‘음모’라고 보기 보다는, 권위주의가 한 꺼풀 벗겨질 때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되는 현상 정도로 봐야할 것 같다. 87년 6월 항쟁 직후 터져 나온 계층이 가장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이었다. 2017년 촛불과 탄핵, 대선을 거치면서 또 다시 권위주의가 한 꺼풀 벗겨지면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건 ‘미투’ 운동이었다.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세대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1930년대 생들은 20대에 6.25 전쟁을 겪고 산업화를 이룩해 80년대에 50대가 됐다. 그런데 그 당시 20대들은 50대들이 말하던 ‘시대적 과제’에 동의하지 못 했다. 50대들은 ‘북한과의 경쟁’, ‘경제 발전’ 등을 내세우며 그걸 빌미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 했고, 20대들은 그것은 저항한 거다. 지금의 20대들이 문재인 정부로 대표되는 586세대를 비판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신들이 제시하던 시대적 과제(민주화)는 해결됐음에도 그 명분 뒤에 숨기고 있는 무능력과 잘못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율사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1980년대에는 3저 효과 등에 의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눠 가졌다. 부장이 된 30년대 생은 물론, 갓 입사한 20대들도 같이 좋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두 고통을 받고 있다. 1980년대에도 호황을 누리다 90년대 초반 경기가 꺾이는 국면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당시 노태우 정권은 주택 200만 호 건설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한중‧한러 수교를 통해 외교적 성과도 거두고, 국민연금을 실시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을 시키고 기반을 다지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위기를 넘어 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 투표권자가 되는 20대보다 앞으로 60대가 되는 50대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50대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가장 높았는데,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그럴까? 마음이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오리
1930~1960년대 생들은 어쨌거나 경제적, 정치적 과실을 만들어 냈고 그 후 세대도 어느 정도 혜택을 봤다. 그러나 앞으로 30년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과실은 줄어들 것이다. 반면 정치 사회 경제적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언론을 통해 여론이 형성됐는데, 지금은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마이크를 쥔 사람이 몇 천만 명이다.

한국 사회,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는데 새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양자
우리나라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성장을 계속해왔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찌 보면 우리가 추구했던 목표에 거의 다다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보다 조금 앞서 간 일본, 유럽, 미국 등은 저성장의 차원을 넘어 ‘상실’의 두려움 단계로 접어드니 극우나 포퓰리스트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차원이 조금 다르긴 한데, 어쨌거나 고속성장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이전 세대는 현재의 상황이 조금 불평등해도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나에게도 과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보였는데, 지금 세대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정책이나 홍보 전략을 잘 못 수립하고 있다. 더 이상 예전의 한국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전략을 세워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여전히 성장 위주 전략을 답습하고 있다.

세일러
현 정부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놓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적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건 맞다. 그래서 무조건적 경제성장 보다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포용국가’인데, 다소 고담준론(高談峻論)이다. 치고 나가는 구체적인 대표 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다.

조율사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행사나 의전 같은 보여주는 ‘쇼’는 잘 하는데, ‘홍보’를 잘 못 하는 것 같다. 정부가 정책이 나오면 왜 이 정책이 나왔고, 이 정책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도와 달리 오해를 받고 있는 케이스도 많다고 본다.

가오리
우겨야 할 때는 우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약하다는 지적은 많이 받아왔다.

허생
청년 문제도 중요하지만, 노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요즘 ‘태극기 집회’를 보면 언론의 시대에 익숙했던 노장년 세대가 오히려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유튜브 등 뉴미디어에 의존하고 있는 게 새로운 현상이다. 매주 태극기 집회가 도심에서 열리고 있고 자유한국당 같은 경우에는 이 흐름에 편승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집회와 시위가 진보 세력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보수 집회가 압도적이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너무 손 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청년들의 이탈도 문제이지만, 노년층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지 않을까.

세일러
정책과 정치가 구분된다. 기초노령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등의 정책으로 노인빈곤 문제를 다소 개선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고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가오리
청년과 노년의 목소리가 큰 세상이다. 중간에 끼어 관심도 못 받고 목소리도 못 내는 중장년은 부모 봉양하고 자식 키우느라 허리만 휜다.

허생
결론 지어 보면, 소득 양극화에 따른 ‘바벨 이펙트(barbel effect)’, 즉 ‘아령형 사회’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주류 언론을 중심으로 중장년 층이 주도하던 여론 시장은 붕괴했고, 오히려 뉴미디어를 통해 청년과 노년층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아령의 양쪽 끝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는 건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중간이 튼튼한 ‘실타래 사회’로 가야 하는데, 갈수록 구심력은 떨어지고 원심력만 커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정리=김하영 편집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