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09-19. 08:00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Shealah Craighead
  • 전문가들, ‘신념’은 버리고 다양한 시나리오 플래닝을 재무장해야.
  • 미국 축구는 ‘골 포스트 옮기기’가 습관이다.
  • 트럼프는 결코 레이건이 아니다.
  • 미국의 제제압박론은 ‘종교’다.
  • 북한은 트럼프 vs 리버럴 전쟁 구도를 이해해야 한다.
  • 미국인들은 웜비어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 3부작 북미협상 드라마, 아직 시즌1이다.
  • 미국 대외 관계 전략은 스스로만 바꿀 수 있다.

[안병진 / 경희대 교수]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안타까운 결과는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렸다는 달콤한 전설과 현실은 사뭇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북한에서는 회담 전 떠들썩하게 이 신화를 언급한 바 있다. 과거 쿠바의 카스트로는 알렉산더의 팬이었는데 김정은도 그런 모양이다. 내심 일정한 진전을 기대했던 나는 요즘 멍하니 을 틀어놓고 생각에 잠기곤 한다. 하지만 합의 실패보다 더 안타까운 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는데 별로 자신의 가정들을 치밀히 복기하지 않으려는 풍토이다.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도 인간이 아니라 알파고가 도입되어야 비로소 우리의 포석도 발전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나름대로는 한반도의 대전환에 지식인의 시각을 쌀 한 톨이나마 보태기 위해 몇 달 전 <예정된 위기>(모던타임즈)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과거를 통해 한반도 미래에의 교훈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이번 주말 출간되는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쓰리체어스)에서는 트럼프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분석해보았다. 마침 북미정상회담 복기에 대한 <피렌체의 식탁> 요청에 따라 위 두 가지 책에서 던진 미국에 대한 여러 교훈 중 일부 7가지를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필자주]

1. 미래를 예단하는 전문가를 경계하라

이번 회담이 끝나고 나니, 많은 보수적 전문가들이 “거봐 절대 포기 안한다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진보적 전문가들은 목청을 높여 반박하곤 한다. 글쎄, 난 솔직히 모르겠다. 비슷하게는 미국 대선 시즌만 되면 꼭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트럼프 당선을 예언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요즘 무당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정치란 경향성을 예견할 수는 있지만 실제 결과는 가능성과 개연성이 어우러지는 불확실성의 미래이다. 김연철 교수가 <70년의 대화>에서 결정론이 아니라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열린 미래로 사고하자는 주장이 더 타당한 태도이다. 특히 오늘날 카오스의 시대에는 정확한 예견의 강박을 가진 이들은 전혀 시대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사실 굳이 지금의 카오스 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과거 미국과 쿠바, 미국과 이란, 미국과 베트남 관계 등을 돌아보면 애초에 국교정상화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바보 취급을 받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CIA 분석관인 라텔은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으며 이미 1995년 경 이후 미국과 쿠바의 수교를 예측한 바 있다. 그는 다른 보수주의자들의 편협한 시선과 달리 실사구시 자체로 쿠바 지도자의 전략적 대전환을 본 것이다. 단 진보주의자들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국교정상화는 한참 후 오바마 시대에 가서야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졌다. 물론 그 직후 트럼프와 볼튼이 등장해 다시 레짐 체인지 작전을 시도하지만 말이다. 이는 한반도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다. 제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결정론을 버리고 다양한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무장했으면 한다. 혹시 연륜 있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공동 위원장을 맡는 초당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향후 한반도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준하는 초당적 로드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2. 미국은 골 포스트를 자주 옮기는 습관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한다

아마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에 미국과의 ‘축구 경기’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지 절실히 체험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날 것이다. 과거 미국과 쿠바의 축구 경기도 그랬다. 카스트로(그리고 북한은)는 자기가 미국에 온갖 명분을 제공해 준 건 편리하게 잊고 미국이 골대 옮기는 것에만 원한이 사무친 바 있다. 62년 핵무기 철수하니 계약서에도 없는 ‘공격용’ 전투기 철수를 요구한다. 그것도 철수하고 나니 혁명 수출 금지를 요구한다. 그것도 이제 기운이 빠져서 포기하고 나니 인권을 이야기한다. 카스트로는 미국이 국교정상화를 하지 않기 위한 잔꾀의 귀재라 생각한다(미국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제국인 미국의 냉엄한 국제 정치 논리이다. 이란을 상대로도 똑같이 했다. 지금 미국은 이란과 힘들게 작성한 계약서를 무시하고 탄도 미사일 청구서를 내놓고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은 논리학이나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그게 싫으면 베트남처럼 더 대담하게 나오면 된다. 하지만 북한이 처한 지형과 그들 지도부의 사고 체계는 베트남이 아니다. 앞으로도 최종 목표까지 이상한 축구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3. 트럼프를 레이건에 비유하는 건 레이건에 대한 모독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자 진보적 지식인들은 1986년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레이캬비크 회담의 선례를 자주 언급하며 위로한다. 비록 이 회담과 그 전의 제네바 회담에서 서로 날이 선 언쟁을 하며 헤어졌지만 이 회담에서 쌓은 신뢰는 이후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이라는 거대한 성공의 토대가 되었다. 나도 방송에서 자주 이 회담의 교훈을 언급하며 당장의 실패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문제를 볼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레이캬비크 회담의 사례를 이상화하는 풍토는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과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레이건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본다. 더 균형감이 있는 오바마는 후보시절 레이건에게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였다가 곤욕을 치렀다. 레이건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물이다. 냉전의 전사 캐릭터만 있는 게 아니고 특히 재선 이후에는 평화에 대한 열망과 실용주의 기질의 색조도 있다. 최근 비밀 해제된 수많은 자료들은 레이건이 가진 장점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레이건은 비록 우주에서의 전략방위구상(SDI) 집착으로 상대를 힘들게 했지만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회담들을 진행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를 배려해가며 지혜롭게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트럼프는 결코 레이건이 아니다(연기력만 빼고). 그는 레이건과 달리 평화나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다. 장사꾼으로서 탁월한 협상력을 가지지만 때로는 에고가 강해 협상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트럼프 캐릭터를 이해하려면 ‘좋은 친구들’이나 ‘에스코바르’ 같은 마피아 영화를 보라고 지인들에게 추천해왔다. 아마 지인들은 내가 농담을 하는 걸로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 마이클 코언 청문회를 보면 내 언급이 결코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학자적’ 분석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차라리 레이건 시절이 그리워진다.

4. 제재 압박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는 아직도 퍼즐이다.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미국인들에게 제재는 ‘종교’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는 제재에 민생이란 이름을 붙이면 영변을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이 ‘민생’ 제재야 말로 제재의 핵심이고, 상대를 아프게 하는 게 제재의 본질적 의도인데 말이다. 북한은 마치 유엔 인턴 학생처럼 민생과 군수를 구분하자고 열변을 토하는 데 주류 미국인들이 보면 실소를 머금을 이야기이다. 더구나 김정은의 제재 ‘완화’에 대한 절실함을 확인한 미국은 역으로 더욱 더 제재 고삐를 죌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주류 엘리트들 중 리버럴 진영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이제는 이 제재라는 강압적 외교를 통한 해법에 거의 종교적 믿음을 가진다. 볼튼 같은 네오콘은 말은 비슷하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다. 리버럴과 달리 제재는 핑계이고 이를 통해 정권을 흔들어 붕괴시키는 레짐 체인지 전략의 중요 하위 전술이다. 이점에서 리버럴과 보수, 극보수의 제재에 대한 가정과 숨겨진 생각이 다 다르다. 다만 종교라는 점에서는 같다. 엄청난 성취를 이룬 미국과 이란 간의 합의에서도 제재는 뒤늦게 풀렸다. 당시 이란의 탁월한 협상가인 자리프 외무장관은 진지하게 협상하자면서 천연덕스럽게 ‘제재는 나중에 풀께’라는 미국 협상 팀의 어법에 어이가 없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프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란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핵 역량으로 미국을 괴롭힐 수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무감각한 태도가 더 어이없을 것이다. 시간 게임에서 미국도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기에 김정은 위원장은 아마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미국이다. 지금쯤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위기를 고조시키는 전략의 최종 수위 결정과 기약 없는 협상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다. 이제 진짜 게임이 시작되었다.

5. 미국 리버럴의 북한과 트럼프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오늘날 미국 리버럴의 북한에 대한 관계적 신뢰는 바닥이라는 점이다. 물론 북한은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사실 미국은 북한의 조기 붕괴를 철석같이 믿으며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과거 크리스토퍼 힐, 오늘날 비건과 같은 탁월한 실용주의 협상가들이 왜 미국 내에서 그토록 고립될 수밖에 없는지, 자신들의 오류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진심으로 전략적 대전환을 현실화시킬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들이 미국 리버럴을 대하는 태도가 전략 전환의 리트머스 테스트로 본다. 어쨌든 이들 리버럴이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않으면 트럼프 장벽을 넘고 나서도 최종 목표까지는 험난하기 때문이다.

최종 타결에 끼어드는 또 하나의 변수는 리버럴의 트럼프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이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1992년부터 클린턴을 ‘문명의 적’이라 불렀다. 그래도 자기 대통령인데 말이다. 아마 한국의 극우들은 내 말을 잘 이해할 것이다. 이제는 리버럴도 트럼프를 문명의 적이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 트럼프의 행보는 내 서재 위에 먼지가 쌓인 버트람 그로스의 <친근한 파시즘>이란 책이 오늘날 다시 조명될 정도이다. 이 미국의 내전은 향후 한반도의 대전환에서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안타깝다.

6. 미국과 국제 사회의 보편주의 담론을 고려해야 한다

북미 협상이 잘 되지 않은 직후 트럼프 기자회견을 보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한국인들은 충격에 빠졌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실패를 성공으로 포장하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마케팅 기술이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인들은 우리가 사실 크게 주목하지 않은 기자회견 내용에 충격에 빠졌다. 바로 안타깝게 비극을 맞이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 이야기이다. 트럼프 기자회견 직후 미국의 리버럴이나 보수 미디어는 공통적으로 난리가 났다. 스스로 나라다운 나라라고 생각한 자신의 대통령이 희생당한 시민이 아니라 전체주의자 김정은을 변호했으니 말이다. 나도 CNN 의 화면에 웜비어의 앳된 얼굴이 뜰 때마다 비통한 마음에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트럼프는 물론 현실주의 협상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며 변명한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 사회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게 현실이다.

위 에피소드는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어려운 미래를 수정구슬처럼 보여준다. 앞으로 인권 등의 국제 시민사회의 보편적 아젠다는 최종 국교 정상화까지 부단히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 진영 중 일부 인사들이 ‘인권은 나중에 자연히 될 것이다’라는 단계론에 동의할 수 없다. 반대로 인권을 핑계로 레짐 체인지 하려는 네오콘의 검은 속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양 극단을 넘어 인권을 신중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제기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보수 레이건도 진보 오바마도 다 그렇게 했다. 다만 제국이라 편한 위치인 그들보다 우리가 더 힘들고 신중한 지혜가 필요할 따름이다. 베트남처럼 전향적이지는 못하겠지만 북한도 최근 이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뉘앙스의 행보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경제의 퀀텀 점프를 위한 WTO 가입 등은 이 문제 해결(혹은 해결하는 척) 없이는 꿈같은 이야기라는 걸 이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의 정부와 시민사회는 이 국제 사회의 보편주의 담론을 고려하면서 메시지와 협상에서 지혜로운 행보를 했으면 한다.

7. 앞으로 넷플릭스 미드보다 더 드라마틱한 ‘시즌3’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 잘 나가는 미드는 시즌3까지도 간다. 안타깝지만 한반도 게임도 사실은 미드 시리즈와 같다. 싱가포르 센토사 회담에서 베트남 하노이 회담까지가 미드 시즌1이었다. 시즌2는 미 대선이 예정된 2020년 11월에 종영된다. 이번 하노이 협상 무산이 곧 미드의 끝이 아니다. 어쩌면 대선을 앞두고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이 기다릴 지도 모른다. 아직은 트럼프 입장에서 북한은 스펙터클의 가능성이 많은 좋은 드라마 소재이다. 다만 당장은 베네수엘라 에피소드가 더 흥밋거리이다. 볼튼과 에브람스라는 두 네오콘이 만약 레짐 체인지에 성공하면 대선의 핵심 승부처이자 보수적 유권자층이 많은 플로리다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다만 북미 양쪽 실무진이 끈기 있게 협상하고 북한이 미국이 옮긴 골 포스트에 일부 과감하게 적응한다면 협상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미 대선 이후(정상적으로 열린다면!) 미드 시즌3이 시작된다. 어쩌면 ICBM은 오히려 문제가 간단하다. 어차피 미국 끌어들이기용 카드이기 때문이다. 이후 축구공만한 우라늄 폭탄은 물론이고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탄도 미사일, 인권 등이 본격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중요한 변수는 북한 김정은의 경제 우선주의로의 전략 대전환과 달리 미국 내 상응하는 한반도에 대한 전향적 전략 전환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쿠바, 중국, 베트남, 이란을 상대로 이들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들의 대전략의 전환 이후에나 응한 바 있다. 쿠바와의 수교는 카스트로의 구애가 아니라 오바마의 확장 전략이 결정적이었다. 중국과의 수교는 마오의 구애가 아니라 닉슨의 이이제이 전략(중국과 소련 틈 벌리기)이 결정적이었다. 베트남은 호치민의 오래된 구애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확장 전략이 결정적이었다. 이란은 하산 로하니 개혁파 대통령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중국 견제를 위한 중동 문제 봉합 전략이 결정적이었다(+이스라엘의 전쟁 야기 위험). 심지어 오바마는 평화적 재처리 권한까지 양보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는 아직 미국은 중국 포위 확장 전략, 현상유지, 고립주의 충동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의 단순한 노벨상 전략과 부동산 사업가 스타일 사고가 복잡함을 더한다. 중국은 미국의 이 갈팡질팡 속에서 미국의 확장을 경계하고 2보 전진을 위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키신저는 과거 트럼프의 등장을 보면서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그 시대의 낡은 가식(Pretences)을 포기하도록 몰아가는 인물”의 우연한 등장이라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꼭 이런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는 재치 있게 덧붙인다. 나는 키신저의 말이 트럼프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간 지배해온 자유 민주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며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다. 앞으로는 기후변화와 양극화의 두 난제가 우리를 그간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미래로 이끌 것 같다. 이 미래가 디스토피아일 개연성이 높지만 우리에게는 불가능을 현실화하는 가능성이란 인간의 초월적 역량이 있다. 어쩌면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진정한 교훈은 단지 그 협상 자체의 복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 맥락에 대한 근본적 질문의 중요성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 시대의 종언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전제를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부단히 새로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안병진 / 경희대 교수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