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광주에 새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뛰어 온 신재형 대표. ⓒ피렌체의 식탁
  • 광주 자동차 공장은 울산 현대차 공장보다 먼저 생겨
  • 97년 외환위기 때 광주 들여다보니 암담
  • 국회의원들 설득해 현대차에 광주 기아차 공장 증설 로비
  • 국회의원은 민원 처리 직업 아냐, 과감하게 상상해야
  • 광주의 매력 세 가지: 최첨단 공장은 국내에, 싼 집값, 서플라이 체인
  • 2012년 대선 공약 되자 현대차 논의 철수
  • 2014년 윤장현 시장 ‘아우토 5000’ 모델 들여오며 재논의
  • 정찬용 전 수석의 삼고초려
  • 현대차도 광주에 관심이 있었다
  • 기업을 유치하려면 칼자루 쥔 사람 속을 알아야
  • 제조업 르네상스→중산층 재건→국가 영속성 확보
  • ‘아우토 5000’ 실패한 모델 들고 현대차 찾아갔나: 기타큐슈 모델 발굴
  • 새누리당도 적극 활용
  • 친환경자동차 클러스터에 ‘부품’을 붙인 박근혜 정부
  • 일자리 만들겠다고 일자리가 생기나, 일거리를 만들어야지
  • 문재인 대통령 ‘미래 자동차 선도 도시’ 공약
  • 현대차 설득: 노사 대립 구도 벗어나서 사회 전체가 먹고 사는 구조 만들자
  • ‘위원회’는 안 된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라
  • 자동차 매력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데
  • 사라진 ‘미래 자동차’
  • 임금을 깎자는 게 아니라, 노동의 존엄성 지키는 모델을 기업과 사회가 함께 만들자는 것

현대기아차도 국내에 최첨단 공장 하나 있어야지

신재형 (주)시너지 대표(전 월간중앙 기자)는 광주 출신이다. 1976년 대학에 진학하며 광주를 떠났고, 1980년 5월에는 군복무 중이었다. ‘만약 그 때 군 복무가 아니었다면 나는 광주에서 죽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평생 광주에 대한 부채와 소명의식을 품고 살았다. 그래서 기자가 됐다. 그 날 광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그렇게 살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광주를 돌아봤다. 고향 사람들이 먹고 살 산업이 보이지 않았다.

“광주에 산업이 별로 없어요. 그나마 있던 것도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빠져 나가고.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이 그나마 큰 공장인데, 캐파(capability, 생산능력)가 6만 대, 그것도 군수 중심이었죠. 그런데 사실 광주는 자동차 공장의 역사가 깊은 곳입니다. 기아차 광주 공장은 원래 아시아자동차였습니다. 울산 현대차 공장보다 1~2년 더 빨랐습니다. 처음에는 피아트 124 같은 세단도 조립 생산했습니다.”

아시아자동차는 1976년 기아로 넘어갔고,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로 기아차는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만 생산할 수 있었는데, 광주 공장은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에도 군용 차량을 중심으로 생산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성장에도 생산 대수가 늘지 않았다. 그러다 변화가 온 것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기아자동차가 무너지면서 현대차가 인수하게 됐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해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생산 캐파를 늘려달라고 로비를 벌였습니다. 현대차 핵심 관계자들과 언론인들, 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나게 하는 자리도 만들고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2014년 기아차 광주 공장 캐파가 62만 대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광주 공장은 시내 한 복판에 있어서 생산 능력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산업단지 부지에 새로운 공장을 짓도록 유치전을 펼쳤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치는 않았다. 환율 문제, 관세 장벽 등의 이유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현지 생산, 현지 판매가 대세였다. 현대기아차도 미국, 멕시코, 중국 등 현지 공장에 공을 들일 뿐 국내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신재형 대표는 지역 국회의원과 광주전남 출신의 이른바 ‘디시전 메이커들’, 현대차 임원진들을 만나 단순 공장 증설이 아닌 큰 그림을 보여줬다.

“‘전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국 내에 최첨단 공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대기아차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최첨단 공장을 안 세웠다. 최첨단 공장 자체로 상품이 되고 브랜드가 된다. 그런데 대표 브랜드가 되는 공장을 미국에 지을래? 러시아에 지을래? 중국에 지을래? 최신 기술이 탑재된 공장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어디에 짓나. 서울, 울산은 이미 부동산 압박이 심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강원도, 제주도 같은 자동차 산업 불모지로 갈 수는 없다. 광주가 딱이다. 부동산은 수도권의 1/3 수준이어서 임금 압박이 낮고, 기존 부품 서플라이 체인이 갖춰져 있다. 최첨단 친환경 자동차 전용 라인을 세울 최적합지다’라고 설득하며 다녔죠.”

마침 당시 기아차의 광명 소하리 공장 이전 이슈도 있었다. 광주는 목포나 평택 등 자동차 선적 부두가 있는 항구와도 가깝고 기존 기아차 광주공장 중심의 부품 공급 체인이 갖춰져 있기에 유리하다고 판단됐다. 신재형 대표는 ‘100만 대 캐파’를 목표로 뛰었다.

“그 때 광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기아차 유치전을 펼칠 때였는데, 새 산업단지 150만 평 부지에 30만 대 캐파 공장 두 세트를 짓자고 했어요. 두 세트가 주야 2교대로 돌면 100만 대가 됩니다. 도로와 철도 모두 놔 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철도는 필요 없고 도로면 됩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대선 공약 회자 되자 발 뺀 현대차

‘일이 되겠구나’ 싶은 희망을 품어가던 2012년. 대선 국면이 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지역 공약으로 ‘광주 기아차 100만 대 생산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문재인 후보가 ‘기아 시티 광주’라는 슬로건을 걸었어요. 그 전에는 로우키(low-key)로 십 수 년 설득 작업 벌이며 소리 소문 없이 캐파를 6만에서 62만 대까지 늘려 놨는데, 대선 공약으로 뜨면서 현대차는 바로 ‘노’(NO)하고 모든 논의를 중단 시켰습니다. 기업에서는 정권이 뭐 하겠다 말겠다 하는 걸 절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투자를 할 때는 100년, 200년을 보고 투자하는데, 5년 밖에 안 되는 정권이 감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면 굉장히 싫어합니다.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면서 기업의 고민은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요구만 내세워 관철시키겠다고 하니, 안 하니만 못 하게 돼 버린 거죠. 그 후로 일이 지지부진해졌습니다.”

공식 직함이 있어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고 고향 생각에 자발적으로 동분서주하던 신재형 대표는 힘이 빠져 버렸다. 그러던 중 2014년에 다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당시 윤장현 시장이 당선되면서 독일의 ‘아우토 5000’ 모델을 들여와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우토 5000은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으로 구조조정 압력을 받던 독일 폴크스바겐이 2001년 볼프스부르크에 독립법인을 세우고 기존 공장 노동자 임금의 80%인 5000마르크를 주고 5000명을 고용한다는 내용의 프로젝트였다. 노조는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더 많은 일자리를 보장 받는다는 취지였다. 윤장현 시장은 현대차인재개발원장으로 근무, 현대차와 인연이 있는 정찬용 전 청와대 수석에게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부탁했다. 신재형 대표가 해오던 일을 잘 알던 정 전 수석이 신 대표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이게 처음에 제가 뛰던 의도와 달리 대선에 지방선거 공약이 되면서 기업 유치가 정치논리가 돼버렸잖아요. 내 뜻과 상관없이 어쨌거나 정치판에 들어가게 되는 건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조직에 들어가면 내 모든 걸 걸어야 하는데 그것도 부담스럽고. 사실 현대차가 광주에 투자할 가능성도 낮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찬용 전 수석은 삼고초려했다. 하루는 ‘조선일보 강천석 전 주필과 저녁 먹기로 했으니 나오라’고 해서 갔다.

“2014년 9월이었어요. 가서 얘기했습니다. 현대차가 왜 광주에 가겠습니까. 한국 자체에 생각이 없는데. 되지도 않는 얘깁니다.”

그럼에도 정 전 수석은 신재형 대표에게 계속 물었다. ‘으째야 쓰까?’

“그냥 광주에 공장 달라면 줍니까? 현대차가 아니라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가치와 명분을 맨 앞에 내세워 설득을 해야죠. 그냥 로비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강천석 전 주필이 한 마디 거들었다.

“신 대표가 할 생각이 있나 보네. 원래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냥 면전에서는 칭찬하며 둘러 대는데, 일을 하려는 사람은 구체적인 걸 두고 싸우는 법이지. 기업을 유치하려면 칼자루 쥔 사람들의 속을 알아야 하는데, 신 대표는 칼자루 쥔 사람들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 봐왔으니 잘 할 거다.”

강 전 주필에게 장단을 맞추며 정 전 수석이 다시 채근했다. “으째야 쓰까?” 분위기에 쓸려 신 대표는 순간 다짐을 하고 말았다.

“국가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튼튼해야 합니다. 외환위기 때 무너진 중산층을 재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업 르네상스가 필요합니다. 광주에서는 자동차 산업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즉석에서 현대차 유치를 위한 컨셉 디자인이 이뤄졌고, ‘30만 대 생산라인 두 세트’라는 구체적 목표까지 제시했다. 정 전 수석을 용산역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정 전 수석은 재차 확인을 했다.

“하자마시.”

뒤늦게 정신이 번뜩 든 신 대표는 “안 합니다. 저 돈 벌어야 합니다.”라고 일단 꽁무니를 뺐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잊고 있던 1980년의 광주 생각이 났다.

“원래 혁명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기념하는 겁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바스티유 감옥에서 추모제를 하지 않고, 콩코르드 광장에서 기념식을 합니다. 5.18과 관련해 우리가 이야기 안 하는 게 있습니다. ‘광주 꼬뮨’이에요. 계엄군을 몰아내고 다시 진압될 때까지 광주 꼬뮨 기간 약탈과 범죄가 없었어요. 은행도 털지 않고, 부자도 털지 않고, 관공서도 털지 않았습니다. 물자가 끊긴 상태에서 모두가 가진 것을 나눠 먹었죠. 이 생각이 나면서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더라고요.”

2014년 11월 자동차밸리추진위원회가 정식 출범됐고, 위원장에는 정찬용 전 수석이 임명됐다. 신재형 대표는 상임부위원장이 돼서 본격적으로 공식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위원회 출범식 현수막에는 ‘제조업 르네상스 실현을 위한’이라는 부제목이 달려 있었다.

2014년 11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출범식.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신재형 대표(위원회 상임부위원장), 윗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정찬용 전 수석(위원회 위원장). ⓒ광주광역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식 출범식을 하는데 위원회에 정관계 인사 130여 명이 망라됐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인사는 단연 이정현 의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기에 여당 실세가 필요했고, 마침 호남 출신의 이 의원이 딱이었다.

“기업을 유치하려면 땅이 있어야 하고, R&D 자금 등 국가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저희 1차 목표가 ‘친환경자동차산업클러스터’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거였는데,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감안하면 성사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정현 의원을 설득했어요. 그래서 성과도 있었습니다. 원래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금호로 하려고 했는데, 이 의원이 힘을 써서 센터에 현대자동차를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힘’으로 된 것만은 아니었다. 현대차가 관심을 가질만한 어젠더를 제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신 대표의 생각이다.

“2015년 1월께였는데, 당시만 해도 기아차 광주 공장에서 ‘소울’ 물량을 빼서 멕시코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때라 100만 대 공장 신설은커녕 있는 거라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 때 수소경제 얘기를 꺼냈어요. ‘우리가 나서서 중앙 정부를 설득해 광주에 수소 충전 인프라를 깔겠다. 현대차는 광주에서 수소차를 생산해 2018년 동계 올림픽 때 전세계에 선을 보이자.’ 이런 얘기를 했죠. 현대차에서 솔깃해 하더라고요. 현대차는 이미 수소 자동차 연구를 상당 수준까지 진행시키고 있었으니까요. 내친 김에 ‘광주형 일자리’ 모델도 설명을 했습니다. ‘아우토5000’처럼 별도 법인을 만들어서 하자고.”

아우토5000’을 폐기하고 ‘기타큐슈’로

현대차는 ‘수소’에 반응을 보였지만, ‘아우토5000’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현대차에서 그러더라고요. ‘아우토5000은 7년 만에 폐기된 모델이다. 비슷하게 미국 GM이 시도한 새턴 모델은 시작도 못 하고 폐기됐다. 독일도 미국도 못한 것을 일개 광역시가 할 수 있겠느냐. 말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별도 법인으로 설립된 독일 폴크스바겐의 아우토5000은 임금이 조금씩 오르며 자회사와 별 차이가 없게 되자 7년 뒤 자회사와 결합하면서 종료됐다. 사실상 ‘아우토5000’을 기반으로 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에 대한 거부 선언이었다. 신 대표는 황급히 다른 모델 연구에 나섰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일본의 ‘기타큐슈’ 모델이었다.

“기타큐슈는 육해상 물류의 중심인 시모노세키와 마주보고 있는 규슈 동북지역의 도시입니다. 1901년 야하타 제철소가 세워져 공업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규슈에 석탄이 풍부해 제철소를 중심으로 각종 공업이 성했죠. 공해가 엄청 심해서,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석탄 타는 냄새가 온 도시에 진동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 1970년대 중후반 넘어가면서 한국에 포항제철 등이 생기고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야하타 제철소가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항만, 교통 등 배후 시설이 다 돼 있으니 조건이 좋았죠. 1976년 닛산이 기타큐슈에 들어갑니다. 이후 1992년에는 도요타가 렉서스 생산라인을 짓습니다. 도요타도 고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기타큐슈는 집값이 나고야의 1/3 수준이기 때문에 임금을 낮출 여력이 있었습니다. 물가도 훨씬 싸고요. 이후에 2004년 다이하츠가 들어오고 2009년에는 닛산차체가 들어오고, 지금 주변에 7개 자동차 메이커 브랜드가 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과 부품 업체만 들어온 게 아니고 로봇 업체, 전장 업체 등도 함께 들어옵니다. 역내 부품 조달률이 70%에 이릅니다. 인구가 3배 늘어났죠.”

규슈 지방이 지진이 적고 동남아 수출 기지로서의 입지가 좋다는 지리적 조건만 내세운 건 아니었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축해 놨더군요. 자동차 산업 캠퍼스를 만들어 놨는데, 규슈 지역에 있는 각종 자동차 관련 학과들은 다 들어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각 대학 무슨 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연구 프로젝트별로 나뉘고 그 안에 각 대학 연구인력들이 들어와서 함께 연구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대학들이 서로 뽑아 먹으려고 안달인데, 기타큐슈는 산학협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더라고요. 또 거기를 ‘세계 공장의 어머니 공장’이라고 해요.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의 해외 공장 신규 노동자들이 6개월 동안 기타큐슈에 와서 배워 가는 거죠. 그래서 기타규슈는 154만 대 물량을 갖추게 됐습니다.”

전문가 앞에서 ‘아우토5000’ 얘기를 꺼냈다가 머쓱해졌던 신 대표는 ‘기타큐슈 모델’을 무기로 다시 정부와 현대차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첫 번째 넘어야 할 산은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예비타당성조사 통과가 급선무였다.

“2015년 2월에 민주당 전당대회에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예타 통과에 힘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죠. 문재인 대표는 소득주도성장 전략과 광주형일자리가 맞아 떨어진다며 2015년 3월 10일에 ‘소득주도성장과 광주형 일자리’라는 세미나를 엽니다. 그런데 그 해 4월에 민주당에서 또 ‘광주형 일자리’로 광주시청에서 간담회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제동을 걸었어요. ‘친환경 자동차 100만 대 생산 기지 건설의 결과로 일자리가 생기는 거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해서 일자리가 생기는 거냐.’ 그러면서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친환경 자동차 100만 대를 내세우자’고 했죠. 그랬더니 간담회를 취소해 버리데요. 허 참.”

2015년 4월 민주당 주최로 열린 광주시청에서 열린 ‘자동차 산업밸리 조성을 위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간담회’ 가장 왼쪽이 신재형 대표.

성공을 위해서는 여야 가리지 않는다

마침 4월에 광주 지역에 보궐 선거가 있었다. 신 대표는 여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당시 김무성 의원이 대표였는데, 광주에서 ‘친환경 자동차 100만 대’ 공약을 내걸게 유도했어요. 그랬더니 민주당 쪽에서 다시 간담회를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자동차산업밸리 조성을 위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간담회는 열렸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전폭적 지원’에 대한 약속은 신중했다.

“2015년 11월 위원회 출범식 1주년을 맞이해서 한겨레와 공동 세미나를 했어요. 그게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가 됐나 봅니다. 정몽구 회장이 관심을 갖자 현대차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제네시스가 출시됐을 때인데, 제가 가서 ‘별도 법인을 만들어서 제네시스 SUV 모델을 생산하는 최고급 공장으로 만들자’고 했어요. 더불어 ‘디젤 엔진 공장’, ‘다운사이징 가솔린 엔진 공장’, ‘친환경 부품(배터리, 인버터, 모터) 생산 공장’ 등 네 가지 안을 제시했어요. 현대차에서도 좀 놀랐던 것 같아요. 미래 전략을 제가 줄줄이 꿰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현대차가 다시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지만 다른 난관에 부닥쳤다. 예비타당성조사였다.

“예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부품’자가 들어갔습니다. ‘친환경자동차부품 클러스터’가 된 겁니다. 완성차 공장이 아니라 부품 공장 단지가 된 거죠. 예타 내용도 엉망이었어요. 부지에 건물 두 동 짓고 쓸 줄도 모르는 장비 몇 개 들여오는.”

그 사이 2017년 예상치 못한 대선 국면이 펼쳐졌다. 다시 문재인 측 설득에 나섰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호남표 사업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수 석유화학 단지, 광주 아시아자동차, 나주 비료공장이 있었고, 전두환은 광양제철이 있었다. DJ는 없었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기업도시로 한전 옮겨와 100개 기업을 유치했고, 여수엑스포, 아시아문화의전당을 했다. 문재인 후보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압박했습니다. 적어도 당선이 되면 ‘친환경자동차부품 클러스터’에서 ‘부품’ 자만 빼달라고 했습니다. 고맙게도 대선에서 ‘미래자동차 선도 도시 광주’를 슬로건으로 걸어줬어요. 베스트였죠. 친환경 자동차는 수소, 전기차 정도인데, ‘미래 자동차’면 자율주행 까지 들어가는 거잖아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신 대표는 일단 현대차 설득 작업에 다시 적극 나섰다.

“20세기의 노사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광주라는 지역을 통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고 먹고 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이익과 새 모델을 함께 고민하자고 했죠. 여기에 누가 반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가 없었기 때문에 인수위 대신 만들어진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처음에는 ‘일자리 위원회’로 가자고 해서 거부하고, 다음에는 ‘4차산업혁명 위원회’로 보내려고 했어요. 제가 반대했습니다. ‘위원회가 일을 성사시키는 꼴을 못 봤다’고요. 그래서 결국 청와대 정책실에서 맡게 됐습니다. 일에 날개를 달게 된 셈이죠.”

정부 측 프로젝트 추진 파트너를 정해야 했다. 윤장현 당시 시장에게 주문했다.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를 앞두고 있었다.

“‘단체장들 한 명 씩 5분만 얘기해도 다 돌아가면 1시간 반 입니다. 이것저것 얘기하지 말고 현대차를 유치하려 하니 TF팀에 청와대 담당자 한 명만 보내달라고 딱 한 가지만 얘기하십쇼’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날 바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 광주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담당자를 정해줬습니다. 정태호 일자리수석입니다. 정 수석이 당시 정책비서관을 할 때였습니다. 정 수석에게도 구상을 주욱 설명해줬죠.”

2017년 한 해 동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비즈니스는 사실 배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기업인들과 공무원들의 마인드 자체가 달라요. 기업인들은 미래 자산을 창출하는 사람들이고, 공무원들은 현재 자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보는 곳도 다르고 사고하는 방식도 다르죠. 그래도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2017년 12월 말에 악수를 했습니다.”

‘반값 임금’ 논란에 노조 반발

일이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걸림돌이 나타났다.

“2017년 12월에 협상을 마무리했고 2018년 연초에 발표해서 분위기를 띄우고, 동계올림픽 끝난 뒤 바로 착공식을 하는 걸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완성차 라인은 일단 경형SUV로 하고, 모터와 인버터를 만드는 친환경 자동차 부품 공장이 핵심이었어요. 일단 수소차 라인은 오지 못했지만, 완성차 조립 라인은 언제든 개편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모터, 인버터 공장으로 만족했지요.”

그러나 모든 일정이 갑자기 중단됐다.

“임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어요. 당초 합의안은 주 52시간 노동에 고졸 기준 초임 연 3000만 원, 5년 보장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가혹한 조건 같지만, 여기에 청년내일채움공제 지원을 더하면 3800만 원이 됩니다. 그리고 주택 제공 등 각종 사회적 투자를 생각하면 가처분 소득이 그리 낮다고 볼 수는 없어요. 일본 기타큐슈 도요타 렉서스 공장도 부동산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낮은 임금으로 고부가가치 차종의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했던 겁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취직했다고 봅시다. 강남역 주변 실평 5평도 안 되는 원룸 월세가 150만 원입니다. 초임 4500만 원 받으면 뭐합니까. 집세 연 1800만 원 빼면 실질 연봉은 2700만 원입니다.”

신 대표가 주도한 협상안에 대한 노동계의 비토가 높아졌고, 신 대표는 2018년 3월 타의에 의해 프로젝트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임금과 노동 조건 등을 두고 실랑이가 이어졌고, 시장도 이용섭 시장으로 바뀌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합의를 거쳐 그러다 지난 1월 31일 협약식이 이뤄졌다. 문제가 됐던 연봉 문제는 ‘주44시간 평균 초임 3500만 원’으로 합의됐다.

“자동차 산업도시 광주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신설법인 임금협상으로 변질됐습니다. 세계 노조의 역사는 원래 일자리를 나누는 역사였습니다.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 일자리가 줄게 되고 그러면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노동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눴습니다. 기업에서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사회적 합의입니다. 주5일 40시간 근무가 도입된 것도 단순히 ‘워라밸’을 원해서 한 게 아니죠. 노동계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2015년 4월 김동철 의원의 주최로 열린 세미나. 주제는 ‘미래형 친환경’이었다. 단상 오른쪽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신재형 대표.

본질이 사라졌다

또한 이번 합의에서 ‘일자리’만 강조되다 ‘미래 자동차 선도 도시’라는 타이틀을 잃는 것 아닌가도 걱정이다.

“원래 제가 그렸던 그림은 ‘자동차로 매력적인 도시 광주’였습니다. ‘미래 자동차’를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율주행입니다. 자율주행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 외에도 수많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합니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사고가 나면 자동차 소유주의 책임인지, 자동차 제작사의 책임인지, 자율주행 네트워크를 연결한 통신사의 책임인지 등 책임 소재를 가를 아무런 제도적 준비도 안 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도로와 표지판 등 교통 시설물도 모두 사물인터넷으로 연결이 돼야 하고, 고속도로, 일반도로, 국도, 시내 도로, 외곽 도로, 농로, 골목길 등등 다양한 테스트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대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조례 개선을 통해 제도에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곳이 인구 150만의 도농복합도시 광주입니다.”

신 대표는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원스톱 자동차 쇼핑 테마 파크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영업사원이 보여주는 팜플릿을 보고 사는 구조입니다. 그러지 말고 광주에 대단위 자동차 쇼핑 단지를 건설해서 전 차종을 전시해서 직접 만져보고 시승해보고 구매를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1층에는 각 브랜드의 역사관을 만들고, 2층에는 신차를, 3층에는 브랜드 인증 중고차를 파는 겁니다. 누가 광주까지 와서 자동차를 구매하겠냐고 하지만, 자동차는 5년에 한 번 정도 구매하는 매우 신중한 일입니다. 온 가족이 와서 자동차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고 테마파크에서 즐기다가 차를 출고해서 몰고 집에 가는 겁니다. 코어 콘텐츠도 있어야 합니다. 차량 성능을 제대로 테스트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는 광주에서 해남까지 속도 무제한 테스트 도로도 만드는 겁니다. 지금도 신차를 집에서 받으려면 탁송료가 10만 원 넘게 붙습니다. 이렇게 광주가 자동차 자체로 매력이 있는 도시가 돼야 자동차 산업도 탄력이 붙는 것이지, 단순히 공장 하나 유치해 일자리 늘어난다고 해서 얼마나 파급효과가 있겠습니까. 이런 큰 그림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광주형 일자리 협약 후 타 지역에서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있는 현상에 대한 걱정도 크다.

“이번 현대차 광주 공장 신설은 1~2년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제가 광주를 위해 현대차 관계자들 만나고 다니기 시작한 게 외환위기 직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때부터입니다. 20년 가까이 공부하고 비전을 세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설득하고 다녔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4~5년을 내다보는 정치권력이 100년을 내다보는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고작 4~5년 보장해주는 인센티브로 100년짜리 투자를 할 기업은 없습니다. 기업에 특혜를 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고민이 뭔지 파악해야 실현 가능한 정책이 나올 것입니다.”

신 대표는 마지막으로 단순히 ‘일자리’ 차원이 아니라 ‘노동의 존엄성’을 세우는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고 디시전 메이커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취지가 임금을 싸게 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저는 노동이 존엄하지 않은 사회는 국가로서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8시간 주 5일 열심히 일을 하면 의식주 등 자신과 가족의 생존 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만들어 줘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집값이 2000만 원 하던 시절에는 월급을 30만 원 받으면 누구나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집 한 채가 10억이 된 사회에서는 월급 400만 원 받아도 집을 못 삽니다. 국가가 지방정부가 기본 주거를 책임져 줘야 합니다. 그래서 광주가 그걸 해보자고 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한 것입니다. 그게 사업의 본질입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해서 일자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일거리가 생기면 그 결과로 일자리가 따라 생기는 겁니다.”

구술 정리 / 김하영 편집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