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합의 준수 노력은 인정. 북미관계 교착 타개 본질적 전략은 안 보여
  • ‘선비핵화’는 비대칭 거래. 북의 양보만 기대하는 건 우스꽝
  • ‘강경파’ 득세 미국과의 공조 매몰돼 북미협상 중재 입지 스스로 상실
  • 7,8월 타이밍 놓쳐 교착 상태 장기화
  • 시키는대로 운전만 하는 걸 ‘운전자론’으로 볼 수 있나
  • 정치적 선언 불과한 종전선언으로 북 비핵화 끌어내는 건 불가능
  • 평화협정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이해조차 없다는 의심 들어
  • 한국 지식인 사회 ‘평화체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아
  • 북, 핵무장 강화 가능성도 능력도 충분
  • 미중 갈등으로 중국 역할 제한적. 문재인 정부 역할 더 커졌는데..
  • 평화협정 필요성 깨닫고 국민과 국제사회 적극 설득해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일방적인 선비핵화를 요구하면서 제재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그가 말한 ‘새로운 길’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고 핵과 미사일 및 경제 개발을 병진하는 ‘자력갱생’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미일동맹과 대치하는 신냉전체제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힙니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이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정세를 남북 평화체제와 비핵화 쪽으로 확실히 돌려 놓을 수 있는 역할을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교수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 비핵화를 동시에 맞교환 형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선비핵화를 고집하는 미국 강경파의 의중을 지나치게 살피고 결과적으로 미국에 끌려가는 들러리 역할에 자족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본격 협상의 비전을 제시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가? 지난 연말 그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일정도 성사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한반도 문제를 진전시킬 열쇠도 남북이 아니라 미국이 쥐는 상황이 더 굳어지는 듯하다. 북이 우리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이제 북은 북미협상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남북관계 진전이나 군사 합의, 철도연결 같은 분야의 남북 간 약속은 그대로 진행함으로써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빠지는 걸 막는 장치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북미 관계를 풀어나가는 동력으로서 남쪽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북한은 분명히 인식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북의 처지에서는 북미 관계의 교착을 풀고 (대북) 제재를 해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및 답방 시기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하나의 변수로서의 남북관계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지금으로선 회의적이다.”

어느 시점부터 북이 우리 정부에 더는 돌파력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나.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부터 7월 사이였다고 본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 내 협상파와 존 볼턴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그 싸움이 8월에 트럼프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제4차 평양 방문을 중단시킴으로써 강경파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굉장히 불투명했다는 것이다. 그 때 한국은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공동성명을 모멘텀으로 하여 ‘평화협정 체제 구축에 의한 북한 비핵화 구현’이라는 대원칙을 구체화하는 비전을 보다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한국 국민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작업에 나서야 했다.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트럼프 행정부가 평화협정이 아닌 종전선언도 아까워하면서 북한에게 일정한 비핵화 선행조치를 요구하는 프레임에 동조하는 외교에 머물고 말았다. 그로 인해 북미 간 갈등이 표면화했고, 미국 강경파의 입장이 강화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에 정상간 접촉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는 적극적 역할을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된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 비핵화 진행”이라는 새로운 대원칙이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비전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 공백은 곧 미국 강경파의 논리와 행동으로 신속하게 메워져 버린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 발전, 경제협력, 군사 합의에 있어서는 문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행동했지만, 남북 관계 개선 추진의 자율성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미국 내 강경파의 논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포기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에게 항복한 셈이 됐다. 그 사실이 7월~8월에 분명해졌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3차 평양방문 직후인 9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 완결 이후의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면서 그러한 한국의 외교적 비전의 한계가 명확히 노정되고 공식화되고 말았다.”

문제는 종전선언이 아니라 평화협정이었다는 얘긴가?

“원래 미국과 한국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 비핵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 다시 말해 선(先)비핵화론이었다. 하지만 4·27 판문점 선언과 6·12 공동 선언은 그 수준을 넘어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북미가 카드를 맞교환하고 미국 의회의 초당적인 비준을 받아내서 북한에 안전보장을 약속하겠다는 문서였다. 북한이 비핵화를 안심하고 진행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5월 27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도 ‘북이 내놓아야 할 것과 미국이 보장해 줄 것을 함께 엮어서 상원에 제출하겠다’고 얘기했는데, 그 발언은 미 의회의 비준을 받아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얘기였다. 남북과 미국 정상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통한 비핵화의 실현’이라는 대원칙에 각각 합의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판문점선언에서 그렇게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트럼프가 폼페이오를 앞세워서 미국 정치권과 행정부의 컨센서스에 근거하지 않은 결정을 했다. (8월의) 폼페이오 (제4차) 방북 취소 후에 미국의 협상파, 강경파 간 갈등이 커졌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판단인 것 같다.

“그때 한국 정부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비핵화는 북미 간에도 이미 합의된 것’이라고 미국에 당당하게 밝히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에 ‘비핵화 먼저하고 평화체제로 이행하자’고 한 것이다.”

북은 그 과정에서 남쪽 정부에 어떤 제스처를 취했나.

“9월 5일에 정의용 특사가 3차 방북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가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6·12 공동선언의 대원칙을 지키자는 주문이다. 그런데 제3차 평양방문 뒤인 9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 비핵화론’을 얘기했다. 공개적으로 미국 강경파에 항복하고 6월에 합의한 원칙을 포기해버린 꼴이 됐다. 9월 5일에 있었던 북한의 주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10월부터 북한이 일본에서 발행되는 총련 매체 <조선신보> 등을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시그널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무슨 역할을 했어나 하나.

“6·12 공동 선언 직후에 한국외교는 ‘북미 간, 남북 간에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 비핵화’를 합의했으니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평화협정 협상에 나설 때라는 사실을, 그래야만 북한이 안심하고 진정성 있게 비핵화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 국민, 그리고 미국과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호소하면서 그 대원칙의 구현에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 역할을 포기했다. 이후에 정부 관계자나 정치계 인사들도 평화 협정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종전 선언 타령으로 일관했다.”

이삼성 교수 ⓒ피렌체의 식탁

그 와중에 평화협정 체제가 아니라 종전선언이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이 바뀌어 버렸다는 얘긴데.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다. 본격적인 평화협상 논의를 제쳐두고 종전선언으로 북 비핵화의 일정한 실질적 조치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화협정을 위한 본격적 협상에 대한 비전은 꺼내지도 않은 채 종전선언을 줄까 말까 하면서 북한에게 일정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 것은 일종의 살라미 전술(이탈리아 소시지를 잘게 썰 듯 협상 안건을 잘게 나눠 압박함으로써 최대 이익을 얻는 협상법)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 일정표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한 제재 해제와 외교관계 정상화의 일정표를 함께 엮어서 단계적 및 동시적으로 실천하는 청사진이 평화협정이다. 이 협정이 미 의회의 초당적 비준을 거쳐서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진 제도적 장치로 마련될 때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해진다. 6.12 공동선언에서 미국 대통령이 합의한 것은 그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를 이룩해내겠다는 대원칙에 대한 동의였다.

이 대원칙에 의거해서 6.12 공동선언 이후 한국은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그러한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상의 비전을 제기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런 장치가 마련될 때만 북한은 안심하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에 임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곧 강경파의 견제에 밀려 북한의 일정한 비핵화 조치 선행을 요구하는 과거의 패턴으로 후퇴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살라미 전술을 구사했고, 한국은 북미 간의 밀당을 구경하거나 미국의 논리에 동조하는 태도까지도 보였다. 미국의 장단에 맞춰버린 꼴이었다. 한국 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지 않고 미국과의 공조에 매몰되는 바람에 북미 협상 과정에서 둘 사이를 중재하고 그 접점을 찾아낼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내버린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 이후 미국에 요구하고 미국을 설득하는 대신 미국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꼴이 돼버렸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그리고 그보다 평화협정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전략이 없어 보이는 게 더 안타깝다. 북한은 연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평화체제 논의나 최소한 종전선언은 올해 할 수 있을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 그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었고,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0일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은 비핵화 완결 이후의 일”이라고 공언한 이후에도 같은 행보를 이어갔다. 10월에는 유럽을 순방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비핵화 진전을 대북 제재 완화의 조건”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12월 1일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에는 기존 제재를 유지한다는 대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하였다. 국제사회를 향하여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대원칙을 무효선언하고 과거 원칙의 부활을 공식화하는 정상외교활동을 벌이고 다닌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남북이 평화체제에 대해 논의도 했고, 그 중요성을 문 대통령도 이해하고 있을 텐데, 우리 정부에 비전이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과 제3차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인 9월 20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 비핵화 완결 이후에 할 일’이라고 단정해버렸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평화협정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는 의심이 드는 발언이었다. 그런 식이면 미국 정부의 담론과 논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미관계를 풀어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대북 정책은 평화협정 체결 없이도 북한이 비핵화 행동을 하게끔 하려는 일종의 ‘꼼수’를 개발하는 수준, 전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방안에 막연히 기대고 있는 형국이다.”

문 정부가 남북 관계 교착을 돌파할 의지가 크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 자체를 잘 못 보고 있다는 얘기인가.

“제대로 돌파하려면 국민도 설득하고 국제사회도 설득해 가야 한다. 그럴 욕심은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뒷받침할 비전이 없는 상태인 것 같다. ‘북미 간에 잘 해보면 좋겠다’는 슬로건밖에 없어 보인다. 한 가지 인정하는 것은 남북한 군사합의, 평양합의를 통해서 남북관계를 지켜가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진전되더라도 그걸 통해서 북미관계 교착을 타개할 그 다음 전략, 더 본질적인 전략은 없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남북관계가 발전한다 하더라도 북미관계가 좋아지진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미관계가 안 풀리리니까 남북관계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계에 봉착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문재인 정부도 집권 3년 차에 접어든다. 문재인 정부에 감춰둔 비전이나 카드가 따로 있을까.

“설사 비전이 있다한들 그걸 감춰둔다면 그것 자체도 문제다. 그걸 꺼내야 국민과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 정부는 평화체제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는 게 더 문제다. 그렇게 보일 정도로 평화협정에 대한 의미 부여와 그 실현에 너무나 조심스러워하는 자세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전망이 불투명하다. 북은 지금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미국은 일정한 수준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제재를 해제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은 남북관계 진전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지만, 문 정부의 한계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게 김 위원장 서울 답방에 대한 북의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태도와 크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북은 미국이 6.12 공동선언에 서명하고도 곧바로 북한의 비핵화 선행이라는 과거 논리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한 만큼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견지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회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북한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물론 “평화체제 구축에 의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원칙에 미국과 한국의 실질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비전 또한 지금의 한계를 유지한다면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에 의한 비핵화’라는 대원칙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될 것이다.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은 미국이 펼치는 살라미 전략에 북한 나름의 살라미 전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이 평화협정 협상은 아예 제쳐두고 종전선언마저 북한 비핵화 선행조치 이후의 일로 치부하는 만큼 북한도 실질적인 비핵화는 제쳐두고 지엽적인 조치들로 미국과의 협상 국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남 관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계속 추구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 미국과의 대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내실화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국 핵보유국을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책임을 미국의 ‘배신’에 돌리면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북이 두 번째 선택을 한다면 그야말로 신냉전으로 간다는 얘기 아닌가.

“트럼프 정부가 혼란스러운 상황인 데다가 문재인 정부도 남남갈등의 위험성, 난해한 국내정치 지형, 경제 문제 등에 발목 잡혀서 남북관계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하기 어려워 보인다. 남쪽이 발목 잡힌 상황을 북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설사 미국과의 합의가 진전되어도 안전이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따라서 북이 고농축 우라늄을 발전, 확장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에너지 문제도 해결하고 한편으로는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다. 최근 <38 노스(North)>(북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웹 사이트.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국제문제대학원(SAI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한미연구소(U.S.-Korea Institute) 운용)에 따르면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5메가와트 원자로는 가동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 건설과 우라늄 사업은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플루토늄과 달리 고농축 우라늄 시설은 기술적으로 모니터링(감시)하기 어렵다. 북한은 핵무기 생산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부정하고, 발전용 저농축 우라늄 시설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와 전문가들은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구축했을 가능성도 능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만약 트럼프가 제재해제나 평화협정 본격 협상 모두 하지 않겠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할 수 있나?

“가장 시급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명확히 하는 일이다. 평화협정은 평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성립할 수 있는 ‘평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사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데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는 제도적 장치라는 사실을 정부 지도자들 자신이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 그에 기초해 국민과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이러한 평화협정 개념을 이해하면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지금 당장 협상을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정부 관계자들도, 정치인들도, 그리고 많은 연구기관들도 평화협정을 북한의 비핵화가 일정하게 진행된 이후에나 협상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들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평화협정이라는 것이 북한 비핵화가 일정하게 진행된 다음에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평화협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애당초 없는 것이다. 평화협정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성립하지 않으면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견지하고 이행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평화협정이 중요성을 갖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권과 언론과 학계 모두 북한 비핵화를 가능하게 할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에서 평화협정이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찾기 어려운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화협정을 지금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시혜적인 성격, 즉 북이 요구조건을 들어줄 때 이쪽에서 그 대가로 안겨주는 협정이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한 도구로 활용해야 할 더 적극적인 성격의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제 북은 만족할 만한 제안을 해도 그게 지속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따지면서 멈칫거릴 타이밍이다. 그런데 우리가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 북이 핵을 포기하기만 바라고 있으니, 우스운 꼴이 됐다. 미국과의 마찰을 걱정하면서 평화협정 문제로 미국사회와 정치권을 설득할 생각도 능력도 없고, 우리 국민에 당당하게 밝힐 의지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중국이라는 변수도 활용할 수 없다.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미중 긴장 상태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은 줄어든다. 이럴수록 문재인 정부가 상황을 중재하고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럴 동력이 없어 보인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체에 대한 명확한 비전의 부재 상태에 빠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미국은 제재만 계속하면 북한이 ‘기어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문 정부도 그 명제에 매달리는 것 같다. 북한은 석탄, 우라늄도 있어서 핵무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소지가 다분하다. 지난해 12월 이후에 유엔 제재가 강화되었다. 특히 정유에 대한 제재가 북한에겐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급적인 에너지 전략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같다.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역사적으로 국제제재가 제재 대상 국가의 정책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우는 없다. 오히려 국제 제재가 그들에겐 내부적으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북미 교착이 장기화되더라도 미국은 손해볼 것이 없고, 그 피해는 몽땅 남북에 돌아올 텐데.

“이런 교착이 미국과 한국에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협상이 교착되면 무기도 더 팔 수 있고 기존의 동맹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에도 보탬이 된다. 중국 견제에 한국, 일본을 줄 세우기도 편하다. 특히 대북 강경파로서는 북이 비핵화를 실행하지 않는 한 최대 제재를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외교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그런 미국과 달리 한국에 이득은 없다. 전쟁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북한의 핵무장이 내실화되고 저변이 확장되는 상황만 지속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은 그러한 미국 강경파의 기본 원칙에 동의해주고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작은 양보들을 얻어내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은 남북철도 건설에 미국의 반대를 무마하고 국제 제재의 예외조항을 얻어내는 수준의 거래에 머물러선 안 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남북 철도 협력이나 군사합의 이행에 관해서 미 군부의 반발을 무마해서 일정한 양보를 얻어내는 데 집중하고, 그 대가로 평화협정을 통한 비핵화를 구현해내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다. 상당히 안타깝다. 미국 내 강경파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그들로부터 작은 양보들을 얻어내기 위해서 그 대원칙을 포기하는 것이 정말 불가피한 것인지에 대해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러다가 정권이 바뀌면 그나마 진전된 것도 모두 원위치하게 될 것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정면으로 서둘러 제기하고 나서야 하고 필요한 설득 작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때라고 본다.”

남·북·미·중 4자 회담이나 남북 교차승인 완결도 미국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데, 왜 한국 정부는 낮은 수준의 카드 거래에 집중할까.

“지난해 7~8월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때부터 모멘텀과 타이밍을 놓치기 시작했다. 그게 교착이 길어진 이유다. 6·12 공동선언에서 북이 강력하게 ‘관계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평화협정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 추진’ 원칙을 고집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지식인 사회는 미국이 만나줬으니 북이 비핵화 보따리를 먼저 풀어놓을 것처럼, 또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떠들면서, 북이 핵 전문가를 해외로 반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면서도 북이 요구한 대원칙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전선언을 대가로 비핵화를 진행해야 한다느니, 북이 양보하는 게 옳다느니 하는 논리만 남았다. 종전선언 뒤 평화협정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 자체가 없어졌다. 한국 지식인 사회가 평화협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우선 평화협정의 개념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 미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켜질 수 있는 제재 해제와 외교관계 정상화의 일정표와 북한 비핵화 일정표를 합리적으로 서로 엮어내는 청사진으로서의 평화협정 협상의 비전을 미국과 북한에 제시하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논리는 북한이 받아들일 리가 없는 잠꼬대에 불과하다. 관계 정상화와 제재 해제를 늦추는 것은 북한 비핵화가 늦어질수록 좋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이런 모순에 대해서 국민은 물론 정부도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진전이 없다.”

한국은 평화협정을 북한에 줄 수 있는 도구적인 성격, 일종의 떡처럼 보는 것 같다.

“평화협정은 마지막까지 미뤘다가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는 게 아니다.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선결 조건임을 깨닫고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평화협정도 종전선언도 북한이 양보하면 그 대가로 던져 줄 떡이 아니다. 북한이 진정성 있게 비핵화를 하도록 규정하는 협정이자 약속이고, 청사진이자 일정표이다. 국제 사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문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렇게 가면 북의 입장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서 정말 비핵화를 해야 하는 일정표가 짜여 있을 때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북이 100% 받아들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전쟁 위협을 감수하면서 이뤄낸 핵무장이지 않나. 경제재제 해제, 북미간 대사관 설치와 수교는 가역적이지만, 비핵화는 비가역적이다. 비대칭 거래이기 때문에 내용상 마음에 드는 협정이라도 주춤거릴 텐데. 지금 그런 일정표를 줄 생각이 없으면서 북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나서기만을 바라는 상황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자세는 분명 아니라고 본다.”

한반도 신경제구상 등 남북 경제문제도 평화협정체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텐데.

“외교 및 경제관계 정상화의 일정표를 북한 비핵화 일정과 서로 연결하는 청사진으로서의 평화협정을 구성해낼 때, 남북 경제 공동체 건설과 한반도의 주도적 역할이 가능해진다. 이건 평화협정과 직결되어 있다. 평화협정 체결 없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해제, 대북 안전보장, 외교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국면에서 소극적이고 작은 예외와 양해를 얻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 없이 미국이 정해준 틀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건 한반도의 비전도 아닐뿐더러 바람직한 외교도 아니다. 스스로 목적지를 정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운전만 하는 걸 제대로 된 운전자라고 할 순 없지 않겠나.”

많은 사람들이 평화체제 협상의 교착상태를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인 것 같다.

“장기적으로 환경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다. 북이 전기 생산과 국제사회의 우라늄 활용에 대한 견제 때문에 석탄 화력발전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어느 정도의 우라늄 이용을 허용받을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란과의 핵협상에서는 플루토늄 생산시설과 고농축 우라늄 시설은 완전히 포기하고, 핵발전을 위한 저농축 우라늄 시설만 일부 허용받았다. 트럼프 정권은 이마저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북한은 이 때문에 석탄 발전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북한이 석탄가스화를 위해 노력하고 수력발전과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우리보다도 월등히 높은 상태이지만, 석탄에 의존하는 상태 역시 가속화할 수 있다. 북한이 계속 석탄을 때면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한반도 차원에서는 큰 문제가 된다.”

냉전 시절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산성비가 내려 숲이 망가진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중국 황사나 오염에다 북의 석탄 의존 심화로 인한 폐해까지 겹쳐 더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전력 문제도 그렇지만 노태우 정부 때가 오히려 더 과감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마치 도망가듯 건별로 해결하려고 한다. 왜 한국 정부가 아직 퍼주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앞으로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물론 남남갈등에 대해서 걱정하고 조심스러운 건 이해가 된다. 그만큼 우리 국내외 사정이 좋지 않은 면이 있다. 하지만 조심이 너무 지나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포기한 것 같은 지경에 빠진 것 같다. 평화협정 본격협상의 필요성과 관련해서 미국 강경파와 국내 보수세력의 프레임에 끌려다니는 패턴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에 대해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 자신이 그 프레임에서 명확하게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거듭 얘기하지만, 9월 20일에 문 대통령이 능라도 연설 이후 ‘비핵화 완결 후에 평화협정 체결’ 얘기를 하니 김정은 위원장과 참모들도 뒤통수 맞은 느낌으로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의 선회를 고민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을 북미 관계의 악화를 막는 견제수단으로만 활용하고 북미 관계에서 문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핵무장을 내실화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 악순환의 틀을 깨야 한다.”

인터뷰어 한승동 편집인, 정리=박지은 편집자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