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국무성 관리들 ⓒU.S. Department of State
  • 정국 주도력 약화: 단지 경제문제만 아니다

  • 선의로 외교 하는 나라는 없다: 먼저 치고 나가야

  • 남한은 북미 메신저가 아니다: 따질 건 따져야

  • ‘연내 답방’ 매달려 북에 공을 넘기는 건 무책임한 태도

  • 미국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던 호랑이일 수도

  • 개성공단 재가동 하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 담대한 의지의 실천은 담대한 선택으로

미국의 강경한 대북제재 입장이 지속되고, 혹시나 하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숨 가쁘게 진행되던 한반도 평화 모드도 교착상태에 빠져드는 모양새입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북미 사이에서 남한은 ‘메신저’에 그치는 소극적 태도에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김민웅 경희대 교수는 “선의로 외교를 하는 나라는 없다. 남한 정부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며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편집자>

[김민웅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기만이 되고 있는 합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절실해지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 역시 미국은 대북압박 정책을 유지하거나 도리어 강화하고 있다. 상호 신뢰구축의 과정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나가면서 비핵화와 관계정상화를 도모하자는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를 노골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합의는 기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다부지게” 뚫어내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교착상태는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생각에서 문재인 정부가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돌파구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정국 주도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다만 경제문제의 시급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거의 모든 주요 사안에 대해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담대한 의지가 정치적 역량으로 집약되고 있지 못한 결과다. 한반도 문제는 그 다른 어떤 것보다도 특히 이런 역량의 최대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게 없으면 자칫 기본 방향 자체가 흔들리고 만다.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든지 역량의 최대치라는지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의미는 우리가 미국이 정해놓은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걸 명백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도적으로 취하면 미국도 어찌할 수 없는 선택과 조처가 있지 않고서는 “미국의 선의에 기대를 거는” 방식의 되풀이가 이어질 뿐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환상으로 움직이다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국가적 에너지만 낭비하는 결과에 불과해짐을 뜻한다. 국제현실에서 선의로 외교를 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으며, 강자가 언제나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약자라고 해서 밤낮 강자의 통제권 안에서 행동하면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 강자가 “아, 이러다간 곤란해지겠구나” 하고 충격을 먹을 정도로 “정면으로 치고 나가야” 비로소 진정한 안전이 확보될 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독립국가의 외교지만 실제로는 강자에게 굴종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이 관성이 되고 그것은 하나의 사상이 되어 모든 행동의 원칙으로 고정될 수 있다. 이건 본질적으로 식민지 노예의 윤리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가교역할에 그치는 방식으로는 양쪽 모두로부터 환영받는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못할 뿐만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상황 주도력을 갖기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는 4.23 판문점 선언이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입장으로 내세운 민족자주의 원칙은 증발해버릴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남과 북의 힘이 결합되어 뿜어내는 시너지 효과도 취약해진다.

미국의 책임을 물어라

남은 북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메신저 정도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엄연한 한 주체이다. 따라서 부당한 난관을 조성하는 쪽이 있으면 강력하게 반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자기 선택치의 외교적 비중을 극대화하는 담대함, 전격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국이 미처 예측하기 어려운 자주성과 남북 민족공조의 독자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지가 발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되지 못한 까닭도 이런 대목의 결여에 기인한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직접 대화가 단절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메신저 역할 정도는 이제 그리 긴요하지 않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이전과 다르다. 북한이 노력하고 있는데도 미국이 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어떤 방식이든 분명하게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로 이어지는 북/미간에 공개적으로 합의된 경로를 뒤엎는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신뢰구축”의 경직된 경로를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이런 점을 짚는 순간 한미동맹을 훼손한다는 논리를 우려하고 있지만, 그건 한미동맹이 미국의 한국 지배를 뜻한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결국 미국의 “승인(approval)”¹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입증하는 셈이다. 이걸 우리가 인정하고 있는가?

동맹은 동맹 상대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동맹이 아니라 강대국 패권체제의 종속적인 하부구조일 따름이다. 한미 동맹의 이름으로 미국의 부당한 대북정책을 정당화하는 사태가 지속된다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책임과 권리가 아닌가? 미국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신성모독이 아닐 진데, 왜 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가? 이런 식으로는 평화협정 체제구축이란 아득해진다.

축은 남/북이다, 한/미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대북 정책은 자신들이 합의한 내용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관계와 명분 양쪽 모두 충분히 문제가 된다. 북이 핵시설을 폭파하고 유해를 송환하고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는데 그에 대한 동가(同價)에 가까운 조처 대신 제재를 더 강화시킨다는 게 말이 되느냐, 라고 따져야 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해 한미동행 균열이라고 하면, 균열의 책임은 미국에게 있다고 바로 반박할 정도가 될 수는 없는가?

북은 남이 자신의 편에 서서 미국에게 목소리를 내고 압박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남과 북의 도전적인 공동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예고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는 판문점 선언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고 정당하다. 북한이 취한 조처가 갖는 가치를 적극 내세워 미국의 상응조처를 동시행동의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내놓아야 할 답이다.

남쪽이 적어도 이래야 북의 협상력이 그나마 강화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동되어 우리 대미외교의 위상도 강화하는 동시에 평화협정 체제의 조속한 이행으로 넘어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이에 대한 보답과 호응이 될 때 역사적 의미와 실천적 위력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축의 중심이 한/미가 아니라 남/북이며 이걸 토대로 해야만 미국의 부당한 압박정책의 교정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다. 남북 관계의 속도조절론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남북 분열정책이며 남북 공동대응에 대한 파괴 전략일 따름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남북관계의 진전은 도처에서 수없이 제동이 걸리고 미국의 입장에 서서 우리가 원치 않은데도 북과 적대적 대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된다.

북의 협상력 강화를 지원하라

물론 미국과 척 지으면서 뭘 해볼 수 있을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는 목숨처럼 절박하고 미국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미국이 부과한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의지를 세우는 일은 역사적 의무가 된다. 이와 같은 결단을 통해서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장애를 만들어 내고 있는 미국의 힘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그런 상황 조성도 없이 답방 연내 약속을 내세워 북에게 공을 넘기는 방식은 무책임한 태도였다. 답방과 관련한 북의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있지만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 참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는가? 이걸 몰랐다면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 답방이 성사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한 바 없다. 더군다나 잇달아 이어지고 있던 미국과 유엔의 제재 조처 발표에 대해서도 아무런 전향적 대응도 취하지 않았다.

본래 강자와 약자 사이의 적대적 관계에서 진행되는 약자 입장의 협상이란, 자신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조건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목표에 그나마 가깝게 타결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협상은 약자에게는 굴복의 과정이 되고 만다. 북을 미국의 요구에 굴복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면, 남북 공동의 기반을 대미 협상에서 위상강화의 조건으로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은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민담 속 호랑이의 요구에 기초한 협상의 출발점은 약자가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도 상대가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한다. 떡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안전조치를 보장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고개를 넘을수록 죽음에 이르는 길이 확실해질 뿐이다. 떡을 내어주던 엄마는 마침내 호랑이에게 살육 당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결과가 결코 아니다.

미국은 북한에게 지금 바로 그 호랑이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과거 “북한 붕괴론”에 기초해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하던 태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하나 둘 얻어내기 시작하자 속 타는 건 결국 북한이며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여기고 관계 정상화의 길에 계속 난관을 조성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북한의 굴복을 확정 지으려는 조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속지 말아야

이런 과정에서 요구 수위는 역설적이게도 애초의 요구를 만족시킬수록 점점 더 높아질 것이며, 그러다가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받아들이라는 협박이 협상 조건이라는 포장으로 가공되어 간다. 이는 리비아와 이라크 사례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네오콘의 영향권에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압박 정책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긴장고조를 위한 교착 자체를 의도적으로 목표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럴 경우 북/미 관계 정상화 경로가 교란 당하게 되고 한반도는 다시 전쟁의 위협에 빠져들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달 11월 12일 기사에서 북한이 비밀 미사일 기지를 은폐하고 있다면서 “거대한 기만(Great Deception)”이라고 비난했다.² 이 기사의 출처는 대북 강경론자 빅터 차(Victor Cha)가 이끄는 워싱턴의 씽크탱크 ‘전략 국제연구 센터(Strategic and Internationa Studies)’의 보고서였으며 그 진실여부가 논란이 되었고, 결국 그 내용 자체가 오히려 기만이라는 점이 드러났던 바 있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호언과는 달리, 재무부의 제재조처를 비롯해서 국무부의 대응 등 일련의 움직임은 이렇게 가다가는 협상이라는 틀 자체가 아예 사라지는 쪽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는 곧 협상 이전의 군사적 대치상황의 복원을 뜻한다. 다른 간섭요인이 들어설 여지가 없도록 속도전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상대해야 하는 약자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 어느 쪽이든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거나 또는 죽기는 매한가지라고 여긴다면. 자신을 방어할 무장력 강화를 다시 시도할 수밖에 없다. 평화는 버티고 버티다가 기력을 상실하고 주저앉을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재앙이다.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위험부담과 전쟁이라는 재앙 사이에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는 분명하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더욱 풀기 어려워질 수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과 행동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우리 민족 전체의 생명과 미래이지 미국의 국가이익이 아니다.

종전(終戰)과 5. 24 조치 및 개성공단 폐쇄정책 해제, 조속히 선언하라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못지않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과 북의 종전과 남북 경제교류를 가로막고 있는 5.24 조치, 개성공단 폐쇄정책의 해제를 빠른 시일 안에 선언하는 일이다.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로써 새롭게 집결할 것이다.

남과 북 사이의 종전선언은 그 자체로서 국제적 의미를 얻게 되고 평화협정 체결의 경로를 설치하는 작업에 간섭요인들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5.24 조치와 개성공단 폐쇄정책 해제는 대북제재를 풀어내는 도입구의 역할을 할 것이다.

남과 북 사이의 종전선언은 명분상 미국이 간섭할 수 없는 일이며, 5. 24 조치와 개성공단 폐쇄는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판문점 선언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당연히 여러 논란과 도전, 그리고 압박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선언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가령 5.24 조치해제와 개성공단 재가동 선언이 유엔의 대북 제제 방침과 충돌한다고 해도, 우리의 선언을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조치를 풀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평화를 위한 우리의 선택을 평화를 핵심으로 하는 유엔이 규탄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없다. 한반도에 투입된 미국의 경제력까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력은 이런 차원에서 우리에게 전략적 지렛대이다. 그러니 두려움으로 과도하게 염려가 깊을 이유가 없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거대한 패권체제의 지배를 벗어나는 21세기적 차원의 독립투쟁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잃어버린 민족적 존엄성과 자주의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 전쟁체제의 일상적 구조는 우리의 위상을 한없이 위축시켜오지 않았는가? 내년인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이러한 우리의 움직임이 갖게 되는 역사적 의미는 크다.

촛불혁명의 명령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담대한 선택이 절실한 오늘이다.

*각주

¹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대북제재 검토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 

²New York Times “In North Korea, Missile Bases Suggests a Great Deception”, Nov. 12, 2018

김민웅 /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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