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Shealah Craighead

-워싱턴 주류의 ‘자유주의’ 외교 파산이 ‘트럼프판 리얼리즘 외교’ 낳아

-트럼프, 70년 미국 대외정책 전복: 네오콘의 우파 이상주의 포기

-대안 없는 개입 축소가 혼란만 남겨

-트럼프의 한반도 외교정책 변화: 불안을 제거하는 것은 우리 몫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전 정부들의 외교 정책 대부분을 폐기하고 ‘현실주의’ 외교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극적인 입장 변화도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현실주의 외교 노선은 기존 워싱턴 주류의 자유주의 노선이 실패한 결과이지만,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가 트럼프 정부의 대 중동정책 전후 맥락을 분석했습니다. 한반도의 미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편집자>

지금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고 있다. 동시에 앞날을 근심하고 있다. 북미대화 및 남북대화 때문이다.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게 나아가버린 북한의 핵개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필요성은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기본 동인이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라는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없었다면, 현재의 국면은 상상하기 힘들다. 따라서 희망과 근심의 동인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 있다.

파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등 남-북-미 3국 정상 차원에서 전례 없는 타협과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에 걸맞지 않게 실무 차원에서 협상은 지지부진하고 교착됐다. 더 나아가 정상 차원의 합의에 대해 안팎에서 도전이 제기된다. 현재의 국면을 특징짓는 것들이다.

이는 트럼프와 워싱턴의 기성 주류들이 충돌하는 길항의 한 표현이다. 즉 글로벌리제이션에 추동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International Liberal Order)를 옹호하는 워싱턴의 기성주류들과 이를 반대하는 트럼프 지지층의 격돌이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전략은 파산했다”

현재의 중동과 그의 중동 정책이 그 극명한 예이다. 현재 중동에서 분쟁의 연원은 따지고 보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다. 워싱턴 기성주류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은 미국 대외정책 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평가받는다.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적 견해까지 대표하는 미국 대외정책의 대표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를 발행하는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의장인 리처드 하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 내의 온건합리 노선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지난 20년 동안, 중동의 많은 부분을 새로 만드는데 함몰됐던 미국의 외교정책은 간단하게 말해 도를 넘었다…시작부터 잘못된 이라크 전쟁과 목적이 바뀌면서 잘못된 아프간 전쟁…두 전쟁 모두 필요한 전쟁이 아니었고, 선택에 의한 전쟁이라고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두 경우 모두 전쟁에 걸린 이익을 핵심 이익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았다…지금까지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국내투자와 국내 정책 개혁에 방점을 둬야한다…고립주의자로 비난받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스가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견해를 전한다면, 비워싱턴 현실주의자(realist)의 대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미어샤이며 교수는 냉전 붕괴 이후 20여 년간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국의 현실적인 국력을 무시하는 이상주의에 입각해, 감당할 수 없게 전 세계적으로 무력개입과 국력을 전개를 했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미국이 국제정치의 기본원리인 세력균형을 무시해, 불필요한 분쟁과 대결을 초래했다고 비판해온 인물이다.

“지난 25년간 전 미국에게 전 지구적 지배를 요구하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liberal hegemony)는 파산한 전략…대중동(大中東)의 아프간, 이집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예멘 6개국에서 정권 붕괴와 민주주의 증진 시도는 테러, 전쟁 수렁로 귀결…조지아,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 시도로 러시아 관계 파탄과 동유럽 안보 저해…미 안보에 사활적인 유럽, 동아시아, 중동 3개 지역에서 세력균형 유지에 집중해야…이 지역들에서 지역패권국의 부상 저지…”유럽의 안보 책임 증강, 미 군사력 점진적 감축…러시아와 관계 증진해, 부상하는 중국 봉쇄…동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세력균형 연대 구축”
(‘Donald Trump Should Embrace a Realist Foreign Policy’, The Natinal Interest, 2016년 11월27일)

그러면서 그는 “중동 철군과 offshore balancing(역외 세력균형), 모스크바에게 시리아 내전 buck-passing(해결 책임 전가), 아사드 정권 인정, 이란과 관계 개선” 등을 주문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중동에서 철군한 뒤 중동 지역 국가 사이의 세력균형을 다시 복원하고, 러시아와 시리아 내전의 해결을 공조하면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란을 국제사회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했던 전후 70년간 미국의 대외정책을 전복시키는 파격적인 말들을 했고, 지금도 그 기조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와 친하면 안 되는가?”
“러시아와 협력해 중동 등 국제분쟁 해결하겠다.”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모순, 미국이 상관없는 일로 중국과 3차 대전 벌일 이유 없다.”
“무역으로 중국에 대처하겠다.”
“김정은과 햄버거를 놓고 대화하겠다.”
“나토 회원국이 침공당해도 자동개입 않겠다.”

트럼프의 이런 ‘파격적인’ 말들은 사실 앞서 소개했던 워싱턴 안팎에서 나온 비판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들이다.

“실패한 세계경찰, ‘아메리카 퍼스트’ 후보 당선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지적대로 트럼프는 지난 25년간 미국의 전 지구적 지배를 추구하는 리버럴 헤게모니의 파산을 인정했다. 그는 그래서 국제분쟁에서 지정학적 역할이 여전한 러시아와의 타협을 추구했다. 부상하는 중국과는 지정학적 대결을 지양하고, 경제적 분야에서 미국의 실익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대결 등 미국 개입의 인계철선 격인 북한과의 대화 추구를 밝혔고, 시행하고 있다. 나토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축소하고,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 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스와 미어샤이머의 주문이다.

이 때문에 랜돌 슈웰러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즈> 2018년 9/10월호에 트럼프 대외정책을 가장 열렬히 옹호한 논쟁적인 글 ‘트럼프 대외정책에 대한 세 가지 환호-기성주류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Three Cheers for Trump’s Foreign Policy-What the Establishment Misses)에서 트럼프를 이렇게 극찬한다.

“그렇게 많은 미국인들이 마침내 세계 경찰관 역할을 하려는 자기 나라의 오랜 대전략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미국 우선을 내세운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워싱턴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새로운 대전략을 추구해야만 한다. 트럼프판 리얼리즘은 그런 전략을 단지 제시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추진하는 중동 정책 역시 크게 보면, 이런 기조에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살피려면, 우리는 전후 미국의 중동 정책, 이에 의해 초래된 현재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을 먼저 봐야한다.

전후 미국 중동정책의 역사

전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1980년까지 그 지역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과 지역 대리인들을 통한 질서유지(buck-passing)가 주축이었으나, 그 이후로는 군사력을 통한 개입과 봉쇄로 요약된다.

Ⅰ기 (45년~60년대말) 이스라엘-아랍 전쟁
1960년대말 이스라엘-아랍의 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 전까지는 대소련 봉쇄를 정책의 주축으로 놓고는, 터키 및 이란을 주요 동맹으로 삼고, 영국을 대리인으로 활용했다.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운 세속주의 아랍국가들인 이집트·시리아·이라크,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주변의 걸프 보수왕정 등을 세 축으로 하는 세력균형을 모색했다.

Ⅱ기 (60년대말~79년) 오일쇼크, 중동평화협상
이는 6일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중동의 강국으로 등장하고, 오일쇼크 등을 거치며,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세력균형 정책으로 강화됐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주요 동맹으로 부상하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을 탈소련 친미로 포섭하고, 사우디가 부상하는 새로운 세력구도가 만들어졌다. 전반적으로는 이스라엘 대 아랍이라는 세력구도가 만들어졌다. 미국은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사실상 구축하고는,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최전성기였다.

Ⅲ기 (79년~90년) 이란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이 중동의 지정학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미국 중동정책의 패착을 낳은 근본 원인이 됐다. 이란 등 반미세력 견제와 봉쇄를 위해 이란-이라크 전쟁이 추동됐다. 이란에 맞서는 사우디 등 걸프 보수왕정 위상이 강화됐다. 미국에게 사우디 등 보수왕정의 위상 강화는 미국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와 심각히 충돌하는 모순이 지금까지 강요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Vs 아랍 세속주의 독재국가(이집트 등) Vs 이란 Vs 걸프 보수왕정(사우디 등)이라는 미국이 온전히 제어하지 못하는 세력구도가 만들어졌다.

Ⅳ기(90년~2003년) 걸프전, 9.11테러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시작된 걸프전쟁은 이런 중동 지정학적 질서의 모순이 터진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은 본격적으로 군사력 개입을 통한 이중봉쇄와 중동개조(regional transformation)를 시도하며, 확산되는 중동 분쟁의 씨를 뿌렸다. 걸프전은 아랍 국가들을 친미와 반미로 분열시켰다. 아랍 국가들 내에서 미국의 동맹은 친미화된 이집트, 사우디 등으로 축소됐다. 중동 전역에는 친미 아랍국가 Vs 반미 아랍국가 Vs 이란 Vs 이스라엘이라는 4개의 세력구도도 재편됐다. 중동에서 증폭된 반미 기조는 결국 9.11테러로 귀결됐다.

Ⅴ기 (2003년~현재) 이라크 전쟁,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초래한 재앙적인 중동 분쟁을 물려받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는 ‘최소화 정책’(Minimalist Policy)을 추구했다. 기존 워싱턴의 리버럴 헤게모니 전략을 완전히 수정할 수도 없고, 악화된 중동분쟁의 수렁에서 그대로 빠져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동 수렁 탈출을 위해 이라크 철군을 완료하는 한편 발호하는 이슬람국가(IS)에 대해 쿠르드민병대 등 현지 군사력 양성으로 대처했다. 중동에서 이란을 인정하는 국제핵협정을 통해 이란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여 제어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는 중동의 핵심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이란과 터키 등 비아랍 세력의 영향력 회복이라는 지정학적인 상황도 작용했다. 이는 이란을 최대의 안보위협으로 여기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반발을 불렀고, 현재의 사우디 주도의 친미 아랍 세력 대 이란 주도의 비아랍 세력의 대치라는 세력 구도를 낳았다.

현재 중동은 지정학적으로 세력균형의 붕괴에 따른 세력공백에 여전히 시달리는 상황이다.

첫째, 이라크 전쟁은 중동의 핵심지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세력균형추 역할을 하던 이라크, 시리아 체제의 붕괴로 배태된 거대한 세력공백을 만들었다. 이는 이슬람국가의 부상 및 지금도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졌다.

둘째, 이란, 터키 등 비아랍 세력들이 초승달 지대로 영향력을 복귀시키고 있다. 이 또한 이라크와 시리아 체제 붕괴의 결과이다. 냉전 시절 중동의 잠재적 강국인 터키와 이란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대소련 봉쇄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및 협력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고대부터 영향력을 투사하던 초승달 지대로 컴백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란 및 터키의 초승달 지대 복귀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 사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까지 가세하는 복잡한 합종연횡을 낳고 있다. 사우디-이집트-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친미 동맹의 주축이 되고,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반이란 수니파 동맹이 결성됐다.

하지만, 사우디의 헤게모니에 반발하는 카타르에 아랍국가들의 단교사태가 야기됐다. 이는 걸프 보수왕정 체제의 균열을 드러냈다. 예멘 내전에 대한 사우디 주도의 연합군 개입 역시 사우디의 의도와는 달리 그 안보를 더욱 위협하는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트럼프는 무너진 중동 질서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크게 몇 가지로 발현된다.

첫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반이란 친미 수니파 동맹 구축.
둘째, 이란국제핵협정 파기를 통한 이란 봉쇄.
셋째, 시리아 완전 철군 시사.
넷째,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및 협상 파트너로서 팔레스타인 부인 등이다.

이런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몇 가지 함의를 담는다.

첫째, 지역개조(Regional Transformation), 즉, 중동에서 민주주의 전파, 인권 확산 등 우파 이상주의 가치 포기이다. 부시 행정부 이후 네오콘 등 우파 이상주의 세력은 중동의 근본적 개조라는 야망을 품고, 이라크 전쟁 개전을 감행했다.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에서 친미 자유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중동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미국의 국익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중동정책에서 적어도 이런 우파 이상주의 가치와 정책은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지역 대리인(local clients)들을 통한 지역 적대 세력 견제이다. 즉,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쿠르드민병대 등의 친미 지역 대리인 세력들을 동원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부상하는 반미적인 지역 적대 세력인 이란, 시리아, 러시아 및 이슬람국가(IS)로 대표되는 비국가세력(non-state actor)들의 견제이다.

셋째, 시리아 내전에 대한 추가 개입의 자제이다. 이제 시리아 내전에서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부군 세력과 다투던 친서방 반군세력 및 이슬람국가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사실상 거세됐다. 내전의 마무리는 아직 먼 길이 남았으나, 시리아 정부군, 터키, 이란, 러시아가 내전 해결의 주도권을 쥐어가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이라크 전쟁 이후 붕괴됐던 중동에서 현지 국가 및 세력 사이의 세력균형을 복원하려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 시리아 내전에서 해결 책임 전가(buck-passing)을 주장하는 미어샤이머 등 리얼리스트들의 전략 주문으로 볼 수도 있다.

높아지는 회의: “트럼프의 역량으로 안 될 것 같다”

문제는 이란 봉쇄 정책으로 대표되는 그의 중동정책이 적절한 세력균형 정책인가라는 논란이다.

사우디, 특히 사우디 내에서 실력자로 부상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극단적인 이란 봉쇄 정책은 동맹 및 적대 세력 모두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 약화를 우려시키고 있다.

빈살만이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 예멘 내전 개입 등으로 이미 시작됐다. 중동 내에서 전통적 동맹 관계 역시 위축됐다.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됐고, 카타르 단교 사태로 인해 걸프 보수왕정 국가 내 연대 역시 심각하게 균열됐다.

이란과의 타협이나 적절한 견제 역시 무망해졌다. 특히, 이란과의 국제핵협정 파기에 반발하는 유럽이나 러시아, 중국 등이 이란의 후원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초승달 지역에서 터키나 이란 등 비아랍 세력들의 압도적 영향력 회복은 진행 중이다.

최근 사우디의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은 트럼프의 중동정책을 거의 파산 수준으로 내몰고 있기도 하다. 빈살만과 사우디를 무조건 지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의회는 거의 초당적인 수준으로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등장은 지난 20여 년간 워싱턴 기성주류들의 실패가 낳은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트럼프의 대외정책 역시 워싱턴 기성주류의 대외정책 오류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대외정책, 특히 중동 정책은 기존 정책의 실패에 대한 즉자적인 반작용이라는 성격이 짙다. 문제는 그의 중동정책이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실패와 오류를 거칠게 부정만하는 수준에서 머문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평한다.

“그는 기존의 대외정책을 반대한 것이 당선된 큰 이유였다…재직할수록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오바마가 ‘Washington Playbook’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본적으로 추종하고 있다…실제적인 이슈에 집중하고 그 이슈들을 이성적이고 적합한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자질 부족을 반영하는 그의 무능은 큰 문제이다”

미국의 또 하나의 대표적 리얼리스트 정치학자인 스티븐 월트는 더 구체적으로 평가한다.

“트럼프는 진정한 역외균형자로 인정받으려면 갈 길이 멀다. 그는 그 논리의 일부를 파악한 것 같으나, 그 정교한 전략을 작동시킬 지식, 기술, 세기가 부족하다. 그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설사 시간이 있다 해도, 그 일을 습득하기는 것은 그의 역량으로는 안 될 것 같다.”(‘Has Trump Become a Realist?’, Foreign Policy, 2018년 4월17일)

그래서, 워싱턴의 주류 리얼리스트의 대표인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가끔 역사에서 등장하는,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고 그 오랜 가식을 포기하게 하는 인물 중의 하나일 수 있어. 그가 이를 의식하거나, 어떤 큰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고는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우발적일 수도 있다”(Henry Kissinger: ‘We are in a very, very grave period’, Finantial Times, 2018년 7월20일)

트럼프 취임 이후 한반도에 전개된 전쟁의 우려, 이후 파격적인 대화, 다시 교착 상태 역시 이들의 평가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럼프와 그 대외정책이 안고 있는 워싱턴 기성주류 정책에 대한 반작용은 한반도에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그가 던지는 희망을 현실로 구현하고, 그가 부추기는 불안을 봉쇄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정의길/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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