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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사유, 창조적 행동하는 직장 내 뮤턴트 배출하려면 직장 민주주의 필수

 

다양성으로 차세대 생산성 확보해야 조직, 기업 21세기 생존

최근 문제인 직장 갑질은 결국 대리급 이하 사원의 승리로 끝나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Democracy does not stop at the factory gate.)”

 

   직장 민주주의를 꾸준히 주장해 온 우석훈 박사가 신간 《민주주의는 직장 문 앞에서 멈춘다》의 출간을 앞두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자못 도전적이다. 생산적 복지만으로 선진국 진입은 어려우며, 직장 내 민주주의 보장을 통한 사내 뮤턴트(돌연변이)의 양성만이 ‘20세기적 대량생산, 대량소비’ 이후의 경제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직장 내 갑질, 폭력 고발이 잇따르면서 새롭게 고민하는 CEO, 기관장은 물론 사회의 리더들에게 고민을 던지는 글이다. 우 박사는 청와대나 기재부 같은 톱 기관부터 ‘당장 하면 된다’고 권한다. <편집자 주>

 

1. 두 가지 얘기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백일장에서 상을 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진짜로 무지무지하게 많은 글을 썼다.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 작가’, 이게 초창기에 서점 관계자들이 나에게 붙여준 평가였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이 분야에서는 나 혼자 그렇게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책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책 쓰는 게 더 힘들어졌다. 글 쓰는 것도, 더 힘들어졌다. 이 정도 글을 썼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TV에서 경제 쇼를 진행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그게 싫으면 라디오 진행이라도 하라고 한다. “그냥 글이나 쓸래요”, 지난 2년간 이런 수많은 제안을 못 들은 척하고, 글과 책, 그야말로 텍스트만 붙잡고 있었다. 왜냐? 나는 아직도 텍스트가 가지는 근본적 힘을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직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나의 서른여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가끔 하던 강연과 방송 일정을 정리한 일이다. 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해야 할 총량이 있다면, 아마 이 책으로 나는 그 총량을 채운 것 같다. 책의 단점은 영상처럼 즉각적이지 않고, 모두에게 문턱이 낮지 않다는 점이다. 30초 이내에 승부 보는 것, 그런 건 안 된다. 책 일부만을 가지고 감정을 만들 수는 있지만, 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냥 뒷짐 지고 보는 것만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도 없다. 그건 책이라는 매체가 갖는 근원적 약점이다. 그렇지만 긴 호흡으로 다른 매체가 가질 수 없는 기동성을 갖는 것, 그것은 책만의 장점이다.


왜 내가 “나는 내가 학자로서 할 일을 다 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딱 두 가지 점만 전달하고 싶다. 이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한국 학자로서 가진 특별한 경험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폼은 안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지금도 공장이나 발전소를 돌아다니면서 실물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경제학자의 단상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데는 아마 10분에서 15분이 걸릴 것이다. 내 글이 독자의 시간을 그만큼 쓰는 셈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아까워 마시길. 컨설팅 업체에 2억 원을 들여도 이런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2. 이건 대선 이슈다

  •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노동자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또 다른 다리이다. 민주주의는 위계나 조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명령이 높은 곳에서 오는 군대 모델이 아니라, 위에서 또 아래에서 오는 힘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조직 내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데이비드 럼볼(David Rumball), <캐나다에서의 노동자 참여>, «오늘날의 산업 민주주의» 논문집(1979) 중

 

Democracy does not stop at the factory gate,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표현은 논문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제목 자체로 엄청나게 유명해진 말이다. 1979년 미국 언론인이 캐나다의 직장 민주주의와 관련된 학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이 얘기를 처음 한 사람은 프랑스 경제학자 푸르동이다. 19세기 중반이다. 많은 사람들이 데이빗 럼볼의 제목은 인용하였는데, 실제로 논문을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럼볼은 직장 민주주의는 군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아주 간단하지만 명확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군대로부터 기업 모델이 출발한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일이다. 동인도회사는 물론이고 제국주의 시절, 많은 근대식 대기업의 원형이 생겨났다. 직장 민주주의의 요지는 군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므로 정치나 사회의 민주주의와는 약간 다르다. 물론 군사독재 시절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정치적 민주주의나 직장 민주주의가 유사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은, 이건 다음 대선 이슈라는 점이었다. 이 시대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선거 공약에서 직장 민주주의가 다루어진 적이 없다. 노조와의 관계를 다룬 공약은 많지만, 회사 그 자체 혹은 더 넓은 의미의 직장 그 자체를 다룬 공약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거 있는 줄도 우리는 잘 몰랐다.

물론 옳고 맞는 방향이라고 해서 모든 정책이 다 대선 이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쪽에서 “나도 할게”, 이러면 공약 이슈가 되기 어렵다. 학교급식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강렬하게 반대하고, 한쪽에서는 찬성하는 이슈들이 선거용으로는 최고다. 그래야 이쪽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이끌 수 있다. 나도 하고, 너도 하고, 쟤도 하고, 이런 주제는 좋은 정책이기는 하지만, 공약으로서의 파괴력은 약하다. 그런 점에서 직장 민주주의는 ‘탈규제’ 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기조로 하는 쪽과는 분명히 논쟁적인 각이 나온다.

더 좋은 점은, 이 싸움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가는 이슈가 아니라 그 흐름을 타고 가는 이슈다. 지는 걸 이기게 하는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좀 더 빠르고 쉽게 달성해서 고통을 줄이는 형태의 이슈다.

최근의 조사로는 이렇다. 과장 이상의 직원들이 회사에 바라는 것은 ‘가족 같은 회사’다. 아마 이 글을 읽을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대리 이하의 직원이 회사에 바라는 것은 ‘사생활 보호’다. 좀 건드리지 마세요···.(내가 원하는 직장 문화? 사원은 “사생활 지켜주세요” VS. 과장은 “모두가 가족같은”, 미디어윌) 좀 더 끈적끈적해지기를 바라는 중간 간부 이상과, 그저 건드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대리 이하의 직원 소망, 이 접점을 찾는 것이 직장 민주주의다. 공무원과 공직을 포함해서, 당연히 아래 직급의 사람들이 더 젊고, 더 많다.

회사 야유회로 등산 갈까요? 이 질문이 젊은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 가는 직장, 여기가 직장 민주주의의 1차 대상이다. 전 세계에서 휴일에 전 직원이 등산 가는 회사는 한국에만 있다. 일본의 제조업이 일부 후지산 같은 곳으로 단합대회를 가기는 하는데, 젊은 직원들은 안 간다는 것 아니냐? OECD의 일반적인 직장 관행과 우리는 지금 너무 먼 곳에 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처럼 하는 선진국은 없다.

이 싸움은 결국 대리 이하의 직원들의 승리로 끝난다. 그게 올해 우리가 많은 형태로 본 ‘직장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회사의 실상이다. 사회의 흐름을 이기는 회사 관행이란 건 없다. 선진국에서 우리가 이미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이 5년이 갈지, 10년이 갈지, 아니면 20년이 갈지는 모른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 싸움을 정부가 가진 법제도 등 행정력과 적절하게 결합하면 훨씬 빠르고 덜 고통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약속할 정도의 대선 이슈다.

 

3.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가?

작게는 스웨덴 모델 혹은 북구 모델은 여전히 잘 나간다. 스타트업도 강하고, 제조업도 강하다. 우리는 이 모델에서 복지만 주로 보았다. 그러나 의문점이 남는다. 많이 걷어서 많이 쓰면 어디선가 구멍이 나지 않는가? ‘생산적 복지’라는 표현을 클린턴이 쓰기는 했는데, 실제로 북구 모델은 보편적 복지가 강해서, 일하면 꼭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쓰기만 하다 보면 결국 돈은 모자라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을 나는 직장 민주주의에서 찾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구 모델은 복지, 직장 민주주의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세 축으로 분석하면 잘 들어맞는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잘 안 되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좀 낫다. 뭔 소리인지는 안다. 그러나 직장 민주주의는? 우리는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돌연변이를 ‘뮤턴트’라고 표현해보자. 21세기 창조경제의 핵심은 더 많은 뮤턴트가 조직 내에서 등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걸 혁신이라고 부르든, 창조라 부르든, 지식경제라 부르든 별 상관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표준으로부터 멀리 그리고 다양하게 가는 존재들을 조직 내에서 등장시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조직들은 대기업이든 정부조직이든, 개별 주체들을 표준 스타일로 관리하고, 중간값으로 수렴하게 한다. 20세기 중후반, 우리는 그런 군대식 조직 관리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넘어왔다. 이게 21세기에 안 맞는다. 말만 혁신하라고 하지, 진짜로 혁신적으로 사유하거나 창조적으로 행동하면 조직에서는 쫓겨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스스로 뮤턴트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권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믿음직한 복지가 필요하다. 그게 북구 모델이다. 다양성과 변이를 통한 생산성 확보, 그렇게 하면 복지와 생산성 향상이 같이 움직일 수 있다. 여기에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지역 민주주의까지 하나의 축을 형성하면 우리가 보는 환상적인 북구 모델이 된다. 우리는 이제까지 보편적 복지 하나만 본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시장 실패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정보가 불완전하거나 공해나 기술처럼 외부성이 존재할 때, 시장은 실패한다. 그런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그렇지만 정부 역시 제도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제도 실패 혹은 정부 실패가 발생한다. 기업이나 정부는 모두 사람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시장이나 정부가 실패하듯이 조직도 실패한다. 한국 경제가 집단으로 부딪힌 벽은 바로 이 조직의 실패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어도 조직의 실패에 갇혀서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에게 직장 민주주의라는 질문은 정의나 공정 혹은 인권을 떠나 직면한 효율성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복지든 연구개발이든, 많은 경제 정책은 돈, 그것도 꽤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시간도 많이 든다. 직장 민주주의는 다르다. 일부 간부들이 좀 속상한 것을 참으면 정말 적은 돈으로 꽤 높은 수준의 직장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조직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이미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이다. 직장 민주주의를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교육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다.

먼 데 살필 것 없다. 한국 경제를 총괄하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여기도 엄연한 직장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가장 상급 기관이다. 여기서 직장 민주주의 하겠다고 선언하고, 자기들부터 먼저 민주주의를 탑재하면 된다. 너무 보여주기식에 요란한 방식 아니냐고? 원래 민주주의가 그렇게 좀 요란뻑직지근한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상할 것 없다.

전체적으로 직장 민주주의를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이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몰라서 안 한 것이라는 거다. 외국에서 경제를 외삽식으로 배워오다 보니, 너무 단편적으로 알았다. 그게 다가 아닌데 정책이 재정과 금융으로만 나뉘거나, 성장과 분배로 두 길로 나뉘면서 파편으로만 경제를 이해했다. 조직으로서의 기업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도 없고, 민주주의가 직장에서 갖는 생산성 향상 역할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몰라서 못 했지, 우리 능력으로 못 할 것은 없는 게 직장 민주주의다. 지금 당장 하면 된다.

 

우석훈/ 경제학자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