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편집 2019. 08-23. 08:00
(사진: 장웨잉 북경대학 교수)

중국 경제학계의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장웨잉(張維迎) 베이징대 교수가 시진핑 체제의 ‘중국 모델’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연설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모델’론은  장 교수가 지적했듯이 강력한 정부, 거대한 국유기업, 총명한 산업정책이라는 중국 특유의 요소 덕에 중국이 오늘의 압축적인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주장의 집약체다. 민간 자율의 시장경제를 앞세운 서방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국가주도의 중국 모델론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서방과의 갈등을 야기했지만, 효율적인 고도성장과 뛰어난 실적을 토대로 억압적이고 강력한 중앙통제 방식의 시진핑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돼 왔다.

그런데 장 교수는 이 중국 모델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10월 14일 공개 연설에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장 교수의 중국 모델 반대론은 곧 시진핑 체제 반대로도 연결될 수 있다. 중국에서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베이징대 교수의 공개 비판은 시진핑 체제하의 국가 진로에 대한 중국 내의 이견과 반대가 만만찮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 교수의 중국 모델 비판론의 요지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중앙정부의 강압적이지만 총명한 지도 때문이 아니라 서방이 지난 300년간 큰 비용을 치르며 쌓아올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올라탄 덕택이며, 후발주자로서 앞서간 서방의 경험과 시행착오의 교훈 덕에 우회로를 덜 거쳤던 후발자의 이점, 차익거래 덕택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또 그런 서방의 선진 경제가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 자유무역, 국제기구 등 이른바 서방적 보편가치들과 밀접하게 엮여 있음을 강조하면서, 서방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에 발전할 수 있었던 중국이 그것을 망각한 채 중국 모델의 우월성이라는 허상에 집착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국 모델이 아니라 ‘보편 모델’을 강조하는 장 교수의 이런 비판은, 서구 자본주의 부의 축적과정에서의 제국주의 침략과 불평등 교환, 식민착취 등의 부정적인 역사가 빠져 있고, 지금도 후발자에게 불리한 불평등, 불균등한 세계구조에서 선발자의 룰(rule)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지적이 없는 데다 서구 가치를 맹신한다는 점 등으로 비판받을 소지도 있어 보인다. <피렌체의 식탁>이 그의 연설 전문을 입수해 번역, 공개한다. 서울대 중문과에서 중국을 공부한 고한석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연설 전문을 번역하고 해설을 붙였다. 아래는 순서대로 연설 전문(中评周刊 (China-Review Weekly) 84호, 2018. 10. 27)과 그의 해설이다.<편집자 주>

 

연설 전문/

 

미중 무역충돌의 배후는 단순히 미중 두 나라 간의 갈등이 아니라 중국과 서양세계의 충돌로, EU 및 영국 등을 포함하여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많은 나라도 (중국에 대해) 긍정적 태도에서 부정적 태도로 전환하였다. 이는 이러한 충돌이 단순히 무역충돌이 아니라 그 배후의 가치 체계 간의 충돌, 체제 간의 충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뿌리깊은 것이라 지엽적 수단으로 조정, 화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중국 경제에 대한 이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해보아야 한다. 첫째, 문제를 사고하는 서양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둘째,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1. 세계에 대한 이해

(1) 국제관계에서의 이해관계와 옳고 그름

내가 말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란 서양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국제교류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는 이익 관계인가, 가치 체계 관계인가?

기존의 관점은 국제관계란 이익관계이며 국가 간의 갈등은 이익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래,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구축된 국제관계에는 이미 변화가 일어났으며 국가 간 관계는 이익관계만이 아니라 가치관계도 포함하게 되었다. 즉 나라와 나라 사이에 왕래할 때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도 따진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왕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믿는 바가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치와 이익이 서로 배치될 경우 일반적으로는 가치관이 주도하게 된다. 이는 인류가 지난 백 년간 이룩한 진보이다.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를 예로 들어보면, 무바라크 정권의 중동 평화 유지 정책이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였기에 비록 무바라크가 독재자였지만 그와 미국 정부 간의 관계는 줄곧 매우 화목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 과정에서 혁명 세력이 주창한 가치관이 미국이 공개적으로 주창한 가치관과 부합하였기에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손해가 될지라도 무바라크를 도와 혁명을 진압하지 않고 혁명 세력의 편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서 보면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와의 충돌, 신교 국가들과 천주교 국가 간의 전쟁을 포함하여 서방 세계 역사상의 수많은 전쟁은 모두 이익 충돌과 가치관 충돌이 서로 뒤섞인 것이었다.

 

(2) 서양 세계의 가치관

이른바 가치관이란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선악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다. 서양 세계의 가치관에는 3가지 중요한 가치관이 있다. 인권, 민족 간 평등,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도움이 그것이다.

인권 개념은 17세기 말 영국 사상가 로크가 제기한 ‘인권이 주권보다 중요하다’는 관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이는 나아가 근대 서양 세계의 민족국가 개념에 영향을 주었다. 그 이전의 소위 ‘국가’란 통치집단, 통치가문을 일컫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 한 가문이 여러 국가를 통치할 수 있었다. 현재 국제적으로 발생하는 많은 충돌이 모두 인권 개념과 관련이 있는데 서양은 인권에 관련된 일은 내정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는 유엔이 종족말살을 막기 위해서 평화유지 부대를 파견하는 도덕적 및 법리적 토대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민족 간 평등 개념이 점차 확립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가치관의 주도하에서 유럽 특히 서유럽 국가들은 난민 수용으로 인해서 일련의 문제들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도움 역시 2차 대전 이후에 형성된 개념 중 하나이다. 이 개념으로 인해서 각기 다른 발전단계의 국가들이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조건들이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처음에는 발전도상국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예를 들어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받은 원조는 세계은행의 자금지원 중 1위를 기록했으며 중국이 WTO에 가입할 때도 발전도상국 지위로 인해서 많은 우대 조건을 받았다. 반대로 미국은 세계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매우 큰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유엔 경비의 5분의 1 이상을 부담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대등’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중국의 발전단계가 변화한 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중국이 여전히 발전도상국인지 여부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논쟁거리이다.

 

(3) 평화에 대한 서양 세계의 이해

서양 세계는 무역, 민주주의, 국제기구를 세계평화의 3대 초석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인류가 과거 300년의 역사에 대해 내린 경험적 교훈이다. 무역은 각국의 이익을 일치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는 통치자의 야심을 제어할 수 있고, 국제기구는 각국이 소통을 통해서 오해와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상업이 자연스럽게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 경제학자 바스티아는 상품이 국경을 넘는 곳에서는 군대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경우 군대가 그것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에 의한 평화는 독일 철학자 칸트의 발명품이며 지금은 이미 서양인들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개념이 되었다. 2001년에 출판된 저서에서 미국의 정치학자 블루스 러셋과 존 오닐은 1816년에서 2001년 사이에 2천여 건에 이르는 전쟁 데이터에 근거한 연구를 통해서 민주주의 국가가 전쟁에 개입할 확률이 가장 낮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서로 대항하는 두 나라 중 한쪽이 비민주적 정치체제일 경우 전쟁이 발생할 확률은 평균 수준보다 배나 높으며 두 나라가 모두 민주주의 정치체제일 경우에는 충돌이 발생할 확률은 50%가 감소한다.

여기에 시장경제와 국제무역을 더하게 되면 충돌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민주주의, 상대적 군사력, 강대국 지위, 경제성장이라는 변수를 통제할 경우 주어진 해에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그다음 해에 군사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더 적다. 전세계를 상대로 개방한 나라는 군사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작다.

바꾸어 말하면, 민주주의에 의한 평화는 오직 두 나라가 모두 민주적 정치체제일 경우에만 가능하지만, 무역에 의한 평화는 오직 한 나라만 시장경제인 경우에도 유효하다. 세계평화에 있어서는 무역이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다!

 

 

2. 중국 경제에 대한 이해

(1) 지난 40년간 중국이 이룩한 성취에 대한 이해

수천 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일단 차치하고 불과 최근 40년에 걸친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진지한 사고가 필요하다.

지난 40년간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인민 생활수준의 향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실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현재 중국의 지난 몇십 년간의 성장에 대해서는 ‘중국 모델론’과 ‘보편 모델론’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전자는 중국경제의 발전이 독특한 중국 모델 덕택이라고 여기는데 즉 강력한 정부, 거대한 국유기업, 총명한 산업정책 덕분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중국이 이처럼 괄목상대할 성취를 이룩한 것은 영국의 굴기, 프랑스의 굴기, 2차 대전후 독일, 일본, 아시아의 4마리 용의 굴기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힘, 그리고 창조정신과 모험정신으로 대표되는 기업기 정신에 근거한 것이다. 게다가 중국의 발전은 서방 선진국들이 지난 300년간 쌓은 기술들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올해 초에 발표한 “내가 겪은 제3차 산업혁명”이라는 글에서 나는 중국이 어떻게 개혁개방 이후 40년의 기간 동안 서양 세계가 250년 동안 겪은 3차례의 산업혁명을 겪었는지를 정리하였다. 후발자의 이점이란 우리가 우회로를 더 적게 걸을 수 있었다는 것, 남들이 거대한 대가를 치른 실험을 통해서 얻은 기술적 성과를 직접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모델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중국 모델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베이징 국민경제연구소가 편찬한 시장화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전체의 시장화 지수는 1997년의 4.01에서 2014년의 8.19로 상승하였는데 그 사이에 2009년에 있었던 “4조 위안” 경기부양 정책 이후 시장화 지수는 소폭 하락하였다.

그러나 지역별로 시장화 정도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그중 저장성, 광둥성, 장쑤성 등 지역은 시장화 정도가 가장 앞서 있으며 동부의 시장화 지수는 중부 및 서부보다 앞서 있다. 하지만 GDP 성장율을 들여다보면 2007년 이전에 동부의 GDP 성장율이 지속적으로 중부와 서부보다 높았지만 2007년 이후에는 반대로 서부의 성장율이 가장 높고 중부의 성장율이 그 다음으로 높으며 동부가 가장 낮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최근 5-10년 사이에 각 지역의 시장화 정도와 GDP 성장율은 반비례 관계임을 보여주는 일련의 증거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서부 지역의 체제와 정책이 동부 지역보다 우수한 “중국 서부 모델” 덕택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나아가 동부와 중부 지역이 서부 지역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부의 시장화 개혁이 나중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후기에 “후발자의 이점”을 누리게 된 것이다. 1997년과 2001년에 동부의 시장화 정도는 각기 2006년과 2014년 서부의 시장화 정도보다 높았다.

우리는 베이징 국민경제연구소 시장화 지수와 중국 통계연감의 경제성장 데이터를 이용하여 최근 10년이든 최근 40년이든 시장화 지수의 “변화”는 모두 GDP 성장율과 양의 상관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중국 모델론”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즉 시장화는 동태적인 점진적 과정으로, 우리는 역사적 추세와 무관하게 특정한 시점에서의 경제적 성과를 토대로 어떤 인과관계를 도출해서는 안된다.

시장화와 경제성장 간에 존재하는 양의 상관성을 증명할 수 있는 실증적 증거는 더 많다. 중국의 도시 및 농촌 국유기업 부문(또는 민간기업 부문) 취업비중, 국유(또는 외자 및 민간) 산업자산 비중 등 지표와 1인당 GDP 및 성장률의 상관관계 등은 국유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경제성장 속도가 더 낮으며, 국퇴민진(국유기업 비중이 줄어들고 민간기업 비중이 늘어남) 지역이 국진민퇴 지역보다 더욱 높은 경제성장 성과를 낸다는 것을 예외없이 증명해주고 있다.

과거 40년간 중국의 성장은 대부분 기술 후발자의 이점이 제공하는 차익거래의 기회에 의한 것이었으며 중국의 기업가와 서방 기업들은 모두 차익거래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차익거래 여지가 점차 축소됨에 따라서 향후의 발전은 가면 갈수록 혁신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3개의 지표로 혁신을 가늠한다. 그것은 연구개발 비중, 특허, 신제품 매출비중인데 각기 투입, 중간, 산출이라는 세 단계에 조응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지표를 가지고 따져보면 최근 10년 동안 중국은 적지 않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지역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전체 지역별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이 세 가지 혁신 지표가 모두 시장화 및 민영화 정도와 현저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지만 1만명당 정부기구 숫자 및 공공부문 취업비중과는 음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 숫자, 취업자수이든 아니면 산업자산이든 상관없이 평균적으로 말해서 국유기업 부문의 비중이 더 큰 지역일수록 혁신역량은 더 낮으며 민간기업과 외자기업 비중이 더 큰 지역일수록 혁신역량은 더 높다.

 

(3) “중국 모델론의 영향은 심각하다

위에서 언급한 증거들은 “중국 모델론”이 매우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고도 성장은 시장화, 기업가 정신, 지난 300년간 서양의 기술 축적에서 기인한 것이지 소위 “중국 모델”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중국 모델”로 지난 40년의 성과를 해석하는 것이 중국의 미래 발전에 해롭다는 점이다.

첫째, 내부적으로 스스로를 오도하여 자기 앞날을 망치게 만든다. 중국 모델의 독특함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대내적으로 국유기업 강화, 정부권력 확대, 산업정책 의존이라는 길로 걸어가게 만들어서 개혁 진척을 역전시키고 이전에 이룩한 개혁 성과를 날려버리게 되며, 경제는 결국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 외부적으로 세계인들을 오도하여 대결국면을 조성하게 만든다. “중국 모델론”은 중국을 서양의 시각에서 볼 때 당황스러운 변종으로 간주하게 만들어 반드시 중국과 서양 세계의 충돌로 이어지게 만들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비우호적 국제 환경은 일부 (중국 또는 외국의) 경제학자들이 과거 40년간 중국의 성과에 대해 잘못 독해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서양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소위 “중국 모델”이란 바로 “국가 자본주의”이며 공평한 무역 및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수용할 수 없기에 절대로 중국이 제멋대로 마음대로 행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하이에크는 ‘비록 사실 자체는 결코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 알려주지 못하지만 사실에 대한 잘못된 독해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쪽 팔이 없는데도 매우 빨리 달리는 사람을 보았을 때, 만약 이로부터 한쪽 팔이 없는 것이 빨리 달리는 원인이라고 결론을 도출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팔 한쪽을 잘라내라고 말하고 다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실에 대한 이해가 사실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하이에크가 말한 바의 함의이다.

경제학자는 절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를 “그렇기 때문에”(because of)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연설문에 대한 해설/ 고한석

 

중국 모델론과도, 신고전파 경제학과도 타협하지 않는 협객 경제학자 장웨잉

베이징대학 경제학 교수인 장웨잉(59)이 지난 10월 14일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EMBA)에서 “세계와 중국 경제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주요 내용은 그릇된 ‘중국 모델론’이 중국과 서방의 피할 수 없는 적대감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강연의 녹취록이 10월 23일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의 웹사이트에 게재되었는데 곧바로 인터넷 상에서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모델론’의 부정과 보편적 시장주의를 강조한 내용은 단순히 경제학적 또는 정책적 의미를 넘어서서 중국의 헌법에 명기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노선에 대한 부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이었는지 며칠전인 10월 28일 오후 이 강연록은 웹사이트에서 삭제되었다.

 

정부 주도 산업정책에은 실패한다”-장웨잉의 비판

장웨잉은 중국 출신 유학생으로는 최초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1992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94년에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귀국 뒤 베이징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베이징대학의 광화(光華)경영대학원 원장을 지냈고 2008년에는 경제학을 중심으로 정치・외교・행정・역사 등 학문을 결합하여 국가발전정책을 연구하고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는 특수 단과대학인 ‘국가발전연구원’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중국 경제학계의 핵심인물 중 하나였던 그가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2016년 가을에 산업정책의 필요성 여부를 둘러싸고 같은 대학 동료인 린이푸(林毅夫, 66)) 교수와 벌였던 일련의 논쟁이었다. 발단은 2016년 8월 25일에 장웨잉이 하얼빈 교외 지역에서 열린 중국 기업가 포럼에서 “모든 형태의 산업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마침 2015년에 중국의 제조업 산업정책 종합판인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된 지 1년이 된 시점이었다. 그는 인간의 인지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의도적 개입으로 인센티브 메커니즘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정책은 마치 한판의 거대한 도박처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부는 어떤 산업이나 기업에도 특수한 정책적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정부 산업정책 반대는 무책임”-린이푸의 반격

그러자 9월 13일 그의 학교 선배이자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의 명예원장인 린이푸 교수가 “산업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글을 발표하여 비록 장웨잉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명백히 그에 반대하여 산업정책을 옹호하였다. 이 글에서 린이푸는 경제학자가 산업정책이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모든 산업정책에 반대하거나 거꾸로 산업정책이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라고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되며, 산업정책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치에 대해서 명백하게 따지고 연구함으로써 정부가 산업정책을 사용함에 있어서 실패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이 경제학자의 책임이라고 말하였다.

린이푸는 2008년에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 겸 개발경제정책 담당 수석 부총재를 역임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노벨 경제학상에 가장 근접한 경제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대만 출신으로 대만 국립대만대학을 다니다가 육군사관학교로 전학하여 졸업 뒤 장교로 임관하였고 1979년 대륙과 가장 가까운 대만 영토인 금문도에서 근무하던 중 야간에 2㎞를 헤엄쳐 건너 중국에 귀순하였다. 그 뒤 베이징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에 입학했고 1980년에 (바로 그 전해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 대학 명예교수 시어도어 슐츠가 베이징 대학을 방문할 때 그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 미국에 유학을 가서 1986년에 슐츠의 제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3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베이징 대학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1994년에 장웨잉 등 6명의 귀국 유학생들과 함께 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센터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국가발전연구원으로 확대되었다. 린이푸와 장웨잉은 이때(1995년)도 ‘국유기업 개혁’ 방향을 둘러싸고 공개 지상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장웨잉의 재반격, 그리고 장 논쟁

린이푸의 비판 글을 접한 장웨잉은 9월 17일에 “산업정책 문제에 있어서 린이푸의 네 가지 오류”라는 글을 발표하여 직접 실명을 들어 비판함으로써 제2라운드의 포문을 열었다. 장웨잉은 후발주자의 이점을 가진 나라가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성장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비교우위의 발휘와 정부 역할의 강조는 상호모순이다, 기업가 정신과 산업정책 역시 모순되는 것이다, 전략과 체제 간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네 가지 측면에서 린이푸를 비판하였다.

며칠 후 린이푸는 “장웨잉이 지적한 소위 네 가지 오류에 대한 반론”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장웨잉의 비판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한달여가 지난 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날인 11월 9일 오후 2시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에서는 아예 부원장 황이핑의 사회하에 이 두 사람이 연단에 올라서 장시간에 걸쳐 공개적으로 자신의 논지를 펴며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 정리기록은 A4용지로 30장에 달할 정도로 치열하였다. 이 논쟁은 언론들의 열띤 취재 대상이 되었으며 ‘린-장 논쟁’(林張之爭)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다음 해인 2017년 7월 1일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의 졸업식에서 장웨잉은 교수 대표로 ‘자유는 일종의 책임이다’라는 축사를 하였다. 마치 일종의 자유인권 장전을 상기시키는 이 축사의 전문이 그날 오후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의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었다가 바로 사라졌고 이를 전재한 중국 포털 사이트 Sohu.com의 축사 전문 역시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삭제됨으로써 인터넷상에서 커다란 파문과 논란을 일으켰다.

올해 연초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사실상의 글로벌 헤게모니 전쟁으로 더욱더 가열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중국의 최고 명문대학 중에서도 명문 경제학과의 태두인 장웨잉 교수가 또다시 ‘중국 모델론’을 직접 비판하면서 서방세계의 손을 들어주는 연설을 한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문장은 하이에크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하였으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정부로써는 상당히 언짢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해당 연설문은 인터넷에 공개된 지 5일만에 삭제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논쟁을 통해서 본 장웨잉 교수는 시장주의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우파 이데올로그가 아니다. 매우 직설적이면서도 논쟁 상대에 대해서 유머를 구사하는 그이지만 학문적 태도에 있어서는 매우 진지한 이론적 탐구자이다. 문제의 연설을 하기 며칠 전인 지난 10월 8일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모인 내부 학술토론회에서 그는 기존 신고전파 경제학의 교조적 원칙에 얽매이지 말 것을 학생들에게 당부하였다.

이날 강연을 요약한 <경제학에 대한 반추>라는 발표문에서 그는 서구의 신고전파 경제학의 많은 이론이 현실과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고 언급하였다. 심지어 새뮤얼슨, 프리드먼과 같은 사람들이 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이론의 기본 프레임에 대해서조차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며 심지어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변하듯이 청산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두 단계에 걸쳐서 주류 경제학 이론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장웨잉은 1980년대 초부터 주류 경제학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시장 경제에서 기업가의 역할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에는 기업가가 들어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주류 경제학의 시장이론과 산업정책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반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 경제학계에 가장 필요한 건 전복적이고 혁신적인 사고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서방 주류 경제학이 시장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8가지 모순을 지적하였다.

  1.  효율적 시장 가설은 시장의 부재를 전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2.  효율적 시장 가설과 혁신은 상호모순이다.
  3.  효율적 시장 가설과 시장의 질서적 특성은 상호모순이다.
  4.  외부성 이론과 기술진보라는 사실은 상호모순이다.
  5.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경제성장은 상호모순이다.
  6.  효율적 시장 가설과 계획의 가행성(feasibility)이 논리적으로 일치한다.
  7.  외부성에 의한 시장실패와 독점에 의한 시장실패는 상호모순이다.
  8.  독점 이론과 대리인 이론은 상호모순이다.

장웨잉은 시장의 이론적 모델에 있어서는 신고전파 경제학보다 오스트리아 학파 및 슘페터 학파가 더 우수하다고 판단한다. 전자는 확실성 하에서의 정태적 균형 모델이고 후자는 불확실성 하에서의 동태적 불균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근거하면 기업가의 의사결정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으로 마치 학생이 주어진 숙제를 하는 것과 같아서 결국 주어진 조건 하에서 컴퓨터로 계산해서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계획 경제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업가는 제약조건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게다가 모든 기업가가 오직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자신의 사업 제국을 건설하고 싶어 하고 때로는 인류 진보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몽상이나 성취감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즉 기업가마다 목표함수가 다르며 혁신과 관련하여 현재의 자원과 잠재적 기회에 대해서 종합적이자 주관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컴퓨터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해낼 수 없다.

그는 주류 경제학 이론 가운데 무역 이론, 비교우위 이론, 시장실패 이론, 독점 이론, 외부성 및 공공재 시장실패 이론,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시장실패 등도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가 보기에 현재 주류 경제학이 직면한 것은 개혁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지만 그것을 실제로는 매우 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보며, 마치 기업가와 같은 야심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경제학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현재 경제학계에 가장 필요하지만 부족한 것은 주류 이론의 단순한 추종자나 그를 통한 자기 이익 추구자가 아니라 전복적(disruptive)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경제학자라고 일침을 놓는다.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