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일자리 경제대책을 발표하는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필자 우석훈 박사는 국회의윈들과 교수 출신 청와대 스탭들이 경제관료들을 제대로 제어하거나 리드하지 못하는 게 경제운용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 8월 26일 <피렌체의 식탁>에 기고한 박성민 대표도 최근 20년간 관료집단이 힘을 더해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는 슬슬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청정개편 논의에서 큰 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다. ⓒ 연합뉴스

 교수, 정치인이 모피아에 휘둘리는 건

국민에게 신세 지고 탄생한 정권의 수치

 

경제 덩치가 커질수록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려는지가 명확해야

 

사람들은 현재의 경제를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에 빗대고 있어

 

토건사업 예비타당성평가도 생략하는 건 이명박 때보다 후퇴한 상징

 

경제에 관한 대안적 칼럼을 청탁했는데 와인 빛깔 수필이 왔다. 우석훈이 누구인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이자 지난 10년간 마흔여 권의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지만 민주정책연구원의 부원장을 지냈고, 몇몇 주요한 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 후보의 당선에 정책적으로 간여한 사람이다. 그가 모처럼 쓴 경제 에세이는 은유가 많다. 골자는 경제 운용에 있어 사람보다 방식의 문제가 크며 그 방식은 다름 아닌 모피아적 행태에 있다는 것이다. 새겨 읽자면 학자와 정치인들이 관료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근미래 경제 예측에서 비관론이 강하다.

<피렌체의 식탁>은 지난 9월 임형규 삼성전자 전 사장의 인터뷰를 통해 미중 무역분쟁이 오히려 한국에 기회일 수 있다는 해석을 최초로 내놨다. 이번에는 정치와 경제를 망라하는 우석훈 박사의 글을 통해 한국 경제를 운용할 때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구조의 문제를 느린 걸음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Le vent se lève !… Il faut tenter de vivre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무덤> 24개 연작시 중 마지막 구절은 드라마 <킬미, 힐미>의 대사를 비롯해 많은 예술 작품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구절이다. 폴 발레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은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날 것이다. 1920년 우여곡절 끝에 발간된 시집에 나온 이 표현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을 울렸다. 발레리의 이 문장은 두 차례 전쟁으로 공황과 같은 심리적 폐허에 허덕이게 된 사람들 그리고 유럽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보며 공허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쳤다.

 

 

심상치 않다

각자도생이라도 모색해야 할 한국경제

이 시의 원어인 바람이 ‘분다’는 정확히는 ‘일어난다’는 뜻이다.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진짜 묘미는 ‘tenter’, 즉 ‘시도하다’라는 동사에 있다. 번역으로는 살아야겠다는 주체의 의지를 강조하지만, 원어로는 살기 위해 ‘시도한다(tenter)’라는 의미다. 그래서 결국 살게 되는지 아닌지, 그런 건 모른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il faut), 그래서 무책임할지 모르지만, 살아보겠다는 작은 마음의 흔들림 같은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한다’, ‘해야겠다’ 따위의 주체적이며 강렬한 욕구의 표현은 아니다. 그 인과는 더 기가 막히다. 그냥 바람이 슬슬 일어나고 있으니까 살기 위해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다. 바람과 삶에 대한 의지,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짧은 문장 두 개지만, 동사 표현 몇 개를 뒤틀어 놓고,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뭔가 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짠한 내면의 움직임을 기가 막히게 묘사한 시구가 되었다.

<피렌체의 식탁>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에 대해서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떤 핑계를 대고 피해갈 것인가 생각했다. 말 한마디 더 보태는 게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신자유주의와 함께 자기계발서가 유행했다. 그 흐름을 사회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였다. 국가나 사회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 아니니까 스스로 강해지던지, 자신을 믿던지, 아니면 긍정적인 마음이라도 갖추던지.

언젠가 일산 외진 곳에서 운전하다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빨간색 볼보 왜건을 본 적이 있었다. 볼보 왜건과 세월호 리본, 참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나름 어울렸다. 맞다. 그런 정성으로 문재인 정권이 지금 서 있는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폴 발레리의 시구가 지나갔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문재인 정부도 이제 1년 6개월이 지났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새 정권이 1년이 넘어간 시점이라 지난 정권 탓을 하기에는 늦었다. 다 뒤집어쓰고 가는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억누른 저금리가 갈 곳 없는 부동자금을 만든 출발점인 것은 맞겠지만, 그 얘기를 지금 한다고 상황이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가지수 1900선 아래로 가는 건 폭락의 징조?

노무현 참여정부는 코스피 627에 시작해서 1897로 끝났다. 그 후로 10년, 최순실 감옥 가던 순간이 거의 비슷했다. 최소한 증권시장의 눈으로만 본다면 보수 정권 10년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걸 ‘10년 박스권’이라는 표현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코스피가 2000을 넘어가서 드디어 10년 박스권을 탈출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를 경제적으로 버티게 해준 수치는 바로 이 코스피 지수였다. 코스피 지수가 괜찮으니까 다른 단기 변수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쁘지 않다고 많은 경제인들이 생각했다.

이 코스피 지수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0이 심리적 저지선이고, 참여정부가 넘겨준 1897은 그야말로 ‘폭망선’이다. 다른 복잡한 지표나 고용률을 찾아볼 것 없다. 냉정하지만 시장이 경제를 보는 시선은 중장기적인 코스피 움직임에 담겨 있다. 2000 언저리에서 방어선이 생겨나고, 그 언저리에서 박스권이 형성될 것인가?(2천선 붕괴된 코스피…’2008년 악몽’ 재현되나?, 18.10.30) 이 밑으로 내려가면 아마도 ‘패닉’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1897도 한순간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1998년과 2008년을 생각한다. 1998년에는 주식을 산 걸 후회했다. 그때는 나도 한국 경제를 잘 모르던 초짜 박사였다. 2008년 봄에는 경로를 예측할 수 없지만 대폭락 같은 게 오리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다. 그때 가진 주식을 전부 처분하고, 쓰린 속을 달래면서 차를 바꿨다. 사람들은 아깝지 않으냐고 했지만, 나는 미련 없이 자동차 한 대만 남기고 모든 주식을 처분했다. 그해 9월,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만약 봄에 주식을 처분하지 않았다면 나의 주식 가치는 자동차가 아니라 냉장고 값까지 떨어졌을 게 뻔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지금은 1998년과 2008년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더 빠른 순간이다. 검토 중인 많은 토건 사업에 대해서 예비타당성평가(흔히 ‘예타’로 불림)를 면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MB도 4대강 때 천재지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편법을 썼지만 ‘그냥 넘어갈래’라고는 안 했다. 최소한 규정을 바꾸는 수고는 들이고 바꾼 규정에 따라 안 한다고 말했다. 이건 ‘그냥 넘어갈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꺼내는 정도가 되었다. 토건을 하려면 아예 종합계획을 세워서 제대로 하든지 혹은 이헌재처럼 ‘코리아 뉴딜’이라고 정면 승부를 봐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니다. 검토 중인 대규모 공사 몇 개라도 요행히 진행되면 지표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밑바닥에 있는 것 같다. 이는 정부에 별 카드가 없다는 것을 시장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보다 주 52시간제가 긍정적 효과 낼 듯

지난 시절을 복기해보면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걸 가지고 이랬느니 저랬느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내가 지켜본 선진국의 경제 위기 중에서 가장 최악의 패턴은 역시 1990년 일본 경제의 위기이다. 1990년 초, 일본 증시가 몰락하면서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금융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일본 부동산은 점점 달아올랐다. 미친 듯이 오르던 일본 부동산은 1년 후에야 그 기세가 꺾였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나중에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 소위 L자형 공황이라고 부르는 장기 침체가 왔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자기계발서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현 상황을 보면 기적적으로 고용의 질이 좋아지면서 소비가 늘고, 다시 생산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최저임금이 그런 장기적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제 막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는 노동의 질과 양에 변화를 미칠 것이다. 그 변화를 좀 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돕고 지원한다면 선순환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여러 요소들이 1년 이내에 긍정적인 상호 보완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경제 지도부가 그런 것을 지휘할 종합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낙관을 버리고 위기의 연속이라는 시각에서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코스피 2000을 넘어 1897 수준으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월 한 달 동안에 261조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추락하는 증시] ① 시총 261조 사라진 `검은 10월`…주요국 중 최대 낙폭) 사람들은 ‘검은 10월’이라고 이름 붙였다. 금융위가 급하게 관련 기관을 통해서 공급하겠다고 하는 돈은 5천억 원이다. 진짜 하나마나한 짓 아닌가? 이런 ‘면피용’ 대책을 내봐야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 10년을 합치면 코스피는 여섯 배가 올랐다. 그게 알게 모르게 민주당 정부의 집권이 가능했던 힘이 아닐까? 그 힘이 붕괴되는 순간이 오면, 재집권은 물론이고 당장 국정 운영의 동력도 보장하기 어렵다. 청와대에 파견 온 공무원들이야 자기 자리로 복귀하면 그만이고, 장관이나 차관까지 했던 인사들이야 인생의 절정을 누렸으니 나머지 인생을 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권은? 그리고 이 정권을 간절하게 바랐던 촛불 시민들의 희망과 염원은?

 

 

토론회도 설명회도 없이 발표되는 모피아식 밀실 행정

지난 1년 반 동안 잘못한 것, 이상한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더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폴 발레리의 시구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다 이상한데, 그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아직도 모피아식 밀실 행정으로 경제정책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상명하달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왜 그런가? 토론회도, 설명회도, 간담회도 없다. 귀찮아도, 서로 이해가 달라도 계속 만나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만장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의견 접근과 조율을 하려는 것이 민주적 경제 행정의 기본이다. 이게 여전히 없다. 숨어서 결정하고 어느 날 발표한다. 그리고 ‘받아쓰기’ 식 언론 기사만 있다. 촛불집회 이후, 왜 경제는 여전히 밀실 행정인지 잘 모르겠다.

전에는 나도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도 이제 덩치가 커졌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추진하느냐, 어떤 식으로 합의하고 결정하느냐, 이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적의 정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려 하는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유치원 논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손을 대기 무서워하던 문제였는데, 사람들의 관심과 논의 속에서 조금씩 가닥을 잡고 있다. 도대체 이전의 교육부 장관이랑 교육위 국회의원들은 뭘 한 거야? 이런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람들을 믿고 더 많은 것을 공개했다. 심지어 유치원 명단도 나왔다.

경제는 이것과 아주 다를까?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더 많이 논의할 때만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에 흘려서 ‘간’ 보고, 뒤에서 적당히 자기들끼리 수위 조절하는 임시대응으로 도대체 어떻게 지금의 덩치가 된 대한민국 경제를 운용할 것인가? 발상도, 관행도 잘못되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지금의 경제 운용은 촛불이나 시민적 방식과 상관없다. 오랫동안 야당이었던 민주당답지도 않다. 군사정권 시절의 모피아 방식으로 회귀한 것 같다. 박영선 비대위에서 문희상 비대위로 넘어가는 그 시절, 아직 대통령이 당대표가 되기 이전의 그 시절, 민주당의 지지율은 13.5%까지 내려갔었다. 그때는 경제가 모든 것보다 앞서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지금은 권력자들이 다들 경제만 빼고 자기 관심사에만 매달려 있다. 이건 좀 아니다.

 

 

경제관료 승진하고 생색내라고 촛불 든 게 아닌데

지금 필요한 건 무언가를 빠르게 결정하고, 사람들을 빠르게 바꾸고, 할 일을 했다는 식으로 면피하는 게 아니다. 위기일수록 더 침착해야 한다. 장관 바꾸고, 또 몇 사람 바꾼다고 코스피가 꿈쩍이나 하겠나?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그게 선진국 경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위기라고 하는 것의 정체는 위기를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권 인사들이 입버릇처럼 ‘경제만 웬만큼 하면’이라고 되뇌는데, 말은 맞지만, 경제는 그렇게 대충한다고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경제 관료들이 자기들끼리 승진 놀이하고, 소폭의 하나마나한 변화로 생색내라고 사람들이 촛불을 든 것은 아니다.

현 정부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경제에 관해서, 가보지 않은 길, 미래 의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지금까지 했던 일은 그렇다 치자. 지금은 위기, 그것도 엄청난 위기라는 사실만이라도 얘기해주고 싶다. 적당히, 대충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넘어가기 힘들다. 경제 운용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할 때다. 그 사람들에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폴 발레리의 시구를 들려주고 싶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유명한 시구를 ‘나라도 살아야겠다’, 이렇게 조악한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석훈/ 경제학자

피렌체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