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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 5월 대폭 유력하나 연말개편도 무시 못 해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거취가 관건

연말 개편설은 변화 갈구세력이 희망, 시기로 보면 총선 한 해 전 가능성 높아

문 대통령 인사 스타일은 DJ 닮아 논리적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이 잘 되는 이벤트는 5년마다 치르는 대통령 선거다. 적어도 1년 동안 장대하게 펼쳐지는 레이스는 그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다. 마지막 순간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탄식에 온 국민이 같이 울고 웃는다. 이 기간에는 영화 관객도 줄고 책도 잘 안 팔린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그다음 볼 만한 이벤트는 2년마다 엇갈려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선거가 재미있는 것은 ‘내 손으로 선출직 권력을 바꿀 수 있다’는 역동성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총재를 겸하던 시절 ‘당정개편’, ‘당정쇄신’이라는 단어가 신문의 큰 제목으로 자주 등장했다. 야당은 종종 ‘내각 총사퇴’나 ‘전면 개각’을 요구했다. 선거가 없는 기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임명직 권력의 변화’에 쏠리는 탓이다. 이래저래 권력의 변화는 흥미롭다.

지금은 대통령에게 정당의 당직을 개편할 권한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무리하게 쫓아낸 것은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우리나라 권력 구조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제다. ‘내각총사퇴’나 ‘전면개각’이라는 내각제식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지금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공직은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이다. 따라서 ‘청정개편’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정개편을 언제, 어떻게 할까?

이 얘기를 하려면 우리나라에서 청와대 실장이나 수석, 국무총리나 장관이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재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

 

 

대통령이 청정개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5년은 너무 길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다. 더구나 미국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우리는 다르다. 조직을 이끌어가려면 실장, 수석, 총리, 장관의 개인적 역량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5년 근무는 어렵다. 5년 재임한 장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능력 때문에 장수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째, 대통령 대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임기 보장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탄핵이 아니면 사퇴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실정을 대신 책임지는 희생양이 수시로 필요하다. 청와대 실장, 수석, 국무총리, 장관은 희생양으로 적격이다.

셋째, 총선과 지방선거다. 대통령 권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집권세력은 국회 다수의석 확보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내부의 인적 자원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은 각종 선거의 징발 대상으로 적격이다.

넷째, 국회의원을 겸하는 장관은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려면 선거를 앞두고 장관직을 그만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이 아니면 정치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최근 신임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봤듯이,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장관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대통령 인사의 요체는 ‘개편’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진 구성보다 개편이 중요하고, ‘조각’보다 ‘개각’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2011)에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청와대를 들락날락하며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정무특보-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서너 차례 ‘청정개편’을 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 경제수석, 대변인을 바꾸고, 사회부총리를 비롯한 장관 몇 사람을 바꿨지만, ‘청정개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개편’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적어도 청와대 실장, 국무총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심기일전과 희생양사이에서 오간 역대 청정개편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 핵심부 개편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은 황해도 도민회장이었던 홍성철, 국무총리는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이현재였다. 두 사람 모두 노태우 대통령과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포석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만 해도 대통령 권력이 무소불위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정도는 ‘실세’가 아니라 ‘허세’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안기부,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통해 국정을 장악했다. 막후에는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박철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참패하자 당 총재로서 당에 그 책임을 물어 민정당 대표를 채문식에서 윤길중으로 교체하는 등 당직개편을 했다. 1988년 12월에는 국무총리를 이현재 총리와 마찬가지로 화합형인 강영훈으로 교체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3당 합당 뒤인 1990년 3월 자신의 정치특보였던 노재봉으로 교체했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청산,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실시 등 잇단 개혁 조처로 초기에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 쌀 개방 협상으로 민심이 악화하자 1993년 12월 대대적인 당정개편을 했다.

국무총리를 황인성에서 이회창으로 교체했다. 또 경제부총리를 이경식에서 정재석으로, 통일부 총리는 한완상에서 이영덕으로 바꾸는 등 장관 13명을 교체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이번 개각은 실질적 의미에서 전면적 개각을 의미한다”고 했다. 청와대도 정무수석을 주돈식에서 이원종으로 바꾸는 등 수석 4명을 교체했다. 민자당 당직개편도 했다.

대대적인 당정개편은 대통령 취임 겨우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임기 2년 차인 1994년을 새 출발의 각오로 맞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스스로 “심기일전을 위한 당정개편”이라고 규정했다. 말보다 행동이 더 빠른 ‘YS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예외는 박관용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4선 국회의원 출신 중진 정치인으로 합리적이라는 평판 때문에 발탁됐다. 1994년 12월까지 꽤 오랫동안 비서실장을 했다.

 

 

DJ, “2기 내각은 개혁을 매듭지어야

김대중 대통령취임 15개월 뒤인 1999년 5월 장관 11명을 교체하는 대규모 개각을 했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 임동원 통일부 장관, 김태정 법무부 장관 등이 임명됐다. ‘국민의 정부 2기 내각’이었다.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도 바꿨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3명을 새로 발탁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기 내각은 집권해서 정치 안정과 개혁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약간의 거친 일을 했다”며 “2기 내각은 내실을 기해 개혁을 매듭지어야 하는 중요한 단계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1기 내각은 하드웨어, 2기 내각은 소프트웨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9년 11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중권에서 한광옥으로 바뀌었다. 정무수석은 남궁진 의원이 임명됐다. 측근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고, 영남 사람인 김중권 비서실장과 김정길 정무수석을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했다.

김대중 정부 초기 국무총리는 대통령 인사 대상이 아니었다. DJP 연립 정부였기 때문에 자민련 몫이었다. 김종필-박태준-이한동으로 이어졌다.

2003년 2월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2월 10개월 만에 1차 개각, 2004년 2월에 만 1년을 맞아 2차 개각을 했다. 기자들은 ‘찔끔 개각’이라고 불렀다. 취임 초기에 개각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첫 인사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2004년 4월 총선에 나설 사람들을 징발했기 때문이다. 김진표 경제부 총리, 한명숙 환경부 장관, 권기홍 노동부 장관,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조영동 국정홍보처장 등이 그런 사례였다.

청와대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 상당수 청와대 참모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2003년 8월과 2004년 2월 차례차례 물러났다. 문재인 민정수석도 출마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004년 2월 물러났지만, 출마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뾰족함을 고건 초대 국무총리의 뭉툭함으로 보완하려 했다. 고건 국무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뒤 2004년 5월 물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뒤 이해찬 국무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기용해 집권 중반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정권이 무너질 위기를 맞았다. 국민은 화가 났지만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대통령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언론과 야당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20일 류우익 대통령실장, 이종찬 민정수석,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 등 6명을 사퇴시켰다. 취임 4개월 만이었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애먼 참모들이 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중에 이들을 대부분 다시 중용했다.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을 포함한 대폭 개각이 예상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7월 7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3명을 교체하는 선에서 버텼다. 처세가 뛰어난 한승수 국무총리는 2009년 9월까지 재직했다.

 

 

유능함, 도덕성, 태도 중시하는 문재인 스타일

박근혜 대통령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을 6개월도 안 돼서 쫓아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후임이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법조인 출신 정홍원 초대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로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안대희, 문창극 등 후임 총리로 지명된 사람들이 낙마하는 바람에 2015년 2월까지 2년 동안 재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은 예측 가능한 정치인이다. 논리적이기 때문에 과거에 그가 썼던 글과 했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 대략 예상할 수 있다. ‘노무현 사람’이지만 그런 면은 ‘DJ’를 더 닮았다.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더불어민주당에서 촉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미 문재인 정부 첫 인사의 윤곽을 예측했다. 호남 출신과 여성들을 파격적으로 발탁하고,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꽤 많이 기용할 것이라는 전망 등이 그런 것이었다. 국무총리는 이낙연 전남지사를 임명하고,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 중에는 김현미, 유은혜 의원을 발탁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유은혜 의원 발탁설은 뒤늦게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청정개편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가 끝난 뒤 처음 주재한 6월 1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두렵다”며 유능함, 도덕성, 태도 세 가지를 주문한 일이 있다. 앞으로 인적 개편의 기준은 이 세 가지가 될 것이라는 예고나 다름이 없다. ([영상] 수석보좌관회의 문 대통령 모두발언, 09:00 부분)

관심의 대상은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국무총리, 그리고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권의 중추에 해당하는 ‘정치팀’이다.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는 경제를 책임지는 ‘경제팀’이다. 정의용 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반도팀’은 앞으로 상당 기간 개편이 없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연말이냐, 내년 봄이냐,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

청정개편의 시기부터 따져보자.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언제’ 하느냐에 따라 내용과 규모가 확 달라진다. ‘연말 개편설’이 있다. 주로 변화를 갈구하는 쪽에서 흘러나온다.

자유한국당이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그리고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라고 정치 공세를 편 지는 꽤 오래됐다.

이제는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경질을 요구(손학규 “소득주도성장 주역 장하성·김동연부터 경질해야”)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신뢰를 잃은 경제 사령탑 김앤장(김동연과 장하성)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가세했다.

여권 내부에도 그런 목소리가 있다. 심지어 과거 친노무현-친문재인이었던 사람들 주변에서도 조금씩 흘러나온다. 하긴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창업공신’이라고 할 수 없다. 오랫동안 고난을 겪으며 정권을 잡는 데 기여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현 체제를 흔들어야 이들에게 공간이 생긴다. 연말 개편설은 야당 전체와 여당 일각의 합작품인 셈이다.

청와대 사람들, 그리고 청와대 사정을 좀 아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물었다. 연말 대규모 개편을 예측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근거가 뭔지 궁금했다.

첫째,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은 확고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독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임종석 비서실장이라고 했다. 당·청 관계 조율도 임종석 실장이 한다고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밖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얘기를 문재인 대통령과 나눈다고 한다.

둘째, 경제팀 교체는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야당의 공세에 밀려 당장 연말에 경제팀을 교체하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장하성 실장이나 김동연 부총리 가운데 어느 한쪽만 교체하기도 쉽지 않은데, 시장이 정책의 균형을 허무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아니면 언제일까? 알 수 없다. 개편에서 시기는 모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논하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공학적으로 대략 계산은 해 볼 수 있다.

내년 4~5월이면 대통령 취임 2주년이자 21대 총선을 한 해 앞둔 때이다. 21대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임종석 실장을 놓아준다면 그때가 적절하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겸한 장관들의 경우 공직 사퇴 시한인 2020년 1월 중순까지만 그만두면 된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직후 임명된 장관들은 ’총선 1년 전’ 정도가 역시 적절한 때라고 볼 수 있다. 총선과 별 관련이 없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유임시킬 수도 있고 교체할 수도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 등 경제팀은 어떨까? 역시 내년 4~5월 이후 대규모 인적 개편 시기에 맞춰서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야당의 교체 요구가 잦아들고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찾는다면 연말로 앞당길 수도 있다. 인사란 본래 그런 것이다.

 

 

정무와 홍보 강화하고 청와대 비중 줄여야

청정개편에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일반론이지만 문재인 정부에도 해당한다.

첫째, 때 아닌 교체설이 불거지면 진화해야 한다. 하면 한다, 안 하면 안 한다고 해야 한다. 근거 없는 교체설을 방치하면 국정이 흔들릴 수 있다.

둘째, 여권 내부의 조화와 균형이다. 정치인에게도 “질투는 나의 힘”이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정치인의 질투는 주변과 자신을 파멸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신친문’과 ‘친노+구친문’이 대립하는 구도다. 권력을 적절히 배분해 내부 총질을 막아야 한다.

셋째, 정무와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정책은 경제와 외교·안보지만, 정치는 정무와 홍보다. 문재인 정부는 전반적으로 정무와 홍보 기능이 취약하다. 보완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을 설득해서 개혁 입법을 할 수 있다. 그래야 2020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

넷째, 국정에서 청와대의 비중을 줄여가야 한다. 청와대에 정책실장, 경제보좌관, 과학기술보좌관, 일자리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이 다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인사수석을 두고 주요 공직 인사를 청와대가 다 주무르는 현재의 시스템이 옳은지도 의문이다. 책임 총리, 책임 장관 제도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섯째, 적폐청산을 갈등관리로 전환할 때가 됐다. 70년 적폐를 5년에 다 청산하기 어렵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은 국정에서도 유효하다.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야 한다.

 

 

본인 기량 뛰어넘는 인재 찾아내는 게 능력 있는 대통령의 길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취임사에서 “참여정부에 하산은 없다. 끝까지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라고 말했다. 자세는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임기 중반부터는 치밀해야 한다. 용기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 좌고우면해야 한다. 특히 인사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기량을 뛰어넘는 걸출한 인재들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지략을 짜고 승리를 결정짓는 점에서는 장량에 미치지 못했다. 내정을 다스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군량을 조달하고 보급로를 확보하는 점에서는 소하에 미치지 못했다. 백만대군을 자유자재로 지휘하여 승리를 거두는 점에서는 한신을 따라가지 못했다. 세 사람은 나를 능가하는 걸물이었다. 나는 이 걸물들을 적절하게 기용할 줄 알았다. 내가 천하를 얻은 단 하나의 이유다. 항우에게도 범증이라는 인재가 있었으나 그는 이 한 사람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항우가 지고 내가 이긴 까닭이다.”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 나오는 글이다.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지낸 박남춘 인천시장이 2013년 《대통령의 인사》라는 책을 쓰면서 인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책에 추천사를 썼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모두 취임 1~2년이 지난 뒤 각 분야 참모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판단도 잘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대통령제의 문화와 제도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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