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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칼럼] 왕이나 대통령이 목숨을 바치기 전, 리더가 진짜 해야 할 일

by | 2020년 10월 10일 | 위크엔드 컬처




올해 추석 연휴에 TV특집방송 중 꺼낸 가황 나훈아의 한마디가 화제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했던가. 누군가는 듣기에 후련하다 하고, 어떤 이는 견강부회하지 말라고 하는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설전이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나훈아의 발언은 잘못됐다. 왕이나 대통령은 열사, 의사 같은 투사가 아니다. 리더다. 리더는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을 써서, 그런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가 할 일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리더

이래저래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책을 다시 뒤적였다. 이런 유(類)의 책은 정말 많다.
“三人行 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란 공자 말씀이 있다. ‘세 사람이 가면 그중 스승 삼을 만한 이가 꼭 있다’는 뜻인데 오늘날엔 ‘삼인행이면 필유리더’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세 사람이 모이면 무리를 이끄는 장(長)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앞장서 자기주장을 펴는 이가 있다. 공식적으로 감투를 쓴 이가 없어도 무리를 이끄는 이가 절로 생긴다.

이렇게 보면 리더는 어디에나 있다. 아니 우리 모두 누군가의 리더다. 흔히 리더라 하면 정치가, 기업 CEO, 장군, 스포츠팀의 감독·주장 등을 떠올리지만 말이다. 실제 누군가의 수하이면서 한편으로는 무리를 이끄는 ‘리더’인 중간 간부들, 한 가족의 가장 등 우리 주변엔 비록 처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곳곳에 리더들이 있다. 상황이 이러니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책 수요가 많은 게 당연하다.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는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고 바람직한 리더십은 과연 무엇인가 등등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해서 소통법, 화법에 팀장용, 심지어 팔로우십에 관한 책까지 이에 관한 다양한 책이 나와 있다. 한데 리더를 ‘위한’ 책은 많지만 리더에 ‘관한’ 책은 드물다 어떤 유형의 인물이 리더가 되는지 혹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다룬 책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는 불행하다

마침 『아틸라의 리더쉽』(웨스 로보츠 지음, 김영사)에서 이를 다룬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틸라는 5세기에 동유럽에 근거를 두고 로마제국을 뒤흔들었던 훈족의 왕이다. 유럽인들에게는 사악하고 무자비한 악당으로 그려졌지만 미 육군 출신의 컨설턴트인 지은이는 현군(賢君) 혹은 현대판 리더로 접근했다.
그중 ‘일을 맡으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는 챕터에서 아틸라의 입을 빌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인정을 받으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어야 하고, 이를 아주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내겠다는 용의를 가져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는 불행하다. 본인만이 아니라 조직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여기서 ‘준비’는 능력 함양, 경력 관리 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좋은 의미의 권력욕이 있어야 한다. 단지 혈연으로 또는 상황에 떠밀려 권좌에 오른 이의 불행한 말로를 걸은 이가 역사 속에 수두룩하다.

물론 리더에게 요구되는 권력의지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불장군 같은 선민의식이어선 곤란하다. 그보다는 조직을, 무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가리킨다. 여기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지적이 떠오른다. 그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덕(virtue), 용기(vigor), 비전(vision)을 꼽았다. ‘평화통일’ 같은 거대 화두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그런 미래 방향 제시가 지도자의 할 일 중 큰 몫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정관정요』 “두려운 마음에 침묵 말라”

그렇다면 리더는 태어나는가 키워지는가. 신분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선 지도자 양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때문에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책 대부분은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 중 동서양에서 이른바 ‘제왕학’의 교과서로 꼽히는 것이 『정관정요』와 『군주론』이다.

『정관정요』(김원중 옮김, 글항아리)는 ‘정관의 치(治)’라 해서 중국 당나라 초기에 전성시대를 일군 당 태종의 행적을 오긍(吳兢)이란 이가 정리한 것이다. 군주의 마음가짐, 통치술 등 요즘도 귀담아 들을 내용이 많아 『목민심서』와 더불어 정치가들이 자주 ‘전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 2장 ‘정치의 요체(政體)’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요즘 아랫사람들은 나의 뜻에 영합해 무조건 네네 하며 받아들이고 있을 뿐 조서의 글에 대해 직언하거나 간언하는 말 한마디가 없으니, 어찌 말이 되오? … 어찌 수고롭게 인재를 선발해 중임을 맡길 필요가 있겠소? …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있어 침묵을 지키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당 태종이 신하들에게 이르는 말이다. 무릇 리더라면 유념해야 할 대목 아닌가. 일부러 마음을 열지 않는 한 진정한 충언은 듣기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

『군주론』 “필요할 때는 사악해져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강정인 외 옮김, 까치)은 지도자들이 애독한 (혹은 애독할) 리더십 교본이지만 그만큼 논란의 대상이 된 책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등 지극히 실용적인 통치법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군주 된 자는, 나라는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틀린 주장은 아닌데 어째 거슬리는 대목이다. 실제 ‘마키아벨리즘’은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불린다. 하지만 당시 그의 처지를 알고 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외세의 각축장이었던 15세기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당시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에 희망을 걸고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이 책을 헌정했기 때문이다.

망징 3단계, 부패-지식층 붕괴-국민 침묵

마키아벨리는 또 다른 저서 『정략론』에서 “조국의 존망이 걸려 있을 때는, 그 수단이 옳다든가 그르다든가, 관대하다든가 잔혹하다든가, 칭찬받을 만하다든가 수치스럽다든가 하는 것 따위는 일절 고려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목적은 조국이 안전과 자유를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길사)에 소개된 구절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단 타당한 말이니 개천절 때 ‘광화문 차벽’ 논란과 관련해 등장할 법하다. 과연 ‘존망이 걸린 문제인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사실 『정략론』은 읽어보지 못했다. 한데 다른 리더십 책에서 또 만날 수 있다. 『통치술』(박동운 지음, 샘터)이란 책이다. 자유당에서 공화당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러 신문의 정치 담당 논설위원을 지낸 이가 쓴 책이다. 40년도 더 묵은 책이지만 여러 책을 섭렵해 정리한 2인자론, 영도의 원칙, 개혁에의 길 등 실로 지금 읽어도 도움이 될 내용이 그득하다. 가히 정치기술 교범이라 할 정도여서 정치지망생이라면 한 번쯤 찾아 읽어볼 만하다.

이 책에는 나라가 망할 징조인 ‘망징(亡徵)’을 다룬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대재난에 앞서 으레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는 마키아벨리의 『정략론』을 인용한다. 한데 정작 눈길을 끄는 ‘망징’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실렸다는 ‘망징’의 3단계다. 주나라의 무왕과 태공망의 말이라는데 첫째 부정부패(민심 이탈), 둘째 지식층의 탈주(붕괴 개시), 셋째 국민의 침묵(전의 상실)을 거쳐 나라가 결딴난단다. 어째 제법 설득력 있지 않은가.

리더의 성패, 사람 쓰는 일에 달려

리더라면 망징을 막아야 한다. 어떻게? 그 핵심은 용인(用人)이다. 리더가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니 당연하다. 어찌 보면 리더의 성패는 사람을 쓰는 일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문제적 리더가 삼국시대 위나라를 세운 조조(曹操)다. 일찍이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란 평을 들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한데 여러 판본의 소설 『삼국지』에선 조조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유비에 기울어진 탓이 크지만 어쨌든 전쟁 중심이어서 지략가로서의 조조만 부각될 따름이다.

학자 출신의 중국 언론인이 쓴 『조조평전』(장쭤야오 지음, 민음사)은 그런 갈증을 달래주는 책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람을 쓰는 법을 다룬 이 책의 16장이다. 조조의 인재등용 기준은 ‘유재시거(唯才是擧)’ 한마디로 요약된다. ‘오직 재능을 헤아려 발탁한다’는 뜻이다. 208년 적벽전투에서 대패한 조조는 210년 역사적인 ‘구현령’(求賢令)을 발표한다.
“그대들은 나를 도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잘 살펴 추천하라. 오직 재능만이 기준이다. 나는 재능 있는 인물을 기용할 것이다”라며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진평을 중용한 예 등을 들었다. 진평은 당시 형수와 사통하거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조조는 이후 위나라를 세우고서는 아예 취사물폐편단령(取士勿廢偏短令), 거현물구품행론(擧賢勿拘品行論)을 잇달아 발표했다. “품행이 바른 인물이 반드시 진취적인 것이 아니며, 진취적인 인물이 반드시 품행이 바른 것이 아니다”라며 결점 대신 능력을 보고 품행에 구애받지 말라 했다. 이렇게 인재 풀(pool)을 넓혔기에 와룡·봉추와 관우·조자룡 등 오호대장군의 도움을 받은 유비를 누르고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 행사 법칙 “최소한의 말만 하라”

이제 다시 서양으로 돌아가자. 세계적인 권력술 멘토라는 이가 지은 『권력의 법칙』(로버트 그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이다. 동서양의 일화를 예를 들면서 권력의 원천, 획득, 유지, 행사의 법칙 48가지를 정리해낸 책인데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여기에 ‘4부 권력 행사의 법칙’ 중 ‘최소한의 말만 하라’에 나오는 일화가 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 황제 때 반란 주동자 릴레예프는 교수형을 받던 중 목을 맸던 밧줄이 끊어져 목숨을 건졌다. 이에 그는 “러시아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않소”라고 외쳤다. 당시에는 이럴 경우 신의 뜻이라 하여 사형을 면해줘야 했는데 릴레예프가 했던 말을 들은 니콜라이 황제는 “그렇다면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겠다”며 다시 교수형에 처하고 말았다.

권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예화이긴 한데 지은이는 여기 더해 “비꼬는 말을 할 때 신중하라. 신랄한 말로 순간적인 만족감은 얻을지 모르지만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조언한다. 요즘 진영논리에 매몰돼 어지럽게 오가는 말싸움의 당사자들이 귀 기울일 만한 구절이다.
나훈아의 발언을 두고 자기 편리한 대로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진정한 리더십을 닦는 것이 정치권이 할 일이다. 리더와 리더십에 관한 책이라도 읽으면서.


김성희 필자

북 칼럼니스트. 책으로 사람꼴을 갖추고, 밥벌이를 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중앙일보 출판 담당기자로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출판사 푸른역사 편집위원으로 일한다. 고려대 초빙교수, 숙명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맛있는 책 읽기』,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 등을 냈고, 프레시안·네이버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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