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광복’ 73년째를 맞는다. 올해는 또 한반도 분단 73년, 정전협정 65년째이기도 하다. 그동안 남북 정상이 4번 만나고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난 일로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군국 일본이 패망한 지 73년이 지나도록 정작 우리는 아직도 과거로부터, 잘못된 역사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는 기막힌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일이다.

이 기구한 한반도 현실을 곱씹으면서,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아베에게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난달 24일 오사카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그 도시 중심부 공원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를 철거하지 않으면 오사카-샌프란시스코 자매결연을 파기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기림비는 지난해 9월 샌프란시스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세운,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상들이다. 한국·중국·필리핀 소녀 세 명이 손을 잡고 서 있고 그들을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김 할머니는 1991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 문제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여성, 강인함의 기둥’ 제작자는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스티븐 와이트.

오사카 시장은 그 ‘협박편지’에서 피해자들을 ‘성노예’ 등으로 표현한 기림비에 “불확실한 주장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새겨져 있다”는 걸 주요 이유로 들었다.

비슷한 기념물들이 세계 다른 여러 도시에도 세워졌고, 일본 보수우파 진영에선 늘 비슷한 대응을 해 왔는지라, 새삼스러울 게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 이른바 ‘전후(戰後) 일본’의 근본 문제가 응축돼 있다.

먼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주장들의 사실 여부부터 따져 보자. 그 핵심은, 조선의 10대 소녀들이 다수였던 일본군 위안부들이 강제로 동원당한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든 뭐든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위안소로 갔느냐의 문제다. 아베 총리 귀하를 비롯한 일본 보수우파들 주장은 위안부 동원에 국가나 정부 쪽이 직접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 쪽 개입을 마지못해 인정할 경우에도 군이나 경찰 등이 직접 그들을 완력을 써서 끌고 가진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희생자들은 자발적으로 갔거나, 관이 아닌 민, 즉 알선업자나 사기꾼, 아니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딸을 팔아넘긴 조선인 부모·형제 등 민간인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결국 강제동원은 일본 국가나 정부 소행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귀하가 보기에도 치졸할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이며 부도덕하지 않은가. 우선 그들은 지금도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을 모조리 거짓말로 치부해버리고 있는 셈이다. 피해 당사자의 강제동원 증언조차 보상금 몇 푼 더 타내기 위한 거짓 술수라고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는 저급한 수준의 인간들도 적지 않다.

민간 알선업자들조차 그 뒤엔 마을 이장이나 군수, 헌병, 군, 총독부가 버티고 있었으며 위안부뿐만 아니라 근로정신대니 학도병이니 하는 동원 대상들은 그 수까지 미리 할당돼 있었다. 그런 사실은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한일의 많은 연구자들을 통해서도 밝혀져 있다. 탄광 등 침략자들이 기피하던 험지의 중노동 현장에 ‘자발적으로’ 돈벌이하러 간 조선 사람들의 선택조차 제국 주적의 수탈과 강제가 횡행하던 식민지에서 생존의 한계상황에 내몰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상 강제 아닌가. 총리께서는 설마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야만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감행된 문명국의 자선 행위라거나, 영국이 인도를 침략한 것은 인도인의 행복을 위해서였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는다.

 

위안부일본의 문제로 만든 건 일본 자신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는, 강제동원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여성들 수만 명이 일본 군대가 설치한 야만적인 ‘위안소’에서 능욕당한 사실을 세상에 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심성이다. 그들은 그것을 ‘일본’에 대한 모욕이나 ‘반일’로 받아들인다. 보편적인 인권문제 고발을 반일이나 일본 모욕으로 받아들이면서 저토록 맹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을 편협한 민족주의·국가주의(내셔널리즘) 외의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민단체들이 비판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군국 일본의 전쟁범죄자들이다. 그것을 ‘일본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시민들이 아니라 그런 비판을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보수우파 자신들의 비뚤어진 의식이다.

기림비가 한국계·중국계 미국 시민 주도로 건립된 점을 거론하면서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지도 모르겠으나, 건립 운동에는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비롯한 비한국·중국계가 다수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의심 자체가 자가당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그런 일은 다른 누구보다 가해국인 일본의 정부나 시민들이 먼저 앞장섰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피해국 시민들이 나서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 쪽이 그것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막고 방해하지 않았던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 이후 1993년 ‘고노 요헤이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담화’ 등을 거치면서 일본은 전후 50년 만에, 비록 늦었지만 그런 기본사실을 인정하고 청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1996년 아베 총리 귀하의 등장 이후 그마저도 완전히 뒤엎어버리지 않았는가.

미국 시민들이 기림비를 세운 것은 가해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처참하게 유린한, 인류가 기억하면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극악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걸 귀하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 보수우파가 그 문제를 ‘반일’로 인식하는 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아시아 주변국들을 침략해 수천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들의 터전을 무참하게 파괴한 군국 일본의 내셔널리즘에서 여전히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같다. 귀하부터 그런 일본의 과거를 다시 찾아야 할 ‘영광의 과거’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한일관계가 민간 차원의 교류확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집권세력 차원에서 계속 꼬이는 근본 이유도 바로 그 퇴행적인 일본 내셔널리즘 때문일 혐의가 짙다. 귀하께서 먼저 그런 내셔널리즘의 허상과 아집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기를 권한다. 그게 안 되면 한일관계에 미래는 없다.

 

일본인 납치문제의 해법, 대화와 국교 수립부터

귀하에게 권하고 싶은 또 한 가지 일은, 북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식을 바꿔 달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방문 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납치 사실을 북한 내 맹동주의자들의 짓으로 시인하고, 사죄한 뒤 재발 방지까지 약속한 일이다. 일본은 ‘평양선언’에서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한 뒤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엎은 사람이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했던 아베 관방부 부장관 당신이 아니었나. 그때 시작한 맹렬한 반북 캠페인을 토대로 총리자리에 까지 오른 귀하는 지금까지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해결했는가. 당신은 지금까지도 일본인 납치자 전원이 다 살아 있고, 아직도 그들이 전원 귀환하지 못한 이상 납치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납치자 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북과의 대화는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와다 하루키 교수도 지적했듯이 그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일관계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북·일의 접근을 원치 않았던 미국 매파들의 견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지만, 당신은 그런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괴물 북조선’이라는 악당 이미지를 오히려 즐기면서 권력 유지에 활용해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는 북일 간 대화를 통해 외교적으로 풀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 관계부터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해결 가능한 접근이 아닌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게 있다. 북일 간에는 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인 납치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건 두말할 필요 없지만,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수많은 인권유린 사태들이 지난 세기에 일본에 의해 자행됐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나 정신대 동원, 학도병 동원, 징용, 징병 등 수백만에 이르는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은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고, 특히 그 주요 피해 당사자 중의 하나인 북에 대해서는 해결은커녕 정식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도, 사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할린에 강제징용돼 그곳 탄광에서 혹사당한 조선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그들 중 3200여 명은 일본 패전 뒤 그곳에 버려졌다. 일본은 사할린 내 자국민만 데려갔고 조선인들은 자국 국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팽개쳤다. 강제 동원당한 조선사람들 중 그런 식으로 남태평양의 이름도 모를 섬들과 인도차이나와 미얀마 정글, 오키나와섬에 버려졌거나 패전 때 일본군 손에 집단 학살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만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까지 오랜 기간 히로시마 평화공원 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바깥에 서 있어야 하는 차별을 받았다.

 

일본의 전쟁범죄 인식에서 조선은 빠져 있다

이처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조선인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당해 희생됐음에도 일본은 전시는 물론 전후 지금까지도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들에 대한 단 한 번의 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자국민 피해자들에겐 적극적으로 보상, 지원하고 부상 치료도 해주었으나 조선인들은 거기에서도 거의 제외됐다.

그런 범죄행위를 북의 일본인 납치문제와 같은 차원에서 논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북 맹동주의자들의 범죄행위가 일본이 지난 세기에 저지르고도 청산하지 못한 엄청난 범죄행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국민 보호에는 그렇게 철저한 일본이 자국민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 역시 과도한 일본 내셔널리즘 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좀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귀하의 집착과 큰소리가 그런 일본의 과거사를 덮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일본 리더들과 식자(識者) 중엔 중국에 대한 전쟁 책임을 거론하면서 ‘15년 전쟁’(1931년 만주침략부터 1945년 패전까지) 얘기를 하는 이들은 적지 않지만, 그 전부터 시작된 조선 침략 과정의 동학 농민 집단학살이나 의병 전쟁, ‘명성황후 시해’부 터 항일 무장투쟁까지 수많은 사람 삶을 짓밟고 살육한 한반도에 대한 전쟁 책임을 얘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혹시 한국인들을 오히려 전쟁 책임을 함께 져야 할 대일본제국 2등 신민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 희생자들 위패를 억지로 합사시킨 그들의 철저한 에고이즘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도 한반도에 대한 전쟁범죄 부채의식을 희석할 것이다. 일본은 학교에서도 그런 사실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독도 문제’는 적극적으로 가르친다. 모르긴 해도 중고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을 통해 독도가 한국에 점령당한 일본령 다케시마라고 배운 향후 일본의 신세대는 침략자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 인식할 공산이 크다. 귀하께서 바라는 게 그런 것인가? 일본이라는 작지 않은 나라의 행정 수반으로서 두 나라의 긴 흐름을 직시하기 바란다.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그럴 수는 없다.

한승동/ 본지 편집인, 전 <한겨레> 국제부 부장